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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트] 23
씬1. 어느 창고 안 (아침, 전 회에 이어서)
(534번이 누워 있다. 교관과 강모가 단 둘이 있고...)
교관 : 523번...
강모 : 네.
교관 : 지금 당장 534번과 옷을 바꿔 입어라.
강모 : ..? (본다)
교관 : 넌 이시간부로, 523번이 아니라 534번이 되는 거다.
강모 : ..!! (그제야 그 말의 의미를 안다.)
교관 : 내말 안 들리나..! 어서 옷 갈아입어..!!
(강모, 웃옷을 벗더니 534번 수인 번호가 찍힌 옷을 미친 듯이 벗겨낸다. 쏟아지기 시작하는 눈물...
이를 악물며.. 강모, 마치 살기 위해 무덤을 파헤치는 사람처럼 미친 듯이, 처절하게 울면서 옷을 벗기는데...
- 시간경과...
옷을 갈아입은 강모가 교관 앞에 선다. 교관, 강모의 옷에 붙여진 534번 수인 번호를 본다)
교관 : 534번..!
강모 : 네...
교관 : 이강모는 죽은 걸로 행정처리 될 거다.
강모 : ..
교관 : 남은 기간 동안, 넌 바뀐 내무반에서 생활한다, 알겠나?
(강모, 죽은 사내를 본다. 수인번호가 524번으로 바뀌어 있고.. 강모, 눈가가 젖은 채....)
씬2. 조필연 집 전경 (다른 날, 아침)
씬3. 동, 거실
(조필연과 민우, 고재춘이 아침 식사중이다. 이때, 명자와 함께 성모가 들어선다)
명자 : 여보, 성모군 왔어요.
필연 : 어서 와라. 아침 아직 안했지? (명자에게) 식사 좀 내 와.
명자 : (성모에게) 잠깐만 기다려요. (가면)
성모 : 고맙습니다. (앉고)
필연 : 아침부터 어쩐 일이야?
성모 : .. (본다) 이강모가.. 죽었습니다.
필연 : ..!! (놀란다)
민우, 재춘 : ..! (놀라는데)
성모 : 방금 부대 측으로부터 사망통지를 확인 받았습니다.
필연 : ... (흡족하다, 고개 끄덕이고는) 재춘아.
재춘 : (알아듣고) 예...
(재춘, 의자 옆에 놓여있던 서류 가방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낸다)
필연 : (서류를 들어 보이며) 이거... 이강모의 땅이 민우 너한테 양도된다는 유언장이다.
민우 : ..!! (놀란다)
성모 : .. (차분히 보는데)
필연 : 이미 우리가 변호사까지 포섭해서 공증까지 마쳐놓은 거야. 이제 이강모가 죽었으니, 개포지구 개펄 땅은 민우 니꺼다.
민우 : 하지만.. 이게 조작된 서류라는 걸 모를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겁니다.
필연 : 그딴 게 뭔 상관이야? (의미심장하게) 땅주인이 너란 사실이 중요해.
민우 : ...
필연 : 어차피 만보건설에서 버린 땅이 아니냐. 이 서류가 조작된 거라고 한들, 법적으로 지들이 어떡할 건데?
성모 : ...
필연 : 니 혼담도 깨진 마당에, (서류를 흔들어 보이며) 이 정도는 손에 쥐어야 너도 맞서 싸울 힘이 생길 것 아니냐.
민우 : .. (뭔가, 생각한다)
재춘 : 이제 선거만 승리하시면 만사형통입니다.
필연 : 그렇지. 민우만 만보건설을 장악하면, 내가 굳이 황태섭한테 손을 내밀 이유가 없어지지. (하하, 크게 웃는다)
성모 : .. (보는데, 번뜩이는 눈빛)
씬4. 병원 복도
(다가오는 민우... 병실 앞에서 멈추더니 호수를 확인해본다. 조금 열린 병실 문...
민우, 조심스럽게 안쪽을 살피려는데 소변 통을 들고 황급히 나오던 미주와 딱 마주친다. 두 사람, 동시에 놀라고..)
미주 : 여긴 어쩐 일이세요?
민우 : (둘러댄다) 어, 아는 사람이 입원해 있어서.. .. (소변 통을 보면)
미주 : (괜히 쑥스럽고) 잠깐만요.. 금방 버리고 올게요.
(미주, 급히 화장실 쪽으로 간다. 민우, 조심스럽게 병실 안을 들여다본다. 병색 짙은 정미 모가 침대에 누워 있고..)
씬5. 병원 밖, 일각
(벤치쯤에 앉아 있는 민우와 미주...)
미주 : ... (뭔가 곰곰이 생각하고) 참 희한하네? 어떻게 여기서 딱 만나냐? 혹시.. (민우를 빤히 보면)
민우 : ... (뜨끔하다) 혹시, 뭐?
미주 : 절 보러 오신 거 아니에요?
민우 : 뭐? (억지로, 어이없다는 듯이) 너, 미쳤냐? 내가 왜 널 보러 와?
미주 : (민우 흉내 내듯) 그래.. 내가 생각해보니까, 니들 참 불쌍하다. 고소 취하해 줄게.. (환한 미소로 민우를 본다)
민우 : (인상 쓰고) 너, 지금 소설 쓰냐?
미주 : 그런 거라면 좋겠다구요. (한숨) 한번만 봐주세요, 실장님.. 우리 선생님도 선생님이지만,
경찰서에 잡혀 있는 정미 사정이 정말 급해서 그래요.
민우 : .. (보다가) 야, 넌 화두 안 나냐?
미주 : ..? 네?
민우 : 너, 걔 땜에 가수 데뷔도 물 건너갔다며? 니가 지금 걔 걱정하게 생겼냐구.
미주 : 그럼 어떡해요. 걔네 엄마가 많이 편찮으신데..
민우 : ... (본다)
미주 : 정미가 없으면... 엄마 돌봐줄 사람이 없잖아요.
민우 : 세상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남들은 지꺼 더 가지려고 서로 못 뺐어서 안달인데... 너 같이 미련한 애두 다 있고..
미주 : (화나서) 지금 나 비웃는 거예요?
민우 : 비웃는 건 알아? 머리가 아주 돌팍은 아니구나.
미주 : 나두 내가 병인 거 아는데, 어쩔 수가 없거든요?
어릴 때 엄마가 돌아가셔서... 이런 일 보면, 남 일 같지가 않는 걸 어떡하라구요.
민우 : ...! (본다)
미주 : 요즘 실장님한테도 못 가봐서 걱정했는데... 오늘 잘 만났어요. 확실하게 고소 취하해 주겠다고 약속해 주고 가세요.
민우 : 쓰던 소설이나 혼자 계속 써라. (일어서면)
미주 : 어딜 가요..! (잡는다는 것이 바지를 확 잡아당기고)
민우 : 야, 야...! (주변 보며) 이게 증말.. (인상 쓰며, 바지 추킨다)
미주 : 실장님도 병실에 가서 한번 보세요. 정미 어머니, 얼마나 불쌍한지 아세요?
민우 : 난 너처럼.. 지 주제도 모르고 남 일에 관심 갖는 사람 아니거든? 해결하고 싶으면 손해 배상 해. (인상 쓰고 간다)
미주 : .. (보다가) 어휴, 정말 지독한 인간이네... (한숨) 큰일이네.. 내가 마냥 돌봐 드릴수도 없는데...
(인상 쓰고 가던 민우, 돌아본다. 미주, 혼자 시무룩하게...
그런 미주를 보는 민우의 입가에 피식 웃음이 돈다. 이때, 미주가 보면 얼른 인상 쓰며 고개 돌리고 가는데..)
씬6. 군부대 전경
(44사단, 삼청교육대 간판..)
조교 : (E) 똑바로 해..!!
씬7. 동, 내무반 막사 안
(수련생들이 침상 위에 머리를 박고 있다. 한쪽에 534번을 단 강모가 머리를 박고 있고...
이전에 박소태와 함께 있던 내무반과는 다른 내무반이다. 이때, 교관이 들어선다)
교관 : 야, 534번..!
강모 : (벌떡 일어선다) 네, 534번 수련생..!
교관 : 따라 나와. (나간다)
강모 : ..?
씬8. 동, 면회소 안
(아무도 없는 면회소 안... 성모가 창문으로 바깥쪽을 보고 있다. 강모가 혼자 들어서고..)
강모 : 형...
성모 : (돌아본다) 강모야..!! (다가가서 꽉 껴안는다) 고생 많지?
강모 : .. (미소) 참을 만 해.
성모 : .. (수인번호를 물끄러미 본다)
강모 : .. (씁쓸하게) 죽은 동료대신 내가 살아 있다는 게.. 기분이 좀 묘해.
성모 : ... 조필연이, 니 땅을 차지하려고 유언장을 위조해 놨어.
강모 : ...! (본다) 그 땅, 차명으로 바꿔놨지?
성모 : 걱정 마라. 놈들이 땅 주인 못 찾게 이미 손을 다 써 놨으니까.
강모 : 고마워, 형.
성모 : 곧 교육이 끝나면 심사가 있을 거야. 일부는 석방이 되고, 나머지는 근로봉사대로 끌려가서 남은 형량을 마치게 될 거다.
강모 : ...
성모 : 조금만 참아. 그 심사에서, 널 빼내 줄 테니까..
강모 : 아냐, 형... 그럴 거 없어. (본다) 근로봉사대로 갈게.
성모 : 너, 거기가 어떤 덴 줄 알아? 여기보다 몇 배는 더 힘들 수도 있어.
강모 : 어디든 상관없어. 버텨낼 자신 있으니까.
성모 : 강모야..
강모 : 지금 나가면, 평생 내 이름 못 찾아.
성모 : ...
강모 : 형량만 마치면, 나중에 내 이름 다시 찾아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거야. 행정처리 잘못한 건 군대 책임이니까..
성모 : ..
강모 : 두고 봐, 형... 그 놈들한테... 반드시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강모란 이름으로 복수할거야.
성모 : (안쓰럽다) 지난 세월동안 이 형은 복수만 생각했다. 피가 마르고 심장이 다 오그라들었어.
너희들을 못 만났다면.. 아마 난 지금 세상에서 가장 비참해 있을 거야.
강모 : ...
성모 : (눈물 고인다) 너한테.. 이런 불행을 넘기는 거 같아서... 형 가슴이 너무 아프다.
강모 : 나두 내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어. 근데... 한가지만은 분명해...
형하구 나, 우리 미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가족이라는 거...
성모 : ..
강모 : 다시는... 다신, 내 가족들.. 힘없어서 빼앗기지 않겠다는 거...
성모 : .. (껴안는다)
강모 : .. (눈물 고인다)
성모 : 니가 뭘 하든... 몸이 부서질 때까지 너 도울게. 그 동안 못해준 거... 너 하구 미주를 위해서... 형이 뭐든 다 할게..
강모 : 형... (눈물)
성모 : .. (우는데)
씬9. 다방 안
(부대 인근의 다방 안이다. 몇몇 군인들이 보이고...
정연과 시덕이 누군가를 기다리며 앉아 있는데 상사 계급장을 단 주임상사쯤의 사내가 들어선다)
시덕 : (손들어 보이며) 여깁니다.
상사 : .. (다가와 앉고)
정연 : 어떻게 됐어요? 이강모, 찾으셨어요?
상사 : (강모의 사진이 붙은 이력서를 꺼내 돌려주며) 우리부대에는 없습니다.
정연 : ... (기대감이 무너진다)
상사 : 다른 부대를 알아보세요. (일어서는데)
정연 : (일어서고) 사례는 얼마든지 하겠습니다. 한번만.. 한번만 더 찾아봐 주세요.
상사 : 이런 식으론 못 찾아요. 설사 찾는다고 하더라도 절대 만날 수 없을 겁니다. (간다)
정연 : ... (털썩 주저앉는데)
시덕 : 아무래도.. 강모 찾는 건 포기해야겠어요.
정연 : .. (걱정스럽다, 눈물 비치는데)
씬10. 황태섭 집 거실 (저녁)
(실내복 차림의 태섭과 남숙, 정식이 과일을 먹고 있다. 복자가 깎고 있고..)
남숙 : 곧 합동 유세가 있다고 하던데... 안 가봐두 돼요, 당신?
태섭 : 서로 저 잘났다고 공갈치는 데는 왜 가?
남숙 : 민우 엄마가, 우리 보구 꼭 좀 오라구 신신당부하던데..
정식 : 제가 모시구 갈게요, 아부지. 같이 가세요.
(이때, 정연의 가방을 든 재수와 정연이 들어선다. 정연, 잔뜩 지쳐있고...)
재수 : 아가씨 왔구먼유.
복자 : 저녁 밥 안 먹었지? 금방 차릴게.
정연 : 생각 없어요. (이층으로 가려는데)
태섭 : 회사도 안 나오고 어딜 그렇게 다니는 거냐?
정연 : 회사엔, 휴가 냈어요.
남숙 : 너, 아직두 강모 찾으러 다니니? 허이구, 열녀 났네, 열녀 났어..
정식 : .. (본다)
태섭 : 사주면 삼청교육이란 거 다 끝난다더라.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까 그냥 맘 편히 기다려 봐.
복자 : 참, 낮에 강모 앞으로 편지 온 게 있는데...
정연 : ..!! (놀라서 본다)
재수 : 그걸 왜 이제 얘기 해, 이 아줌마야.
복자 : 깜빡 잊었지유, 뭐... 엇다 뒀더라? 아, 맞다...
(복자, 앞치마를 뒤지더니 우편물 한통을 꺼낸다.
정연이 황급히 받아들고 우편물을 뜯는데... 사망통지서다. 이강모 이름이 선명하고.. 정연, 얼어붙듯이 멍해지며 굳는다)
태섭 : 뭔데 그래? (빼앗아보고는, 놀라며) ..!! 이게 뭐야? 강모가 죽다니?
재수 : ..!! 주, 죽어유?
복자 : 강모가 죽었다구유?
남숙 : (통지서 보고는) 맞네, 강모 죽었다고 사망 통지서 날라 온 거네.
정연 : .. (놀라서 털썩 주저앉는데)
정식 : .. (입가에 회심의 미소)
씬11. 달리는 차 안 (다음날 아침)
(군부대로 가는 길이다. 시덕이 운전 중이고.. 뒷자리에 태섭과 정연이 앉아 있다.
정연, 넋이 빠진 듯이 망연하게 눈물 고인 채...)
태섭 : (정연을 안쓰럽게 보다가, 한숨) 내가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했어... 강모, 그놈... 거기 끌려가게 놔두는 게 아니었는데..
정연 : (단호) 강모 안 죽었어요... 절대 죽을 리 없어요.
태섭 : 정연아..
정연 : (눈물 고인 채, 애써 믿고 싶고) 군대에서.. 가끔 사망통지서 잘못 날아오는 일 있데요.
태섭 : .. (안쓰러운데)
정연 : 안 죽었어요, 강모... 절대 그렇게 죽을 애 아니에요..
시덕 : .. (눈시울이 붉어져 있고)
씬12. 군부대, 행정반 사무실
(탁자가 여러 개 놓여있고, 군 간부들이 앉아 있다. 수련생들이 각자 그 앞에 앉아서 개별 심사를 받는데..
강모, 소령쯤의 사내 앞에 앉아서..)
소령 : (서류를 보며) 고향이 전라도 광준가?
강모 : 네...
(소령, 534번, 번호를 확인하고는 근로봉사대 용지에 2년, 이라고 쓴다.
용지를 강모 앞에 내밀면... 강모, 무표정하게 엄지손가락에 인주를 묻히더니 꾹 눌러 찍는데)
씬13. 동, 면회소 안
(정연과 태섭이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이때, 침울한 표정의 시덕이 교관과 함께 들어선다. 시덕의 손에 강모의 가방이 들려 있고...)
정연 : (시덕에게) 강모 어딨어?
시덕 : ... (침울)
정연 : ... (시덕의 손에 들려진 강모의 가방을 보고는, 교관에게) 이강모 죽은 거 아니죠? 그쵸? 뭔가 잘못 된 거잖아요.
(이때, 조교가 유골함을 들고 들어선다. 정연과 시덕, 유골함을 보자 멍해지고...)
교관 : 가족이 없어서 저희가 임의대로 화장 처리했습니다.
정연 : (유골함을 보며) 아냐.. 강모 아냐. 강모 일리 없어.. 강모 안 죽었어...
교관 : 이강모 맞습니다.
시덕 : 강모야, 임마..!! (유골함 끌어안으며 울음 터지고)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임마..! 강모야..!
정연 : ... (믿고 싶지 않다, 눈물 고인 채 멍하게)
씬14. 동, 부대 앞 도로
(정연이 넋이 빠진 듯이 터덕터덕 강모의 유골함을 목에 걸고 나온다. 태섭과 강모 가방을 든 시덕이 따라 나오고..
태섭이 안쓰럽게 보다가...)
태섭 : 정연아... 그거 무거우니까 이리 내라. (손대려는데)
정연 : 손대지 마세요..!!
태섭 : ..
정연 : (눈물) 아무도.. 아무도 강모한테 손 못 대... (물끄러미 유골함을 보고) 강모야.. 강모야...
(정연, 주저앉아서 유골함을 끌어 앉고 흐느낀다. 시덕이 울고.. 태섭, 가슴 아픈데..
이때, 군용 포차 한 대가 부대 안에서 나온다. 짐칸에 실려 있는 수련생들... 근로봉사대로 가는 인원들이다.
찹찹한 표정으로 그들 중에 섞여 있는 강모... 군용차량이 황태섭들 옆을 슬로우 모션으로 지나가는데...
강모, 유골함을 부여안고 흐느끼는 정연을 본다. 놀라는 강모..
이때, 강모의 눈에 태섭이 보인다. 차갑게 표정 변하고.. 서서히 멀어지는 정연의 모습...
강모, 차가운 표정 위로 눈물이 고이는데...)
씬15. 강가
(한적한 강가.. 정연이 유골함을 끌어안고 앉아 있다. 태섭과 시덕이 안타깝게 정연을 보고 있고...)
정연 : (눈물 고인 채, 어루만지며) 강모야... 너.. 절대 나 안 떠난다고 약속 했잖아... 평생.. 날 지켜준다고 했잖아..
근데 이게 뭐야, 바보 같이... (울음 터진다) 강모야.. 말 좀 해 봐... 니가 왜 이렇게 된 건데...
대답 좀 해 봐, 강모야.. 왜 죽은 건데.. 어떻게 된 거냐구, 강모야..!
(유골함을 끌어안고 오열하는 정연... 태섭이 다가간다)
태섭 : (울음 삼키며) 정연아... 우리... 이제 그만, 강모 보내주자.
정연 : ... (끌어안고 우는데) 강모야... 난 이제 어떡하니... 강모야...
태섭 : 그만 보내 주래두.. (정연에게서 유골함을 빼낸다)
정연 : (안 빼앗기려고) 강모 못 보내요, 절대 보낼 수 없어요.
태섭 : .. (유골함 빼앗고)
정연 : 강모야... 안돼.. 강모야... 가지마... 강모야..
- 시간 경과
(어느새 시덕이 눈물이 흥건한 채 골분을 강물 위로 뿌리고 있다.
흐느껴 우는 정연.. 태섭이 눈물 고인 채 정연을 안아주는데..)
씬16. 태섭 집, 정연 방
(정연이 태섭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선다. 시덕이 가방을 들고 따라 들어서고.. 정연, 침대에 털썩 앉는데...)
태섭 : (어깨 다독여주며) 당분간 회사도 나오지 말고, 푹 쉬어... 알았지, 정연아..?
정연 : ... (망연하게)
시덕 : 이거... 강모 유품인데...
(정연, 가방을 낚아채듯 가져오더니 끌어안는다.
태섭, 그런 정연을 안쓰럽게 보다가 밖으로 나가고.. 시덕도 따라 나가는데...
정연, 잠시 가방을 보더니 열어본다. 책 한권이 나오고.. 경영에 관한 책...
정연, 책장을 열어보면 열심히 줄을 치고 공부한 흔적... 이어서 소설책 한권이 나온다. 톨스토이정도...
마지막에 나오는 수첩... 정연이 강모에게 주었던 그 수첩이다.
정연, 그 수첩을 주르르 펼쳐보는데... 활동사진처럼 그림들이 움직이며.. ‘나, 랑, 결, 혼, 해, 줄, 래...’
정연, 눈물이 고이기 시작하는데... 그 위로..)
강모 : (E) 힘 많이 들 거야.
- 인써트 (회상, 19부 2씬에서)
강모 : 어떤 고생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 그래도?
정연 : ... (눈물 고이며, 고개 끄덕인다)
강모 : 다 버려야 돼. 니 가족.. 꿈... 어쩌면 지금 너의 모습까지도...
정연 : 갈 거야.. 너랑 같이.. 어디라도 상관없어...
강모 : .. (눈물 고인다. 십자가를 보며) 보셨어요? 지금부터... 정연이 제 여자예요.
저, 이강모... 지금 이 자리에서 황정연이랑 결혼합니다.
정연 : ... !!
강모 : 아무것도 해 줄게 없지만...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줄 거예요. 제가 얼마나 정연이를 행복하게 해주는지.. 꼭 지켜봐 주세요.
정연 : .. (눈물 흘리는데)
(강모가 서서히 입술을 가까이 가져간다. 정연, 그런 강모를 보다가 눈을 감는데... 정연의 입술에 포개지는 강모의 입술...)
- 다시 현실
(정연, 수첩을 부여안고 뭔가 통곡을 하는 것 같은 데 소리를 내지 못한다.
답답한 듯이 가슴을 치면서 침대 위를 엉금엉금 기는데... 숨이 넘어갈 듯이..
그러나 아무런 소리도 못 내고 입 모양으로만 강모를 부르며...
이때, 복자가 들어온다. 복자, 놀라며 “정연아? 왜 이래? 무슨 일이야” 하는데..
정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복자의 입모양만 보이는데... 서서히 정연의 의식이 가물가물해지고...)
씬17. 병원 복도
(병실 앞.. 태섭과 남숙, 민우와 정식이 있다. 태섭과 민우, 초조하다. 정식과 남숙은 비교적 차분하고...
이때, 병실에서 의사와 간호사가 나온다)
태섭 : 어떻게 된 겁니까?
의사 : 아무래도 정신적인 충격에서 온 실어증 같습니다.
태섭 : ..!! 시, 실어증이요? 말을 잃어버렸단 말입니까?
의사 : 지금 상태로는, 듣지도 못할 겁니다. 일종의 뇌졸중 같은 증세죠.
태섭 :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평생 저 상태로 살아야 합니까?
의사 : 경우에 따라선 하루 만에 정상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남숙 : (바라듯이) 깨어나는데, 아주 오래 걸릴 수도 있나요?
의사 : 예.. 몇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민우 : ...! (놀라는데)
의사 : 우선은 안정을 취하면서 경과를 살피는 게 좋을 듯 싶군요. (인사하고 간다)
태섭 :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정연이가 실어증이라니?
남숙, 정식 : .. (내심 반갑다)
민우 : ... (무겁게)
씬18. 동, 병실 안
(민우가 들어선다. 정연, 멍하게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고... 정연의 손에 들려져 있는 수첩...)
민우 : 정연아...
(반응 없다. 민우, 정연의 손에 쥐어진 수첩을 조심스럽게 빼어든다. 수첩을 넘겨보는데...
다시 한 번, 주르륵 펼쳐보면.. 나랑 결혼해 줘...
민우, 정연의 손에 수첩을 쥐어준다. 그대로 정연의 손을 꼬옥 잡으며...)
민우 : 이 정도였니? 말을 다 잃어버릴 정도로.. 그 정도로 이강모를 사랑했니?
정연 : ... (무반응으로)
민우 : 처음부터 내가 끼어들면 안 되는 거였어... 내가 널 사랑하는 거... 그거하곤 애초부터 비교도 되지 않았어..
정연 : ..
민우 : (눈물 고인다) 미안하다, 정연아... 내가.. 내가 널 너무 늦게 알았다...
정연 : ... (무표정, 그러나 맑고 예쁜 모습)
씬19. 거리, 버스 정류소 앞
(힘없이 걸어 나오는 민우, 젖은 눈가를 훔친다.
이때, 버스, 한대가 다가온다. 뚱뚱한 안내양이 나오고...
민우, 안내양을 물끄러미 보는데... 안내양, 능숙하게 손님을 승하차 시키고는 오라이..!
민우, 어딘가 기대고 싶다. 다음 버스를 기다리다가.. 그런 자신이 어이없다는 듯 허탈하게 쓴웃음 지으며 가는데...
다른 버스가 다가와 선다. 민우, 걸어가는 귓전으로..)
미주 : (E) 빨리 빨리 내리세요..! 빨리 빨리..!!
(민우, 보면 미주가 밝게 웃으며 손님들을 태우고 있다. 민우, 자신도 모르게 다가가고...)
미주 : 빨리, 타세요, 빨리... 안계시면 오라... (돌아보다가 놀라고)
민우 : .. (본다)
미주 : 타실 거예요? 안타시면, 오라이에요?
(민우, 버스에 오른다. 미주, 버스에 올라타며 버스를 탕탕 치고.. 오라이..!)
씬20. 달리는 버스 안
(한적한 시내 외각쯤을 달리고 있는 버스 안.. 승객이 그리 많지 않고... 자리도 비어 있는데 민우가 미주 옆에 서 있다.)
미주 : (껌 씹으며) 근데.. 회사는 반대 방향인데, 어디 가세요?
민우 : ... 몰라.
미주 : 몰라요? 그럼 버스를 왜 탔는데요?
민우 : 나도 왜 탔는지 지금 생각 중이야.
미주 : .. (누구 놀리나) 저기 빈자리 많은데, 가서 앉으세요.
민우 : 바지 구겨져. 의자도 너무 더럽고...
미주 : 치, 그럴 걸 버스는 왜 타요? (살피듯 보다가) 기분 안 좋은 일 있죠? 그쵸?
민우 : 왜? 내가 그래 보이냐?
미주 : 쬐끔요.. 쫌 슬퍼 보인다고 해야 되나?
민우 : .. (씁쓸하고, 잠시 미주를 보다가) 너 몇 시에 끝나냐?
미주 : 그건 왜요? 혹시 고소 취하해 주시려구요?
민우 : ... (본다) 취하해 주면 넌 나한테 뭘 해줄 건데?
미주 : (껌 한 개 내 놓으며) 자요.
민우 : (기막혀서) 뭐야?
미주 : 껌이잖아요. 얼른 씹어요.
민우 : (인상 쓴다, 창밖으로 시선 두며) 됐다... 너한테 뭘 기대한 내가 미친놈이지...
미주 : 뭘 모르시네? 기분 꿀꿀할 때는 껌 팍팍 씹으면서 버스 타고 시내 한 바퀴 획 도는 게 최고거든요. 얼른 씹으라니까요?
(까서 입에 넣어준다)
민우 : .. (얼떨결에 껌 씹고)
미주 : (기사 쪽을 힐끔 살피고는 작게) 이 시간이 손님이 제일 없어요. 내가 특별히 회수권 안 받을 테니까 언제든지 와요.
민우 : ... (기막혀 픽 웃는다)
미주 : 부담 갖지 말구요.
민우 : 야, 고작 회수권 몇 장에 껌 한 개하고 소송을 맞바꾸자고? 너 가만히 보니까 날 아주...
(이때, 버스가 급정거를 한다. 미주, 비명... 민우의 품에 꽉 안기는데..)
기사 : (창밖을 내다보며, 신경질) 누가 개새끼를 길에다 풀어 논거야?
(다시 운전을 시작한다.
민우, 멍해져서 품에 안긴 미주를 보는데.. 두근거리는 가슴...
미주, 놀라 있다가 정신 차린 듯이 얼른 떨어지고)
미주 : 죄송해요. 뭐, 묻진 않았죠? (급히 털어주는데)
민우 : (손 탁 치며) 됐어.
(민우, 바깥쪽으로 시선 두고는 본능적으로 껌을 짝짝 씹는데... 미주도 왠지 쑥스럽다. 딴 데 보며 열심히 껌 씹어대고...
민우, 슬쩍 미주를 살피는데... 마음에 뭔가 위로가 된다. 부드러운 미소가 지어지는데서...)
씬21. 로열클럽, 홀 안 (밤)
(경자가 지나가다가 황태섭을 보자 화들짝 놀라서 얼른 숨는다. 태섭이 잔뜩 지친 모습으로 들어서고....
이때, 홀 안에서 앵콜을 연호하며 박수소리..
태섭이 보면, 화려한 무대복 차림의 경옥이 마이크를 잡고 있다. 여가수가 피아노에 앉아 있고...
태섭, 잠시 경옥을 보는데..)
경옥 : 고맙습니다. 이번 노래는 개인적으로 추억이 있는 노래예요.
(경옥, 피아노 쪽을 보며 신호를 보내면 반주가 시작되고... 경옥,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태섭이 넋을 잃은 듯이 경옥을 본다)
경옥 : (마이크 잡고, 노래)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 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태섭 : ... (회한이 복받쳐 오는 듯 한 그 표정 위로..)
씬22. 작부집 안 (회상)
(허름한 작부집이다. 작부 티가 줄줄 흐르는 경옥이 젓가락으로 장단을 맞춰가며 구성지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
공사판 인부 복장의 태섭이 마주 앉아서 흐뭇하게 경옥을 보고 있고...)
경옥 : (노래, 이어서)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태섭 : (박수치며) 야, 우리 경옥이, 노래 한번 구성지게 잘한다. 최고야..!
경옥 : 정말?
태섭 : 내가 공사판에서 뼛골 빠져도 이 맛에 산다니깐?
경옥 : (막걸리 따라주며) 한잔 마셔, 자기야. (주전자 비어있고) 술이 벌써 떨어졌네? (주방에다가) 이모, 여기 한주전자 더..
태섭 : 야, 나 돈 없어. 그만 마셔.
경옥 : 언제 여기서 돈 내고 술 먹었어? 내 월급에서 까면 돼.
태섭 : (좋아서, 한잔 마시며) 그래, 외상장부에 달아 놔. 내가 한방에 갚을 테니까.
경옥 : (물끄러미 본다) 우리... 살림 합칠까?
태섭 : (놀라서, 본다) 뭐...어?
경옥 : 왜 결혼 하잔 얘길 안 해? 혹시 마누라 있는 거 아냐?
태섭 : 얘는.. 아, 아냐... 나 하루 벌어서 입에 풀칠하기도 바뻐.
경옥 : 나, 딴 거 아무것도 필요 없어. 그냥.. 나만 사랑해주면 돼.
태섭 : ...
경옥 : 나만 바라보구.. 나만 이뻐해 주고 나만 생각하면 돼. 그건 해줄 수 있지?
태섭 : (안쓰럽고) 너, 남자 보는 눈이 그렇게도 없냐? 세상에 잘난 놈도 많은데 왜 하필 나야? 너, 나 만나면 고생길 훤하다?
경옥 : 나, 고생에 이골 난 년이야. (잔 들고) 자, 서방님... 한잔 하시와요.
태섭 : ... (미안한 표정으로)
씬23. 로열클럽 안 (현실)
경옥 : (노래, 2절) 새파란 꽃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 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딸랑이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경옥을 보는 태섭의 눈가가 흥건해 있다. 가슴이 저미는 듯..)
씬24. 로열클럽 복도 (시간경과)
(경옥이 지배인과 경자와 함께 바쁜 걸음으로 걸어간다. 룸 앞에 지나가 나와 있고)
경옥 : 어떻게 된 거야?
지나 : 많이 취하셨어요. 사장님을 계속 찾으셔서...
경옥 : (잠시 생각) 아무도 들어오지 마. (룸 안으로 들어간다)
경자 : .. (호기심, 슬쩍 룸 안을 들여다보는데)
씬25. 동, 룸 안
(들어서는 경옥... 술에 취한 황태섭이 테이블에 고개를 처박고 있다)
경옥 : (다가가 앉는다, 잠시 보다가 흔들며) 황회장님...
태섭 : 응? (게슴츠레 본다) 경옥이... 경옥이 왔냐?
경옥 : 밖에 직원들 있어요. 그렇게 부르지 말아요.
태섭 : ... (한숨 내쉬며) 요즘 복잡한 일이 좀 많아... 사는 게 고달파서.. 여기 오면 좀 나을까 했는데..
경옥 : ...
태섭 : 미안하다... 내가 너한테 이러면 안 되는데...
(태섭, 일어서다가 비틀거리면.. 경옥, 얼른 태섭을 부축하는데.. 태섭, 경옥에게 안기듯이...)
경옥 : 괜찮으세요?
태섭 : (떨어지고) 다음부턴... 이런 일 없을 거야. (가려는데)
경옥 : 난 괜찮아요.
태섭 : .. (본다)
경옥 : 지치고 힘들면 언제든지 오세요. 여긴 술집이니까...
태섭 : 그래.. 넌 술집 주인고.. 난 그냥.. 술손님이니까. 더 이상 욕심내면... 미친놈이지. 내가... (비틀거리며 나간다)
씬26. 미주네 집 부엌 (그 밤)
(성모가 와이셔츠 차림에 앞치마까지 두르고 저녁 밥상을 차리고 있다. 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고...
성모, 찌개를 옮기려고 잡다가 앗 뜨거라..! 이때, 일을 마친 미주가 막 들어서고는..)
미주 : 큰오빠?
성모 : 우리 미주, 지금 오니?
미주 : 뭐야? 오빠가 지금 저녁 밥 한 거야?
성모 : 배고프지? 얼른 들어가서 먹자.
(성모, 밥상 들고 방안으로 가면.. 미주, 따라 들어가고..)
씬27. 동, 방 안
(성모, 상을 내려놓는다. 미주, 밥상 앞에 앉고..)
성모 : (숟가락 쥐어주고) 얼른 먹어 봐. 너 어릴 때 콩장 좋아했잖아. 내가 간장 넣고 조려봤어.
(숟가락으로 콩장 몇 알 떠서) 자.. 아...
미주 : (오물오물) 음, 맛있다. 어릴 때 엄마가 해준 맛 그대로네?
성모 : (좋아서) 된장찌개도 먹어봐. 요, 장조림하고 계란 부침도 먹어보고...
미주 : 근데.. 오빠, 그 앞치마 좀 풀면 안 돼?
성모 : 어? (헤헤 웃으며) 이상하냐? 옷에 튈까 봐.. (끄른다)
미주 : ... (미소 지으며, 밥 먹다가 시무룩해지며)
성모 : 왜? 맛없어? 별로야?
미주 : 강모 오빠두.. 내 생일상 차려 줬었는데..
성모 : ...
미주 : 그때 큰오빠가 없어서 너무너무 속상했거든... 큰오빠가 있으니까 이번엔 작은 오빠가 없네?
성모 : 미주야...
미주 : 우린 언제 다 같이 모여서 밥 먹어?
성모 : ... (미주 얼굴을 쓰다듬는다) 강모, 금방 나올 거야.
미주 : 어떻게 금방 나와? 작은 오빠 나오려면.. 아직두 한참 남았잖아.
성모 : 오빠가... 그 전에 빼내 올 거야.
미주 : 정말?
성모 : 오빠, 미주한테 거짓말 안 해. 우리 셋이 모여서 밥 같이 먹을 날... 이제 얼마 안 남았어.
미주 : (눈물 글썽) 오빠...
성모 : 자, 얼른 먹자... 찌개 다 식겠다.
미주 : .. (좋아서 밥 먹는다)
성모 : .. (그런 미주를 안쓰럽게 보는데)
씬28. 공사장 (낮)
(한적한 산기슭쯤의 도로 공사장이다.
수련생들이 곡괭이며 삽질을 하며 산을 깎고 길을 내고 있다. 총을 든 군인들이 군데군데 지키고 있고...
강모, 땀에 흠뻑 젖은 채 열심히 삽질을 하는데...
그 옆에서 만만치 않은 포스의 50대 초반의 사내가 건성으로 삽질을 하고 있고... 471번, 남영출이다)
영출 : 어디서 삽질 깨나 푼 솜씨네?
강모 : .. (대꾸 없이)
영출 : 그러다 뼈 삭어. 눈치껏 쉬엄쉬엄 해. 막말로 일당이 나오는 아니구... 우리야 뭐 대충 때우다 가면 그만 아녀?
강모 : .. (삽질만)
영출 : 아따, 썩을 놈.. 혓바닥을 빼서 귓구멍에 처 막았나, 뭔 말을 하면 대꾸가 없어.
강모 : ...
씬29. 야전 막사
(군용 천막이 쳐져 있고... 대령 계급을 단 연대장이 와 있다. 주임상사쯤의 사내와 하사관 계급의 교관들이 있고..)
연대장 : 뭐? 보름? 도로 뚫리는데 보름이나 걸린단 말야?
상사 : 산악 지형이다 보니 돌이 많아서...
연대장 : (멱살 잡아 채며) 마..! 니들, 누구 모가지 날아가는 꼴 보고 싶어서 이래? 사단장님 순시가 일주일 뒤야, 임마...!!
상사 : 시, 시정하겠습니다.
연대장 : 시정이고 뭐고, 일주일 내로 도로 깔아 놔. 안 그러면, 니들 다 옷 벗을 각오 해..!
(연대장,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부관이 급히 따라 가고..)
상사 : 죽겠구만... 아니, 무슨 수로 일주일 안에 도로를 깔아?
교관 : 471번한테 부탁해보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상사 : 471번?
교관 : 예, 공사현장에 관한한 귀신같은 놈입니다.
상사 : 그 놈, 지금 어딨어?
씬30. 공사장
(471번을 단 남영출이 건성으로 삽질을 하고 있고.. 강모, 무거운 돌덩이를 치우느라 안간힘을 쓰는데...
이때, 주임상사와 교관들이 다가온다)
영출 : (슬쩍 보고는) 저것들은 왜 또 떼거지로 몰려 온다냐?
상사 : 471번..!
영출 : .. (못들은 척, 일만)
상사 : 야, 471번..!!
영출 : 예? 저, 부르셨어요?
상사 : (다가온다) 이 공사, 너한테 맡기면 며칠 만에 끝낼 수 있어?
강모 : ... (본다)
영출 : 다짜고짜 뭔 말씀이신지 당최...
교관 : 일주일 뒤에 사단장님이 여길 지나가신다.
영출 : 그러니까.. 이 공사를 일주일 내로 끝내라고요?
상사 : 안 그러면, 우리 다 영창가게 생겼다. 이번 한번만 우릴 도와줘라.
영출 : 저기.. 도로가 무슨 양탄자도 아니고.. 두루마리 펼치듯 주욱 펼치면 된답니까?
상사 : 니 실력 다 알고 하는 말이야. 너, 공사에 관해선 귀신이라며?
강모 : ..!! (본다, 눈빛)
영출 : 제가 알기 쉽게 견적서 내 드릴 테니 잘 들으세요? 우선 산을 깎고 땅 다지는데 사일... 시멘트 개서 도로에 쳐 바르는데
삼일... 그것만 해도 벌써 일주일 다 썼죠? 근데 공구리가 바르자마자 마릅니까? 최소한 마르는 데만 사오 일은 걸립니다.
그럼 뭡니까? 사 더하기 삼에다가 오 더하면... 에이.. 죽었다가 깨어나도 일주일 갖곤 턱도 없어요.
상사 : 그걸 누가 몰라, 임마..! 어려우니까 부탁하는 거잖아..!!
영출 : 어뜩합니까? 안 되는 거 안 된다고 해야지, 된다고 했다가 나중에 무슨 개 피를 보라고...
상사 : (좌중에다가, 소리친다) 지금부터 야간작업이다...! 무조건 일주일 내로 끝낸다..!! 농땡이 치는 놈은 용서 없다, 실시..!!
교관 : 빨리 빨리 작업 해, 이 새끼들아..!!
(교관들이 다그치기 시작한다. 다시 작업이 시작되고... 영출, 삽질 시작하는데... 강모, 작업하면서 영출을 보는 눈빛...)
씬31. 공사장 일각
(수련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식판에 밥을 먹고 있다. 한쪽에서 남영출이 밥을 먹고 있고...
배식을 받은 강모가 식판을 들고 남영출 옆에 다가가 앉는다. 강모, 밥을 먹으며 슬쩍 남영출을 살피다가...)
강모 : 얘기 들었어요. 건설 현장에서 유명하셨다면서요?
영출 : 나? 유명했지... 공사판에서 빼돌린 자재 값만 잘 모았어두 지금쯤 갑부 소리 들었을 거다.
근데 도둑질 한 돈, 쉽게 안 모이더라고...
강모 : ..
영출 : 내가 망치하나만 있으면 기둥 안에 철근이 몇 개 박혔는지, 시멘트하고 모래가 몇 대 몇으로 비벼졌는지 다 알거든?
너 의사들이 쓰는 청진기 알지? 두들겨보면 나두 다 알아.
강모 : ...
영출 : 내가 딱 안 무너질 만큼만 썼거든. 그러니까 부실 공사는 아니지.
남는 거 엿 좀 바꿔 먹었다고 뭐가 그렇게 큰 죄냐고, 안 글냐?
강모 : 이 공사, 일주일 안에 끝낼 수 있죠?
영출 : .. (본다)
강모 : 내 계산으론 땅 다지는데 최소 삼일까지 가능해요. 도로 까는 데 이틀까지 가능하고요.
영출 : 제법이다, 너? 근데, 말리는 건 어떡할 건데? 빨리 마르라고 부채질 하고 있을 거냐?
최소 사오일이야. 비라도 한번 내리면 작살이고...
강모 : 하실 수 있으면, 이 작업 맡아서 하세요. 안 그러면, 일주일 내내 우리 입에 거품 물어야 되요.
영출 : .. (픽 웃는다) 공사 끝내 놓으면 쟤들이 쉬게 해 줄 거 같냐?
강모 : .. (본다)
영출 : 그래, 너 잘 봤다. 나, 이 공사, 일주일 안에 끝낼 수 있어. 남들 사오일 걸리는 거.. 난 이틀 안에 바짝 말릴 수 있거든.
강모 : ..!!
영출 : 근데, 내가 미쳤냐? 죽어라고 나 두들겨 팬 놈들 도와주게? 한 달만 버티면 나 여기 나가.
그 전에 저 놈들 영창 가는 거 보는 게 낫지 누구 좋으라고 도와줘? (밥 먹는다)
강모 : .. (밥 먹으며 영출을 보는데)
씬32. 공사장 (밤)
(야간 등이 밝혀져 있다. 계속되는 작업... 작업을 빨리 하라는 조교들의 고함소리...
모래를 나르던 늙은 수련생이 넘어지자 조교들의 몽둥이질이 쏟아지고... 여기저기 쓰러지는 사람들이 속출한다.
작업을 하던 강모, 안타깝게 보는데... 영출, 모든 게 남 일이다. 요령껏 작업을 하며... 강모, 그런 영출을 보는데...)
씬33. 공사장 일각
(군용 트럭에서 지원 인원들이 내리고 있다. 교관과 조교들이 빨리 빨리 내리라고 독촉하고.. 상사가 다가온다)
상사 : 지원 병력이 이것밖에 안 돼?
교관 : 다른 대대에서도 오고 있습니다.
(이때, 박소태가 트럭 뒤에서 내린다. 다리 한쪽에 부상이 있는지 그대로 고꾸라지는데...)
상사 : 뭐야, 이건?
(소태, 놀라서 얼른 일어난다. 급히 가는데 심하게 절뚝거리고... 불쌍하고 초라한 모습...
조교들이 수련생들을 인솔해 간다)
씬34. 동, 일각
(강모와 영출이 작업 중인데... 줄을 지어서 지나가는 수련생들... 이때, 소태가 강모를 본다.)
소태 : (반가움에) 가, 강모야..
강모 : ..!! (본다, 소태를 알아보고)
(소태, 찔리는 게 있어서 이내 고개 푹 숙이고 외면한다.
조교가 ‘빨리 못가?’ 소리치며 몽둥이로 소태의 등짝을 후려친다. 소태, 넘어지고...
강모, 놀라는데.. 소태, 겨우 일어서더니 심하게 절뚝거리며 가는데.. 계속 강모 쪽을 돌아보는 소태, 눈물이 고여 있고...
한눈에 보아도 다리 부상이 심각하다)
영출 : (소태쪽을 보고) 아는 애여?
강모 : .. (걱정스럽게 보는데)
영출 : 어서 저런 불량품을 보냈다냐? 저런 거 백 개 가져와봤자 공사에 방해만 되는데 말여..
강모 : (마음 급하게, 영출에게) 방법이 뭐예요?
영출 : 뭐가? 불량품 속가 내는 방법?
강모 : (버럭) 콘크리트 빨리 마르게 하는 방법이 뭐냐구요..!!
영출 : 이 놈 보게? 엿장수한테 가위 내 노라네?
강모 : 다른 사람들, 고통 받는 거 안보여요? 이러다가 죽는 사람이라도 생기면 책임 질거냐구요..!!
영출 : 내가 책임을 왜 져, 임마? 내 거시기 반 토막두 책임 못 지는데?
강모 : .. (답답하다, 삽으로 확 땅을 내려치는데)
영출 : 정, 이 공사 빨리 끝내고 싶으면 니가 방법을 찾아 봐. 관상 보니까 머리도 비상할 거 같은데...
강모 : ... (보는데)
영출 : 내가 힌트 하나 줄까? 요 근처에 쎄고 쎈 게 그거거덩?
그거만 잘 갖다 써 봐. 그럼 이 공사, 일주일 안에 끝낼 수 있으니까...
강모 : ....
영출 : 근데, 니가 그거 알아내면 넌 천재여. 천재면 여기 들어와서 이런 개고생 하겄나? (비웃으며 일한다)
강모 : ... (뭔가 생각하는데)
씬35. 레코드사 복도 (낮)
(미주가 잔뜩 풀이 죽어서 걸어 들어온다)
씬36. 동 사무실 안
(석춘과 지나, 직원남과 선화가 모여 있고.. 미주, 들어서는데 일제히 미주를 본다. 뭔가 심각한 분위기...)
석춘 : 너 어디 갔다 이제와?
미주 : (뭘 잘못했나 싶어서) 병원에 들렀다 오느라고... 근데,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지나 : 만보건설 조민우 실장이... 이번 소송 취하해 준데.
미주 : ..!! (좋아서) 네에? 그럼, 정미는요?
선화 : 정미도 곧 풀려난데.
석춘 : (미주 손을 잡는다) 수고 많았다, 미주야. 니가 우리 회사 살렸어.
미주 : (벅차다) 저, 잠깐만 어디 좀 다녀올 게요? (급히 뛰어나간다)
직원남 : 야, 미주야? 오늘 회식 있다? 금방 와?
씬37. 동, 기획실 안
(민우와 성중, 기획실 직원들이 회의 중이다)
민우 : 현재 아파트 분양 현황이 어떻습니까?
성중 : 실장님 전략이 딱 맞아 떨어지고 있습니다. 유명 영화배우, 가수들한테 분양을 해 놓으니까
여기저기서 문의가 폭주하고 있어요.
민우 : 정치인들이나 스포츠 스타들한테까지 분양혜택을 확대하세요.
우리 아파트는, 유명한 사람들이 사는 고급 주택이라는 이미지를 부각시켜야 합니다.
성중 : 알겠습니다. 실장님. 근데.. 오로라 레코드사 고소 건은...?
민우 : 소송 취하하라고 했을 텐데요?
성중 : 실장님 지시대로 소송을 취하하긴 했는데... 임원진들이 이 사실을 알면...
민우 : 걱정 마세요. 이번 삼차 분양만 완벽하게 끝내 놓으면 임원진 설득은 내가 합니다.
(시계보고) 오늘 회의는 이만 마치죠. (일어선다)
대리 1 : 오늘, 합동유세가 있다고 했죠? 저희들도 유세장에 가겠습니다.
여직원 1 : 실장님 집안일인데, 우리도 응원 해야죠.
여직원 2 : 대신 나중에 당선되시면 한턱 쏘셔야 되요?
민우 : (미소) 고맙습니다. (나간다)
씬38. 동, 지하주차장
(민우가 걸어 나온다. 막 승용차 문을 여는데 미주가 급히 뛰어오며..)
미주 : (뛰어오며) 실장님..! 잠깐만요, 실장님..!!
민우 : .. (보면)
미주 : (다가와서 숨을 헐떡거린다)
민우 : 바뻐. 할 얘기 있으면 빨리 해.
미주 : .. (벅찬듯이 본다)
민우 : 바쁘다는 말 안 들려? 할 말 없으면..
미주 : ..! (와락 껴안는다) 고마워요 실장님...
민우 : ..!! (얼른 주변을 둘러보며) 야, 너 왜 이래..?
미주 : (눈물 고인다) 실장님 덕분에, 우리 다 살았어요. 선생님두 살고 정미두, 정미 어머니두, 다 살았어요, 실장님...
민우 : ... (보는데)
(이때, 다른 직원 두어명이 나온다. 민우, 얼른 미주를 확 밀어내며..)
민우 : 귀찮아서 해준 거야. 니가 껌딱지처럼 늘러 붙는 게 지긋지긋해서.
미주 : (눈물 그렁한 채, 미소) 저요, 이 은혜 정말 안 잊을게요. 맨날맨날 도시락 싸다 줄 수도 있고...
민우 : 귀찮다는 말 못 들었냐? 맛두 드럽게 없게 싸면서.. 비켜..!
(민우, 미주를 툭 밀치더니 차에 올라탄다)
미주 : (차 창문에 매달리듯) 고마워요, 실장님..! 실장님이 최고예요.
(민우, 대꾸 없이 운전한다. 승용차 빠져나가는데..
민우, 백미러로 미주를 보면 미주, 좋아서 펄쩍 펄쩍 뛰어가며 손을 흔들고 있다. 민우, 픽 웃음이 나면서...
미주, 환하게 미소 지으며 보는데..)
씬39. 선거 사무실 안
(말쑥한 양복차림의 조필연.. 명자가 상의에 꽃을 꽂는다. 고재춘이 있고... 명자 넥타이를 목에 대주며..)
명자 : (재춘에게) 이 색깔 어때요? 너무 튀지 않아요?
재춘 : 제 눈엔 멋져 보이십니다.
필연 : 다른 거 가져와. 서민들의 후보란 이미지에 안 어울리잖아.
명자 : (다른 넥타이 고르며) 이건 어때요?
필연 : 그게 좋겠어.
명자 : (넥타이를 매준다)
필연 : 공씨라고 했나? 민홍기 과거 비리를 터뜨릴 제보자는 어떻게 됐어?
재춘 : 성모가 유세장으로 직접 데려올 겁니다.
필연 : 드디어 오늘 폭탄이 터지겠구만... 오늘 유세가, 민홍기의 마지막 유세가 될 거야. (하하 웃는데)
씬40. 달리는 승용차 안
(찬성이 운전 중이다. 옆자리에 성모가 앉아 있고.. 뒷자리에 공씨가 앉아있다. 공씨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고..)
공씨 : 아직 멀었습니까?
찬성 : 거의 다 왔어요. 금방 유세장에 도착 할 겁니다.
공씨 : .. (불안한데)
성모 : 윤봉길 의사 잘 아시죠?
공씨 : ...? (보고) 제가 존경하는 분입니다.
성모 : 오늘 하루, 선생께선 윤봉길 의사가 되시는 겁니다. 하지만, 그분처럼 폭탄을 투척해 놓고 현장에서 붙잡혀서는 안 돼요.
공씨 : ..
성모 : 선생께서 폭탄발언을 하시고 나면 유세장은 일대 혼란에 빠지게 될 겁니다. 그때 이 친구가 선생을 모시고 나올 거예요.
절대, 조필연에게 잡혀서는 안 됩니다.
공씨 : 잘 알겠습니다. (결연하게)
성모 : .. (뭔가 단호해지는 눈빛으로)
씬41. 공원 안
(선거 유세가 있는 작은 공원...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앞자리에 황태섭과 남숙, 정식, 주영국들이 앉아 있고... 그 옆에 민우와 명자가 앉아 있다.
남숙과 명자, 미소로 눈인사 나누고.. 천, 백, 조, 박회장들이 앞줄에 있다.
일각에서 기호 4번 조필연쪽 선거 띠를 두른 염재수와 복자, 시덕과 경자가 사람들을 밀치며 앞자리에 앉는다)
재수 : 가만히 집이나 지키지 여긴 왜 따라오구 그랴?
복자 : 그런 소리 말어유, 이런 데 잘만 따라다니면 비누랑 치약이랑 경품 잔뜩 받는다는디...
경자 : 오랜만에 집에 왔더니 겨우 여길 데려오는 거야, 엄마?
복자 : 잔말 말구, 누가 봉투 같은 거 주면 얼른 받어, 이것아.
경자 : 챙피해 죽겠어, 정말.. (주변 살피며) 아는 사람 만나면 어쩌라구...
복자 : 신발 공장 다니는 년이 아는 사람이 어디 있다구 그랴?
경자 : 근데, 강모 오빠, 죽은 거 확실하대?
재수 : 갑자기 강모 얘긴 왜 꺼내? 겨우 가슴 진정시켜 놓았구만..
경자 : 불쌍하다, 강모 오빠...
시덕 : .. (침울하게)
씬42. 동, 연설장
(기호 1번 민홍기가 앞에 나와서 연설중이고.. 뒷자리에 여섯 명 정도의 후보들이 앉아 있다. 조필연이 여유 만만하게...
기자들이 앞쪽에서 사진을 찍으며 분주하게..)
홍기 : 우리는 지난 세월, 각고의 노력으로 눈부신 경제개발을 이룩했습니다. 이제는 미국이나 일본 같은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 무언지 아십니까? 바로 안보입니다. 국가 안보..!!
필연 : .. (싸늘하게, 비웃음)
홍기 : 저 수 많은 데모대를 보십시오. 빨갱이들이 이미 우리사회 깊숙이 침투해 있습니다.
전쟁의 위험속에서 우리가 잘살기 위해서는 강력한 정권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들께서 저 기호 1번 여당 후보 민홍기에게 한 표를 던지셔야만 합니다, 여러분..!!
(엄가와 검은 양복의 사내들이 옳소..! 소리치며 환호를 유도한다. 검은 양복들.. 말죽거리 파들이다. 두목쯤 되는 사내, 칼치다.
노인들이 박수를 치며 호응하고... 제법 나쁘지 않은 반응들... 황태섭과 주변 사람들이 시큰둥하게..
필연, 웬일인지 열심히 박수 치는데...)
씬43. 동, 연설장 (시간 경과)
(수행원들이 조필연을 연호하며 분위기를 띄운다. 명자, 민우, 남숙, 정식, 복자, 재수, 경자, 건대협 회장들도 열심히 박수치며...
천천히 연단 앞에 나서는 필연... 이때, 고재춘이 공씨를 데리고 오더니 태섭 주변의 앞자리에 앉힌다.
필연, 공씨와 시선 마주치더니 회심의 미소...
그 뒤쪽의 일각.. 성모와 찬성이 보고 있다. 성모, 차가운 표정으로 조필연을 노려보는데...
필연, 카리스마 있게 청중들을 훑어보더니 연설을 시작한다)
필연 : 민홍기 후보께서 이 나라의 희망찬 미래를 말씀 해주셨습니다. 아주 훌륭한 연설이었습니다.
홍기 : .. (본다)
필연 : 하지만, 미래는 희망찬 데 어찌 된 일인지 우린 여전히 가난 합니다. 여러분들.. 집에 돈 많습니까?
강남땅값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는데, 그 땅 사 두셨습니까? 아닙니다. 우린 여전히 가난합니다.
부자들은 더욱 더 부자가 되어 가는데 여러분들은 점점 더 배가 고픕니다. 이게 대체 무슨 조환지 아십니까?
(산만했던 분위기가 조필연에게 집중된다. 점점 필연의 연설에 빠져드는 사람들...
성모, 홍기, 무표정으로..)
필연 : 이 나라에서 가난뱅이가 부자가 되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 만큼 힘이 듭니다.
애초부터 그 모든 것이 잘못됐기 때문입니다. 주변을 둘러보십시오. 일제 시대 때부터 잘 먹고 잘 살던 사람들이
지금은 더욱 더 잘 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병폐가 과거를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친일파를 제거하고 새로운 피를 수혈하지 못해서 이 나라가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좌중 : ... (집중한다)
필연 : (뒤 쪽을 가리키며) 여기, 이 후보들 중에 그 악독한 친일파의 자손이 애국자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
후보들 : ..! (긴장한다)
홍기 : .. (굳어지는데)
필연 : 여러분은 진실을 알아야 합니다. 저, 기호 4번 조필연이, 그 진실의 눈을 뜨게 해줄 분을 모셨습니다.
(앞쪽을 본다) 공선생님.. 앞으로 나오세요.
(재춘이 공씨를 데리고 연단에 오른다. 술렁이는 사람들.. 긴장하는 후보들...
공씨의 손에 누런 서류 봉투가 들려져 있고..
민홍기, 몸을 바로 앉으며 심상치 않게... 태섭과 정식들도 긴장하며..
일각의 성모, 입가에 쓴 웃음을 지은 채 보고 있고...)
필연 : (공씨에게) 말씀하시죠.
공씨 : (잠시 좌중을 보다가) 저의 부친은.. 독립운동을 하신 죄로 옥중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여기 이 후보들 중에, 우리 부친을 돌아가시게 한 친일 앞잡이의 아들이 있습니다.
좌중 : .. (술렁거린다)
공씨 : (봉투를 보여준다) 여기 이것들이 그 증거자룝니다.
(기자들, 후래쉬 터뜨리며 사진 찍는다. 필연, 여유 만만하게 좌중을 보며...
공씨, 오래 된 흑백사진 한 장을 꺼내든다. 어린 아이와 일본 제복의 남자..)
공씨 : 여기, 이 친일 앞잡이와 함께 찍은 사진속의 아이가 바로 이 자리에 있습니다.
필연 : .. (미소 지으며 사진을 보더니 얼굴이 굳어진다)
공씨 : 부친 이름은 조만근..! 그 아들 이름은 조필연입니다..!!
필연 : ..!! (놀라는데)
(일제히 터지는 카메라 플래쉬... 크게 놀라는 태섭들..! 사람들이 술렁거리더니 동요하기 시작한다)
공씨 :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조만근의 손에 의해서 죽었습니다...!! 조필연을 당선시켜서는 절대 안됩니다..!!
(삽시간에 소란해지는 유세장... 물러가라..! 친일 앞잡이..! 조필연, 자진 사퇴하라..! 매국노의 자식..! 쏟아지는 고함 소리..
깡통이나 돌맹이들이 날아오며.. 돌맹이 하나가 필연의 이마를 때린다. 주르르 흐르는 피...
필연, 꿈쩍 않고 무섭게 공씨를 노려보는데..
이때, 사람들이 연설장으로 난입한다. 매국노 자식이라며 조필연의 멱살을 잡고..
이를 말리는 고재춘과 수행원들...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단상 위..)
필연 : (멱살을 뿌리치며, 정신 차린 듯) 잡아..! 제보자를 잡아..!! 그 놈 놓치면 안돼..!!
(재춘이 주변을 살피지만 이미 공씨는 자취를 감추고 없다.
민홍기, 입가에 회심의 미소.. 황태섭과 민우들이 크게 놀라서...
이를 지켜보던 성모, 조용히 유세장을 빠져나간다. 찬성은 이미 보이지 않고..)
씬44. 로열클럽 밀실 안
(웃음소리... 백파와 오병탁, 민홍기와 한명석, 경옥이 모여 있다)
병탁 : 아니, 하필이면 그때 조필연한테 원한이 있는 자가 나타날 줄 누가 알았겠어?
백파 : 내가 보기엔 우연이 아닌 듯싶소... (홍기를 본다) 민후보, 당신이 꾸민 일 아니오?
홍기 : 어르신 혜안은 못 당하겠군요.
병탁 : 뭐? 그럼 그게 다 공작이라는 거야?
홍기 : 선거판에서 공작이란 건 없습니다. 전술만 있을 뿐이죠.
경옥 : 이번 유세로, 선거 결과는 결정 난 거나 다름없겠네요?
명석 : 내일 아침 조간신문들이 일제히 이 기사를 다루면, 조후보 쪽은 회생 불능이 될 겁니다.
홍기 : 이 모든게, 여기 계신 분들께서 절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경옥 : 민후보님, 벌써 당선 소감 말씀하시는 거예요?
홍기 : 얘기가 그렇게 됐습니까? 죄송합니다. 어르신께서, 절대 방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그만..
병탁 : 자, 다들 잔 듭시다. 이 대목에서 건배..
(좌중, 잔을 부닥친다. 한 모금씩 마시고...)
백파 : 난 지금부터가 궁금합니다.
병탁 : 아니, 이미 끝난 게임이 뭐가 궁금하다는 말씀이십니까?
백파 : 궁지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 앞에서 이빨을 세우는 법이오. 조필연이 이런 판국에서 어떻게 나올지... 아주 흥미롭군요.
경옥 : ... (뭔가 생각)
씬45. 선거 사무실
(고재춘이 필연의 주먹을 맞고 쓰러진다. 필연의 이마에 붕대가 붙어 있고...)
필연 : 너, 이 새끼.. 내가 그놈 뒷조사 철저히 하랬지? 대체 조사를 어떻게 한 거야.!
재춘 : (얼른 일어서며) 죄송합니다.
필연 : 죄송? 죄송하다고? (난 화분을 집어 들고 내리칠 듯) 죄송하면 죽어, 이 새꺄..!!
(이때 성모가 급히 들어선다. 조필연을 말리며..)
성모 : 고정하십시오.
필연 : .. (화분을 바닥에 팽기치며 씩씩대고는) 그 제보자는 어떻게 됐어?
성모 : 이미 집도 옮기고 사라졌습니다.
필연 : 성모 너... 안기부 다 동원해서라도 그 놈 찾아 내. 그 놈 틀림없이 민홍기 사주 받은 놈이야..!
성모 : 알겠습니다... 헌데, 좋지 않은 소식이 하나 더 있습니다.
필연 : 또 뭐야?
성모 : 이강모 소유의 그 개펄 땅... 다른 사람 명의로 되어 있습니다.
필연 : ..!! 뭐? 그 놈이 누군데?
성모 : 제임스 리라고... 미국 국적의 교포로 되어 있습니다.
필연 : 교포? 그 땅 소유주가 미국에 있다는 거야?
성모 : 담당 법무사 말로는, 추적이 불가능하다고...
(필연, 전화통을 집어 들더니 탁자 위에 내리친다. 씩씩대는 필연, 충격을 받은 모습...)
필연 : 이렇게 무너질 순 없어.. 이 조필연... 이렇게 안 무너져..! 절대 이렇게 죽을 순 없어..!!
성모 : .. (본다, E, 마음의 소리) 이제부터 시작이다 조필연.. 천천히.. 아주 고통스럽게 널 파멸시켜주마...
씬46. 작업장 (낮, 몽타주)
(시멘트 포대를 나르는 강모와 영출, 수련생들...
소태가 절뚝거리며 죽을힘을 다해 나르는데.. 소태, 무릎에서 피가 배어나오기 시작한다.
다리가 꺾기며 쓰러지면 빨리 빨리 하라는 독촉과 함께 조교들의 몽둥이가 쏟아지고...
이를 악물며 소태쪽을 보는 강모... 영출과 시선 마주치면 영출, 슬그머니 외면하고 가고... 강모, 원망스럽게...)
씬47. 동 일각
(점심시간... 수련생들이 지급된 건빵을 허겁지겁 먹고 있다. 강모와 소태가 있고.. 그 근처에서 남영출이 맛나게 먹고 있다)
소태 : (억지로 씹는다, 건빵 한 개 집어 들고 보며) 이젠 요렇게 생긴 자갈만 봐두 신물이 넘어 올라구 그래.
강모 : 너, 다리 좀 봐. (무릎에 손대려는데)
소태 : (탁치며) 별거 아냐.
강모 : 봐, 임마..!
소태 : 됐어. (일어서려는데)
(강모, 소태를 주저앉히고는 억지로 바지를 걷는다. 고름으로 퉁퉁 부은 무르팍... 피가 번져 있고.. 강모, 놀라는데...)
강모 : 멍청한 놈... 당장 의무대로 가자.
소태 : 소용없어.
강모 : 이러다가 너 다리 절단해야 돼, 임마.! 평생 절름발이로 살아갈 거야?
소태 : 내가 안 가봤겠냐? 두 손 두발 싹싹 빌면서 고쳐달라구 해두 몽둥이만 돌아와. 알어?
강모 : .. (안타깝고)
소태 : 넌 그냥.. 나한테 신경 꺼.
(소태, 고집스럽게 절뚝거리며 간다. 강모, 그런 소태를 보다가 남영출쪽을 노려본다. 영출, 시선 마주치자...)
영출 : 건빵 안에 별사탕 들어 있지? 그거 하나씩 씹어 봐. 달달하니, 건빵두 먹을 만 해.
강모 : .. (보는데)
씬48. 인근 비포장 길
(군용포차가 다가와 선다. 차에서 내리는 수련생들...
강모가 먼저 뛰어 내리고... 소태가 주저하자 강모가 밑에서 손을 내미는데..
소태, 자존심 상한다. 그냥 뛰어내리다가 다리 꺾이며 엎어지고... 강모, 안타깝게..
비포장 길 양쪽으로 군데군데 마대자루에 염화칼슘이 담겨져 쌓여있다. 그 옆으로 공사에 필요한 시멘트포대가 쌓여져 있고)
교관 : 저기 있는 염화칼슘들을 창고로 옮길 거다. 몽땅 차에 싣는다. 실시..!
(수련생들이 마대자루에 든 염화칼슘들을 포차에 싣기 시작한다. 강모도 열심히 염화칼슘들을 차에 싣는데...)
소태 : 아따, 이 아까운 시멘트가 다 굳어버렸네...
(강모, 보면... 염화칼슘 옆에 놓여 있던 시멘트가 딱딱하게 굳어져 있다. 빗물에 녹은 염화칼슘 때문에 굳어져 있는 것이다.
강모, 뭔가 이상해서 다른 염화칼슘 옆에 있는 시멘트를 만져보면 딱딱하게 굳어있고...)
강모 : (뭔가 생각하며) 소태야... 이상하지 않냐?
소태 : ...? (본다)
강모 : (소태를 보며) 염화칼슘 옆에 있는 시멘트들만 굳어 있어.
소태 : .. (얼른 시선 외면하고) 나한테 말시키지 마. (간다)
(강모, 미친 듯이 푸대 자루를 끄른다. 하얀 염화칼슘들이 가득하고.. 강모, 손으로 염화칼슘을 움켜쥐며...)
강모 : (혼잣말) 빗물에 녹은 염화칼슘이... 시멘트를 굳게 했어. (뭔가 생각.. 그 위로..)
영출 : (E) 내가 힌트 하나 줄까?
- 인서트 (회상)
영출 : 요 근처에 쎄고 쎈 게 그거거덩? 그거만 잘 갖다 써 봐. 그럼 이 공사, 일주일 안에 끝낼 수 있으니까...
- 다시 현실
강모 : .. (눈빛 번뜩이며)
씬49. 태섭 집, 정연 방 (낮)
(자명종 소리가 요란하다. 예전에 맞춰 놓았던 자명종이다.
정연, 그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며 눈을 뜬다. 정연의 귀에 선명하게 들리는 자명종 소리...
정연, 손으로 자명종 시계를 눌러 소리를 끈다. 주변을 둘러보는데... 아무도 없는 빈 방...
정연, 일어서서 밖으로 나간다)
씬50. 동, 거실
(남숙과 정식이 단 둘이.. 남숙, 어디론가 전화중이고... 정식이 그 옆에서 과일을 먹으며..)
남숙 : (전화 중) 정연이 실어증이라니깐요. 언제 깨어날지 몰라요. (수화기 바꿔들고) 그러니까 박전무께서 이 사실을
주주들한테 알리라구요. 이번엔 회장님두 어쩔 수 없다니깐요. 아무튼 난 전무님만 믿어요? (수화기 내려놓는다)
(이때, 정연이 계단을 내려오다가...)
정식 : 뭐래, 엄마? 임시 주총 때, 주주들이 나 후계자로 밀어준데?
남숙 : 정식아.. 앞으로 너... 본격적으로 후계자 수업 받아.
정식 : 알았어. 엄마. (좋아서 껴안으며) 울 엄마 최고야..!
남숙 : 어이구, 내 새끼.. 드디어 니가 만보건설을 물려받게 되는구나..
정식 : 엄마... 내가 비밀 하나 알려줄까?
남숙 : 비밀? 무슨 비밀?
정식 : 사실은... 정연이 저렇게 된 거, 다 내 머리에서 나온 거야.
정연 : ..? (본다)
남숙 : 그게 무슨 말이야? 정연이 실어증 걸린 게 너 때문이라구?
정식 : 어... 강모, 삼청교육대 보낸 거.. 나하구 민우가 꾸민 짓이거든.
정연 : ..!! (놀란다)
남숙 : 진짜? 니들이 그걸 어떻게?
정식 : 민우 아버님한테 부탁했어. 강모 삼청 교육대 보내 달라구..
강모가 그냥 사고로 죽은 줄 알아? 민우 아버지가 사주해서 죽인 거야.
정연 : ... (멍해지고)
남숙 : 그러니까.. 강모를 너하고 민우 부탁으로 민우 아버지가 죽였단 말야?
(이때, 쿵 하는 소리... 남숙과 정식이 보면 정연이 쓰러져 있다)
남숙 : 어머, 쟤는 왜 또 저기 나와서 저래?
씬51. 공사장, 천막 안
(상사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고 있다. 교관이 옆에 있고...)
상사 : 틀렸어.. 이대로라면, 사단장님 순시 때까지 공사 못 끝내.
(이때, 바깥이 소란스럽다. 강모가 뛰어들고... 조교들이 뒤따라 들어서며..)
조교 : 너, 뭐야, 임마..!
강모 :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조교 : (몽둥이로 등짝을 내려친다) 이 자식이., 미쳤나..!!
강모 : (끄덕 않고) 저한테 공사 맡겨주십시오..!
조교 : (몽둥이를 치켜드는데)
상사 : ..! (손을 들고 저지한다) 너, 지금 뭐랬어?
강모 : 이 공사, 저한테 맡겨주면 기간 내에 끝낼 수 있습니다.
상사 : .. (본다) 이제 사일 남았어.
강모 : 이틀 안에 도로만 깔면 됩니다.
상사 : 마르는데 사오일이야.
강모 : 이틀 내로 말릴 수 있습니다.
상사 : 뭐?
강모 : 이틀이면... 충분합니다.
상사 : 못하면?
강모 : 해내면 어떡할 겁니까?
상사 : .. (본다)
강모 : 요구조건을 들어주십시오. 딱 두가집니다.
상사 : ... (보면)
강모 : .. (보는데, 눈빛)
씬52. 태섭 집, 정연 방
(정연이 잠들어 있다. 의사가 와 있고... 태섭과 남숙, 정식이 있다)
의사 : 아무래도 다시 입원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태섭 : 의식을 찾는데... 오래 걸릴 거란 말씀입니까?
의사 : 그럴 거 같습니다.
(의사, 나간다. 태섭과 정식도 따라 나가고... 남숙, 나가려다가 잠시 정연을 보다니 머리를 쓰다듬는다)
남숙 : (정연 귓전에, 낮고 차갑게) 정연아... 그냥... 이대로 영원히 잠들어 버려. 알겠니? 아주 영원히...
(남숙,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나간다.
잠시 후 눈을 뜨는 정연... 일어나더니 거울 앞에 앉는다. 빗질을 하기 시작하는 정연... 잠시 멈추고 거울속의 모습을 본다.
정연의 입술이 바르르 떨리기 시작하더니...)
정연 : (또렷한 음성으로) 복수할거야... 강모 죽인 사람들... 내 손으로... 처절하게 응징할거야...
(거울 속에 비친 정연의 모습... 강력하고 섬뜩하다. 그 모습에서 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