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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박한응 목사의 설교나눔 원문보기 글쓴이: 아모스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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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대한감리회 삽교교회 원로목사 박 한 응(朴 漢 應)H.P 010-5452-4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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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4. 주일밤예배 설교문
본 문 : 마태복음 13:3-9, 18-23
제 목 : 귀 있는 사람은 들으라
찬 송 : 496, 589, 591, 592.
할렐루야!!
오늘도 한량없이 은혜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앞에 찾아 나오신 성도 여러분에게 이 시간 말씀을 통하여 풍성한 은혜가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아 멘>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닷가에서 말씀하신 “씨 뿌리는 자의 비유” 의 말씀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은 농촌에 사는 우리들은 이해하기 쉽고 또 공감이 가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보면 농부가 씨를 뿌릴 때 씨가 떨어진 곳을 네 가지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① 딱딱한 길바닥에 떨어진 씨는 새들이 먹어버렸고,
② 흙이 얇은 돌 위에 떨어진 씨는 싹이 났으나 금방 말라버렸고,
③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는 싹은 낫지만 성장이 충실치 못해서 결실 하지 못하였고,
④ 옥토와 같은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100배의 결실을 맺었습니다. 이 비유의 말씀을 하실 때에 제자들은 그 말씀의 뜻을 알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다 같이 한번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귀 있는 사람은 들으라』오늘 본문 말씀에는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잘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말씀 즉 주님의 말씀은 듣고 깨달을 수 있는 심령의 귀가 열려진 사람만 들을 수 있다 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비유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씨 뿌리는 자는 누구인가?
예수님께서는 그 비유의 내용을 묻는 제자들에게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셨는데 씨를 뿌리는 자는 ‘말씀을 전하는 자’ 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뿌리는 자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하나님의 사람을 뜻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을 전하셨고, 그 후 세례요한을 통하여 전해졌고, 그 후 예수님이 직접 천국 복음을 전해 주셨으며, 오늘날에는 주의 종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끊임없이 말씀을 뿌리게 됩니다.
그러나 항상 옥토와 같이 좋은 밭에만 말씀의 씨를 뿌리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길바닥과 같은 완악하고 강퍅한 마음들에게도 뿌려야 하고 돌짝밭과도 같은 광야에도 뿌려야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씨 뿌리는 자를 찌르고 상하게 하는 가시덤불과 같은 고난과 형극의 밭에도 뿌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의 씨를 뿌리는 자의 가야할 사명의 길입니다.
2. 말씀이 뿌려지는 밭은 무엇입니까?
네 종류의 밭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드리는 사람들의 심성을 네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는 말씀이 됩니다.
15절 이하에 보면
① 길가에 뿌리었다는 것은 사단이 즉시 와서 말씀을 빼앗는 것이고,
② 돌밭에 뿌리었다는 것은 말씀을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서 즉시 말라버리는 것이요,
③ 가시덤불에 뿌리었다는 것은 말씀을 듣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결실치 못하게 막았다고 했습니다.
④ 좋은 밭에 뿌려진 것은 말씀을 받아서 그 말씀대로 순종하고 행하여 30배 60배 혹은 100배의 결실을 맺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 네 종류의 밭 중에서 어떤 종류의 밭에 속하는지 자신이 한 번 진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3. 그러면 지금 내 마음 밭은 어떤 상태인가를 간검(看檢)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출27:21절 말씀에 하나님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명하시기를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보살피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킬 규례이니라." 고 명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의 우리들은 항상 내 심령에 믿음의 등불, 성령의 등불, 기도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자신의 믿음을 간검 하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즉 설교를 하면 대략 네 종류의 반응이 나타납니다. 주일성수를 잘 하라, 또는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라, 저녁예배를 빠지지 마라, 새벽기도를 해라. 고 설교를 하면
(1) 첫째 반응은 전혀 무감각한 반응입니다.
아무리 천사의 말을 하여도 감각이 없습니다. 느낌이나 깨달음이 없습니다. 저 말은 목사가 의례 하는 말이려니 하고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을 하며 그냥 흘려버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마11:16-17)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양심이 화인을 맞은 사람은 무슨 일을 당해도 감정이 없고, 무슨 말씀을 들어도 전혀 깨달음이나 느낌이 없습니다.
(잠27:22) “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지라도 그의 미련은 벗겨지지 아니하느니라”
(2) 두 번째로 비평적인 반응이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서 헌금에 대하여 설교를 하거나 십일조에 대한 설교를 하면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빨리 깨닫고 잘못된 것을 시정을 하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또 돈 얘기를 한다” “우리교회의 목사는 돈 얘기를 너무 한다” 는 등의 비판적인 생각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는 사탄이 그의 마음을 강팍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콘크리트 벽이나 철판에다가 바늘을 꼽으려고 하면 도저히 불가능한 것처럼 철판과도 같고 콘크리트 벽과도 같이 그의 심령이 강퍅해진 것입니다. 만약에 이 시간 여러분들 중에 그렇게 느껴지는 분이 있다면 빨리 회개해야 합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빨리 깨닫고 회개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모든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지 못하고 부정적으로 보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그의 성격이 이상성격으로 기형화되고 맙니다.
출5장 이하의 말씀을 보면 모세가 애굽의 바로 왕에게 가서 이스라엘 민족을 보낼 것을 요구하였으나 거절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을 보면 한 가지 재앙이 끝날 때마다 바로는 마음이 강퍅하여 하나님의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마음이 강퍅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드리지 못하면 그 결과는 참혹한 결과를 가져 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바로가 마지막에 모세에게 항복을 할 때 처음에는 ‘광야로 사흘 길이나 갈 것이 무엇이 있느냐 여기서 예배를 드려라’ 고 하다가 또 그 다음에는 ‘남자들만 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더욱 심한 재앙이 쏟아지니까 ‘사람만 가고 우양과 소들은 가져가지 말라’ 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하나님께 헌금을 하지 말라고 유혹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로 삼일 길을 가서 그곳에서 하나님께 희생의 제사를 드린다고 하였는데 제물이 될 우양이나 짐승을 가져가지 말라는 것은 곧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지 말라는 빈 제단만 쌓으라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이와 같은 사탄의 유혹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몸만 가서 예배를 드리면 되지 헌금이 뭐가 필요 하냐 안 해도 된다” 고 사탄이 속삭입니다. 이 사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안 됩니다. 사탄의 유혹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3) 세 번째의 반응은 미온적인 반응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옳은 말인 줄 알면서도 또 말씀을 깨닫고도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결단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런 사람을 죽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약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계3: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말씀을 듣고 깨달았으면 즉시 실천에 옮기는 자라야 합니다. 차일피일 내일 또 내일로 미루면 안 됩니다. 즉시 실천에 옮기는 행함이 없으면 반드시 거기에는 사탄이 개입이 되고 그 열심은 식어 집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서 제물로 드리라고 할 때에 즉시 실천에 옮겼습니다.
(신23:21)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이라”
(4) 네 번째의 반응은 즉각적인 반응을 나타내며 신앙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아멘으로 받아서 기쁨과 감사로서 행할 때에 그 말씀이 내게 축복으로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고후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이와 같은 믿음은 곧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열매를 원하시지 잎사귀를 원치 않으십니다.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나무가 저주를 받았듯이 말만 풍성하고 실천이 없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게 됩니다. (마25:26-30)
(고전4: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4. 오늘 이 시간 주님께서 내게(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1) 깨닫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마음의 형편은 어떻습니까?
12절 말씀과 같이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15:8-10)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 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
(호4:14)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망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가장 시급한 것은 깨닫는 것입니다. 깨닫기만 하면 자신의 부족함이나 잘못된 것을 알고 회개할 수 있습니다. 회개하면 그 다음에는 열매를 맺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깨닫지 못하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마24장에 말세의 징조를 말씀하시면서 15절에 보면 “이 말씀을 읽는 자는 깨달을 진저…” 라고 말씀하시면서 깨닫기를 촉구하셨습니다.
(2) 결단하는 믿음을 가지라고 하십니다.
무엇을 결단해야 합니까? 지금까지 망설이면서 하지 못하던 것을 결단해야 합니다.
주일성수를 못하던 사람은 주일성수를 할 수 있도록 결단을 하여야 합니다.
감사가 부족한 사람은 감사를 넘치도록 할 수 있도록 결단을 하여야 합니다.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던 사람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수 있도록 결단을 하여야 합니다.
새벽기도를 하지 못하던 사람은 새벽기도를 할 수 있도록 결단을 하여야 합니다.
신앙은 끝없는 도전과 결단의 연속입니다. 이것이 자신을 개혁시키는 것이고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계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오늘도 내일도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은 계속해서 우리의 마음 밭에 뿌려집니다. 이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드리느냐가 문제입니다. 옥토와 같은 마음으로 받아드리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분명 네 종류의 밭이 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말씀을 받든지 간에 선택권은 각자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각자 자신이 받아야 합니다. 이제는 듣고 깨달을 때입니다.
그리고 길바닥과 같은 마음도, 돌짝밭과 같은 마음도, 가시덤불과 같은 마음도, 성령의 도구로서 갈아엎어서 단단한 땅을 부드럽게 만들고 돌멩이나 풀뿌리 나무뿌리는 제거하여야 합니다. 바로 은혜 받는데 장애가 되는 것을 제거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찍이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외치시기를
(호10: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추수의 계절입니다. 여러분들은 추수를 해서 곡간에 채우면서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추수가 어떻고, 추곡 수매가가 어떻고, 농사를 지어봐야 남는 것이 없고, 또 쌀 직불금을 엉뚱한 사람들이 타갔다고 하는 말은 일단 접어두고 하나님 앞에 진정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보고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우매한 사람이 아니라 보고, 듣고, 깨닫는, 성도가 되어서 이 시대에 이 추수의 계절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아 멘>
알리는 말씀을 전합니다.
할렐루야!!
부족한 저의 설교를 사랑해 주시는 전국, 세계의 모든 동역자님들과 주님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한 가지 알려 드립니다. 저는 설교문을 작성함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맞추려고도 애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주 수요일 오후에는 나의 카페를 비롯하여 몇몇 기독교 사이트에 업로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황당한 일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나의 설교는 누구나 사용하실 수 있고 인용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설교를 자신의 사이트나 다른 곳에 자신의 설교인양 전제를 하여서 이것을 보신 분들이 내가 그것을 보고 도용을 하였다고 오히려 나를 책망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안되겠습니다. 나의 부족한 설교를 인용도 하시고 전문 사용을 하셔도 좋으나 다른 곳에 전제를 하는 것은 삼가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을 드립니다. 만약 앞으로 이와 같은 사례가 또 다시 발생할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법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항상 부족한 저를 사랑하는 동역자님들과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임마누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