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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성시대 복숭아 크림파이
(본 글은 위키백과, <조선왕조실록>, <음식잡학사전>,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등을 참조하였습니다.)
(이 글의 사진들은 실제 내용과는 연관없는 사진이야!ㅎㅎ)
안녕 여시들~~ㅎㅎ
이번에 소개할 인물은 수빈(綏嬪) 박씨와 숙선옹주(淑善翁主)야!!!!
수빈 박씨는 조선의 제 22대 임금인 정조의 후궁이며,
숙선옹주는 정조와 수빈의 딸이야. 그리고 순조의 여동생이기도 하지.
정조는 조선의 왕 중에서도 정말 자식복이 없는 왕이었어.
의빈 성씨가 낳은 문효세자를 비롯해서 거의 모든 자식들이 어릴때 죽었고,
살아남은 자식이라곤 제일 늦게 입궁한 수빈 박씨 소생의 순조와 숙선옹주밖에 없었다능ㅠㅠ
어린 자식들을 여러 명 잃고, 42세의 나이에 딸을 본 정조는 숙선옹주를 정말 예뻐했다고 해!
그리고 정조의 할머니이자, 숙선옹주의 증조할머니인 정순왕후 또한 숙선옹주를 아주 예뻐했던 인물 중 하나야.
여기서 잠깐!!!!!!!! 그럼 정순왕후는 왜 숙선옹주를 그리도 예뻐했을까??
정조 재위 당시, 궁중 여인들의 위계순서는 정말 복잡했어.
영조는 정비에게서 아들을 보지 못했고, 그나마 얻었던 유일한 아들인 사도세자마저
정신병으로 인해 끔찍한 짓을 저지르다 결국 뒤주에 갇혀 죽고 말았지.
그래서 영조의 손자이던 정조가 왕위에 올랐는데,
영조의 두번째 왕비이던 정순왕후와 손자인 정조는 나이차이가 고작 7살밖에 나지 않았어 ㅋㅋㅋㅋㅋ
(정순왕후가 영조와 혼례를 치렀을때 영조 66세, 정순왕후 15세, 정조 8세였음 ㅋㅋㅋㅋㅋ)
그래서 정조가 왕이 되었을때, 궁중 여인들의 위계순서는
1.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 (정조의 할머니)
2. 정조의 생모인 혜경궁(혜빈) 홍씨 (정조의 어머니)
3. 정조의 정비인 효의왕후 (정조의 정실부인)
요순서였음 ㅋㅋㅋㅋㅋㅋㅋㅋ 평범하지는 않은 경우였지!
(정순왕후는 손자며느리보다 고작 8살만 많았어.. 고로 며느리인 혜경궁 홍씨가 자기보다 나이가 많음 ㅋㅋㅋ)
그런데 당시 이 궁중 여인들의 대립구도는 정순왕후 vs 혜경궁&효의왕후 였음!
쨉쨉?
물론 정순왕후의 집안이 쎄긴 했지만,
정순왕후는 왕실의 웃어른 치고는 나이도 매우 어리고, 슬하에 자식도 없고, 무엇보다 쪽수가 딸림ㅠ ㅋㅋㅋㅋㅋㅋㅋㅋ
궁에는 수빈 전에 들어온 화빈 윤씨같은 간택후궁이 더 있었으나 모두 아들을 낳지 못함 ㅠㅠ
그런데 마지막으로 들어온 간택후궁이자, 왕의 후계자를 낳은 여인인 수빈 박씨가 이 대립구도에 더해진거지!
그래서 정순왕후는 수빈 박씨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정말 많은 애를 썼다고 해 ㅋㅋㅋㅋㅋㅋ
수빈 박씨는, 정조의 후계자를 낳기 위해 간택된 후궁이었어.
여시들이 잘 아는 장희빈같이 궁녀에서부터 차근차근 빈의 위치까지 올라간 경우가 아니라능 ㅋㅋ
명문가에서 간택되었고, 후계자를 낳기 위해 처음부터 빈의 첩지를 받고 입궐했어!
워후 님이 젤 짱인듯;;;;;
(빈嬪은 무품인 중전을 제외하고 내명부에서 제일 높은 정1품의 후궁이야.
이게 얼마나 대단한 품계냐면, 영의정이 정 1품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10대 소녀가 처음부터 영의정이랑 맞먹는 지위로 궁궐에 들어온겈ㅋㅋㅋㅋ)
간택 후궁인 만큼 명문가 출신이자 왕의 후계자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수빈 박씨는 무척이나 예의바르고 검소했어.
(유명한 일화로는, 그녀의 아들이 세자로 책봉되자 아첨하는 무리들이 뇌물을 바쳤는데
수빈 박씨가 이를 의금부에 알려 모두 줄줄이 끌려갔다는 이야기가 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빈 박씨는 자신이 왕자를 낳았다고 하여 왕비인 효의왕후를 절대로 업신여기지 않았고,
혜경궁 홍씨와 효의왕후 모두 아주 공경했다고 해.
그만큼 왕실의 웃어른인 정순왕후(시할머니)도 극진히 모셨어.
그래서 정순왕후는 수빈 박씨를 아주 예뻐해서 ‘수빈 저하’ 라고 부르라고 시키기도 했대 ㅋㅋ
(원래 ‘저하’는 세자에게 붙이는 칭호였어! 정순왕후가 얼마나 수빈을 예뻐했는지 알겠지?ㅋㅋㅋ
그리고 수빈이 무품계라서 저하라고 불렀다는 이야기?가 있는걸로 아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야! 수빈이 다음 왕인 순조의 친모이긴 하지만 후궁이니 이상
어디까지나 무품일 수는 없음. 무품이려면 적어도 왕의 자식이나 왕비정도는 되어야 함.
정 1품의 빈이 '저하'로 불릴 수 있었던 이유는 정순왕후의 엄청난 편애였다는거 ㅋㅋㅋㅋ)
저기...... 너 내편 안할래.....? 내가 널 이만큼이나 조아해...ㅎㅎㅎㅎ♥
정순왕후는 수빈의 딸인 숙선옹주 또한 손자들 중 제~일 총애해서,
신하들에게 공주보다는 낮고, 옹주보다는 높은 지위를 찾으라고 시켜서 숙선옹주에게 붙여주려고도 했어 ㅋㅋㅋ
(하지만 그런 지위따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무네.... 없었던 일로 ㅋㅋㅋㅋㅋ)
이렇게 정순왕후는 예의바르고 공손한 수빈을 매우 총애했지만,
결국 수빈은 끝까지 정순왕후의 제안(?)을 거절하고 혜경궁, 효의왕후의 편에 섰다는거ㅋㅋㅋㅋb
(외유내강의 성격이었던듯)
한편, 수빈 박씨의 딸로 왕실에서 총애를 독차지했던 수빈의 딸 숙선옹주는!
친오빠인 순조와도 매우 사이가 좋았어.
그래서 순조는 동생의 혼인을 맞아 쌀 1백 석, 무명 10동(同), 포(布) 5동, 돈 3천 냥을 내렸다고 해.
(참고로 3천냥은 현재 화폐로 최소 6천만원이고 최대1억 2천만원정도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는 이는 숙선옹주에 한한 일이니 전례로 삼지 말라고 하교했다고 함 ㅋㅋㅋㅋㅋ
(자기 동생은 되고 남들은 안된다 이건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또한, 얼마나 우애가 좋았던지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시집간 여동생 집에 자주 놀러가기도 했대! ㅋㅋㅋ
이렇게 왕실에서 사랑을 듬뿍★ 받던 숙선옹주는
1804년, 영명위(永明尉) 홍현주(洪顯周)와 혼인하게 돼.
숙선옹주의 남편 홍현주는 할아버지가 혜경궁 홍씨의 친척집안으로
상당한 명문가의 자제였어!ㅎㅎ
또한 1편에서 소개했던 ㅋㅋㅋ 정명공주의 후손이자, 매우 실력있는 선비였어.
생전 110수의 차에 관한 시(茶詩)를 남겼을 정도로 차 덕후였다고도 함 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숙선옹주 또한 문집과 많은 한시들을 남겼을 정도로
왕실 여인들 중에서 가장 활발한 문예활동을 한 여인이야!
숙선옹주가 쓴 시 한편 소개할게~
逢隱者(봉은자)
written by. princess 숙선
淸風入羅袖(청풍입나수) 맑은 바람은 소매자락에 들어오고
身隨白雲去(신수백운거) 몸은 흰구름 따라가네
啼鳥無定樹(제조무정수) 우는 새는 정한 나무가 없고
流水向何處(유수향하처) 흐르는 물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
겁나 자연에 묻혀서 안빈낙도를 누리고 싶은 시다....b
깅장히 여유가 느껴지고 선비의 풍모가 느껴지는 시인듯 ㅋㅋㅋㅋㅋㅋbb
그리고 숙선옹주는 깍두기의 시초로도 유명해!
홍선표의 저서 <<조선요리학>>에 따르면,
‘정조의 사위인 홍현주의 부인이 임금에게 무를 작게 송송 썰어 김치를 만들어 올렸는데, 아버지인 정조가 크게 기뻐하며 칭찬했다’ 고 소개하고 있어.
당시에는 그 요리를 각독기(刻毒氣)로 불렀다고 함 ㅎㅎ
(각독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뭔가 졸귀ㅋㅋㅋㅋ)
바로 이 음식이 깍두기의 시초가 되었다는 얘기지!!
항간에는 이미 깍두기라는 음식이 존재하고는 있었다는 설도 있으나
이렇게 기록에 나타난건 숙선옹주가 처음!ㅋㅋㅋㅋ
그리고 숙선옹주와 부마 홍현주 사이의 흥미로운(이라고 쓰고 음란마귀라고 읽는다) 야사도 전해지고 있음 ㅋㅋㅋㅋㅋㅋ
존나 100% 야사인데 흥미돋아서 가져와봄 ㅋㅋㅋㅋㅋ
아근데 참고로 야사 뜻.. 야한 역사 아닙니다..ㅎㅎ!
정사正史가 아닌 민간에서 전해지는 역사를 야사野史라고 해용 ㅎㅎㅎ(설명충)
(훌쩍)
((((((((((약간 숭함주의))))))))))))
정조의 하나뿐인 딸 숙선옹주는, 하문(下門=질)이 열리지 않았다는 치명적인 신체적 결함이 있었음.
정조는 이에 엄청난 고민을 했지만, 이를 숨기고 명문가의 자제 홍현주를 부마로 간택하게 됨.(!!!!!즈언하..)
엄청난 명문가 집안에 문장실력도 뛰어나, 벼슬은 따놓은 당상이었던 홍현주는
졸지에 부마가 되어 관직에 나가는것 조차 금지되었으니 화가 장난아니게 났다고 함 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다가......하필이면 무슨일인지 혼례의 첫날밤도 치르지 못함.
그리고 이상하게도 옹주의 몸상태를 핑계로 차일피일 합방은 미뤄지기만 함...........ㅎ
자신을 무시한다는 느낌에 골이 났던 홍현주는,
어느날 밤에 늙은 상궁이 필사적으로 막아서는것을 뿌리치고는 아내의 방에 들어감ㅋㅋㅋㅋ
그러다가 마침내 부인의 하문이 닫혔다는 사실을 알게 됨 ㅜㅜㅜㅜㅜㅜ
옹주는 마침내 비밀이 들켰다는 사실에 절망에 빠짐......ㅠㅠ
이제는 살아갈 체면(?)이 없다고 울며 목을 매 죽으려던 찰나,
그때 홍현주가 작은 칼을 가져와 손수 부인의 하문(下門)을 벌려 주었다고 함ㅋㅋㅋㅋㅋ (동공지진)
그리하여 옹주의 병은 고쳐졌고 둘은 합방하여 아들 하나를 낳았다는 해피엔딩~ ㅇㅅㅇ)/
(혼인했을 당시 숙선옹주 12세, 홍현주 16세ㅋㅋㅋㅋㅋㅋㅋㅋ 존나 진도빨랔ㅋㅋㅋㅋㅋㅋㅋㅋ
하기사 요즘으로 치면 둘다 대충 10대 후반쯤 될듯..)
ㅋㅋㅋㅋㅋ 이런 사연을 지닌(?) 숙선옹주는 홍현주와 함께 잘먹고 잘살았다고 합니당...!
그리고 숙선옹주의 어머니이자, 정조의 뒤를 이은 순조의 어머니이기도 한 수빈박씨는
조선역사 중 살아생전 아들이 왕이 된 것을 본 유일한 후궁이야 ㅋㅋㅋ
물론 후궁인 빈에 지나지 않아서, 왕의 생모지만 대비가 되지도 못했고 (대비는 정조의 정비인 효의왕후가 됨)
정조 사후 순조를 수렴청정한 것은 어린 나이에 대왕대비까지 오른 정순왕후였음...ㅎ
하지만 실록이나 여타 기록에 나타나 있듯이, 왕이 어머니인 대비를 칭하는 자전(慈殿)이라는 단어로
순조가 수빈을 칭하는것을 보면
수빈은 암묵적으로 대비에 버금가는 대우를 받았을 것으로 생각돼 ㅋㅋ
어린 나이에 왕실에 시집와서,
빈이라는 높은 지위에 올라 끝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왕의 자식들을 낳았고,
시집살이도 전혀 없이
시할머니와 시어머니, 그리고 중전에게까지 사랑을 받았으며,
친아들이 왕이 된 것을 보고, 딸까지 왕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수빈 박씨 ...
진심 조선역사 속에 제일 끝판왕인 후궁이 바로 수빈 박씨가 아닐까 함 ㅎㅎㅎㅎ
한번 사는 인생 수빈 박씨처럼!!!!!!!!!!!!!!!!!!!!!!!!!!!!!!!!!
다음편, 기생 홍랑 이야기는 프로필누르면 뜨니까 따로 재업 안할게!!
혹시 다음편도 보고 싶은 여시는 저번에 올린거 읽어주세요ㅎㅎㅎ
문제시 둥글게 댓글로 알려주세용!
안문제시 업뎃 안한 다다음편도 빨리 쪄옴!!!!!!!!!!!!!!
첫댓글 오오수빈박씨.....멋져
진짜 흥미돋ㅋㅋㅋㅋㅋㅋ 잘봤어언니!!!!!!!!!♥♥
12살에???? 하문???????ㅠㅠㅠㅠㅠ 많이 아팠겠다... 아무튼 남편도 부인도 벤츠네 최고네...bb
하문이 닫히다니?...쏘중이가 닫혀있어다는 말인가
소중이가 닫혔다는 것보단 전체적인 글의 의미를 확인해보면, 처녀막이 닫혀있었던것으로 보여
내가 저 이야기를 읽은 기록에서는, 질구라고 되어있었어!!(질 입구) 듣기론 선천적으로 그런 병도 있다고 그러더라구ㅎㅎ 야사다 보니깐 그냥 흥미돋인 이야기로 생각해 주면 좋을거 같아!ㅋㅋㅋ
잼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겁나 재밌는데요...?
헐 저런병도 존재하는구나.. 수빈박씨 짱이다 ㅜㅜㅜㅜ 순조랑 우애가 좋았다는것도 좋고 ㅠㅠ 진짜 인품 좋았나봐
ㅎㅎㅎ 거기다 수빈의경우 유일하게 대한제국 선포이후 수비로 옥책과 금보를 받은 후궁이기도함 ㅎㅎㅎ
너무재밌어진짜!!!!!!!!♥또올려주세여
재밌다ㅋㅋ그런데작은칼...동공지진...
삭제된 댓글 입니다.
부마가 되면 외척이 되니까 관직 진출이 금지돼~ 홍현주는 벼슬을 해서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었는데 자기 의사랑은 상관 없이 옹주의 남편인 부마가 된거니까 화가 난거지ㅎㅎ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당신의 봄 여시가 잘 설명해 줬다!ㅎㅎ 부마는 솔직히 허울뿐인 명예지ㅎㅎ 나라에서 돈 다 주고 떠받들어줘도 결국 자신의 꿈인 입신양명을 못하게 되는거잖아. 요즘으로 치면 여시가 정치인이 꿈인데 정치인 부인밖에 못하는 꼴임.. 명예나 부는 있으나 정작 자기 꿈인 정치는 못하는 거니까.
그리고 외척이란게 굉장히 민감해서 부마는 정치에 간섭하는 순간 숙청당하기 굉장히 쉬워..... 그리고 첩도 못들이고 부인이 죽어도 재혼 절대 못함.. 부마는 양날의 검임..
평생 입신양명이 꿈인 사내가 관직만을 목표로 학문을 갈고닦아왔는데 본인 의사랑은 상관없이 옹주 남편으로만 살아가야 하니 억울했던 거지!
잘읽었엉ㅎㅎㅎㅎ
대비가 되지 못했으면 그럼 어떻게 대우.?받고 이름은 뭐로 불린거야??
그냥 수빈 박씨라 부른거야?? 혜경궁 홍씨처럼??
ㄱㅆ 응 후궁은 친아들이 왕이 되어도 대비가 못돼! 대비는 왕의 정부인인 중전이 되는 거니깐. 법적으로 왕의 아들은 후궁 소생이어도 무조건 중전의 자식임. 수빈 박씨는 왕을 낳은 후궁이라서 경우궁이라고 불렸어! 혜경궁(혜빈) 홍씨처럼 경우궁(수빈) 박씨ㅎㅎ 그리구 실제로 대비는 아니었지만 아들 순조가 자전(왕의 엄마, 대비)라고 부르기도 했다구 함. 대비는 아니었어도 엄청 존경받았고 대한제국때 추존되어서 봉작도 올라감!
우왕 재미따!!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 이런생각이 먼저든다. 모두에게 사랑받는게 쉽지 않은데 말이지... 대단쓰!!
와우...... 존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