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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수필집 [☆내 마음의 외양간☆]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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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마음의 외양간]
오길순 수필집 / 도서출판 문예바다(2016.10.16) / 값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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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외양간
오길순
내게는 낡은 빈집이 한 채 있다. 너무 헐어 아무도 살 수 없지만 한 10년 홀로 버티고 있는 시골집이다. 시아버님의 태 자리였다니 100세는 훌쩍 넘었지 싶다. 남편의 7남매 고향집이기도 하다.
낡은 시골집이 그리운 건 마당을 어슬렁거리던 두꺼비 때문만은 아니다. 천장에 집을 짓던 낙거미 때문만도 아니다. 아름드리 감나무가 울을 짓고 100여 평 대나무가 그림자를 만드는 집, 여우라도 나올 깊은 밤이면 소쩍새 소리는 창호 문을 두드렸다. 시아버님이 가꾸던 추녀 밑 작은 춘란밭 너머 시어머님의 체취가 배어있는 헛간에는 아직도 솔가루가 시루떡처럼 쌓여 향기로운 부식을 하고 있을 것이다. 등 굽은 시어머니가 져다 쌓은 솔잎, 헛간은 내 그리움의 바다이기만 하다.
여든 여섯 춘추로 떠나신 시아버님이 우리들 곁으로 오신 건 10여 년 전 시어머님이 가신 후였다. 지극했던 시어머니 혼백이 머문 탓일까. 시아버님은 정신이 몽롱하면서도
“느그 어무이가 지둘리고 있을껴.”
틈날 때마다 빈 고향집을 가고파 하셨다. 지금도 타인에게 넘기지 못하고 비워 둔 건 혼백처럼 뿌리내린 그 그리움 때문인 것 같다.
손님이나 머슴의 숙소로 썼다는 행랑채가 헛간이 된 경위는 알지 못한다. 황소를 길렀다는 외양간의 기억도 내겐 없다. 때만 나면 뒷산에 올라 등에 져 날랐을 키 작은 시어머니의 솔잎 노적은 마음의 외양간처럼 향기롭기만 하다. 헛간의 시렁에 매달려 있던 고추. 마늘, 양파 자루는 시어머니가 경작한 우리들의 여물이었다. 1년에도 여러 번 곡물 자루 속에 우송된 “오길순바다보아라” 삐뚤삐뚤한 쪽지는 노부부가 며느리에게 보내는 지극한 사랑의 연서만 같았다.
시어머니가 헛간에서 솔잎을 꺼낼 때면 저축통장을 펼치듯 소중해 했다. 쏟아지는 솔가루가 어깨와 머리를 덮으면 한 올이라도 튀어 나갈까 조심조심 털어냈다. 내가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때면
“느덜은 솔잎 불 때기 좋아혔지? 어여 때자.”
엉겅퀴 같은 손으로 한 줌씩 솔가루를 건네주면 가슴이 먼저 덥혀졌다. 당신은 거친 콩대를 때면서도 향기로운 솔잎을 넘겨주던 작은 여인.
“넌 내가 가면 버선발로 뛰어나오는디…”
솔잎만으로는 보상이 아쉽다는 듯 말씀이다.
“어머니 정성에 비하면 저희는 아무것도 아니죠.”
“고부간은 멀리 있으면 그림동무, 만나면 쌈동무라는디……느그들은 맨날 그림동무다.”
아궁이 앞에서 들려주던 그 고운 말씀은 늘 그리움의 여물처럼 새록새록 하다.
나는 솔잎 잔불에 황석어나 죽상어를 구워 내는 걸 즐겼다. 꾸들꾸들 말렸던 생선을 잔불에 구우면 타는 듯 익는 향기가 부엌을 가득 채웠다. 더러는 호호 불길을 불며 들기름 바른 파래 김을 구워내면 길게 붙어있는 솔잎 재는 미각을 돋우었다. 여름날의 꽁보리밥, 겨울날의 가마솥밥은 그래서 언제나 시어머니가 행겨주시는 향기로운 밥상이었다.
추녀 밑 작은 남새밭이 춘란밭으로 바뀐 것은 시어머니를 위한 시아버님의 배려였을 것이다. 달래가 민들레처럼 자라고 상추나 아욱, 쑥갓 등이 널부러진 남새밭이 여름날 땅버들 천국으로 바뀌었을 때였다.
“어머니! 채송화 꽃 마당이 너무너무 예뻐요.” 화들짝 반기는 내게 “풀매기가 영 징하다.”며 고개를 도리질 하셨다. 시어머니께 곡식이나 채소 외의 화초는 모두 잡초였을 터이다. 가물수록 번지는 석비름처럼 어머니의 ‘징한 풀매기’를 이기고 피었던 땅버들 꽃 마당은 지금도 내 맘의 화원으로 피어 있다.
초가가 함석과 기와로 되어가는 지붕 구조처럼 마당가 밭 자리도 점점 진화하고 있었다. 한학을 하던 시아버님은 이젠 노쇠로 책을 놓고 마당가 남새밭을 춘란밭으로 바꾸는 취미를 지니셨다. 그것은 어머니의 징한 풀매기를 바꾸는 유일한 길이었을 것이다. 등 떠밀리듯 상경한 춘란은 우리들의 화분이나 아파트 정원에 고이 심어졌다. 아파트를 떠나 온 지 오래되었지만 지금도 봄이면 그곳 정원에선 그때 심어놓은 춘란마다 꽃대를 고이 품고 있을 것이다. 누가 언제 심었는지 모를 춘란은 포기가 많이 불어 ‘기화소심’인 양 주민들의 기쁨이 되고 있을 것이다.
고향 집 명물은 뭐니뭐니해도 담쟁이 넝쿨이었다. 몇십 미터 돌담장을 빼곡이 둘러친 담쟁이 줄기는 늙은 구렁이처럼 실하고 튼튼했다. 한겨울밤 정지에서 나오다 깜짝 놀란 적도 있다. 우르르 담장을 타는 뱀 같아 흠칫 보면 담쟁이 넝쿨이었다. 고향 집을 수십 년동안 용처럼 그렇게 비끄러맸던 담쟁이가 누군가의 손에 싹도 없이 잘려 나간 걸 떠올리면 심장을 메스로 스치는 듯 저리리하다.
뒤란 장독대 옆 돌담장의 백년초는 살아있을까. 밤마다 시어머님 정화수로 목을 축였던 백년초. 오뉴월 노란 꽃자리에 보라색 열매가 열리는 가을이면 한 평 선인장 동네는 월동을 서둘러야 했다. 토박한 돌담장 틈에 뿌리내린 부챗잎 선인장은 혹독한 겨우살이를 또 어찌 견딜거나. 광야를 떠돌다 정착한 유목민처럼 수십 년 토박한 돌담장에 더부살이하던 유목초에게 유일한 오아시스 정화수는 생명줄이었을 것이다. 이제 늙은 백년초도 정화수 따라 고달픈 삶을 접었지 싶다.
우물가 대숲은 가용이 된 적도 있다. 한 트럭 잘라다 팔았더니 돈이 되었다던 시어머니, 하룻밤에도 도깨비 나무처럼 죽순을 키우고 이제는 원시림이 된 대밭에서 들고양이는 호랑이처럼 새끼를 치고 있겠지.
재래식 부엌이 입식으로 바뀌는 동안 시골집은 하나씩 잃어갔다. 떠난 7남매며 가버리신 부모님이며, 매미 껍질 같은 빈집에서 이 가을 동이감은 철퍼덕철퍼덕 그리움을 떨구고 있을 것이다.
내 나이 스물다섯, 낯선 시가에 처음 들어섰을 때 건넌방 벽에 제법 큰 거울이 있었다. 그 속에 청춘도 포동포동 걸려 있었다. 시가의 높은 마루를 들며 나며 큰 거울보기는 유일한 취미였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대밭을 거닐다가 한나절 청춘을 들여다보는 재미에 무색한 시가살이도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강과 산이 서너 번 바뀌는 동안 거울은 낯선 여인이 되기 시작했다. 죽순을 잊은 대나무처럼 이제 거울 속 여인은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주름진 얼굴을 초연히 들여다보리라. 그래도 등 굽은 시어머니 말씀은 향기로운 솔잎처럼 어깨 위에 소롯이 내려 쌓일 것만 같다.
“넌 내가 오면 버선발로 뛰어나오는디.”
손을 꼭 잡아 반기던 시어머니.
“느그들은 맨날 그림동무다.”
지극히도 우릴 그리워하셨던 시어머니.
“솔 향기 맡으면 시름이 덜한단다. 어여 불 때자.”
그곳은 차마 그리운 내 마음의 외양간이다. 탯줄처럼 엉겨있는 마음속 솔잎 헛간이다. 당신은 거친 콩대를 때면서도 고운 솔잎을 넘겨주던 작은 여인, 내 가슴에 향기로 묻혀있는 마음속의 작은 묘지이기만 하다.◑
투발루를 위하여
오길순
투발루가 위기란다. 섬나라 투발루가 수몰되고 있단다. 남태평양의 적도 부근 피지 북쪽에 있는 투발루의 수몰은 지구촌이 빚은 재앙이란다. 온난화로 녹아내린 만년설과 빙하가 해수면을 상승시키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면 투발루는 1세기 안에 지도 상에서 영원히 사라질 거라니 아름다운 환초(고리모양의 산호초)국 투발루는 전설의 아틀란티스가 되고 말 것인가?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타바우테이 투발루 부총리는 국제사회를 향해 눈물로 호소했다.
“우리 국민을 난민이 아닌 숙련공으로 받아 달라.”고
“한국도 이산화탄소 감축에 적극 동참해 달라.”고
그들의 호소가 침몰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들의 눈물은 공존하는 지구촌의 슬픔이기 때문이다.
2007년 11월 3일 발리에서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가 열렸다. 2035년 자카르타 공항이, 2080년 자카르타 대통령 궁이 수몰될거라니 예상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1만 7천 개 인도네시아 섬 중 2천 개가 잠길 거리는 예고는 우리를 놀라게 한다. 아름다운 몰디브도 물 위에 도시 베네치아도 잠기고 있단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전쟁만큼이나 인류에게 심각한 위험이 지구온난화”라고 말했다. 유엔과 월드와이드 위치는 2015년까지 세계의 수변도시 33개가 영향을 받고 뉴욕, 엘에이, 카이로 등 21개 대도시가 치명적 위기를 맞을 거란다. 100년 후 지구 생물의 95%가 멸종할 것이라는 유엔 정부 간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IPCC)의 전망과 2050년 생물의 20~30%가 멸종 위기를 맞는다는 예측은 잘못된 통계이기만을 바란다.
해발 4m,너비 4백m, 면적 25.9㎢의 투발루가 불행이 시작된 것은 10여 년 전부터이다. 봄마다 찾아오는 태풍이 소멸해도 상승된 해수면이 낮아지지 않았다. 1만 명의 국민들은 이미 2001년 국토를 포기하고 호주, 뉴질랜드, 미국에 이민 요청을 해 놓았다. 그러나 뉴질랜드만 해마다 75명씩 받아들일 뿐 국제적 현실은 냉엄하다. 여의도의 3배, 울릉도만 한 작은 나라, 투발루 국민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
동해와 제주도도 매년 5~23센티씩 해수면이 상승되고 있단다. 해안의 지형 변화는 100년 후 해운대 해수욕장이 수몰될 예고를 하기도 한다. 멸치 떼를 남해에서 동서해로 이동시키고 있는 해수온상승 역시 당황스러운 일이기만 하다.
해저 생태계 변화는 저출산 고령화 대책만큼이나 지구촌의 시급한 생존 문제이다. 중부 이북에서도 피는 동백, 개장 날짜가 줄어든 스키장, 웃자란 보리밭, 열대야만 계속되는 여름, 삼한사온이 사라진 겨울, 때 없는 계절 꽃 등 생태계의 반란으로 심각한 식량난을 예고하고 있다. 꽃들의 계절을 찾아주는 일이야말로 식량난을 이겨내는 방법일 것이다. 지구를 지키는 대책일 것이다.
투발루는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이다. 콘크리트 방벽조차 칠 수 없는 나약한 산호지반에 염분이 스며 농사를 포기한 지 오래이다. 미국의 진화 생산업자들이 국가번호 900번을 도메인 주소로 사가는 바람에 유엔 가입과 함께 극빈을 탈출할 수 있었으나 식생활을 위한 돼지 사육도 최소의 자동차 운행도 극히 절제한단다. 이산화탄소와 화석연료 감축만이 투발루의 침몰을 늦추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수도 푸나푸티 공항 활주로는 매월 보름과 그믐 대피처로 북적인단다. 한달에 두 번 사리 때마다 수해 난민이 되는 국민들에게 공항 활주로는 유일한 노아의 방주가 되는 셈이다.
간척지에 초지 제방을 쌓아 목축업을 하는 독일의 해일 대책은 참고할 만하다. 해수온으로 냉난방 에너지를 절약하는 일본, 하수 여과로 상수를 만드는 싱가포르의 폐자원 활용은 희망적이다. 우리나라의 풍력과 태양열 등 대체에너지 개발과 지하 공기를 끌어올려 온실을 가꾸는 제주의 난 재배는 자랑스럽기도 하다.
쇠똥으로 집을 짓고 폐타이어로 신발을 만들어 신는 마사이족의 청정생활은 냉방병과 난방병을 앓고 있는 우리의 일상을 부끄럽게 한다. 스위스의 전기자동차는 우리의 ‘심야 1시간 소등하기’와 함께 희망을 주기도 한다. 사활을 건 온난화 대책만이 지구촌의 생존을 지켜줄 것이다.
투발루는 현재 ‘국제적 보험제도’를 요청해 놓았다. 온난화 피해국이 가해국인 문명 선진국에세 생계 대책을 요청한 것이다. 홍수에도 견딜 집, 하수 고갈에도 먹을 수 있는 물, 지진에도 견딜 견고한 주택 건설, 그리고 태풍을 막을 나무 심기 등 ‘국제적 보험제도’는 장마와 폭설, 한발과 태풍, 황사와 홍수 등이 빈번한 우리나라의 재해대책이기도 하다.
고래와 연어, 순록과 북극곰이 사라지는 땅, 알래스카를 해빙하게 만드는 선진국의 산업시설은 에스키모는 물론 지구촌을 위협하고 있다. 그 귀엽던 펭귄들도 머지않아 사라질지 모른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일만이 지구온난화를 늦출 것이다.
남북극의 빙하 보존만이 투발루 구원의 희망일 것 같다. 만년설로 덮인 알프스와 킬로만자로를 지켜내는 일은 지구촌을 기사회생시키는 영약일 것 같다. 투발루 구원은 곧 지구촌의 구원일 것이다. 교토의 정서를 지켜야 할 것이다.≪수필과 비평≫ 2008.7/8월호 ◑
재스민 향기 바람에 날리며
오길순
겨우내 향기 속에 살았다. 창밖은 대설인데 꽃 향이라니, 흥복이다. 지그시 눈을 감고 호흡하면 젊었던 어머니 분결처럼 휘감겨오는 감미로운 훈향이 웅크렸던 어깨를 사르르 풀어낸다. 은은한 향풍 속에 앉으면 작은 우울쯤 살며시 사라진다.
내가 재스민 향기에 빠진 것은 지난해 봄부터이다. 화분을 고르고자 들른 양재동의 비닐 화원에서 알 수 없는 냄새에 이끌렸다. 엘리베이터에서 풍겨왔던 여인의 고혹적 향기 같기도 하고 목욕탕에 그윽하던 샤워코롱 같기도 한 향취의 근원은 한 그루 분재였다. 내 키만 한 덩굴나무에서 수십 송이 작은 꽃들의 정기가 코를 유혹했던 것이다. 듣기만 했던 재스민이라니, 향기나무와 얼른 인연을 맺었다.
영혼을 씻어주는 향기, 재스민은 향기 중에 으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하려면 머리에 재스민 꽃을 땋아 내리라던가. 이해인 시인은 그리움이라는 단어에서 비에 젖은 재스민 꽃향기가 난다 했다. 아무튼 달콤한 재스민은 심혼의 청량제임에 틀림없다. 생명의 진액이 마음의 상처를 다독이니 향기는 영혼의 약손이기만 하다. 꽃과 나무, 사향노루와 비버, 고래의 용현향까지 무궁무진한 천연 향료들이 어우러져 날리면 얽혔던 마음도 살며시 풀어진다. 바로 향수의 묘미이다.
향수 애호가들은 스치는 이에게도 산뜻한 미풍을 선사한다. 이 또한 마음의 덕향일 것이다. 베르사유에서 향수가 발달되었다는 이야기는 그래서 설득력이 있기도 하다. 화장실이 없는 궁전에서 여인들이 체취를 바꾸려는 지혜는 사치라기보다 후덕이었을 것이다.
재스민을 물신으로 예찬한 사나이, 향수업계의 대부 장 폴 겔랑은 3천여 가지의 향료를 코로 감별하는 신기의 조향사이다. 비밀스러운 관능의 후각을 재스민 향기에서 찾아낸 것이다. 아내에게는 ‘샹다룸’을, 카트린 드뇌브에게는 ‘나에마’를 특별히 제작하여 헌정한 그는 제품마다 재스민을 넣었다.
그 에게 사랑과 성공의 원천은 재스민이었다. 재스민은 2백 년 겔랑 향수 가문을 지켜준 성공의 원료였다. 프랑스가 향수의 대명사로 불리기까지 재스민 향기는 축복의 선물이었다. 불교에서도 말리화(茉莉花, 모리화)라 하여 재스민 향기를 최고로 여겼다.
얼마 전 공항 면세점에서 여러 향수를 흠향해 보았다. 특히 달콤 쌉쌀한 ‘삼사라’ 향취는 먼 길의 여독을 살짝 씻어주는 듯했다. 술 한 방울에 비틀거리듯 향수의 고혹적 향기는 지친 여로를 살짝 환상적 기분으로 만들어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거였구나, 겔랑이 연인에게 특별히 헌정한 선물, ‘삼사라’는 그의 여성을 향한 지극정성과 재스민 향기가 어우러져 윤회한 향수의 명품 같았다. 산스크리트어로 ‘생과 사의 수레바퀴’라는 ‘삼사라’는 향기를 지극히 사랑한 한 사나이의 불후의 후덕 같기만 하다.
재스민꽃을 처음 보았을 때 기분이 야릇했다. 한 그루에서 보라와 하양, 두 가지 색깔이 피다니, 지조 없는 나무 같았다. 그런데 보라색이 하양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아이가 노년이 되듯 청년이 백발이 되듯 끊임없이 피고 지는 재스민은 우리네 삶의 단면 같았다. 연어가 알을 낳고 죽듯 낙엽이 흙에 묻히듯 하얀색 재스민은 영락없이 머리가 센 노년이었다. 검버섯 핀 꽃자리에서 다시 돋아나는 보라색은 생사를 이어주는 영원의 수레바퀴 같았다.
이슬 차고 떠나는 부지런한 사람의 옷깃에 묻어 따라나서는 말리화, 그래서 재스민 차를 만리향 차라 하는구나. 첫새벽 꽃봉오리를 녹차에 흡착시키면 재스민 차가 되듯 연꽃, 국화, 계화 등 꽃 향으로 화차를 만들기도 한다. 매운 음식을 먹은 후나 기분 전환제, 그리고 여성의 생리통에도 재스민 차는 효능이 있단다.
향기 차 한 잔은 때로 세상 홍수를 피해 휴식의 방주에 오르는 일일 것이다. 속도의 시대, 차 한 잔의 느림은 너른 하늘에 실없이 씩 웃어보는 일이기도 하다.
문제는 겨울나기였다. 큰 화분을 어디에 들여놓을까 망설이다 된서리 내리던 밤을 그냥 지나쳤다. 그 밤 동상으로 떨군 잎 자리에서 무더기 꽃이 필 줄이야. 엽점마다 돋아난 수십 수백 개 꽃의 소름들, 극기의 꽃망울은 얼었던 상처에서 돋은 패잔병의 승전고처럼 숭고했다.
재스민 화분 속에는 4월의 하얀 수수꽃다리가 들어있다. 자락자락 산맥을 이룬 섬진강 매화마을도 들어있다. 부안의 백련지에서 불던 상큼한 연향도 들어있다. 백학처럼 하얀 연꽃을 웅배기 맑은 물에 담그고는 작은 찻잔에 고이 떠 주던 스님의 한 잔 백련차, 깊고도 맑은 연꽃의 청향은 꽃의 아름다움보다 스님의 향기였다. 이 겨울 재스민이 준 소득은 인간의 향기이다. 문득 법구경의 꽃노래가 떠오른다.
꽃향기는 바람을 타고 멀리 퍼지네/선단과 타카리 꽃, 재스민이 그것, 후덕한 이는 바람 없는 곳에서도/향기를 멀리멀리 퍼뜨리네.
부활의 꽃 재스민 옆에 서니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선물한 베다니의 마리아가 떠오른다. 오라비의 부활에 향기로 보답한 마리아, 보은의 복음은 후덕의 향기였다. 겨우내 혹한 속의 고뇌는 향기 속에 꽃놀이였다. - 월간문학 ≪한국수필가≫2005.10월호 ◑
꽃은 지면 그뿐이여
오길순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公無渡河(공무도하)
임이 그예 물을 건너시네 公竟渡河(공경도하)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墮河而死(타하이사)
임이여, 이 일을 어찌할꼬 當柰公何(당내공하)
고대가요 <公無渡河歌(공무도하가)> 첫머리를 제목으로 차용했다는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보았다. 몇 년 전 방영되었던 인간극장 ≪백발의 연인≫을 영화로 제작한 진모영 감독의 다큐멘터리이다. 그런데 영화가 끝났어도 관객들이 자리를 떠날 줄을 몰랐다.
“꽃은 지면 그뿐이여.”
96세 천수를 다하고 가신 노인의 말씀 때문인지.
“영감님은 하나도 늙지 않았어.”
주름진 할아버지 얼굴을 고이 쓰다듬던 할머니 때문이지.
더러는 사막마라톤 같은 결혼생활에서 강아지도 지극히 사랑한 노부부의 다정이 젊은이 못지않게 여겨진 때문인 듯싶었다. 물장난하며 머리에 꽃 꽂아주는 노인들의 일상이 눈물 나도록 고와보이는 것은 아이들처럼 천진해 보이기 때문이었다.
창세기, 쌍둥이 동생 야곱은 장자권을 빼앗고는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친다. 가는 길에서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에게 반한다. 외가에서 7년을 일했지만 외삼촌은 라헬 대신 장녀를 그에게 준다. 7년을 더 일하고는 드디어 라헬을 얻었다. 그러고도 6년을 또 일한다. 훗날 이스라엘의 조상이 된 야곱은 한 백 년 전, 우리네 조상들 같기만 하다. 19세 조병만 총각이 14세 강계열 아내와의 6년 처가살이가 야곱의 외가살이와 다를 바 없었을 성싶다.
“그래도 배는 곯지 않았지 않냐?” 는 할머니 말에 할아버지는 그저 웃는다 얼굴도 모르던 소년소녀가 76년을 해로한 건 그 변하지 않는 우직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증손자를 여럿 보고서도 서로 바라보는 눈매가 소년소녀처럼 애잔하다. 화장실에 들어간 할머니를 위해 밖에서 힘차게 노래를 불러주던 할아버지의 마음이 사막의 점등인처럼 숭고해보였다.
결혼의 성공은 ‘이혼하지 않으면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낙엽을 쓸다가도 장난하고, 눈을 치우다가도 눈싸움을 하는 그들에게서 성공한 결혼의 진정을 보는 것 같다. 재미와 배려, 사랑의 고백이 성공한 부부의 일상이라지. 이불을 덮어주며 잠든 이의 주름진 얼굴을 쓰다듬던 그들에게서 이혼이란 말은 상상도 되지 않았다. 누군가 그랬지. 가장 유치하고 부끄러운 짓의 연속이 진정 성공한 결혼이라고, 더러는 하늘과 같은 자녀에게 배신자가 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성공한 결혼 같기도 하다.
그들에게고 예외가 아닌 게 있었다. 하루아침에도 여럿을 잃기도 했다던 우리네 부모들처럼 열둘을 낳아 여섯을 잃었다. 이젠 70살은 되었을 하늘아기들 내의를 마련하는 할머니의 두 볼이 젖몸살을 앓는 새댁처럼 붉어있다. 아이 이름대로 지은 옷을 불에 태우며 떠난 영혼을 기릴 때는 영원히 늙지 않는다는 모성이 실감되었다. 꽃, 아기 웃음, 어머니 사랑 중에 가장 아름다운 건 어머니 사랑이라더니 아기 생각만 하면 할머니는 젊은 엄마가 되나 보다.
이름을 불러 보지 못한 ‘이름’들이 내게도 여럿이다. 위령성월인 11월이 되면 그 짓지 못한 이름들을 지어 불러본다. 아기의 얼굴 한번만 보면 소원이 없을 것 같던 내 젊은 날, 입혀보지 못한 배냇저고리며 준비한 고운 포대기들이 물결 위에 띄워버린 편지처럼 속절없다.
문득 장쯔이 주연 중국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이 떠오른다. 총각선생을 짝사랑하던 시골 처녀가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성공한다. 남편은 글도 모르는 아내를 사랑하여 일생을 시골에서 산다. 평생토록 제자들의 존경을 받은 남편이 늙어 본향으로 돌아가는 상여길, 세상을 덮어버릴 눈보라 속에서도 백발 아내응 기어코 상주로 동행한다. 더할 수 없이 흠모했던 남편을 배웅하는 그 마지막 길은 짝사랑으로 애달팠던 소녀 시절의 추억 어린 길이기도 하다. 본향으로 가는 길은 누구나 지나온 희로애락으로 애절한가 보다.
“이 일을 어찌할꼬.” 이제는 눈 속에 묻힌 영감님 무덤 앞에서 애통하는 강계열 할머니의 울음이 메말랐다. 그래도 ‘하늘 길 가볍게 떠나라’며 생전의 할아버지 옷을 소중하게 태우던 다정한 아내와 ‘지면 그뿐인 꽃 같은 생애’를 일찍이도 깨달았을 할아버지의 다정한 미소가 한동안 봄날 같은 겨울을 만들어 줄 것만 같다. - ≪계간문예≫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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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가까운 문우들이 ‘언제 책을 내느냐?’고 물어옵니다. 후속 수필집이 궁금한가 봅니다. 마음이 고마워 어서 내겠다고 약속한 지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이젠 글들이 아우성을 칩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것처럼 그동안 발표한 글을 엮어 전하려 합니다.
『목동은 그 후 어찌 살았을까』2001.9.25(범우사)이후 벌써 15년이 지났습니다. 부지런한 작가라면 여러 권을 내고도 남았을 세월입니다. 한 번 하고도 절반은 변했을 강산, 다행인 것은 한순간도 글쓰기를 멈춘 적이 없는 일입니다. 귀여운 손자를 등에 업고도 글쓰기에 몰두했습니다. 잡지나 인터넷에서 문우들도 더러 궁금증을 풀었을 터입니다.
그런데도 최근 몇 년 동안 절망에 빠졌습니다. 몸과 마음을 바쳐온 글쓰기를 과연 계속해야 하는지 자문해 보았습니다. 누군가의 무단 차용으로 돌아온 수필집, 그 공포와 불안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결국 나름의 치열한 작업을 멈출 수 없다고 결정했습니다. 단 한 분의 독자를 위해서라도 사명감을 다해 써야겠다고 작정했습니다.
수필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용기 잃은 누군가에게 작은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무심히 지나쳐 버릴 일과 풍경이 부족한 제 사유로 부활한다는 것, 그 또한 사명으로 여겨집니다. 수필은 제게 ‘유심의 선물, 사랑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멀리 광주에 사는 시인께서 제 고향을 꼭 가보고자 했습니다. <사모곡>의 뿌리를 보고 싶다니 부끄럽지만 감사했습니다. 폭설이 쌓인 영하 15도 大寒대한의 고향 길을 친구들과 동행했습니다. 여고 시절 짝궁이었던 영란, 선숙, 그리고 나의 발자취가 궁금하다던 P시인과 초중고 모교를 돌아보고 눈 쌓인 아버지 산소로 참배하러 갈때는 가슴이 시리고도 벅찼습니다. 세상에서 저를 가장 사랑하셨던 분<아버지의 뒷모습>과 <사모곡>이 내 키보다도 큰 싱싱한 측백나무 두 그루를 벗삼아 남향받이에서 반기셨습니다. 부족한 수필을 공감해주는 분이 있다는 건 참으로 과분한 흥복입니다.
그동안 큰 가르침을 주신 임헌영 평론가님, 박상률 소설가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흔쾌히 발행을 허락하신 문예바다 백시종 소설가협회 전 회장님께도 고마운 마음 올립니다. 그리고 언제나 말없이 응원해 주시는 남편 김진호 님께 마음 다해 고마움 전합니다.
멀리 외국에서 학문 연구에 몰두하는 아들 며느리, 사위와 딸에게도 마음 전합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려니, 인과응보로 돌아오는 결실의 진리를 일러주고픈, 부족하지만 절실한 어미의 선물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함께 해주신 한국신문, 그리고 수요반 문우들과 살뜰히 챙기는 아름다운 최화경 반장께도 고마움 전합니다.
2016년 8월, 율현동 산막에서
오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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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4의 글 ◆
사람은 겪어봐야 그 사람됨을 알게 되고 긴 세월이 지나봐야 그 사람의 참마음을 알게 된다. 오길순의 작품을 읽으며 글과 사람이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게를 지고 가는 아버지의 얼굴에서 연꽃의 미소를 찾아내고 그 낡은 지게가 마음의 화엄경이라 말하며, 또 시어머니의 유물인 오동나무 반닫이를 대하는 지순한 마음에서 평소 알고 있던 작가의 차분하고 온유한 성품을 엿보았기 때문이다. 그 어느 예술가의 손으로도 빚을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성품이다. 그러나 언어를 다루는 예술가, 즉 작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오길순은 오롯이 해낸 것이다. 그리운 마음의 외양간을 탯줄처럼 감고 있는 작품들이 따뜻하다. 사람이 불혹을 지나 지명지년知命之年에 이르고 환갑이 지나면 한숨도 아껴 쉬어야 한다는 깨우침이 있는 글들이 간절한 때에 오길순의 수필집이 그 역할을 해주리라 믿는다
― 문효치(시인·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오길순 선생의 수필에는 사람과 이야기가 있다. 그녀는 사람들이 만드는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잘 수습하여 수필로 쓴다. 사람, 혹은 이야기가 궁금한 이들은 그래서 그의 글을 탐낸다. 하지만 그녀가 갈무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흉내 내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 박상률(작가)
오길순 작가의 『내 마음의 외양간』을 읽으면, 마치 대나무 숲속에 누워 있는 느낌을 받는다. 무엇보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탐구해 들어가는 과정 역시 대나무를 흔들다 온 바람처럼 싱그럽기 그지없다.
― 백시종(소설가)
오길순 작가는 구구절절 표절의 유혹을 느끼는 출중한 글솜씨와 품격 높은 소재, 끝을 짐작할 수 없는 해박한 지식과 상상력, 작품 하나하나마다 인생의 삶의 질과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감동적인 메시지를 선사하는 당대 최고 반열의 문인이요, 지성인이다. 오길순 작가님, 항상 건강하신 가운데 계속 용맹정진하시기 바랍니다.
― 신연희(서울특별시 강남구청장)
오길순의 작품이 유독 빛나 보이는 것은 내성과 성찰, 그리고 탄탄한 구조와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연결 고리의 구성력 때문이다. 그 기저에 평화와 초연이 함께함으로써, 더 숙성된 기쁨을 나눌 수 있었으리라.
― 임헌영(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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