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케포리안 시대의 비잔티움 군대(AD 963~1042)
제국은 한정된 인적 자원을 가지고 있었고, 여차하면 자기네들 머릿수에 비해 훨씬 많은 머릿수를 풀어 놓을 수 있는 적들에게 둘러쌓여 있었다. 고로, 군대의 효율성은 제국이 살아 남으려면 반드시 놓치면 안되는 문제였다. 10세기의 비잔티움 군대는 구대륙에서 가장 잘 조직되고, 가장 잘 무장하며, 그래도 가장 제대로 봉급을 받는 군대였다. 나아가 비잔티움의 전술 이론은 어떤 국가에 비해서도 떨어지는 바가 아니었다. 제국의 야전 전술은 다양했으며 매우 효과적이었다.
비잔티움의 군대는 전통적으로 기병들에게 의존했다. 초기에 보병의 질은 의심스러웠으며, 임무도 요새 수비나 산악 지대의 전투 같은 한정된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나 950년 이후로 비잔티움의 공세가 두드러지면서 잘 훈련된 강력한 중무장 보병, 그리고 더더욱 중무장한 충격기병이 필요로 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이르러 비잔티움 군대는 개혁을 시작했고 경기병과 경보병 뿐만 아니라 중기병의 전술도 크게 발전했다. 이런 중무장과 경무장한 군대의 조합은 시각적으로나 전술적으로나 매우 흥미로운 결과를 가져왔다.
군대의 개요
이 두 그림은 "기본적인" 진형을 보여준다. 경보병의 지원을 받는 스쿠타토이들이 중앙에 배치되며, 기병은 양익에 자리잡는다. 클리바노포로스들은 한 부대로 중앙으로 배치되거나 같은 숫자로 나뉘어 양익에 배치된다. 일반적인 예시는 아니지만 루스인 동맹이나 바랑기안(형니이이임)들은 2선에 자리잡는다.

다음 그림은 경기병들의 지원을 받는 중무장한 클리바노포로스들이 한 부대를 이룬 것이다.

스쿠타토스와 궁병
950년 경에 이르러 보병들은 고대에 이어 또다시 군대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공세적인 기병 전술에 있어서도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다. 보병들은 야전에서도 공세적인 역할을 맡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기병들을 위한 "기동 방어 요새"를 제공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군대는 적어도 기병보다 2배 이상의 보병을 거느렸다. 대다수의 보병들은 호전적인, 예를 들자면 아르메니아인들 같은 사람들에게서 모집되었다.
전술적으로, 이 부대는 타원형 방패와 장창으로 무장한 부대로 궁병들을 엄호한다. 경보병이나 메나벨라토이(무거운 투창으로 무장한 부대로, 기병 돌격을 저지하기 위해 투창을 던지거나 혹은 창을 들어 저항한다.)들이 옆에 배치된다.
1개 천인대의 구성
400명의 스쿠타토이
300명의 궁병
200명의 투창병
100명의 메나벨라토이


타그마타의 카발라리오이
콘스탄티노플, 혹은 그 인근에 주둔하는 정예 중앙군인 타그마타는-여러 이견이 있지만- 약 6,000명으로 구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방군인 테마 역시 부유한 계층들로부터 기병들을 제공하지만 그 무장 수준은 재산 정도에 따라 크게 달랐다. 900년을 전후하여 각 테마는 약 4,000명에서 15,000명의 기병을 제공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시간이 갈수록 그 숫자는 감소한다.(그러나 레오 6세에 따르면, 15,000명의 기병을 제공할 수 있었던 아나톨리콘 테마에서도 패배후 재집결 할 수 있는 정예 기병, 즉 "카타프락토이"의 숫자는 4,000명이었다고 한다) 1025년에는 총 47개의 테마가 있었다. 테마의 보병들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최대한 24,000명까지 편성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대부분은 경보병이었다.(상당수는 공격전에 활용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카타프락토이
마갑을 씌운 이 초중무장한 "클리바노포로이"들은 950년을 전후해 나타나는 정예 공격부대이다. 사람과 말 모두 갑옷을 입히고 군대의 전방, 혹은 측면에 배치되며 사다리꼴 전투 대형을 짠다. 그들은 창과 메이스로 무장한다. 궁기병들이 대열 후방의 중앙에 배치되어 엄호한다. 이들이 선사하는 강력한 일격은 적의 대열을 붕괴시킬 것이며, 경무장한 기병들 역시 이들에게 약점을 노출할 것이다.

프로쿠르사토레스
프로쿠르사토레스는 경기병으로, 소규모 전위부대로 편성되었다. 이들은 창으로 무장했거나, 혹은 활을 들었다.이들은 클리바노포로이들과 함께 행동하며, 아마도 그들이 돌격하기 전 스커미시 작전을 펼쳤던 것으로 보인다.

바랑기안 가드
911년 첫 스칸디나비아 출신 바이킹들이 제국에 복무한 이래로 이들의 중요성은 점차 커져왔다. 바랑기안 친위대는 6,000명으로 구성되었으며 988년 바실레이오스 2세 이후로 황제의 개인 경호원 임무도 맡았다. 명백하게도, 이들은 비잔티움 고유의 군대보다 훨씬 믿을만 하다고 평가받았다(!) 1100년대에 이르러 친위대는 바랑고이인들보다는 앵글로-덴마크인이나 앵글로-색슨인들로 구성되었다. 예컨대 후에 노르웨이의 왕이 되어 해롤드 및 정복왕 윌리엄과 한판 겨루는 하랄 하르드라다 역시 바랑기안 친위대 출신이다.

기타 동맹군-루스인, 노르만인, 아랍인
테마가 쇠퇴하면서 비잔티움 군대의 숫자가 줄어들자, 제국은 용병들에게 의지하기 시작했으며 1050년대에 이르러 그 숫자는 매우 많아졌다.
안타깝게도, 반드시 군대에 포함되었을 투르크계 페체네그인들의 그림은 없다.
루스인들은 스킨디나비아 바이킹들과 슬라브인들의 혼혈이다. 그들은 때에 따라 제국의 강력한 동맹군이기도, 혹은 적수이기도 했다.

비잔티움 국내의 군대가 반란 및 국고의 문제로 약화됨에 따라 서구 용병들이 중요해졌다. 빠르면 1030년대 이래로 노르만인들이 제국에 고용되었다. 이 "라틴콘"들은 강력한 충격기병으로 창을 들고 메이스는 들지 않았으며 속보 대신 빠른 속도로 돌격해 들어갔다. 이들은 클리바노포로이들과는 달랐음에도 제국이 통제만 제대로 하는한, 제국의 전술에는 그들 못지 않게 효과적이었다.

함단조 아랍인 용병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나, 거의 믿지 못할 녀석들이었음에는 틀림없다.

출처
http://folk.uio.no/arnsteio/DBXin6mm/byzantium/
이외에 개별 유닛 및 비잔티움 군대에 대해 참조하시려면 제 블로그의
http://blog.naver.com/gkra1203/90001312736 를 참조하세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