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과 뒷담화
10월 9일은 제576돌 한글날이다. 한글의 독창성과 과학성을 알리고 한글 사랑 의식을 높이기 위해 제정한 법정 공휴일이다. 그런데 올해 한글날은 왠지 우울하고 쓸쓸하고 초라해 보인다.
대통령이 국제외교무대에서 우리말 한글로 욕설에 가까운 비속어를 사용해 온 나라가 시끄럽다. 유엔에서 열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기금모금행사에 참석한 뒤 행사장을 나오면서 발언한 막말이 문제가 됐다. 발언에 등장한 우리말을 놓고 정치권과 언론이 온갖 해석과 주장, 변명으로 날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발언이 비속어가 있는 막말이었고 행사 후 우리 측 관계자에게 한 ‘뒷담화’였다는 것은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치인의 막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마주 앉은 맞담화에서도 자극적인 언사를 사용하며 상대를 조롱하고 비방한다. 할 말과 못할 말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 욕설까지 오간다. 그런데 막말보다 더한 악덕은 뒷담화이다. 뒷담화는 칭찬보다 험담이 주를 이룬다. 숨어서 하는 인격 모독이다. 비겁하고 옹졸하고 공동체의 화합과 평화를 무너트린다.
심리학에 따르면 뒷담화는 열등감과 현실에 대한 불만 그리고 외로움의 표현이다. 좌절과 굴욕을 감추려는 슬픈 몸부림이고 상처받은 영혼의 마지막 저항이다. 살면서 한 번이라도 뒷담화를 해 보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막말도 뒷담화도 인간적으로는 이해가 된다. 그러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노출되는 대통령의 말은 정직하고 명확해야 하며 행동은 절제돼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된다”고 했다. 뒷담화는 아무리 완벽한 논리로 조언한다고 해도 진심으로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저 분노를 표출하는 뒷담화일 뿐이다. 뒷담화는 말을 받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가능하다. 따라서 뒷담화에 가담하지 않고 그 자리에만 있어도 동조자가 된다. 뒷담화는 SNS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독버섯처럼 빠르게 확산해 또 다른 뒷담화를 낳는다. 뒷담화의 피해자는 상대뿐 아니라 공동체 그 자체가 될 수 있다.
정치에 대한 불신은 정치인이 무분별한 막말과 뒷담화로 서로 반목과 대립을 일삼기 때문이다. 정치의 본질은 의견 차이로 파열음을 낼 수밖에 없는 현안에 대해 양보와 타협을 통해 차이를 줄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차이는 ‘막말 없는 맞담화’로 풀어내야 한다.
대통령이 말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정치의 품격은 물론 국격까지 떨어진다. 공자에게 제자인 자로가 “선생님께 정치를 맡기면 무엇부터 하시겠습니까?” 라고 묻자 공자는 이렇게 답했다. “필야정명호(必也正名乎)”, 반드시 이름을 바로 잡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름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다”고 설명했다. 명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바르지 않고 말이 바르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한글의 대중화와 근대화에 개척자 역할을 한 주시경 선생도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린다”고 했다.
대통령의 국정 수행은 공론의 장에서 펼쳐져야 한다. 사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상의 언어와 행태로 이루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막말과 뒷담화는 밀통과 밀약, 야합의 밀실 정치를 낳을 뿐이다.
우리말 한글은 태어날 때부터 소통과 화합의 언어였다. 세종대왕은 백성들이 쉽게 익혀 서로의 뜻을 잘 전달하기 위해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었다. 반목과 질시, 차별을 위한 언어가 아니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처럼 말 한마디가 갖는 힘은 헤아릴 수 없이 크고도 넘친다. 국민이 눈살을 찌푸리는 지도자의 말과 언어는 백성의 소리도 하늘의 소리도 아니다. 한글날,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어떤 말과 언어로 실망하고 상처 난 국민의 마음을 헤아릴까? 자못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