하은, 학교(나래중학교) 23-5, 말에 담은 뜻
“선생님, 기저귀가 다 떨어져서요. 내일 챙겨 주실 수 있을까요?”
“아, 속옷이요? 네, 알겠습니다. 잘 챙겨 갈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하은 군이 학교에 두고 사용하는 속옷이 떨어진 모양이다.
수납장에 넣어 두었던 것을 꺼내 학교 가방 옆에 나란히 놓는다.
문득 방금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린다.
이제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일. 뜻에 따라 단어를 선택하여 말하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꺼내는 일.
지난 수년, 사회사업가로 일하며 훈련받고 터득하여 습득한 것이다.
‘기저귀를 챙겨 준다’와 ‘속옷을 챙겨 가도록 돕는다’는 아주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당사자가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야 한다고 믿는 사회사업가라면,
모든 일에 도움이 필요한 약자로 보지 않으려 애쓰고
개입하는 ‘그때 그 일’마저 쪼개고 쪼개어 어떻게든 당사자의 몫으로 돌려 보려는 사회사업가라면
그래야 하는 것 아닐까?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은이 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요청하면 서류철이라도 가지고 와 전할 요량으로 준비했는데,
간단히 대답할 수 있는 질문만 몇 가지 묻는다.
평소 식사는 어떻게 하는지, 얼마나 도와야 하는지, 샤워는 어떻게 하는지, 화장실은 어떻게 가는지….
다른 입주자 동호회 가입을 도울 때는 ‘약자처럼 표현하지 않으려고 애썼’으나,
그럴 목적과 자리는 아닌 것 같아 애써 의미를 담지 않고 명확하고 건조하게 현상을 나열한다.
「하은, 재활 22-12, 침대 ⑦ 은이 면담 잘 끝났습니다, 정진호」 발췌
때로 입주자 일로 병원에서 의사를 만나거나 관공서의 담당자 앞에 서면,
자리에 따라 ‘애써 의미를 담지 않고 명확하고 건조하게 현상을 나열’한다.
이조차 의식하며 어색해하는 우리 말에 담은 그 뜻을 생각한다.
2023년 11월 13일 월요일, 정진호
그렇죠. 단어 하나 가려 쓰려고 바로 쓰려고 애쓰죠. 귀합니다. ‘당사자의 삶’에 시선을 두고 거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월평
하은, 학교(나래중학교) 23-1, 가정 통신문 작성 철학
하은, 학교(나래중학교) 23-2, 꾸준한 신체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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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 학교(나래중학교) 23-4, 고마운 관심
첫댓글 입주자를 지원하며 세심함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잘 지켜주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