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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4(한국사료총서 번역서4) > 1902년(광무 6년, 임인년) > 4월 > 6일(음력 2월 28일)《일요일》 흐림.
6일(음력 2월 28일)《일요일》 흐림.
이달 2일부터 어제 오후까지 원산에 북서쪽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과 흙먼지 폭풍이 도래했다. 원산 토착민들이 말하기를 이번 폭풍우는 12년 전에 도래했던 폭풍우 이래로 가장 강력한 것이라고 한다. 폭풍우가 최악에 달했을 때 두터운 뿌연 먼지가 빠른 속도로 바다를 향해 함흥 길 계곡 위를 떼 지어 굴러다녔다. 몇 세기 동안 폭풍우에 맞서 견뎌온 키 큰 소나무가 부러지기도 했다. 많은 가옥의 초가지붕이 두루마리 종이처럼 벗겨졌다. 바람은 원산이 갖고 있는 불쾌한 특징 중 하나이다. 십일이면 구일은 바람이 불고, 4계절 중 3계절에 눈이 내린다(十日分排九日風 四時統計三時雪) 원래 조선의 최북단 지역 기후를 묘사하는 이 말은 바람에 관한 한 원산에도 들어맞는다.
이번 달은 나쁘게 시작되었다. 4월 1일 밤 조선인 마을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가옥 네 채를 태우고 많은 이들에게 부상을 입혔다. 조선인은 이웃집이 불타거나 도둑이 들었을 때 자신이 갖고 있는 천성이나 자신이 받은 교육의 가장 추악한 면을 드러낸다. 어느 경우에든 도움을 주지 않는 것이다. 조선인은 무관심으로 방관하거나 슬금슬금 물러나서 숨어버린다. 나는 조선인을 몇 명 소집하여 일본인 소방대가 현장에 가져온 펌프로 일하게 만드느라 엄청나게 힘들었다. 조선인에게는 자신의 직접적인 이익과 관계가 없으면 무엇이든 관심 밖의 일이 된다. 조선인은 자신의 집만 안전하다면 누구의 집이 불타고, 도둑맞든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 유교는 언제나 이타주의를 경멸한다. 따라서 유교의 물질만능주의가 집안의 사면 벽으로 인간으로서의 모든 의무를 한정짓는 조선이나 중국, 그 밖의 나라에서 공공심은 거의 미지의 것이 된다. 그 벽 너머로는 인간으로서의 의무가 중단된다. 조선의 관료들이 자신의 더러운 자아를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서 자국의 가장 귀중한 이익을 팔아넘기는 것을 무심하게 지켜본다.
오후 5시 30분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몇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비 덕분에 먼지가 가라앉고, 바람이 잦아들었으며, 어린 나무와 싹트기 시작한 꽃에 영양분이 공급되었다.
4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4(한국사료총서 번역서4) > 1897년(개국 506년, 광무 1년, 정유년) > 1월 > 25일《월요일》 추움.
25일《월요일》 추움.
상당히 순탄한 항해가 끝나고 오후 3시에 지푸(Chefoo)에 도착했다. 지푸에는 볼거리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지푸 주민들은 남쪽의 주민보다 더 가난한 것 같았다. 조랑말 두 마리가 끄는 가마가 신기했다.
이학균 씨가 해 준 이야기에 따르면, 몇 년 전에 조선의 왕이 은신처로 쓰려고 상하이에 집을 샀다고 한다. 이보다 더 왕답지 못하고 왕비답지 못한 일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왕과 왕비는 백성들에 대한 사랑으로 왕권을 확립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스스로 자초한 위험을 피할 안전한 장소를 찾겠다는 기대를 품고 은신처를 준비하는 데 부당하게 번 돈을 썼다. 왕비처럼 영리한 여성이 이기심 때문에 그렇게 눈이 멀 수 있다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지푸에서는 노래하는 소녀들이 아기 옷을 입고 쿨리 뒤를 따라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국역 梅泉野錄 > 『梅泉野錄』 제6권 > 隆熙 2년 戊申(1908년) ④ > 22. 一進會員의 露日戰 참여
22. 一進會員의 露日戰 참여
露日戰爭 때 일진회는 그 전쟁에 참여하여 사망자가 수천 명을 헤아렸다.
국역 梅泉野錄 > 『梅泉野錄』 제4권 > 光武 8년 甲辰(1904년) ① > 9. 平南隊의 러시아군 격퇴와 러시아군의 행태
9. 平南隊의 러시아군 격퇴와 러시아군의 행태
平南隊의 병사들이 박천에서 러시아병과 대치하여 35명을 살해하였다.
이때 압록강 서쪽 지방에 있던 러시아군은 여러 부대를 교대로 보내어 일본군을 유인하고, 또 奇兵을 보내어 두만강 이남쪽을 건너왔다. 그들은 淸匪을 쫓아내기 위한 선봉부대로 西北의 여러 군에 침입해 들어온 곳인데 감히 그들의 예봉을 꺾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 평남을 순찰하던 哨軍이 박천 평야에서 그들과 마주쳐 그들을 회피할 길이 없으므로 사력을 다하여 싸웠다. 이때 피난하던 남녀들은 고함을 지르며 그들을 후원하여 러시아병들은 패주하고 말았다. 관군은 하나도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 다음날 일병들은 그곳 전투지역을 와서 보고 으쓱거리며 “한국인도 적을 살해한다”고 하면서 그 승전병에게 후한 犒饋를 하고 갔다.
러시아 서북부에 코사크란 지역이 있다. 그 나라 사람들은 매우 용맹스럽고 사나워 유럽사람들이 두려워하였다. 이때 우리 나라 사람들 사이에는 “코사크의 병사들은 꼬리가 붙어 있어 아직 미개한 인종으로 사람을 먹고산다”고 잘못 알려져 있었다. 그들은 우리 국경을 침범하여 무차별로 유린하면서 남쪽 지방을 내려오고 있었다.
이때 어떤 安州 사람은 암말을 묶어 놓고 발굽을 파고 있다가 러시아의 유격대를 만나 말을 풀어 주지도 못하고 도주하였다.
러시아 병사들은 그 암말을 보고 서로 둘러서서 淫行을 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들이 코사크의 유격대라고 하였다. 그들의 성품은 매우 음란하여 부인들을 만나면 노소를 가리지 않고 즉시 범하였다. 그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의 정사를 가져 숫양과 같이 정력이 강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이 지나간 곳은 부인들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또 그들은 의심이 많아 약탈을 할 때도 너댓 명의 사람들만 모여 있어도 침범을 하지 못하였으며, 무슨 음식을 먹을 때는 소나 말처럼 生食을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말을 잘 타 휘파람을 한 번 불고 달리면 순식간에 10여 리를 달렸으며, 얼굴은 비록 사납게 생겼지만 사람을 만나면 해치지 않고 도리어 고분고분한 기색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을 보면 이를 가는 사람들은 오직 일본 사람뿐이었다. 이때 일본인들은 황해도에 많이 있었다. 당시 군량 및 병기를 운반하는 것 이외에는 통행을 금지하고 있었으므로 다른 선박들을 우리 나라 선박처럼 가장하여 서북부를 출입하면서 러시아를 정찰했다.
러시아 병사들도 그 사실을 알고 정탐자를 엄하게 수색하여, 머리를 깎은 사람만 보면 살해하였으므로 사망한 스님들이 수백 명이나 되었다. 이때 기후가 매우 차가워 사람들은 따뜻한 모자를 쓰고 다녔는데, 러시아 병사들은 사람만 만나면 즉시 칼로 모자를 베어 단발 여부를 확인하였다
국역 梅泉野錄 > 『梅泉野錄』 제4권 > 光武 9년 乙巳(1905년) ③ > 7. 露日講和條約 체결
7. 露日講和條約 체결
露, 日 講和條約이 체결되었다. 미국 신문에 의하면, 양국의 開戰 이후 러시아의 병사 사망자는 40만명, 비용은 18억불이며 일본 사망자는 17만명, 비용은 15억불이라고 한다.
이때 일본은 나라가 작아 더욱 피곤하였으므로 미국인에게 뇌물을 바치고 和議를 주장하였고, 러시아도 兵亂을 싫어하여 억지 승낙을 하고 미국 뉴욕에서 강화회담을 개최하기 위해 서로 위원을 파견하였다. 러시아는 禹益德(세르게이 율리비치 위태 : Sergei Yulyevich Witte)을 파견하고 일본은 小村壽太郎을 파견하였다
4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4(한국사료총서 번역서4) > 1902년(광무 6년, 임인년) > 5월 > 7일(음력 30일)《수요일》 눅눅하고 흐린 날씨.
7일(음력 30일)《수요일》 눅눅하고 흐린 날씨.
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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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화한 소수의 조선인이 모스크바인보다 훨씬 더 자신의 예전 동포들을 업신여기고 있다. 이강호는 이렇게 말했다. ʻʻ김병학은 귀화한 조선인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 사람은 유럽식으로 지은 좋은 집에서 살고 있지요. 그는 그것이 전 세계에 이익이 된다고 해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을 것입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일반인을 위한 학교가 없습니다. 동양어학원(Oriental Language School)에는 중국인, 몽골인, 조선인 교사가 있지만 그들은 노예처럼 대우받고 있습니다. 러시아인은 조선인을 걷어차고, 때리고, 죽일 수 있습니다. 재판을 받을 수도 있다는 최소한의 위험도 없이 말입니다. 코샤크(Cossak)가 좋아하는 오락은 외진 곳에서 조선인의 이마를 겨냥해서 발사하는 것입니다. 만약 무방비 상태의 막노동꾼이 죽으면, 시체는 강으로 던지거나 개나 독수리에게 넘깁니다. 밤에는 중국인 도둑이 두려워서 어느 누구도 감히 거리를 돌아다니지 못합니다. 한편으로는 러시아인의 야만성,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인의 올가미 때문에, 허기에 시달리고 앞으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희망도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돈이 얼마라도 남아 있을 때 적대적인 해안을 떠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5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5(한국사료총서 번역서5) > 1904년(조선 개국 513년, 광무 8년, 갑진년) > 4월 > 26일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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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믿을 만한 소식통을 통해 황제가 일본 지도를 가마솥에서 삶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과 일본의 대의명분을 저주하는 특이한 방법이긴 하다. 황제는 어제 받은, 원산항에서 러시아의 어뢰선이 일본의 작은 연안 연락선인 오양환(五洋丸)을 격침시켰다는 보고 때문에 더 자신의 믿음을 확고히 할 것이다. 제물포에서 전쟁이 발발해 끔찍한 연속 폭격이 퍼부어질 때, 훌륭한 군주는 점쟁이를 만나느라 바빴다. 무당들의 요구에 따라 궁궐 뜰 네 귀퉁이에 가마솥을 거꾸로 묻었다. 궁궐 문 밖에도 역시 가마솥이 몇 개 묻혔다. 일본인은 황제가 일본과 양립할 수 없는 적이고, 조선의 최악의 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또한 황제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이 썩은 내정이 가하는 위해로부터 조선을 구원하는 유일한 희망이며, 그런 구원을 통해 일본은 조선인들의 호의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일본공사관에서 일하는 일본인들은 황금에 눈이 멀어 두 눈으로 보면서도 무엇이 진실로 일본에게 유리한 것인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공사관의 일본어 통역관인 고쿠부는 현영운과 첩註 021을 공유하고 있다. 현영운의 첩이 고쿠부를 지배하고 있고, 그는 대신을 지배하고 있으며, 대신은 조선의 황제를 지배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조선의 정치 세계에서 권력의 원천은 현영운의 첩인 것이다!
5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5(한국사료총서 번역서5) > 1904년(조선 개국 513년, 광무 8년, 갑진년) > 5월 > 4일
4일
새벽 두세 시쯤 비. 벌써 장마철로 접어듦.
가난한 백성들에게 힘겨운 시기다. 가난한 조선의 백성들은 부패한 전제군주와 충고하는 일본인 사이에 끼여 전쟁과 기근 없이도 이미 충분히 최악의 상태에 놓여있다! 조선인은 전제군주에게 맹목적이고 비굴하게 굴복한 벌을 가혹하게 받고 있는 것이다.
이 잘못된 정부, 이 끔찍하게 파괴적인 전쟁, 이 기근은 한 가지 결과만을 초래할 것이다. 즉 조선 전역의, 특히 조선 남부지역의 가난한 백성들은 소중한 논밭과 산과 집을 일본인에게 헐값에 팔아넘길 것이다.
전 세계 위대한 열강의 무리에 뛰어든 일본이 ‘국가 사이의 전쟁’에서 싸우고 있는 동안, 한편으로는 독립 국가로서 조선의 목숨은 실낱같이 유지되고 있다. 또 조선의 북부지방과 서부지방은 전쟁과 기근 때문에 완전히 파괴되었고, 조선의 남부지방은 탄압받는 백성들 때문에 사실상 황폐해졌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왕실은 밤이면 밤마다 점쟁이들에게 점괘를 물어보느라 정신없고, 국가의 대신들은 서로 “물어뜯느라” 바쁘다. 이를테면 궁내부대신은 이하영이 민씨 일가를 외부의 직위에서 해고했다는 이유로 황제에게 가서 이하영을 ‘물어뜯고’ 있다. 친일파인 박의병은 이하영이 홍순욱을 성진감리로 임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하영을 ‘물어뜯고’ 있다. 이렇게 물어뜯으면 상대방도 다시 물어뜯고, 한 사람, 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서로서로를 물어뜯게 된다. 이렇게 유치한 불화와 음모, 뒤에서 헐뜯기와 뒤를 물어뜯기 등을 통해 왕실과 정부가 끊임없이 전쟁과 전쟁 소문에 휩싸여 있는 동안 일본인들은 점점, 그리고 서서히, 조선의 생명줄을 강하게 압박해오고 있다.
5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5(한국사료총서 번역서5) > 1904년(조선 개국 513년, 광무 8년, 갑진년) > 5월 > 27일 간밤에 비.
27일 간밤에 비.
간헐적으로 열이 올라 고생한 뒤 계속 쇠약한 상태다. 내 병의 원인들은 대략 이렇다.
1. P. Kicows註 032의 끝없는 부패. 현영운 박의병 등 일본의 특별한 제자인 부도덕한 악당들이 정부를 운영하고 있다. 민병석 이용태 권중석 박용화 등은 나라를 말아먹기 위해 생각할 수 있는 짓은 다 하고 있다.
2. 북부지방과 서부지방에서 어디든 가는 곳마다 잔학 행위를 저지르는 러시아인들. 러시아인들의 저주받은 흔적은 불탄 마을, 살해된 여성과 아이들, 파괴된 들판으로 나타난다. 불과 피는 러시아인이 좋아하는 전쟁 수단이다. 일본인에게 패한 야만인은 절망적인 조선인에게 자신들의 무력한 분노를 발산하고 있다.
3. 일본인은 부산 철도 운행을 통해 남부지방에서 마치 오래 전에 미국에서 백인이 인디언을 다루듯이, 그리고 아직도 아프리카에서 백인이 흑인들을 다루듯이 조선인을 다루고 있다. 일본인은 명목상으로는 구매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조선인의 논밭 임야 가옥을 강탈한다. 만약 자신들의 뜻대로 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저항하면 마치 개처럼 조선인을 차고 때리고 죽이기까지 한다. 조선인에게는 보호해 달라고 호소할 곳이 전혀 없다. 일본인은 자신들이 조선의 안위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공언하지만, 조선인을 자신들의 노예로 만들겠다는 잘 알려진 의도와 정책을 숨길 생각도 하지 않는다.
4. 이런 모든 일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 황제는 궁궐을 짓느라 분주하다. 무당과 점쟁이들이 있는 방 두 칸에서 시간을 보내는 황제, 난방을 한 곁방 밖으로 나와 한낮의 햇빛을 보거나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어 하지도 않고 그렇게 할 시간도 없는 황제, 권력이 일상이고, 부패가 즐거움이고, 음모가 인생인 황제. 이 황제는 이 저주받은 나라의 저주받은 백성들로부터 갈취한 몇 백 만원의 돈을 불타버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 쓸모없는 궁궐을 짓는 데 낭비하고 있다.
5. 대신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멍청이들이다. 아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황제와 일본인이 명령하는 일 따위만 하는 멍청이들이다. 그 일이 아무리 조선에 상처를 입힌다고 해도 말이다.
6. 일본인은 부패하고 어리석은 황제를 통해 조선에서 모든 이익의 원천을 획득할 때까지 어떤 일도 개혁적인 방식으로는 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 같다. 일본인이 언제쯤이면 자신들이 양도라는 형태로 거두어들일 것이 더 이상 없다고 만족하면서 체면상 세상이목도 있으니까 개혁 운운하는 허풍을 떨게 될까? 그런데 거머리가 만족감을 느낄 수나 있을까?
5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5(한국사료총서 번역서5) > 1904년(조선 개국 513년, 광무 8년, 갑진년) > 6월 > 17일
17일
오후 4시에 의정부 의정대신註 037대행인 심상훈(沈相薰) 씨註 038를 방문했다. 그에게 나가모리 양도권 문제를 똑바로 처리하라고 설득했다. 그는 마음만 먹는다면 조선 정부에서 거의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심상훈은 자유롭게 황제를 알현할 수 있고, 의정부 의정대신이며, 높은 신분이라 양반들 사이에서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
심상훈은 어젯밤 황제로부터 러시아 황제가 몸소 전쟁을 이끌 것이고, 병사 100만 명을 전장으로 보낼 것이고, 러시아 황제가 부재할 경우 프랑스 대통령과 독일 황제가 러시아 내정을 감독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황제는 매일 밤마다 이런 이야기를 먹고 산다.
5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5(한국사료총서 번역서5) > 1904년(조선 개국 513년, 광무 8년, 갑진년) > 8월 > 15일(음력7월5일)
15일(음력7월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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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지방 사람인 박희방이 카자흐인에게 작은 꼬리가 있는 것이 목격되었다고 정말로 심각하게 말했다! 조선인은 일본군 당국이 지금 조선인 막노동꾼을 모아서 전쟁터에서 제일 앞에 그들을 배치해 ‘대포받이’로 이용하려고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천안읍에 살다가 가엾게도 지금은 저 세상으로 가고 없는 친구인 김근식이 예전에 가장 조심스럽고 심각한 태도로 물어본 적이 있다. 외국인이 조선 아이들을 잡아먹는다는 것이 사실이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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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5(한국사료총서 번역서5) > 1904년(조선 개국 513년, 광무 8년, 갑진년) > 12월 > 23일(음력11월17일) 《금요일》 몹시 추움.
23일(음력11월17일) 《금요일》 몹시 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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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훌륭한 가옥이나 터를 가진 수많은 조선인은 자신의 재산을 황제에게 강탈당할까 두려워 소유권을 외국인 명의로 옮겨놓았다. 하지만 지금 일본인들은 황제보다 더 악랄하다. 우리 집 맞은편 산에 훌륭한 부동산을 갖고 있는 박제순註 069은 어젯밤 사람을 보내 어떻게 하는 것이 일본의 강탈로부터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방책인지 자문을 구했다. 박제순은 일본인들이 탄력적인 군사적 필요라는 구실로 자신의 재산을 강탈할까 두려워하고 있다.
5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5(한국사료총서 번역서5) > 1905년(조선 개국 514년, 광무 9년, 을사년) > 1월 > 2일 《월요일》
2일 《월요일》
오후에 신년 인사차 몇 군데를 방문했다. 손탁 양을 만나러 갔다. 손탁 양이 자신이 러시아와 일본 사이의 전쟁註 002에 얼마나 무관심한지 보여주기 위해 애쓰는 모습, 그리고 웨베르 가족으로부터 소식을 듣지도 못했고 그들에 관한 소식을 듣지도 못했다고 말하는 모습, 자신에게 일본은 러시아와 마찬가지라고 항변하는 모습은 나를 미소 짓게도 만들고 마음 아프게도 만들었다. 손탁 양은 내가 일본의 스파이라고 의심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모든 사람이 러시아에 최소한의 동정심을 갖는 것도 싫어할 정도로 친일파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오늘 오후에 하세가와 장군에게 들었던 대로 아서항(Port Arthur)註 003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들려주자 손탁 양은 상처를 받은 것 같았다. 손탁 양은 조용히 방에서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손탁 양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녀의 정신적 고통을 공감한다.
손탁 양의 방은 서울에 있는 모든 친러 인사의 회합 장소다.
: 러시아와 일본이 벌인 전쟁으로 1904년 2월 8일 일본함대가 뤼순군항[旅順軍港]을 기습 공격해 발발하여 1905년 9월 5일에 강화했다. 한국과 만주의 분할을 둘러싸고 일어난 전쟁이지만 그 배후에는 영일동맹과 러시아 프랑스 동맹이 있었고, 제1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이 되었다.
: 뤼순의 별칭이다. 뤼순은 중국 랴오둥 반도의 항구 도시로 지금은 다롄(大連)과 통합되어 뤼다시(旅大市)를 형성하고 있다.
5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5(한국사료총서 번역서5) > 1905년(조선 개국 514년, 광무 9년, 을사년) > 3월 > 21일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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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주일 동안 힘겨운 전투를 끝낸 뒤 일본은 선양에서 러시아를 몰아냈소. 따라서 연이은 성공이 일본의 군대에 왕관을 씌우고 있다오. 그러는 동안 조선의 황제는 관직을 팔아넘기고, 장난감 같은 궁궐을 짓고, 일본에 반대해 러시아의 승리를 위해 산과 강의 정령들에게 기도하는 데 돈을 낭비하느라 바쁘다오.
5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5(한국사료총서 번역서5) > 1905년(조선 개국 514년, 광무 9년, 을사년) > 4월 > 20일(음력3월16일)
20일(음력3월16일)
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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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오랫동안 이야기되었던 발틱함대(Baltic fleet)註 016는 현재 실제로 홍콩과 대만 사이에 있다고 하오. 언제라도 거대한 해전이 벌어질 양상이오. 십중팔구 러시아군대가 또 두드려 맞을 것이오. 하지만 만약 러시아군이 일본함대를 격침시킨다면, 전체적으로는 이 세계, 특수하게는 조선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그 누가 알겠소?
: 발틱함대는 제정 러시아의 유럽 방면을 지킨 주력함대다. 당시 흑해함대 동양함대와 함께 러시아의 3대 함대의 하나였다. 러일전쟁 때 일본 원정의 임무를 띠고 1904년 10월 15일 리예파야항(港)을 출항했다가 1905년 5월 27일~28일, 일본함대와의 전투에서 전멸했다.
5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5(한국사료총서 번역서5) > 1905년(조선 개국 514년, 광무 9년, 을사년) > 6월 > 2일(음력4월29일)
2일(음력4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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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7일과 28일에 발틱함대가 일본 해군에게 완전히 파괴되었소. 이 사건은 일본에 엄청나게 영광스러운 군사작전이 되었다오! 나는 조선인으로서 일본의 연속된 성공을 기뻐할 특별한 이유가 없소. 일본이 거두는 승리는 모두 조선의 독립이라는 관에 박히는 못이라오. 일본인이 조선인을 일본의 지배라는 수레바퀴에 단단히 사슬로 묶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방식은 정말로 야비하오. 하지만 황인종의 일원으로서 조선, 또는 나는 일본의 영광스러운 성공에 자부심을 느낀다오. 일본은 우리 황인종의 명예를 높이고 있소. 이제부터는 허풍쟁이 미국인도, 오만한 영국인도, 허영심 많은 프랑스인도 황인종이 큰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이오. 중국인이 산업이나 상업 면에서 다른 인종과 동등하다는 사실을 입증했듯이, 일본인은 자존심 강한 서구가 극동의 육군과 해군의 비범함을 인정하게끔 만들었소.
5월 25일 서울-부산 간 철도의 공식 개통식이 남대문 외곽에서 열렸소. 일본인은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였다오. 조선인은 스스로를 부끄러워했소. 생각 있는 조선인이 그랬다는 말이오.
5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5(한국사료총서 번역서5) > 1905년(조선 개국 514년, 광무 9년, 을사년) > 6월 > 20일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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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군함 “알렉산드르 3세호(Alexander Ⅲ)”에서 이근택이 쓴, 조선 황제가 보낸 편지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소. 물론 그런 황제의 불장난을 입증하는 증거가 어떤 방식이나 양상으로든 도쿄의 각료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시기는 지났다오. 하지만 의심할 바 없이 서울에 주재하는 일본 대표들은 이렇게 발견한 증거를 황제와 이근택에게서 풍성한 뇌물을 갈취할 수 있는 고문기구로 사용할 것이오.
위키백과
카자크(우크라이나어: козаки́ 코자키[*]; 러시아어: каза́ки 카자키[*]; 폴란드어: Kozacy 코자치[*])는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일대와 러시아 서남부 지역에서 준군사적인 자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던 동슬라브어를 사용하는 민족집단이다.[1][2] 드니프로 강 하류, 돈 강, 테레크 강, 우랄 강 유역 일대에 드문드문 흩어져 살면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정치사 및 문화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3]
카자크의 기원은 불확실하지만, 14세기에서 15세기 사이 드니프로 강의 자포리자 카자크와 돈 강의 돈 카자크가 발생한 것을 대개 그 시작으로 잡는다. 자포리자 카자크는 폴란드-리투아니아의 봉신이었다. 폴란드-리투아니아로부터의 압력이 증가하면서 17세기 중반 보흐단 흐멜니츠키가 흐멜니츠키 봉기라고 부르는 무장 반란을 일으켜 독립을 선언하고 카자크 수장국을 수립했다. 그 뒤 페레야슬라프 조약(1654년)으로 카자크 수장국은 러시아의 세력권에 편입되었다. 한편 돈 카자크는 16세기에 정립되었으며 러시아 차르국과 동맹을 맺고 러시아의 시베리아 정복에 협조했다.
18세기가 되면 러시아 제국의 카자크들은 국경지대인 우크라이나에서 완충지대의 역할을 했다. 러시아 제정은 카자크의 자유와 자치, 독립에 간섭하면서 그들을 길들이려 했다. 이에 카자크들은 스텐카 라진, 콘드라티 불라빈, 이반 마제파, 예멜리얀 푸가초프 등을 지도자로 하여 여러 차례 반제정 반란을 일으켰고 일부는 내전 수준으로 비화했다. 러시아 제국은 처형과 고문을 동원하며 이를 모두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1707년-1708년의 불라빈의 난 진압 이후 돈 카자크의 서쪽 자치구가 철폐되었고, 1708년 마제파의 난 진압 이후 바투린의 카자크가 철폐되었다. 1775년 푸가초프의 난이 진압된 뒤에는 드니프로 강 하류 자포리자 카자크가 공식적으로 해산당했다.
18세기 말엽이 되면 카자크 민족은 러시아 제국의 신분제도에서 소슬로비예라는 특수 군사신분을 이루었다. 이는 중세 서유럽의 기사제도와 유사한 것으로서, 카자크들은 군마와 병기 및 보급품을 각자 조달해야 했고 러시아 정부에서는 총기만 보급해 주었다. 민족 자체가 준군사 문화에 의해 규정되었던 만큼 카자크는 18세기-20세기 러시아 제국의 전쟁들(대북방 전쟁, 7년 전쟁, 크림 전쟁, 나폴레옹 전쟁, 코카서스 전쟁, 러시아-페르시아 전쟁, 러시아-튀르크 전쟁, 제1차 세계 대전 등)에 동원되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차르주의 정권은 카자크를 폴란드인과 유대인에 대한 포그롬을 수행하게 하는 등 공포정치에 이용했다. 또 국경지대 방어와 제국 내부의 소수민족들 간의 경계 방어에도 카자크가 사용되었다.
첫댓글
//news.v.daum.net/v/20220630211908575 이러니.
동환봉사 / 올리려던 16조의 상소[擬上十六條疏]
사졸의 선발[士卒之選]
...전조(前朝)의 말에 왜선(倭船)이 하삼도(下三道)와 경기ㆍ황해에 운집(雲集)하고, 몽고의 홍건적(紅巾賊)이 양계(兩界)에서 봉기(蜂起)하듯 한다면 이 20만으로는 능히 분담하여 방어하지 못할 것이 명백합니다. ...............몽고의 홍건적??????????
공부할 수 있게 자료 공유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