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자의 새벽은 짙은 안개로 열리기 시작한다. 아스라이 보이는 토라자의 전통가옥 지붕들은 천상 위에 떠있는 배들처럼 그 안개 속에서 신비스런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하고, 일찌감치 목청을 돋우었던 수탉들도 하루를 여는데 한 몫 했다는 듯 당당한 모습으로 식구들을 불러 아침 모이 산책을 나선다. 이 지역은 평균 고도가 800미터로서 아침저녁으로 무척이나 선선하고 쾌적한 기후를 지니고 있는 곳으로, 새벽에는 늘 이렇게 짙은 안개가 낌으로서 분위기를 더욱 신비스럽게 한다.
오늘부터 장례식이 거행될 예정인 마을을 엊저녁 이미 수배해 놓았던 터라 일행은 느긋한 마음으로 이곳 토라자의 묘지형태를 하나씩 관찰해 나아가기로 했다. 아침식사 후 먼저 찾은 곳은 절벽묘지의 전형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는 '레모'라는 마을로 이곳에는 깎아지른 절벽 중간부분에 굴을 파고 그 안에 관을 안치하고는 그 앞에 발코니를 만들고 생전의 고인의 모습대로 만든 목각인형을 세워놓은 곳으로, 절벽묘지는 전면이 동쪽을 향하고 있었다. 목각인형은 '타우타우'(tau-tau)라고 하며 생전의 고인의 모습과 최대한 같도록 조각되어지는데, 이곳에서는 노렝(80세)이라는 노인이 타우타우 전문 조각가로서 55년간 이 업을 해오고 있다. 이 노인은 토라자에서는 인간문화재로 등록되어 자신의 일에 무척이나 긍지를 지니고있는데, 인형의 머리털을 모두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사용하고 있는 재미있는 노인이다.
'랑다'라는 마을의 장례식장에 들어서자, 상주를 비롯한 고인의 가족과 가까운 친치들이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토라자의 장례식은 집안의 형편에 따라 대개 4일간에서 7일간 거행되는데, 첫날과 두 번째 날이 가장 중요한 날로서 첫날은 '마빠상글로', 이른바 '손님을 영접하는 날'이고 둘째 날은 '루따운 꾸무'로서 '제물을 바치는 날'이라는 의미를 지니며 말하자면 물소를 잡는 날이다. 첫날에는 조문객을 영접하는 날로서 장례식장을 찾아오는 손님들은 모두 검정색 옷을 입고, 여자인 경우 머리는 넓은 삿갓을 쓰게된다. 장례식장은 마을 단위로 하나씩 갖추고있으며 마을의 형편에 따라 그 규모가 정해진다. 모든 장례식은 이 장례식장에서 거행되며, 자신의 집에서 행해지는 경우는 없다. 첫날 장례식장에 도착한 조문객들은 그룹단위로 일렬로 줄을 서서 먼저 하객을 영접하는 방으로 안내된다. 우리 일행도 제법 커다란 돼지 한 마리와 술 한통, 그리고 담배와 차를 준비하여 부조를 하였으므로 이날 아침 상주들로부터 극진한 영접을 받게 되었다. 남자와 여자는 각기 다른 방으로 안내되며, 남자에게는 담배를, 그리고 여자에게는 비틀넛(씹는 열매로 약간의 환각작용이 있음)을 권한다음 이내 차와 다과를 권한다. 담배와 비틀넛을 권하는 상주들에게 조의를 표하고는 다른 그룹을 위해 영접실을 비켜주는 것으로 인사를 마친다.
조문객들은 대부분 돼지와 술, 담배를 가져오지만 고인의 자녀나 가까운 가족들은 물소 한 두 마리 정도는 가져와야 한다. 특히 고인의 자녀들은 '의무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물소를 한 마리 이상씩 마련해야 한다. 토라자인들의 장례식에 있어 물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장례를 마친 고인의 영혼이 저 세상으로 갈 때, 물소는 고인이 타고 갈 교통수단이 될 뿐 아니라, 고인의 안락한 생활을 보장해 줄 중요한 재산이 되기 때문이다. 물소를 많이 잡으면 잡을수록 내세에서 풍요로운 생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믿는 토라자인에게 자녀들이 물소를 고인에게 바치는 것은 효도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되는 것이다. 또한 이날은 장례식에 초대를 받은 하객들이 생전에 고인이나 그 가족에게 진 빚을 모두 청산하는 중요한 날이 되기도 한다. 토라자인들은 가족과 가문의 결속을 최우선으로 여기기 때문에 장례식에 참석을 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찾은 장례식은 90세가 된 노파의 장례식으로, 작년 9월에 작고하였다고 한다. 토라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대개 2-3년씩 시신을 집에 안치해 놓는데, 장례식에 쓸 비용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주된 이유이고, 고인이 좀더 생전의 가족들과 같이 지내는 시간을 갖도록 하는 것이 그 두 번째 이유라고 한다. 죽은지 1년도 안돼 장례를 치르게 되는 이 노파의 집은 이러한 면에서 보면 상당히 부유한 집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토라자에는 세 가지 종류의 물소가 있는데, 검은색 물소와 얼룩물소, 그리고 흰
물소가 그것이다.
검은색물소는 동남아의 다른 지역에서도 쉽게 눈에 띄는 종류이고 나머지 두 종류는 토라자 이외의 지역에서는 보기 여려우며, 검은색은 우리돈으로 250만원정도, 얼룩물소는 4백 만원을 호가할 정도로 물소의 가격은 비싼 편이다. 더욱이 이곳에서는 논밭에서 일하는데 물소를 별로 부리지 않아, '노예로 태어나느니 물소로 태어나는게 낫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실제로 토라자에는 아직도 3개의 카스트가 존재하는데 귀족과 평민, 그리고 노예가 그것이다. 물론 현재는 귀족계급이라고 모두 잘사는 것이 아니며 노예계급이라고 다 못사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계급사회는 과거 우리의 그것처럼 그 본질이 사라지는 추세에 있으며, 예전처럼 그 특성이 일상생활에 반영되는 것은 극히 적은 편이라고 한다.
영접의 절차를 마친 일행은 다른 일정을 진행하기 위해 식장을 나섰다. 우리가 나올 무렵에는 식장은 발디딜틈이 없을 정도로 조문객들이 모여들고 있었고, 이들이 타고 오는 트럭에는 예외 없이 돼지와 술통이 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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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다'라는 묘지는 빼곡한 숲 속에 있는 석회석 절벽 밑에 있었다. 이곳은 아침에 보았던 레모와는 또 다른 형태의 묘지로서 레모에서 처럼 굴을 인공으로 뚫어 그 안에 관을 한 개씩 안치하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자연 동굴 속에 관을 직접 안치하는 형태의 공동묘지이다. 굴속에는 여러 개의 관이 구석마다 안치가 되어있는데, 새것과 오래된 것이 거의 나란히 놓여있기도 하고, 어떤 것은 거의 삭아서 유골과 일부 섬유만이 썩은 나무 틈 사이로 보이기도 했다. 이미 오래된 것은 유골만이 남아 이것들을 바위의 틈에 꽂아 놓아두기도 했다. 랜턴이나 횃불이 필요할 정도로 동굴 안은 깜깜하고 무더우며 좀 으스스하기까지 했다. 이 동굴 안에는 해골 두 개가 나란히 안치된 것이 보였는데, 옛날 신분이 다른 두 남녀가 서로 사랑하다가 양가의 반대로 결혼을 이룰 수 없게 되자 결국 목을 매어 동반자살을 하게 되었고, 후에 두 사람의 영혼이 저승에서나마 결합할 수 있도록 함께 매장하게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으로 토라자판 '로미오와 줄리엣'이 되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동굴 밖 입구에는 배나 돼지, 그리고 물소모양의 나무관들이 절벽 위에 매달려 있는 것이 보이고 그 옆에는 크고 작은 여러 개의 타우타우가 발코니에 서서 방문객들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타우타우들은 하나같이 양손을 앞으로 내밀고있는데 왼손은 풍요하기를 기원하는 포즈이고 오른손은 '내가 너희를 저승에서 보호하겠다'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또한 아득히 높은 절벽의 동굴에 관이 하나 안치된 것을 볼 수 있었는데, 토라자인들은 시신을 입관할 때 고인이 사용하던 물건들 중 값나가는 것들도 부장품으로 같이 넣어둔다고 한다. 언젠가부터는 이웃한 다른 민족들이 도굴을 하는 바람에 많은 부장품들이 도난을 당하게되어 오늘날에는 제법 부유한 가족이 장례식을 하고 난 후에는 여간해서는 닿기 어려운 높은 절벽에 굴을 파서 안치하는 관습이 생겼다고 한다.
카라식(Karassik)이라는 마을에서는 씸부앙(선사시대의 거석으로 영어로는 megalith라고 한다)이라 불리는 여러 개의 거석(巨石)들이 놓여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이러한 형태는 목각인형인 타우타우 이전의 세대에 있었던 관습으로서, 고인들 중에서 업적을 남겼거나 후손들에게 추앙을 받던 사람들을 기념하여 먼 곳으로부터 노예를 시켜 가져다 세워놓은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거석문화는 슬라웨시 섬 중부와 남부에서 발견되는 초기 정착민들의 문화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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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제물을 바치는 날', 즉 물소를 잡는 날 아침을 맞아 일행은 서둘러 다시 랑다마을의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토라자 장례식의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참혹한 의식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식장에는 마을 촌장으로부터 길고 지루한 연설이 이어지고, 마을과 가족의 원로들이 둘러앉아 누구의 소부터 잡을 것인가를 놓고 의견이 오가고 있었다. 이날 아침 물소는 모두 12마리 가량이 모여있었는데, 누가 가져온 소부터 제물로 바칠 것인가 하는것 또한 매우 중요하며 민감한 문제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장자가 가져온 소부터 잡는 것이 관례이지만, 실제로는 자녀 중에 누가 가장 고인에게 효도를 하거나 가정에 기여를 했는가에 따라 그 순서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물소를 잡는 순서에 대한 논의는 경우에 따라서는 한나절을 소비하기도 한다. 모두에게 불만이 없는 상태에서 의식이 치루어 져야만 고인이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아무리 논의가 길어지더라도 불평하지 않는다. 하객들도 인내심을 갖고 그저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이윽고 결정이 끝나고 그 결정에 대하여 이의가 없음을 조문객들 앞에서 확인 하는 절차가 끝나자, 물소들이 모두 제물이 될 장소에 에 집결되어 선을 보인 후 정해진 순서에 따라 한 마리씩 제물을 위한 의식이 진행되었다.
의식은 전문가들에 의해 진행되는데, 먼저 소의 다리를 단단히 박은 말뚝에 묶고는 소의 고삐를 가까이 잡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정시킨다. 적당히 때가 무르익자 뒤쪽 허리춤에서 커다란 칼을 꺼내어서는 소의 목 밑 부분을 슥-하고 스치는 듯 하더니, 소는 붉은 피를 분수처럼 뿜으며 외마디 소리도 못 지르고 몇 걸음 발버둥치다가 앞으로 퍽 고꾸라진다. 그 광경은 차마 눈뜨고 보기가 어려운 참혹한 광경이었다. 말뚝에 다리가 묶여있어 몸부림을 쳐도 멀리 갈 수가 없다. 목에서는 선혈이 계속 뿜어져 나오고 천성이 순한 소는 소리한번 지르지 못한 채 버둥거리다 쓰러진다. 한 마리가 쓰러지면 또 한 마리가 희생되고, 이 의식은 10마리가 희생된 후에야 막을 내렸다. 외지인들은 이 광경을 끔찍하게 여기지만 마을 사람들은 여자고 남자고 애 어른 할 것 없이 소가 쓰러질 때마다 환호한다. 차라리 장례식이라기보다 도살장이라는 표현이 더 옳을지 모르겠다. 순간 장례식장의 한 가운데는 소가 뿜어낸 선혈과 피비린내로 온통 얼룩지게 되었다. 물소의 목을 따는 백정들은 기술
이 좋은 전문가라야만 한다. 단 한방에 소가 거꾸러지도록 해야만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잡은 소의 맛있는 부위를 선물로 얻게 된다. 한번 그 실력을 인정받은 백정은 다른 장례식장에도 정중히 초대받기도 한다. 반대로 한방에 소를 쓰러뜨리지 못하면 시쳇말로 '쪽'팔리게 되어 사람들로부터 오랫동안 빈축을 사게되는 수모를 겪게된다. 과거에는 비싼 얼룩물소들을 많이 제물로 사용하였으나 오늘날에는 이들의 값이 워낙 비싼데다, 숫자도 많지 않아 일반적인 물소로 대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한다. 물론 지금도 아주 부잣집의 장례식에는 드물게 얼룩물소를 잡기도 한다.
구전에 의하면 옛날 토라자의 어느 왕이 우기 철에 물을 건너게 되었다. 마침 폭우로 물이 갑자기 불어난 강을 건너기 위해 물소들을 대령했지만 어떤 놈도 거센 물살에 왕을 싣고 건너려하지 않았다. 이 때 어디선가 갑자기 흰 물소가 나타나 왕을 싣고는 거뜬히 물을 건너는 것이 아닌가. 이에 감탄한 왕은 그 때부터 백성들에게 흰 물소는 나의 형제이니 앞으로는 장례식에 절대 흰 물소를 제물로 쓰지말라고 명을 내리고 그 때부터는 흰 물소는 영물이라 하여 장례식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흰 물소는 현재 극소수의 토라자 마을에서 상징적으로 키우고 있어 매우 드물게 눈에 띈다.
토라자인들은 오늘, 바로 두 번째 날을 정점으로 고인의 영혼이 저 세상으로 떠난다고 믿는다. 따라서 오늘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이들은 장례식을 치르기 전까지는 입관되어진 상태로 집안에 안치되는데, 이렇게 안치되는 동안은 주검이 아닌 환자로 여겨진다. 죽은 사람이 아닌 단지 환자로 여김으로서 집안에 있는 동안은 매일 아침 물과 음식이 놓여진다. 이들의 집은 전면이 북쪽을 향하도록 지어져있고, 입관이 되면 머리가 북쪽을 향하도록 놓여진다. 과거에는 이렇게 오랜 기간 시신을 안치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토라자는 특히 대나무가 잘 자라고 많은 대나무들을 어느 곳에서나 쉽사리 볼 수 있는데, 이들은 이 대나무를 이용하여 시신으로부터 물기를 빼 내고 시신을 보존하였다. 지금은 포르말린과 같은 방부제를 이용하여 시신을 보존한다.
토라자인들의 가옥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특이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똥꼬난'이라 불리는 이 전통가옥은 지붕이 마치 배 모양으로 되어있다. 높은 각주 위에 집을 짓고 그 위에 배를 얹어 놓은 것과 같은 이러한 형태의 가옥들은 토라자 이외의 지역에서는 볼 수 없다. 가옥의 형태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문양과 색상들도 매우 특이하다. 기조를 이루고있는 4개의 색상과 원과 선 그리고 기하학적인 문양들은 제각기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흰색은 뼈를 상징함으로써 곧 인생을 의미하게 되고, 검정 색은 어두움, 곧 죽음을 나타낸다. 붉은 색은 피를 나타내는 것으로 혈통과 계급을 상징하며 황색은 태양과 벼를 상징함으로써 권력과 부를 의미하기도 한다. 똥꼬난의 전면을 장식하는 조각물들도 제각기 나타내고자 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는데, 제일 위에 잇는 수탉은 인간의 규범과 법을, 그리고 그 밑의 태양은 신의 섭리와 이법을 나타낸다. 검(劍)은 신분이 귀족이었음을 뜻하고 용머리는 '카틱'이라 불리며 신을 상징한다. 물소의 머리는 혈통과 리더쉽을 상징하는데, 이렇게 장식되어 있는 물소는 모두 얼룩물소라는 사실이 재미있다. 이 똥꼬난은 토라자인들의 조상이 이주 초기에 배를 타고 사당강을 거슬러 이곳으로 와 정착했다는 설화에서 그 유래를 엿볼 수 있다. 지붕의 모양이 배의 모양과 흡사한 것은 바로 조상들이 자신들이 배를 타고 이곳으로 왔다는 것을 나타내기 지어진 것을 전통으로 이어받아 오늘날에도 전통가옥으로 짓고 있다. 과거에는 지붕의 재료로 나무껍질과 야자수 잎을 사용했지만 오늘날에는 편리성과 경제성을 이유로 양철지붕을 한다는 것이 못내 섭섭하게 여겨지기는 하지만...
오후에 방문한 께떼께수라는 마을은 매우 깨끗하게 정돈된 전통마을이었다. 특히 마을 가운데 있는 똥꼬난의 전면에는 많은 물소의 뿔이 쌓여있었다. 장례식이 끝나면 이렇게 물소의 뿔들을 집 앞의 기둥에 차곡차곡 쌓아 놓는데, 이것은 자기 집안의 부와 명예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뿔의 숫자와 부나 명예가 비례한다는 척도를 보여주는 셈이 된다. 마을의 뒤쪽에는 지금까지 보아왔던 레모나 론다와는 또 다른 형태의 묘지가 눈에 띄였다. 이른바 매달린 묘지라는 의미를 가진 곳으로 이곳에는 많은 관들이 절벽에 수평으로 박아 넣은 나무 비임 위에 얹혀 있었고, 대부분은 오랜 풍파에 삭아 부서지고 떨어져서 유골들이 서로 섞여 있기도 했다. 이곳에도 배 모양의 관과 물소모양, 그리고 돼지모양의 관들이 있었는데, 그 형태는 사후 고인이 저 세상으로 타고 갈 교통편을 나타내는 것으로써 신분과도 밀
접한 관계가 있다. 즉 배모양의 관은 신분이 가장 높은 집안을 나타내는 것이고 다음이 물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돼지 모양의 관은 노예신분을 나타내는 것으로, 과거에는 신분에 따라 철저하게 장례식이 구별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놀랍게도 토라자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높은 비율의 기독교 지역이다. 인도네시아 인구의 90퍼센트가 회교도임을 감안하면 전체인구의 85퍼센트가 기독교도인 토라자는 일반적인 추세와 극적으로 대비되는 독특한 지역이다. 더욱 신기한 것은 이들이 이런 서양의 종교적 특성을 지니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장례식만큼은 철저하게 미신적 요소가 전부라 할 수 있는 옛날의 전통을 그대로 따른다는 점이다. 많은 제물을 바침으로서 고인의 영혼이 보다 풍요로운 새 생활을 누리게된다고 믿는 토라자인의 장례식은 슬픔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의 시작점으로서 축복 받아야 마땅한 고산지대 특유의 사고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같은 슬라웨시의 섬 내에서도 다른 저지대 사람들이 결혼식을 성대하게 치르는 반면 이곳 고지대의 토라자인들은 장례식을 최대한 성대하게 치름으로써 내세에 대한 기대와 행복감을 표출하려는 것의 차이가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확실히 토라자 사람들은 장례식뿐 아니라 그들의 전통의상과 말씨 등 관습이 여느 인도네시아 사람들과는 차이가 느껴진다. 이들이 사용하는 문양과 색채도 아시아의 특정 소수민족들과도 닮은 데가 있으며, 더러는 아메리카 인디언들과도 공통점이 발견된다. 토라자는 비교적 풍요롭게 사는 민족으로서 시대가 변하면서 이제는 일반 농작물뿐 아니라 커피와 같은 특용작물을 재배하여 수출하는데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토라자의 커피는 아주 독특한 향과 맛을 지닌 아라비카 커피로, 자국뿐 아니라 해외에도 널리 알려진 고급 커피인데, 우리 입에는 그다지 잘 맞는 것 같지 않았다. 불과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비포장에 좁은 찻길이었던 것이 지금은 신작로로 변해버리고, 풀잎을 이고 있던 전통가옥들도 양철들로 바뀌면서 흉물스럽게 변해가고 있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옛 전통과 풍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우리에게 특이한 볼거리를 선사해준다는 것이 마냥 고맙고 즐겁게 느껴진다. 변해 가는 옛 전통을 우리로서는 막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리고 언젠가는 이러한 무형의 문화재(?)들이 모두 사라져 버리겠지만 아직까지는 생생한 다큐멘타리의 세계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일정 마지막 날 전통마을 뜰에서 펼쳐진 소규모의 토라자 전통 무용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화려한 의상과 장신구들도 의외였지만 커다란 대나무로 만든 악기들과 조화를이루며 경쾌하게 이어져나가는 가락과 춤은 인도네시아의 다른지역의 그것에 비해 독창적일 뿐 아니라 전통적이어서 무척이나 흥미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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