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에 속해 살지 않는 사람들, 세상 안에 살지만 세상이 강요하는 가치들을 넉넉하게 상대화시킬 수 있는 사람들, 절망적 상황에서도 소망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삶의 윤리적 가치들을 매일 하늘에서 공수받아 사는 사람들, 공중을 지배하는 영들에 굴복하지 않는 강인함으로 무장한 사람들, 우주적 GPS를 장착하고 광야 길을 묵묵히 걷는 사람들, 사회적 소외를 당하면서도 “왕은 원래 따로 노는 법”(왕따)이라며 의연하게 대처하는 사람들, 하늘의 유일한 주군(主君)에게 충성을 다하며 “왕을 따르는 사람들”(왕따), 세상의 문법과 어법이 아주 낯설어 버벅거리는 별난 사람들, 사회적 약자들을 보듬어 안는 사람들, 다리에 힘이 풀려 걷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어깨를 내어주는 사람들, 지친 작은 자에게 물 한 모금, 배고픈 아이에게 국밥 한 그릇을 주는 이들. 우리는 이런 이들을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 부릅니다.
영국 청교도 문학가 존 버니언(1628-1688)의 명작 “천로역정” 중 주인공 “크리스천”(christian)이 천성을 향한 순례 여정에 길벗이 된 “믿음” 씨(The Faithful)와 어느 날 “허영 장터”(Vanity Fair)에 이르게 됩니다. 이 순간부터 벌어지는 광경을 버니언은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이들이 시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곳의 모든 사람이 동요했고 온 성읍이 이들 두 사람 이야기로 왁자지껄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순례자들이 입고 있는 옷은 그 시장에서 판매되는 의류와는 아주 다른 옷이었다. 그래서 시장 사람들은 두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어떤 이는 두 사람을 가리켜 바보라고 했고 어떤 이는 미치광이라고 했고 또 어떤 이는 외국인이라고 했다(고전 2:7~8).
둘째, 시장 사람들은 두 사람의 옷차림도 이상하게 여겼지만, 이들이 쓰는 말 또한 기이하게 생각했다. 두 사람이 하는 말을 알아듣는 이가 거의 없었다. 두 사람은 당연히 가나안어를 썼지만, 시장 사람들은 이 세상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시장 이쪽 끝에서부터 저쪽 끝까지 이들은 서로에게 야만인으로 보였다.
셋째, 상인들이 순례자들을 별로 탐탁히 여기지 않은 것은, 이 두 사람이 시장의 상품을 매우 하찮게 여겼기 때문이다. 이들은 시장 물건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서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물건을 사라고 부르면 이들은 손가락으로 귀를 틀어막고 달아났다. 이들은 ‘내 눈을 돌이켜 허탄(虛誕)한 것, 미덥지 않은 것을 보지 말게 하소서’(시 119:37)라고 하며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는데, 이는 자신들이 사고팔 것은 하늘에 있다는 신호였다(빌 3:19~20)”
천성을 향해 길을 떠난 순례자들(pilgrim)의 삶,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christian)의 삶의 단면입니다.
첫댓글 그리스도인~~~
참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게 쉽지 않아요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