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바람이 찹니다.
마지막 꽃샘 추위일 듯~
꽃샘에 아랑곳하지 않고, 꽃봉오리들이 솟습니다.
점심 먹다 창밖 앵두 가지에 변화를 감지, 다가가 보니 망울이 맺혔습니다.
사진에 올린 대로 꽃망울인지 잎망울인지 아리송하던 차에,
벽에 붙은 가지가 성미가 급한지 정체를 드러냈습니다. 뾰족한 잎~
뒤돌면 매화건만, 깜빡 잊고 들어왔다 다시 나갑니다.
매화꽃, 피었습니다.
지난 편지에 올린 매화 꽃봉오리 사진 두 컷에 담긴 바로 그 애들을 다시 찍어 올립니다.
활짝 핀 매화꽃보다 막 터지려는 새하얀 꽃망울이 더 맘에 드네요.
마당에도 수국 잎망울, 모란은 벌써 잎꼴을 갖추었습니다.
진달래 꽃망울, 불그레 볼을 붉힙니다.
다음 편지를 기대하시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노래 가사가 맴돕니다.
김소월의 <부모>라는 시네요.
하나님은 왜 나를 나셨나?
“이처럼 사랑하사!”
요한복음(3장 16절)은 답합니다.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기까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영생을 얻게 하려고?
영원히 사귀려고!
’인간의 모든 경험 안에 하나님이 현존하시고 역사하신다.‘
분리 망상을 알아차리고, 이미 하나임을 깨닫는, 관상적 상태가 영원히 열린다!
물론 믿음이란 단서가 있습니다.
믿음이라~
이 역시 사귀면서 생기는 거, 뚜벅뚜벅 걸어들어오는 거…
내가 잠들어 헤매면 그저 끌려다니시다,
내가 나를 내려놓을 때야 비로소 이끄신다!
우리끼리도 자유, 자율을 존중할 줄 아는데, 하나님이야 말해 무엇하랴!
’자기의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요 3:21)이란 구절이 눈길을 끕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지난 주일 말씀이 새삼스럽습니다.
샬롬~
2024. 3.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