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이 상실한 것 / 탄하(呑河) 스님
부처님이 성도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우루벨라 지방으로 전도를 나선 부처님은
어느 날 숲속에서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그 때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무엇 때문인지 당황해하면서 숲속으로 들어왔다.
그중 한 젊은이가 부처님께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이쪽으로 도망치는 여자를 보지 못했습니까?"
부처님은 대답대신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고 반문했다.
그들의 대답은 이러했다.
그들은 근처의 양가집 자제들로서
각자 부인을 데리고 들놀이 나온 젊은이들이었다.
그 중 아직 결혼하지 않은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유녀(遊女)를 데리고 놀이에 왔다.
젊은이들이 한참 신나게 놀이에 열중하는 틈을 이용,
유녀(遊女)는 재물을 훔쳐 달아났다.
젊은이들은 도망친 유녀(遊女)를 찾아 나선 것이었다.
사정을 들은 부처님은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도망친 여자를 찾는 일과 자기 자신을 찾는 일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
이 질문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찔렀다.
자기를 잊고 놀이에만 열중했고,
자기를 잊고 여자와 재물만을 찾던 그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야 물론 자기를 찾는 일이겠지요"
젊은이 가운데 한사람이 대답했다.
"그러면 내가 너희들에게 잃어버린 자기를 찾는 방법을 가르쳐주리라"
부처님은 그들을 앉혀놓고 인생을 바르게 보는 법과
올바르게 사는 방법에 대해 알아듣기 쉽게 설법을 시작했다.
현대인은 어렸을 때부터 신문이나 TV의 광고를 보면서
끊임없이 재물을 모으고 그것을 소비하는 즐거움에 길들여져 있다.
어떻게 하면 남보다 많이 모아서 쾌락에 소비할 수 있는가를
몸에 익히고 시시각각으로 유동하는 생산과 소비의
사이클 밖으로 낙오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를 배우면서 자란다.
그러다보면 현대인은 어느 틈엔가
자기의 생각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몇몇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그릇된 생각에 따르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이 된다.
이런 현상은 어느 한사람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주위사람에게 다 적용된다.
너나 할 것 없이 '세상 사람이 다 그러하듯이'
행동하는 사회상이 정착되는 것이다.
현대인에게 있어서는 다른 사람처럼 처신하지 않고
특별나게 처신한다는 것이 지극히 위태롭고
창피스럽기까지 한 일로 간주되고 있다.
모두가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니는데
나 혼자만 롱스커트를 입고 다닐 수는 없다.
현대의 평균인(平均人)에게는
다른 사람이 미니스커트를 입으면 나도 그것을 따라가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된다.
유행만이 아니다. 살아가는 방법이 다 그러하다.
모두가 남을 속이고 권모술수로 살아가는데,
나만 도덕군자연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것이다.
남이 훔치면 나도 훔치고, 남이 속이면 나도 속이고..
하여튼 무엇이라도 남과 특별나지 않게 사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처세술의 비결이다.
현대는 이렇게 맹목적인 소비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끊임없는 투쟁,
그리고 거기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구조로 획일화되어 있다.
현대인은 획일화된 구조의 구성단위로서만 존재해야 하며,
그 날 그 날을 규격화된 삶을 살지 않고서는
한시도 존재가 불가능한 객체로 전락하고 말았다.
모든 '인간다움'은
현대라는 생존조건에서는 불필요한 장식물에 불과하다.
아직도 인간다움이란 말이 남아있다면
그것은 사어사전(死語辭典)속에나 있을 뿐이다.
현대인이 주체적 자기 삶을 살고 있지 못하는 것은
따지고 보면 찾아야 할 인간본래의 모습을 제쳐놓고
그릇된 가치관에 얽매어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인간상실이라는 참담한 용어는
인간다움을 상실한 채 목적도 정처도 없이 방황하는
현대적 상황을 규정짓는 말이다.
도대체 현대인은 언제까지나 오도된 대중문화의 세뇌를 받으며
매일 매일을 의롭지 못하고 거짓투성이인 삶을 살아야 하는가.
인간다움을 잊어버리고 그것을 찾으려 기는커녕
오히려 맹목적 소비욕구의 충족을 위해
비인간의 길을 내닫고 있는 현대인들의 삶이야말로
달아난 유녀(遊女)를 좇는 불전 속의 젊은이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인간이 인간다움을 상실했을 때 오는 것은 분명하다.
온갖 죄악과 파렴치, 무기력과 몰가치(沒價値) 그리고 파멸이다.
인간본래의 모습인 아름답고 청정하고 진실하고 선한 얼굴은
다시 회복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의 창의와 자존심, 개성과 자유가 보장될 리도 없다.
인간본성의 회복.....
그것은 실로 현대가 안고 있는 지상의 과제다.
현대의 모든 문제는 이 과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어떤 실마리도 찾을 수 없다.
이제 현대인은 대량생산과 소비, 물량의 확대, 경제 발전도 좋지만
그것이 결과하는 '상실'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잃어버린 인간의 얼굴은 어떤 것인가.
지금 우리 들이 찾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거짓을 찾는 것과 진실을 찾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2천 5백 년 전 부처님이 도망친 유녀(遊女)를 찾는
젊은이들을 향해 던졌던 질문은 현대인에게도 유효하다.
[설법]에서
출처 : 염화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