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진 시간과 막힌 길에서
기호일보 2024.12.20
김호림 전 인천대 겸임교수
이제 한 달 후면 새로운 미국 대통령이 취임해 트럼프 2.0 시대를 열어갈 것이다. 각국은 새롭게 전개되는 불확실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여념이 없다. 지난 선거기간 트럼프가 천명한 공약들이 과연 실행될 것인지를 세계인들이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다. 그가 1기 때 표방한 ‘미국 우선주의’ 노선이, 혹 미국의 고립을 불러올지 모르지만 아마 그대로 지속될 것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교역 상대국들에 부과하는 10~20%의 수입 관세율 인상이다. 그다음은 미국 내 체류하는 약 1천100만 명에 달하는 불법 이민자 추방이다. 국내적으로는 미국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세금 삭감을 약속했다.
이러한 일련의 정책 효과에 관해 미국 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우려가 많다. 먼저 미국의 일방적인 관세율 인상이 상대국의 보복 관세를 불러올 수 있다. 또 이로 인한 수입 물가 상승으로 초래되는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연방준비은행은 금리를 올리게 될 것이고, 이는 곧 달러 강세를 가져와 무역적자와 재정적자가 확대되는 악순환의 늪에 빠지게 될 것이다. 더욱이 불법 이민자 추방으로 거의 완전고용에 가까운 미국의 노동시장에 임금 상승을 가져와 관세와 같은 역효과를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역효과를 막기 위해 트럼프 정부는 외국 제조기업의 투자유치를 촉진시킬 것이고, 제조 능력 제고를 위한 인력 유입을 시도하게 될 것이다.
아울러 미 달러의 기축통화 유지와 함께 암호화폐 규제를 풀어 전략자산으로 비축함으로써 세계 암호화폐의 중심국 역할을 하고자 한다. 달러화와 일대일로 교환되는 안정적인 코인(stable coin) 수요를 확대해 상대적으로 미 달러화 상승을 안정적으로 조절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이러한 경제 조치는 2026년 중간선거까지는 무역과 생산 부문에 호조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나 그 이후로는 미국 경제의 비교우위가 약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연방준비은행이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에 협조해 저금리를 유지할 수 있는지에 달렸다.
한편, 미국의 최우선 대외정책은 중국을 전략적 적대·도전국으로 봉쇄하려는 결기다. 트럼프는 중국을 패권 경쟁 구도에서 탈락시키기 위해 60%의 관세 부과와 첨단기술 이전의 원천적 봉쇄 등을 동맹국에도 공동 대응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또 중국의 타이완 침공과 동아시아에서의 영향력 행사, 서태평양 접근을 막기 위해 해군력 증강을 위시한 군사력 우위 확보로 동맹국과 함께 신냉전체제를 강화할 계획으로 보인다. 이러한 미·중 패권 경쟁에서 많은 나라들이 어느 편에 설 것인지의 선택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가 받게 될 영향 중에서는 주한미군의 주둔비용 인상 요구와 지상군 감축 문제를 들 수 있다. 먼저 미군의 주둔비용 부담은 2026년부터 5년간 1조5천192억 원으로 타결해 인건비를 제외한 주둔비 총액의 4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일본이 2022년부터 5년간 분담할 1조550억 엔(연평균 약 2조2천억 원)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부담이다.
주한미군 관련으로는 미 의회 상·하원은 2025년 국방수권법안에 합의해 현 수준으로 유지하고 한미 핵·비핵 공동 작전 역량 강화와 한·미·일 3국 군사협력을 강화키로 했으며, 트럼프 1기와는 달리 미군 감축 제한 조항이 빠진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대중국 억제의 교두보가 되는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한다면 트럼프 2기에도 미군 감축은 그리 쉽게 결정할 사안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향후 염려되는 부문은 경제성장이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의 경제구조다. 2023년 실질 경제성장 1.36% 중 수출이 1.17%를 차지하고, 국내 총생산 대비 수출액 비중은 35.7%로 2020년대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더욱이 2024년 1월에서 9월까지 전체 무역수지 368억 달러 중 대미 무역수지가 399억 달러 흑자를 기록한 것은 부담 요인이 된다. 이는 미국의 10대 무역 적자국 중 8위로 꼽혀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재협상 요구나 10~20%의 일반 관세 부과 위험이 있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 대미 수출기업의 제조업 기지 이전 등 대미 투자 압력이 예상된다.
하지만 우리도 이용할 자원과 수단이 있다. 국방비 지출에서 우리가 무임 승차하지 않고, 관세 부과도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성과 거래 조건적인 협상 스타일에 유연하게 대응하면 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중국을 생산기지에서 배제 시키려면 우리의 반도체 등 첨단산업과 군함 제조 능력을 비롯한 방위산업, 소형원자로(SMR) 공급망이 미국에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려스럽고 불안한 것은 국내 상황이다. 지난 탄핵소추안 문안에 적시한 탄핵 사유 중 한·미·일 공조와 동맹강화를 비판한 내용은 트럼프 정부와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킬 또 하나의 소지를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급속한 정국 안정으로 국내 질서를 회복해 트럼프 2기 정부에 치밀하고 지혜로운 협상을 준비해야 할 터인데, 멈춰진 시간으로 길은 잘 보이지 않으니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