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출판의 방향과 과제
글/ 윤창화
1. 서언
학술과 문화 교류의 국제화,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면서 필요한 외국의 불교서적을 알기 쉽게 번역하여 출판하는 것은 불교학과 출판 문화 발전에 꼭 필요한 일일 것이다. 다만 원저의 의미를 독자에게 얼마나 충실히 전달해 주느냐가 번역 출판의 관건임과 동시에 그를 기반으로 자국의 문화에 얼마쯤 보탬이 되느냐가 그 지향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번역 출판이 이처럼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서 많은 출판사들이 너무 손쉽게 번역물들을 내고 있어서 너무 무책임하고 무분별한 번역이 이루어 지고 있지 않은가 하는 비판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뛰어난 번역은 제 이의 창조'라고 하듯이 뛰어난 번역은 때로 원저를 능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번역을 아무리 잘했다고 하더라도 원저의 내용을 100% 전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언어란 그 나라의 민족성과 사상, 문화, 사고방식, 그리고 생활습 관까지도 포함하는 총체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나라의 언어로 쓰인 책을 그 나라와 다른 사고 방식과 문화 속에 집어 넣어 이해하기 쉽게 옮기는 일은 그리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예부터 한자 문화권인 동양권에서는 번역의 개념을 서로 조금 다른 두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곧, 하나는 일반적인 번역과 또 하나는 역경 (譯經) 이라고 하여 좀 격있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한자로 된 경전의 번역이다. 사실 역경과 일반 영어서적이나 일서 번역은 서로 큰 차이가 없으나 다만 그 대상이 전자는 경전이고 후자는 경전이 아닌 해설서라는 데 차이가 있다.
필자는 여기서 한문 경전의 번역 문제는 다루지 않고 , 최근 일본어나 영어 등 외국어로 이루어진 책을 번 출판하는 데에서의 문제점과 앞으로의 과제 등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2. 번역 의존도가 높은 국내 출판 상황
현재 우리나라 불교 서적 가운데 번역서의 비중은 얼마나 될까. 지난해 불교 출판협의회에서 발간한 불교 서적 종합 목록을 조사한 결과 번역의 비중은 약22퍼센트에 불과했다. 필자 역시 뜻밖이기도 했다. 물론 이 목록에 모든 불서가 수록되지 않았음을 감안하 더라도 25퍼센트를 넘지는 않을 것이다.-- 한문 원전 번역은 번역에 포함시키지 않고 저술로 분류했다.-- 이 러한 비중은 어느 분야든 비슷한 비율을 나타낸다. 그런데 문제는 에세이, 소설류, 경전 번역, 기초 영문서들을 제외한 불교 교리, 역사, 사상서에서는 번역의 비중이 약 60퍼센트이고 그 가운데서도 일서 번역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 이 글은 1990년대 초반에 쓰여진 글이다. 2000년대 부터는 일본어 번역보다도 불교계에서 영어 책 번역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편집자 주
그러면 이렇듯 교리, 사상, 역사서에 외국서 번역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그 가운데서도 일서 번역의 비중 이 큰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일본과 우리나라는 같은 동양 문화권에 있을 뿐더러 지정학상 인접해 있어서 좋든 싫든 문화와 언어의 교류를 통해 서로에 대한 이 해가 얼마쯤 이루어져 있으며, 또한 일어가 영어나 그 밖의 외국어보다는 어순이나 용어들에서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중 요한 것은 내용이나 구성 기획에서 일서가 갖는 뛰어남을 들 수 있다. 물론 일본의 불교 연구에도 나름대로. 문제점은 있게 마련이고 또 타문화권 불서 가운데에는 일서보다 뛰어난 불서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일서에는 크게 못 미친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의 불교학 저는 학술 연구의 기분이라 할 수 있는 철저한 문헌 분석과 고증을 통해 다양한 문제제기와 명쾌한 해석을 내리는데, 그 숫자 또한 세계에서 가장 많다. 이렇게 일본은 이미 뛰어난 학술서가 산출될 수 있는 기본 토양이 마련되어 있다고 하겠다. 필자의 이런 관점을 놓고 흔히 요즘말로 '왜색 문화의 발상’ 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반일 감정을 앞세워 현실을 덮어버리기보다는 우선 우리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생각해 보자. 필자는 앞의 여러가지 문제보다도 더 중 요한 것은 불교 교리, 역사, 사상서 등 주요 부문에서 국내 저술이나 연구가 크게 부족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저술이라도 연구로 이루어지기보다는 대개 외국 서적의 연구 성과를 그대로 반영하거나 내용을 모자이크식으로 조합하기가 십상이다. 물론 국내 저술이 한결같이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한국 불교학에 관계된 몇 부분을 제외하고는 거의가 외국 의존 비중이 높은 것이다.
3. 번역출판의 문제점
가끔 불교계의 신문이나 잡지에서 번역 출판의 문제점을 다루고 있다. 그것을 보노라면 마치 번역서 는 모두 문제 투성이고 저술은 그렇지 않은 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신통찮은 저술보다는 뛰어난 외국의 불교 서적을 충실히 번역한 것이 더 낫다는 지적도 꽤 있다. 그렇다면 좀더 실질적인 문제는 번역에서 오는 오류와 언어의 차이, 곧 번역 용어는 거의 같은데 의 미의 섬세한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역자가 원서에 충실한 나머지 원어를 그대로 직역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전문 번역 인력의 부재를 들 수 있다. 번역을 제대로 하려면 번역 기술상 요구되는 능숙한 해석력과 번역 분야의 전문 지식, 그리고 우리말에 대한 인지력, 문장력 들을 고루 갖춘 전문 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불교 서적을 번역하는 사람들중에 는 불교를 좀 알고 외국어를 좀 할 줄 안다는 것만으로 번역에 뛰어드는 사람도 있다.
잘못된 번역으로 빚어지는 문제는 일차적으로 편집자가 하나하나 원서를 대조하여 윤문, 교정해야 하는 출판사측의 시간적, 경제적 낭비와 비생산성은 제쳐두더라도 불충실한 번역으로 빚어지는 오류들이 그 책이 없어질 때까지 오래도록 남는다는 것이다.
4. 번역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
속칭 날림번역, 졸속번역에 대한 문제점은 조금만 관심을 갖고 보면 눈에 쉽게 뜨인다. 하지만 번역 실태의 문제점을 나열하기보다 그 해결을 위한 방안을 생각해 보는 것이 더 현명하겠다.
대부분 출판사는 창작이나 저술과는 달리 번역은 주로 매당 원고료로 계산하기 때문에 역자는 번역이 완료되어 원고를 출판사에 전달해 주면 그것으로 책임이나 권리가 끝나는 것으로 되어 왔다. 이와 같은 관행은 그 원고가 책으로 나와 이쇄, 삼쇄를 거듭하도록 저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책임지는 번역문화를 이루지 못하는 한 원인이 되어 왔다. 그러나 가장 시급한 것은 제도적 개선이라고 하겠다. 곧, 현행 대학이나 교육부 제도에서 번역은 학문 업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이 하루빨리 개선되어 번역도 하나의 학문업적으로 인정된다면 역자들이 좀더 신중하게 그리고 애착을 갖고 번역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근본적으로 번역이 제도의 보호를 받고 역 자들도 책임있는 번역으로 독자들에게 신뢰를 쌓고 독자 역시 문제성 있는 번역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한다면 번역상의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올바른 번역 문화를 이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실제 책을 만들고 있는 출판사의 안목과 저력이 있어야 합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출판은 문화의 꽃' 이라고 인식되어 왔다. 왜냐하면 출판은 그 나라의 정신문화를 총체적으로 표현해 내는 지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국민 한 사람이 책 몇권을 읽는가에 따라 우리는 그 나라 문화의 척도를 재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번역은 출판 문화의 큰 줄기를 이 루고 있다. 다행히 요즘 들어서 젊은 소장학자들을 중심으로 충실하게 번역해 주는 사람도 있어 우리 번역 문화도 많이 향상되어 가고 있다. 실질적인 면에서 아 직도 개선해 나가야 할 문제점을 많이 안고 있지만 확실한 문제점이 드러난다면 점진적으로 발전할 것임엔 틀림없을 것이다.
해인 124호에서 전재
1992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