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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에서 엘림으로
(출애굽기 15장 22-27절)
인생길을 가다보면 생각지 않는 어려움을 만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둘로 나뉘어집니다.
믿음 있는 사람은 어려움을 만나면 하나님을 더 의지합니다.
그런데 믿음이 없는 사람은 어려움을 만나면 하나님께로부터 떠나버립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어려움을 만나면 더 기도하고 하나님을 더 의지합니다.
그러면 오늘 26절에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우리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여호와시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의 상처를 싸매주시고 어려움에서 해방시켜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떠나는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조금만 어려움이 있으면 하나님께 대항하고 그러다가 광야에서 죽어버린 것처럼 문제 속에 빠져가지고 결국 실패하는 인생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인생길을 걸어갈 때 모든 일이 착착착 잘 됩니까? 잘된다고 너무 자만하지 마세요.
인생길에는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꼭 어려움이 있습니다.
또 내가 어려운 일을 지금 만났다고 너무 낙심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우리를 치료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믿으세요.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들도 인생을 생각하고 살고, 깊이 있게 사는 사람들은 어려움을 만났을 때도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여러분! ‘세옹지마’ 라는 말을 아시지요? 다 잘 아실거에요.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중국의 어느 마을에 노인 한분이 계셨는데.. 말 한 마리를 키우며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옛날이니까 말이면 재산목록 1호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어느 날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그러니까 동네 사람들이 이 노인한테 와서 이런 말을 합니다.
“영감님.. 말을 잃어버려서 얼마나 섭섭하십니까?”
그런데 이 영감님은 마음의 동요가 없는 것입니다. 마음이 평안합니다. 그리고 뭐라고 말하는고 하니..
“누가 압니까? 이 일이 복이 될런지...”
그러니까 사람들이 생각하기를..“아무래도 저 노인이 말을 잃어버리더니 정신이 이상해졌나보다..”그랬습니다.
그런데 한달쯤 지나니까 집나간 말이 말 한 마리를 데리고 두 마리가 온 것입니다.
한 마리를 잃어버렸다가 두 마리가 되었네?
그러니까 동네 사람들이 또 와서 “아이고.. 할아버지 얼마나 좋으십니까? 한 마리 잃어버렸다고 걱정했더니 두 마리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이 영감님이 뭐라고 하는고 하니.. “글쎄, 누가 압니까? 이 복이 화가될는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엇을 가볍게 쉽게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영감님은..
그런데 일이 생겼습니다. 이 집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그 말을 타고 놀다가 그만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그래가지고 다리병신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동네사람들이 또 와서 “말이 두 마리 들어와서 좋아했는데.. 그만 아들이 말을 타다가 다리가 다쳐서 어떻게 합니까?”
그래도 이 영감님이 뭐라고 말하는고 하니.. “누가 압니까? 이 화가 또 복이 될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얼마 후에 이 나라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래가지고 할아버지, 어린아이 빼놓고 남자들은 전부 전쟁에 붙들려갔습니다.
그래서 이 동네에 있는 남자들은 전부 붙잡혀가서 전쟁에서 다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 아들은 걷지를 못하니까 전쟁에 끌려가지 않아서 생명은 건진 것입니다.
그 뒷이야기 모르시죠?
이 동네에 남자는.. 총각은 이 아들 하나뿐이니까 그 동네 처녀들 다 데리고 살았대요..
이것은 거짓말이고..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보세요!
하나님을 안믿는 사람들도 인생을 좀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은 좋은 일을 만났다고 헤헤 거리지 않고.. 또 어려운 일을 만났다고 금방 낙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을 보면 그런 분들이 많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면, 요셉..
형들에게 죽임을 당할 뻔 했지요.. 죽이려고 물속에 던졌잖아요.. 형들이.. 남도 아니고 형이...
나중에는 요셉을 팔아버렸습니다.
또 보디발의 집에서 종노릇을 하는데.. 열심히 열심히 일을 했는데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끌려갑니다.
감옥에서도 빨리 나올 수 있는 길이 있었는데.. 그만 2년 동안 감옥에서 지냈습니다.
이 정도가 되면 원망할 수 있잖아요? 하나님, 도대체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내가 이렇게 억울한 일을 당하는데.. 하나님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그런데 요셉은 하나님을 원망안합니다.
그 내용이 마지막에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된 후에 자기를 팔았던 형들이 양식을 사러 왔다가 만나지요..
우리 같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이놈들 잘 만났다.. 나를 노예로 팔아먹어? 이랬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성경에 보면 요셉이 형들을 위로합니다.
형님들.. 나를 노예로 팔았다고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마세요..
나는 이렇게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살려주시려고 나를 먼저 이 나라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형들을 용서해줍니다.
이것을 보면 요셉은 어려움을 만나고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인생을 열심히 산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요셉을 들어 귀하게 사용하신 것입니다.
인생길을 가다가 어려운 일을 만났다고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이 왜 이런 일을 나에게 주셨을까.. 깊이 생각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여러분들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읽은 말씀.. 우리가 잘 아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바다를 건넌 후에 사흘 동안 광야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목이 마르고 광야에서 땀도 많이 흘리고 힘들겠어요...
그런데 마라라는 곳에 도착해서 물을 먹으려고 보니까 물이 써서 못 먹는거에요..
어려움을 당했어요..
보세요~ 그랬더니 믿음 없는 백성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물이 써서 못 먹겠습니다. 모세에게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런데 똑같은 경우를 만났는데.. 믿음 있는 모세는 무엇을 했는고 하니,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모세야! 나뭇가지를 꺾어 물에 던져라..” 그래서
나뭇가지를 꺾어서 물에 던졌더니 그 물이 단물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내용입니다.
인생길에도 마라가 있습니다. 쓴 물이 있습니다. 인생길에 쓴물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믿음 없이 원망하는 자가 되지 말고, 마라를 만나면 기도하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면 믿음의 사람은 세 가지를 꼭 하세요.
첫째, 무조건 기도먼저 하세요.. 기도부터 해야 합니다. 무조건 기도부터 해야 합니다.
쓴물을 만나면 무조건 기도해야 합니다.
백성들이 원망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한사람, 모세를 통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기도해야합니다
원망부터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되세요~
두 번째로 돌아보세요!
무슨 말인고 하니 지금 내가 쓴물을 만났습니까? 마라를 만났습니까?
원망하지 말고 기도하면서 내가 살아온 인생을 쭉 돌아보세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하는데.. 그들이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았다면 원망은 안했을 것입니다.
애굽에서 종노릇을 하다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해방을 받았지요..
바로 사흘 전에 홍해를 육지처럼 건넜습니다.
홍해바다가 갈라져서 그 속을 건너왔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게 하신 그 하나님을 생각했다면 이까짓 쓴물을 단물로 만드는 것이 하나님께 문제가 되겠습니까?
이까짓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칼국수 만든 사람이 수제비를 못 만들겠어요?
칼국수를 만들려면 얼마나 힘듭니까? 비벼서 썰어서 하는데 수제비는 뚝뚝 떼어서 넣으면 되는데..
홍해바다도 갈라서 건너게 하신 하나님이 그까짓 쓴물을 단물로 만드는 못만들겠냐구요..
그러니까 내 지나온 과거를 한번 돌이켜 보아야합니다.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저의 지나온 과거를 돌이켜보았습니다.
사실 저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부여군 양화면 오량리 논에서 죽었을 나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살았습니다.
학교에 다니면서 두 번씩이나 아파서 학교를 휴학하고.. 그때 이미 나는 죽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시고 여기까지 오게 했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지금 내 앞에 쓴물..? 마라..?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인생길을 걸어가다가 어려운 일을 만나면 한번 뒤를 돌아보세요.
내 인생.. 내가 살아온 길..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여기까지 온 것.. 그것을 생각하면 오늘 내 앞에 마라? 가 있다고 원망 안합니다. 아멘?
그리고 세 번째, 기다리세요.
도대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기다리세요..
그냥 물이 쓰다고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이 모르시겠어요?
홍해를 건너서 이스라엘 백성이 지금 가는 길을 하나님이 모르시겠어요?
가다가 마라? 쓴 물이 있다는 것을 하나님이 모르시겠냐구요.. 하나님은 다 아시지요..
우리는 인생인지라 모르지만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사흘 후에 홍해 바다 건너서 마라에 도착할 것을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그러니까 도대체 하나님의 무슨 뜻이 있는가.. 기다리세요.
제가 요즘 은혜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자.. 도대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나는 까맣게 잊어버렸던 꿈이 있었습니다.
30년 전에 제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하나님 앞에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꿈을 제가 30년동안 잊어버리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꿈을 나에게 주셨습니다.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아.. 이것이구나.... 나는 이제 그 꿈을 따라 살거야.. 하나님이 꿈을 찾게해주셨습니다.
그러니까 마라 앞에서 우리는 그냥 왜 나에게 이런 쓴물을 줬냐고 왜 그러냐고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기다리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는 해결방법이 있습니다.
간단합니다.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나뭇가지를 하나 꺾어서 던지라는 것입니다.
꺾어서 던졌더니 쓴물이 단물이 된 것입니다.
성경학자들이 해석을 합니다. 이 나뭇가지는 무엇을 상징하느냐..? 예수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내 인생이 쓴물입니까? 눈물입니까? 괴로움입니까? 아픔입니까?
나뭇가지! 예수그리스도가 내 인생 속에 들어오면 악인은 선인이 되고, 어두움은 빛이 되고, 절망은 소망이 되고, 눈물은 웃음이 되고, 불행은 행복이 되고, 가난은 부유가 되고, 쓴 인생은 단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왜 10년, 20년을 믿었는데도 내 삶에는 계속 쓴물만 있을까?
예수그리스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만 다녔지 예수그리스도가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가 내 삶속에 들어올 때 쓴물은 변하여 단물이 되는 것입니다.
원망할 시간이 있으면 기도하세요!
이스라엘 백성이 조금만 어려움을 만나면 무조건 원망을 합니다. 또 원망하고 또 원망하고..
여기에서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는데.. 모세가 기도해서 나뭇가지를 꺾어서 물에 던지니까 쓴물이 단물이 된 것을 보았잖아요? 그러면 깨달아야죠..
그런데 여러분! 집에 가서 출애굽기 16장을 읽어보세요!
16장에 들어가자마자 2절에 또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래서 계속 원망.. 원망.. 이라는 말이 대여섯번 나옵니다.
17장에 넘어가면 물 때문에 또 원망합니다.
그러니까 원망은 불신앙에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원망하지 마세요!
남을 원망하지 마세요! 그것은 불신앙입니다.
저도 여러분에게 원망할 거리를 찾으면 많지요.. 여러분도 저에 대해서 원망할 것을 찾으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은혜가 있을 때는 상대방에게 좋은 것이 보이지만, 은혜가 떨어지면 나쁜 것..자꾸 원망거리만 보이게 됩니다. 교회와도 자꾸 원망거리만 보입니다.
지금 내가 당한 일이 마라의 쓴물처럼 도대체 왜 이런 일을 만날까.. 내가 이해할 수 없어도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따라합시다! 나는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나를 선한 길로 인도해주실 줄로 믿으세요! 이것이 믿음입니다.
저들이 이런 사건을 마라에서 겪고, 그 다음에 갔더니 어디를 만나는고 하니, 엘림을 만납니다.
엘림에 갔더니 이것이 웬일입니까? 놀라운 일이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그 곳에 있는데.. 보니까 물샘 열두개가 있는데.. 물이 펄펄 솟아오르고, 그 곳에 종려나무 칠십주가 우거진 오아시스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잘 보세요! 원망의 땅 그 옆에 엘림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 예비해 놓으셨는데.... 마라 다음에 엘림에 도착하도록 하나님은 예비해 놓으셨는데..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마라? 그것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불평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가끔 우리를 깜짝 깜짝 놀라게 하십니다. 뒤에서는 바로의 군대가 쫓아오고, 앞에는 홍해바다..
그때 하나님은 깜짝 놀라게 하셨습니다. 어떻게? 홍해를 육지처럼 갈라버리십니다.
마라의 쓴물.. 나뭇가지를 하나 던졌더니 단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메추라기를 내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저들이 엘림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감사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냥 물 곁에 장막을 쳤더라.. 물론 왜 속으로 감사하지 않았겠어요? 감사한 사람도 있었겠죠.. 그런데 그렇다면 그런 감사는 가짜라는 것입니다.
왜? 16장 2절에 가면 “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가 그립다..”
이렇게 원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엘림에 있을 때도 하나님 앞에 감사를 못한 사람입니다.
언제나 원망하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환경이 와도 감사하지 않습니다.
어려울 때는 원망하고.. 왜 하나님 나를 이렇게.. 그렇게 말하지만, 쉽고 모든 것이 잘되면 이것은 그냥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은 원망거리는 많아도 감사거리는 없습니다
그져 잘되는 것은 그냥 잘되는 것이고, 섭섭하고 안되는 것은 다 하나님 탓이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다 망했습니다.
인생길을 걸어가다가 쓴물을 만난.. 마라를 만난 사람.. 다니엘이라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포로로 잡혀가서 높은 지위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을 시기하던 원수들이 꼼짝 못하도록 계략을 만들어서 다니엘을 죽이려고 작정을 합니다.
그래서 이제 다니엘이 하나님께 기도하면 사자굴속에 던짐을 당합니다.
사자굴속에 던짐을 당하면 죽는 것이지요..
왕의 도장이 꽉 찍힌 것을 다니엘이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보세요!
마라의 쓴 물을 만난 다니엘이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사자굴속에 던짐 받는 것을 알고도,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면서도 그는 집에 와서 예루살렘 쪽을 향해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예전에 하던 그대로 하루 세 번씩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아니. 문을 닫고 기도해도 되는데.. 이불을 뒤집어쓰고 기도해도 되는데.. 다니엘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쓴물을 만났을 때 그는 한님 앞에 기도합니다.
예전에.. 과거에 했던 그대로 기도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마라를 어떻게 바꿔주십니까? 엘림으로 바꿔주십니다.
그가 사자굴속에 던짐을 받았는데.. 하나님께서 지켜주셨고..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은혜를 부어서 더 높임을 받았고, 더 은혜스러운 더 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인생길을 가다가 마라를 만납니다. 그러면 무조건 기도하세요!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과거를 돌아보세요!
거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지금보다 더 어려웠던 일을 하나님이 이길 수 있도록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신 은혜의 흔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세요!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원망할 시간이 있으면 기도하세요! 원망할 힘이 있으면 하나님께 부르짖으세요.
그러면 마라가 변하여 엘림이 될 것입니다.
출처: 갑천뉴스타트 자연치유원 글쓴이: 엘리야
치료의 하나님
(출 15:22-27)
이 시간에 “치료의 하나님”이라는 제목입니다. 누구나 건강하게 사는 것은 모두의 한결같은 소원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우리의 질고를 담당하신 그리스도의 치유의 복음을 믿고, 전능하신 치료의 하나님께 기도하면서도 보통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을 다 당하며 사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시121:7에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겠다는 약속도 있는데 그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슨 문제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치료의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5절을 보면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이 말씀은 치료의 하나님을 계시하시기 전에 보여주신 그 배경입니다.
그 배경은 한 나무를 지시하셔서 그 나무로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만드셨습니다. 뭔가 이상하죠? 치료의 하나님을 소개하면서 초자연적인 기적이면 더 좋을 텐데 약초로 해독하신 그 배경으로 소개하고 계십니다. 먼저 여기서 가리키신 한 나무는 구속사적 관점에서 어떤 귀중한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오늘은 치유의 관점에서 보자면 약초도 쓰시듯 하나님의 방법은 다양하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오해하기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합니다. 기적도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러나 기적만이 하나님의 방법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현대의학이 하나님의 방법이냐? 그럴 수도 있지만 꼭 그렇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잘하지 못한 면도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무엇인가? 마11:28에 “다 내게로 오라” 하시면서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신 것처럼 최소한 하나님의 방법은 쉽고 고통스럽지 않고 부담스럽지 않고 완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방법을 어디서 찾는가? 그러나 그보다 앞서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질병의 시험 당했을 때 할 일입니다. 약1:5에 시험 당했을 때 할 일을 말씀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하나님께서 잘 만드신 몸이 왜 아플까? 그동안 건강했는데 왜 갑자기 아플까? 영적인 원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계2:5에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지혜를 구하면서 곰곰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원인을 알면 건강이 보입니다. 대부분의 질병은 여기서 해결됩니다.
엊그제 장례식에 갔더니 형수가 심장이 뛰면서 손이 떨려서 병원에 갔더니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고 해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뭘 드시고 계신 건 없는지, 그랬더니 녹용을 먹는답니다. 그것도 하루에 3봉씩 먹는다고 합니다. “바로 그 녹용이 심장을 뛰게 한 것입니다. 좋은 보약이지만 과용하셨습니다.” 성경의 원리로 진단하니 금방 알게 되었습니다.
여름에 갑자기 어느 분이 “지금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죽겠어요.” 그래서 오늘 드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세요. 오늘 더워서 물만 마셨습니다. 많이 마셨지요? 예 많이 마셨습니다. 싱겁게 먹은 데다 물을 많이 마시니 혈중염도가 떨어져 적혈구가 산소운반을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소금물을 마셔보세요. "예. 마셨더니 이젠 살 것 같아요."
이번에 화이자 백신을 2차 맞았는데 얼마나 피를 엉키게 하는지 머리가 아프고 입술이 까매지고, 그래도 쉽게 벗어나게 하는 약이 있습니다. 아스피린으로 쉽게 극복했어요. 의료당국에서 소용 없다던 아스피린을 먹은 사람들은 모두 벗어났습니다. 이 세상에는 어디엔가 우리를 구제할 약이 다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최고의 모본은 창세기의 고대 족장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의학적 인프라가 조금도 축적되지 않았던 그 시대에 그들이 무병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환경도 좋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경건히 섬겼던 셈의 자손들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지도와 도우심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예수님처럼 기적을 행하지 못한다고 실망하지 말고 더욱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지도하심을 받고 스스로 좋은 환경을 만들어가고 우리들도 배우고 닦아 치료의 사람이 되어 양떼들을 돌보고 복음전도하는 복된 여러분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agaser
부르짖어 드린 기도
출 15: 24-27
출애굽기 14장은 바로의 항복을 받아낸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넌 사건을 15장은 홍해를 건넌 후 이스라엘이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드린 노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본문은 15장의 끝 부분으로 홍해를 건넌지 사흘 되는 날 마실 물을 찾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원망했고 모세는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함으로 물 문제를 해결했다는 기사입니다.
오늘 본문은 기도를 방해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은총을 가로막는 것들은 무엇인가, 응답 받는 비결은 무엇인가 그리고 응답의 내용은 어떤 것인가를 우리에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1. 기도를 방해하는 것들
1) 고통입니다.
출애굽한 사람들의 수를 정확히 계수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장정만 60만 명이라고 했는데 주경가 케일은 장정이외의 사람들을 합하면 200만 명은 되었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지도 체제는 단일 지도 체제였기 때문에 200만을 모세 한 사람이 이끌고 있었습니다. 애굽에서 가나안 땅까지는 지금도 황막한 사막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일교차가 심해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춥습니다. 거기다 마실 물도 없습니다.
이런 저런 고통이 겹치면서 이스라엘은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말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고통 때문에 절망하고 낙심하고 기도를 포기하고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통 때문에 더 기도하고 하나님께로 나와 매달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승리는 자명합니다. 고통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면 고통과 실패의 종이 되고 맙니다만 고통 때문에 하나님께로 더 다가서고 그 이름을 부르면 응답 받고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원망입니다.
마실 물을 찾지 못한 백성들이 취할 태도는 두 가지 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과 원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원망을 선택했습니다.
24절을 보면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라고 했습니다.
"원망하다"는 말의 뜻은 불평하다, 수군거리다는 것입니다.
바로 사흘 전 그들은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두 눈으로 보았고 갈라진 홍해를 육지처럼 건넜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원망치곤 너무나 빠른 것입니다.
원망하면 다음과 같은 결과가 옵니다.
첫째 하나님과의 관계가 악화됩니다.
민수기 14:27을 보면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민수기14:2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다고 했습니다.
민수기20:2을 보면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공박 하니라"고 했고 20:3을 보면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20:13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라고 했습니다.
모세와 다투는 것은 하나님과 다투는 것이요 모세를 공박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라는 상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원망, 불평, 수근거림, 비아냥대는 것, 비난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트리고 사람과의 관계도 깨트립니다.
이스라엘은 원망한 죄 때문에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갔습니다.
둘째 기도가 안됩니다.
마태복음 2:23-24에서 주님은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은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원망 불평 가득한 마음으로 예물을 드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그 마음으론 예배도 기도도 안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6:14-15을 보면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원한, 앙심, 불평, 원망은 은혜를 가로막고 말씀을 가로막고 기도를 가로막습니다.
2. 응답 받는 기도
1)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25절을 보면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라고 했습니다. 부르짖었다는 것은 간절히 소리내어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성경 안에 "소리내다, 소리 높이다, 소리를 발하다, 소리 지르다, 소리치다"는 구절이 92회, "부르짖다"는 248회 정도 나옵니다.
그리고 소리쳐 부르고 부르짖어 기도한 사람마다 다 응답을 받았습니다.
모세의 경우 하나님과 대면하여 말씀할 때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처럼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굳이 그는 소리를 지르거나 부르짖을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소리내어 기도하는 통성기도가 있고 소리 없이 드리는 묵상기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부르짖는 기도가 더 많습니다. 성경도 소리내어 읽고 찬송도 소리내어 불러야 하고 설교도 소리내어 전해야 합니다. 물론 기도도 소리내서 해야 합니다.
음악도 소리 예술이기 때문에 소리가 들려야 합니다. 물론 소리란 고저 장단 강약이 있습니다만 그러나 기도는 부르짖는 기도가 가장 힘이 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 바디메오도 소리쳐 주님을 불렀습니다.
귀신 들린 딸을 둔 가나안 여인도 소리질러 주님을 불렀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 부르짖는 기도를 주님은 결코 외면하신 일이 없습니다. 반드시 걸음을 멈추시고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모세도 부르짖어 기도하고 응답 받았습니다. 찬송도, 기도도, 성경도, 소리내어 부르고 드리고 읽읍시다.
2) 순종입니다.
모세의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25절을 보면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고 했습니다.
물이 없다는 이유로 원망하던 백성이 오아시스를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그물은 썩어서 마실 수 없는 물이었습니다. 모세는 이 상황을 놓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물이 썩어서 마실 수가 없습니다. 어찌해야 하겠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한 나무를 지시하시며 그 나무를 꺽어 물에 던지라고 하셨고 모세는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만일 그때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를 외면하고 제멋대로 행동했거나 다른 나무를 던졌다면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주경학자들은 나무자체에 썩은 물을 고치는 성분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초월적 능력과 그 능력을 믿고 순종하는 믿음이 마과의 썩은 물을 고쳤다고 해석합니다.
매튜 헨리는 "그 나무는 인간의 죄를 치유하고 구원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한다"고 했고 케일이나 델리취는 "그 나무는 모든 고통스런 현상과 질서를 치유하고 복된 세계로 변화하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생명 나무를 예표하다"고 했습니다.
순종이 무엇입니까? 하라는 대로하는 것입니다. 명령대로 순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내 고집, 내 생각 내 경험을 유보해야 합니다. 이유도 조건도 없이 아멘 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홍해를 건널 때도 믿고 순종하고 건넜습니다. 홍해가 어떻게 갈라 질 수 있느냐? 언제쯤 갈라지느냐? 갈라진 바닥은 진흙 개뻘이 아니겠느냐? 일절 말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출애굽기 14:13을 보면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했고 14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 지니라"고 했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것은 네 소리 네 경험 떠벌리지 말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지켜보고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널 때도 그랬습니다. 강이 어떻게 갈라지느냐 어떻게 건너야 하느냐 따지고 묻지 않았습니다. 앞장선 제사장들이 강물을 한 발짝씩 밟을 때마다 강이 갈라졌습니다. 백성은 그 뒤를 따라 강을 건너기만 했습니다.
오늘도 예외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과 구원을 보고 믿고 따르고 순종하면 하나님이 길을 여시고 터 주시는 것입니다.
3. 어떤 응답을 받았습니까?
1) 쓴 물이 단 물로 변했습니다.
25절을 보면"물이 달아졌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나일강 푸르고 맑은 물을 핏물로 변하게 하십니다 지금도 나일강은 킬리만자로에서 눈 녹은 물이 흘러 내려 강수를 이루기 때문에 맑고 깨끗합니다.
더욱이 모세 당시에는 음료수로 사용하는 맑은 물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 물이 피가 되게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본문에서는 썩어서 먹지 못하는 물을 단물로 고쳤습니다.
하나님은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습니다.
마귀는 죽일 수는 있어도 살리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은 망하게도 하시고 흥하게도 하십니다.
마귀는 망하게는 하지만 흥하게는 못합니다.
하나님은 행복하게 만드시지만 마귀는 불행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썩은 물을 썩은 인생을 맑은 물로 고치고 다시 사는 생명으로 고치지만 마귀는 더 썩게 만들고 아예 멸망의 길로 인도해 버립니다
모세는 기도로 쓴 물을 고쳤습니다.
쓴 인생, 쓴 가정, 쓴 실패로 고민하는 사람들도 기도하면 고칠 수 있습니다.
2) 치료를 약속하셨습니다.
26절을 보면 " 너희가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의를 행하고 계명에 귀를 기울이면 애굽사람에게 내린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고 했습니다.
미국 국립 보건원 발표에 따르면 재미 과학자 민경태박사 팀이 불로 장생약을 개발했다고 합니다.
초파리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는데 그 약을 투여한 파리의 경우 약을 투여하지 않은 파리에 비해 50%정도 수명이 연장되고 건강했다는 것입니다. 곧 동물실험에 들어가게 되고 그 약이 시판 될 경우 100년 살 사람이면 150년을 건강하게 더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명약 신약도 그 영혼을 고치거나 살리진 못합니다.
히브리어로 치료를 라파라고 합니다.
그 뜻은 온전하게 꿰매어 고치다라는 것입니다. 다시 마하면 완치하다, 근치하다 라는 뜻입니다.
위장약을 먹으면 심장에 무리가 가고 신경통 약을 먹으면 위장에 무리가 가고 신경안정제를 장기 복용하면 신장에 무리가 간다고 합니다.
완치, 근치는 어렵습니다. 더욱이 누가 무슨 방법으로 영혼을 치료합니까?
주경학자 매튜헨리나 메이어 같은 사람들은 모세가 꺽어 썩은 오아시스에 던졌던 그 나무야말로 인간의 질병과 고통과 죄와 죽음을 고치고 해결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기도하면 고침 받습니다. 기도하면 치료해주십니다.
3) 더 좋은 것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27절을 보면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샘 열둘과 종려 칠십주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고 했습니다.
엘림이란 큰 나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백성을 위해 준비하신 쉼터였습니다.
물이 있고 그늘이 있는 곳 바로 오아시스였습니다.
시편 121:5에서 시인은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라고 했습니다.
조금만 참고 기다리며 기도하면 하나님이 준비하신 물과 나무와 그늘이 응답으로 주어집니다.
부르짖어 기도합시다.
믿고 기도합시다.
순종하며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