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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느티나무(1960) - 강신재 - |
[줄거리] |
나는 엄마와 시골 외할아버지 집에서 조용히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젊고 아름다운 엄마를 볼 때마다 나는 약간의 고통을 느꼈다. 그런데 무슈 리가 할아버지의 과수원으로 찾아와서 엄마를 데려갔다. 나도 재작년에 무슈 리를 따라 서울의 S촌에 있는 이 집으로 왔다. 도착한 날 나는 어머니로부터 이복 오빠인 현규를 소개 받았다. 여기에서의 생활에 행복해하는 어머니를 보고 나는 흡족했다. 일년 남짓 지내는 동안 나는 여러 모로 달라졌다. 지난 4월에는 E여고의 퀸에 당선되기도 했다. 현규에 대한 감정은 언제나 내 마음을 무겁게 하여 이곳에서의 삶에 뜻하지 않은 고통이 되었다. 너무 고통스러울 때면 나는 이곳에 오지 말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후회를 하기도 했다. 현규를 사랑하는 것에 죄의식을 느낄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엄마와 무슈 리를 배반하는 것은 네 사람 전부의 파멸을 의미했다. 때문에 파멸이라는 말의 캄캄하고 무서운 음향 때문에 나는 전율을 느꼈다. 무슈 리에게서 부친다움을 느끼고 있지만 그는 나의 혈족이 아니고 현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현규와 오누이라는 형식에 얽매여서는 안되고 그를 영원히 누구에게도 주고 싶지가 않았다.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냄새가 났다. 그가 학교에서 돌아와서 욕실로 뛰어가 물을 뒤집어 쓰고 나올 때면 나는 책상 앞에 돌아앉아 꼼짝하지 않고도 그가 가까이 오는 것을 알아 차릴 수 있었다. 나는 내 표정을 살피는 것도 같고 웃고 떠들라고 권하는 것도 같고 자신의 명랑한 기분을 나타내는 것도 같은 그의 눈동자를 슬픔과 괴로움과 지혜를 응집시켜 응시했다. 그는 언제나 냉장고 앞을 지나쳐 버리고는 내 방으로 와서 먹을 것을 달라고 했다. 그때마다 나는 아무런 스스럼도 불안정함도 없이 그의 누이동생이라는 나의 자연스런 위치로 돌아가야 함을 깨달았다. 그의 머리통은 아폴로의 그것처럼 조금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으로 좋은 모양을 하고 있다. 농담삼아 곱슬머리가 사납다는이야기를 하자 그는 진심으로 변명을 하려고 했다. 물리학이 전공인 그는 수재이고 운동에도 상당한 관심이 있어서 함께 종종 테니스를 치곤했다. 오누이와 동생이라는 말은 내게 혐오와 공포를 자아냈으며, 내가 느낀 즐거움과 기쁨은 그런 범주에서는 허용될 수 없는 것들이어서 괴로움을 느꼈다.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고 숲으로 들어갔다가 우연히 지수를 만났다. 지수는 나의 반응에 안심하고 정구게임 날짜를 알려주고는 돌아갔다. 집으로 들어가자 뜻밖에도 현규는 화를 내면서 내 뺨을 때리고 나가 버린다. 순간 창 밖으로 시선을 내던진 나는 현규가 지수와의 장면을 보고 화를 낸 것을 알고는 가슴이 터질 것같은 기쁨을 느꼈다. 그날 밤 나는 현규와 어두운 숲속에서 손을 잡고 그에게 안겨 버린다. 돌연 어머니가 미국에 갈 일이 생기자 현규와 단 둘이 지낼 일이 걱정이 된다. 숲속에 간 것 이상의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불안감을 느낀 나는 어느 날 서울을 떠나 할머니댁으로 간다. 다시는 그곳에 돌아가지 않으리라고 결심하고 젊은 느티나무의 그루 사이로 들장미의 훈향이 흩어지는 뒷산에 오른다. 그러던 어느 날 급한 산비탈을 올라오고 있는 현규를 발견한다. 현규는 지난번 숲속에서의 일은 진실이고 우리에게 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약속을 하고는, 현규는 산비탈을 내려간다. 나는 너무도 기뻐 젊은 느티나무를 껴안으면서 웃는다. 온 하늘로 퍼져가는 웃음을 안고 이제 그를 더 사랑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
[인물의 성격] |
나(숙희) → 18세의 청순하고 명랑한 여고생으로, 어머니의 재혼으로 이복 오빠인 현규를 사랑 하면서 괴로워하고 갈등을 일으키는 순정적인 인물. 사춘기 남녀의 사랑에 대한 열정과 근친 상간이라는 윤리적인 죄책감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킴. 그(현규) → 숙희의 이복 오빠로 숙희를 이성적으로 사랑하며 그 사랑의 갈등을 보다 냉정하고 지혜롭게 헤쳐 나가는 인물로, 동적인물에 속함. 어머니(숙희) → 전쟁으로 남편을 사별하고 숙희만 데리고 살다가, 결혼 전부터 혼담이 있었던 무슈 리 와 재혼을 하는 젊고 아름다우며 조용한 여인임. 므슈 리 → 사립대학의 경제학 교수로 호탕하고 관대한 성격을 지닌 인물로, 숙희의 어머니와 재혼하는 현규의 아버지. 지수 → 현규의 친구이며 장관의 아들, 숙희를 좋아하며 연애편지를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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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단계] |
발단 : '나'는 어머니의 재혼으로 인해 이복오빠인 현규를 만난다. 전개 : '나'는 현규를 이성으로 느끼며 사랑의 감정을 갖게 된다. 위기 : 현규 친구에게서 온 연애편지에 대해 현규가 질투하는 모습을 보인다. 절정 : 어머니의 미국 외유로 괴로운 마음으로 시골로 간 '나'에게 현규가 찾아온다.
결말 :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고 먼 훗날을 약속하며 각자 현재의 길을 가기로 약속한다. |
[이해와 감상] |
이 소설은 이복 오빠를 사랑하는 여고생 숙희가 부모의 부부라는 형식적 제약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받고 갈등을 겪다가 오빠의 탈형식적 행위로 인하여 사랑에 성공하는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작자는 윤리의식보다는 원시적인 인간의 생명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숙희는 사랑해서는 안 될 오빠를 안타깝게 대해야 하는 고통보다는 그에게서 언제나 비누냄새가 난다는 감각적 이미지의 제시를 통해 인물의 성격을 부각시키고 있다. 여류작가 특유의 신선한 감수성을 바탕으로 한 여주인공의 내면심리의 포착이 아주 섬세하다. "그에게서 언제나 비누냄새가 난다."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끝까지 비누냄새 같은 신선한 분위기를 보이면서, 슬픔과 고통마저도 아름다운 차원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즉 이 소설은 여고생이 지닌 애정의 순수한 감각만을 그리지 않고, 그 운명적 사랑을 극복하는 방식에서 승화된 인식을 보여준다. 숙희는 소녀적 사랑을 거치면서 어느덧 성숙한 사랑의 길로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이 소설은 성장소서로서의 일면을 강하게 풍긴다. 숙희의 성숙은 그야말로 '젊은 느티나무'의 단계로 이행한 것이다. 사랑을 이미지로만 받아들이던 풋풋함의 단계를 넘어 느티나무의 굳건한 줄기로 진중해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의 배경은 현실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현규 아버지의 모든 상황이 그렇고, 어머니와의 사이에서 느껴지는 로맨틱한 분위기도 그렇고, 현규나 지수 그리고 숙희까지도 그들의 생활 곳곳에서 귀족적이고 세련되고 이국적이고 감각적인 느낌을 주는 것이 그렇다. 그러한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선망의 시선을 토대로 한 것이라면 그 안에 웅크리고 있는 위장된 콤플렉스를 찾아내야 한다. <젊은 느티나무>는 감각적 분위기 속에 젊은이의 새로운 사랑 방식의 하나를 제시했고,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이 매우 세련되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소설적 상황의 설정은 아무래도 우리와 먼 세계의 그것이라는 이질감은 남는다. |
[핵심사항 정리] |
● 갈래 : 단편소설, 순수소설, 낭만소설, 성장소설 ● 배경 : 시간적 →현대(1960년대) 공간적 →서울 중심에서 떨어진 S촌과 느티나무가 있는 시골(중산층 가정)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표현상 특징 : 간결한 문장, 감각적 문체, 내적 독백 형식으로 주인공의 내면 심리가 표출 ● 갈등구조 : 개인의 욕망과 사회적 제약 사이의 갈등(외재적 갈등) ● 주제 ⇒ 재혼한 부부의 이복 남매간의 순정과 갈등(첫사랑의 열정과 순수) ● 출전 : 「사상계」(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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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볼 문제] |
1. '젊은 느티나무'의 상징적 의미는 무엇인가? ※ 마지막 부분에서 숙희가 오빠 대신에 느티나무를 껴안고서 새로운 삶의 활력을 찾게 되는데, 그것은 오빠와의 정상적인 가족관계를 유지하면서, 가슴속에서는 오빠와의 지속적인 사랑을 유지하기로 맹서함으로써 얻어진 삶의 활력이 아니었을까?
2. 숙희의 현규에 대한 감정의 추이를 말해보자.
3. 이 작품의 공간적 배경은 두 곳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각각 무엇인지 말해 보자. → 이 작품에는 두 곳의 대립된 공간 배경이 나온다. 서울 S촌과 시골 할머니 댁이 그것인데, 서울 S촌은 사랑과 갈등의 공간이고, 시골 할머니댁은 갈등으로부터의 도피의 공간이자, 화해와 희망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4. 현규에게서 비누 냄새를 맡을 때마다 숙희는 '가장 슬프고 괴로운 시간이 다가옴'을, '가슴속으로 저릿한 것이 퍼져 나감'을 느낀다. 그렇다면 비누 냄새가 숙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지 설명해 보자. → '그에게서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는 서두는 숙희의 민감한 감수성을 잘 보여준다. 현규가 발산하는 이 비누 냄새는 실제로 맡을 수 있는 것임과 아울러 숙희의 가슴속에서만 느껴지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상대방과 결합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사랑이라기보다는 실체 없는 사랑이라는 아련한 아픔을 부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