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성령의 특이한 은사들 보다도 뛰어납니다
에드워즈는 두 번째 강해에서 사랑을 다른 어떤 것들과 비교함으로써 어느 것이 우월한지를 숙고하려고 한다. 즉 성령의 특이하고 이적적인 은사들(방언,예언등)과 성령의 일반적인 감화력의 결과로 나타나는 그리스도인의 사랑, 신적인 사랑을 비교하여 어느 것이 우월한 것인지를 밝히려고 한다.
바울은 고전 12장에서 특이하고 이적적인 은사들에 대해서 열거한 후에 마지막 절에 이르러서 "더욱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권한다. 바울에 의하면 모든 은사들을 다 합하여도 능가하지 못할 가장 좋은 은사가 있다는 말이다. 그것이 없이는 다른 은사가 아무리 가치 있는 것이라도 소용이 없게 된다는 말이다. 성령의 특이한 은사들을 다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바울은 말하려는 것이다.
사랑은 감화하고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의 은사의 열매이다. 사랑은 모든 은사보다 탁월하다. 다른 모든 성령의 은사들을 다 합한다고 하여도 그 사랑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모든 구원의 은혜의 요약이라고 앞서 말했다. 사랑이 없으면 성령의 모든 은사들이 아무 것도 아닐 정도로 큰 것이다. 성령의 모든 은사들은 사랑이 없으면 아무런 유익이 없다. 에드워즈는 제2설교에서 말하려고 하는 교리를 다음과 같이 요약 제시한다: “마음에 사랑의 은혜로 역사하는 하나님의 성령의 일반적인 감화는 성령의 어떠한 은사보다 훨씬 탁월하다(That the ordinary influence of the Spirit of God, working the grace of charity in the heart, is a more excellent blessing than any of the extraordinary gifts of the Spirit)". 에드워즈가 말하는 바 ”성령의 일반적 감화“란 마음 속에서 사랑의 은혜로 역사하는 성령의 작용을 의미한다.
1. 성령의 일반적인 은사와 특이한 은사의 구별
구원하는 믿음, 구원 받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랑등은 성령께서 구원얻는 경건한 사람에게 주시는 특별한 은사(Peculiar and Saving Graces of the Spirit)가 있다.
일반적 은사(ordinary gifts)는 모든 교회 시대에 걸쳐 계속 주어진다. 그런 은사들은 죄를 깨우치고 회개하여 회심할 때에 허락된다. 그 은사들은 성도들의 성화와 위안을 촉진하여 성도들을 바로 세워 주는 데 소용된다. 이제 주의해서 읽어야 할 것은 에드워즈가 앞서 말한 보통 은사(common gifts)와 일반은사가 같은 것이 아니다는 점이다. 믿음 사망, 사랑과 같은 일반적 은사는 하나님께서 모든 시대의 교회에 일반적으로 부여하시는 은사이지만, 불신자나 신자 가리지 않고 공통적으로 주시는 은사인 것은 아니다. 오늘날 불건전한 성령운동이 판을 치고 있는 한국 교회 현실에서 더욱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성령의 특이한 은사들(즉 방언, 이적, 예언등)은 교회내에 일반적으로 주어지는 은사가 아니지만, 또한 경건한 사람들만이 받을 수 있는 은사도 아니다고 하는 에드워즈의 기가 막히게 예리한 지적이다. 마태7:22-23에 의하면 귀신 쫓아내고 선지자 노릇하며 많은 권능을 행하는 특이한 은사는 불경건 사람들 가운데도 주어질 수 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2. 특이한 은사가 가지는 큰 특권
성경에 나타나는 모세, 다윗, 다니엘 같은 선지자들을 생각해 보라.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으로 그들은 성경의 많은 부분들을 기록했다. 이들에게 주어졌던 예언의 은사는 그리스도의 선지자직에 일치하는 위대한 특권이다. 때로 이 은사가 자연인에게 주어진 경우도 없지 않으나(에드워즈는 예를 들지 않았지만 발람?), 그 특권은 주로 성도들에게 주어졌다. 그것도 가장 뛰어났던 성도들에게 주어졌다. 이러한 은사들은 보통 하나님의 특이한 사랑과 은총의 증표로서 부여되었다. 다니엘은 크게 사랑을 받은 자였고, 계시록을 기록한 요한은 그리스도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제자였다.
3. 사랑은 특이한 은사보다 더욱 뛰어나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께서 예언을 말하고 이적을 행하는 이상한 은사들만을 주신다면, 그것만으로는 그것을 받은 사람들이 성령의 동참자들이 되게 하지 못한다. 곧 그 자신의 성품안에 영적인 사람이 되게 하는 은혜를 함께 받지 못하면 특이한 은사들 만으로는 영적인 사람이 되지 못한다.
목적은 수단보다 우월하다. 수단이 목적에 복종하지 않으면 그것은 악하게 된다. 수단 자체로는 선한 것을 스스로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목적을 수단보다 더 우월하게 숙고해야 한다.
1) 성령의 특이한 은사들이 가장 큰 특권인가? 영혼 안에서 부어지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일으키는 구원하는 은혜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축복 중에서 가장 위대한 축복이다. 구원하는 은혜는 어떤 자연적인 천성과 재능보다 크고, 위대한 자연의 천성들보다 더 크다. 또한 일반적인 학식보다 큰 것이며, 외부적 부요나 영예, 황제나 왕이 되는 것 보다 큰 것이요. 솔로몬의 모든 부요함과 영예와 광대함과 그의 모든 영광을 다 합하여도 그 구원하시는 은혜에 미치지를 못한다. 심지어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 보다 영혼 속에 그리스도를 잉태하는 자가 더 복되다고 말씀하신다(눅11:27,28).
2) 특이한 은사가 은혜 받은 표증은 아니다. 특이한 은사를 받았다는 것이 구원하는 은혜를 받았다는 확실한 증표는 될 수 없다. 두 가지는 전혀 무관할 수 있다. 성령께서 꿈을 꾸게하고 환상을 보게하는 특이한 감화도 은혜에 대한 분명한 증거는 아니다. 우리는 오히려 성령의 모든 열매들이 은혜의 증거들임을 생각하고 비중을 두어야 한다. 그 모든 열매들의 요약이 그리스도인의 사랑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모든 은혜의 요약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이든지 간에 자기들의 선한 성장 상태를 알 수 있는 오직 유일한 방식은 마음속에 이 신적 사랑의 역사가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사랑이 없으면 당신이 좋아하는 은사들을 다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런 사람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
3) 특이한 은사가 시대마다 필요한가? 방언을 말하고 예언하는 은사를 가지지 않고도 그 은사들이 주어진 시대보다 훨씬 영광스러울 수 있음을 부인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만일 성령께서 그의 거룩하게 하시는 감화력을 대량으로 부어 주신다면 특이한 은사들을 주시지 않으면서 영광스러운 교회 시대가 되지 못할게 없다. 그래서 사도는 더 좋은 길이 있다고 열심을 다하여 역설한 것이다(고전12:31). 이 영광을 교회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영광이다. 이런 좋은 길을 따라서 교회가 충만해 지면 사랑과 인애가 온전히 왕 노릇을 하는 하늘에 있는 교회와 방불한데 가 있다.
4) 구원의 은혜를 받은 이들이 찬미할 이유. 동정녀 마리아가 누린 위대한 특권도 사도 바울이 삼층천에 이끌려 가서 경험한 일도 그리스도와 함께 되는 특권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에 찬양하고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 큰 사랑을 부어주시기 위해 자신의 피로써 우리를 구속하셨고, 성령께서 이 구원의 은혜와 사랑을 우리 마음에 인쳐 주셨는데, 어찌 우리가 찬송하고 영광을 돌려 드리지 않을 것인가?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하리이까?”라고 우리는 매일 간구하도록 하자. 우리가 가진 높은 특권 의식을 행실을 통해서 표현하도록 하자. 즉 하나님께 순종하고 복종하고 경외하고 소망을 주께 두는 마음에서 우리의 사랑을 드러내고, 이웃을 향해서는 온유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겸손하고 자애로운 행사와 기회있는대로 모든 사람들에게 선을 베푸는 일로 인해 그 신적 사랑을 나타내도록 하자.
5) 새롭게 되지 않은 사람들(all unrenewed persons)은 이 하나님의 사랑의 은혜를 위하여 간구하라. 하나님께서는 개인적으로나 한 백성 전체로나 우리를 향하여 가장 부요한 복음을 주셨다. 우리를 불러내사 왕 같은 제사장들로, 거룩한 나라로, 그의 소유된 백성들로 삼으셨다. 우리를 어둠에서 불러내사 기이한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자를 찬미하는 것이 우리들에게 개인적으로나 한 백성으로서 마땅한 처사이다(시5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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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적 분별력 원문보기 글쓴이: 진실
첫댓글 방언, 예언은 진짜 은사로 할수도 있지만 거짓으로 쇼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이란 그것이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