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
일어나 걸을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때,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대소변처리가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을 때. 아버지는 한참동안 대성통곡하셨다. 나는 육칠십 년 전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흐느끼던 아버지의 모습과 내가 중학교 때 배우가 되겠다고 일주일가량 가출 후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 눈가에 고인 눈물과 대학 때 이런저런 사건에 연루되어 구치소 면회실에서 아버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본 후 이제까지 아버지의 눈물을 본 적이 없다.
나는 아버지를 어린애처럼 감싸 안았다. 깃털처럼 가벼워진 아버지는 내 품에서 떨고 게셨다. (아버지 이게 인생입니다. 걱정 마세요. 저희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저희를 돌보셨듯이. 이제 제가 아버지를 지켜드리겠습니다. 똥 싸고 오줌 싸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요. 미안해하지 마세요. 아무 걱정 마셔요. 당신은 나의 영원한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드리면서 같이 울었다. 아버지는 내 품에서 잠들었다.
*아버지와 침대를 붙여 놓고 아버지와 한 방에서 지낸지 벌써 스무 달. 두 번의 겨울이 지나고 있다. 한밤중 아버지의 호흡이 너무 조용하거나 너무 거칠면 아버지의 동태를 살피게 되는데 너무 조용해서 혹시나 하고 내 귀를 아버지 코에 대고 숨을 쉬시는지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는데 어젯밤도 너무 조용히 주무시기에 귀를 갖다 대고 숨을 확인하는데 아버지 왈 “나 아직 안 죽었다.” 얼마나 놀랍고 죄송하던지. 재작년 4월, 목욕탕에서 낙상하신 후 거동이 불편해서 침대에 누우셨다.
연세에 비해 멀쩡하고 비교적 건강하던 분이 이렇게 급속히 치매가 찾아왔다 하루 24시간 중 1/3은 치매상태로, 1/3은 잠으로, 1/3은 정신이 건강한 노인으로 매일 천국과 지옥 그리고 현실여행을 하신다. 조금 전 아버지 기저귀를 갈아드리는 나를 보며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누구신데 이런 고생을 하십니까? 이러고 나면 우리 애들이 보답은 합디까?“ 큰아들도 몰라보는 아버지가 참으로 귀엽기까지 하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 늙는 게 아니라 움직이지 않아 늙는 것이다.
활동을 줄이는 만큼 늙어가는 것이다. 사람들한테 잊힌 만큼 늙는 것이다. 어느 날 아버지가 물으셨다. “네 엄마는 요즘 왜 보이질 않느냐?” “병원에 입원치료 중이시잖아요” “어디가 아픈데?” “무릎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속도 아프고. 방광도 나쁘고 맹장도 가끔 속을 썩이고…” “면회는 자주 가냐?” “오전에도 다녀왔어요.” “언제 나도 면회 한번 같이 가자.” “코로나 땜에 한 가정에 등록된 한 사람만 면회가 돼요.” 아버진 더 이상 말씀이 없다.
정이 깊은 노인들은 배우자가 떠나면 6개윌 1년 내에 따라 나선다는 속설 때문에 난 3년이 다 되어가는 엄마의 죽음을 아직도 말씀드리지 못하고 있는데 며칠 전 집사람이 내 눈칠 보며 말했다. “아버님이 어머님 돌아가신 거 아시는 거 같아요.” “어떻게?” “아버님이 요양보호사한테 그러시더래요. 집사람은 나처럼 고생도 안하고 추한 꼴도 안 보이고 좋은 곳으르 일찍 간 게 다행이라고….” ‘이크! 이를 어쩐다…’ 아버지께서는 그 와중에도 자식의 마음을 헤아리고 계시는가보다.
아! 인자하신 우리 아버지…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까? *어느 날 아버지가 물으셨다. “왜 나를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안 보내고 고생이냐? 너도 할 만큼 했으니 이제 보내도 원망 안 한다.” “아버지 또 그 말씀. 이제 저도 멀지 않아 80이고 아버지도 곧 100세인데. 제가 할일이 많은 것도 아니고. 아버지와 오래오래 같이 살고 싶어서. 절대로 아버지 요양원 안 보낼 겁니다.” “고맙긴 한데 참으로 미안하고 창피하구나.” 지금 아버지는 인간이 되기 위해 우리가 배웠던 그것을 거꾸로 잊어 가고 계신다.
걷는 법을 잊었고 말하는 법도 잊어가고 혼자 옷입는 건 아예 불가능하고 양치질도 세수하는 법도 식사하는 법까지 잊어간다. 당신의 친구 친인척 심지어 자식까지도 잊어가고 있다. 괄약근과 전립선이 약해지면서 대소변은 아예 본인 통제권에서 완전히 벗어나 누군가가 받아내고 치워야 한다. 그래서 하루에 기저귀 서너 개, 속옷 겉옷 합해 최소 2벌, 이불 한 벌, 물티슈 최소 4개, 두루마리 휴지 2~3미터, 세탁기도 최소 두 번은 돌려야 한다.
그런 우리 집이지만 가끔 기적 같은 일에 기쁨이 충만하다. 아버지께서 식사를 다 드셨을 때 치약을 삼키지 않고 양치질을 제대로 했을 때, 어쩌다 대소변을 위해 간이 휴대용 변기를 찾을 때, 무료하다고 TV 켜달라거나 당신 손으로 TV 껐을 때, 머리맡에 놔드린 물을 혼자 마시고 대소변 실수한 것 같으니 치워 달라 하실 때, 어제 일을 기억하고 입에 담으실 때, 혼자 면도를 하실 때 등 이런 일들이 일어날 때 이런 일들은 우리가족의 큰 기쁨이고 행복이다.
인생 삶 별거 아니다. 잘 늙고 잘 죽어가면 그 또한 행복이거늘 우린 그걸 모르고 욕심을 부린다. 아버지께 물었다. “죽는다는 것을 아세요? 두렵거나 무섭지 않으세요?” 아버지가 답하셨다. “죽는다는 게 잠든 것과 뭐 그리 다르겠느냐? 죽음 뒤엔 평안함과 안식이 있다고 믿기에 죽음 자체는 두렵지 않으나 죽음 직전 내가 곧 죽게 될 것이라는 그 순간만은 피하고 싶구나. 그걸 알고 평온을 유지할 자신이 없다.” 내가 말씀드렸다. “걱정하지 마세요.
95%가 죽는 순간을 무의식 상태에서 맞이한다고 해요. 종교에 의지할 생각은 안 하셨어요?”
“20년 전, 기독교에 의지할 생각이 있었으나 네 엄마가 절에 열심이고 네 처가 절에 가서 그렇게 열심히 봉사활동 하는데 내가 교회 간다고 할 수가 없더라. 그래서 내 영혼의 세계는 그때 포기했다.” 아버지는 며느리의 종교와 어머니의 습관적 불가 여정 때문에 당신의 구원을 체념했다고 고백한 것이다. 죄송하고 안쓰러웠다. '아버지는 몇 년 더 사실 수 있을까? 아버지가 나빠지신다면 얼마나 더 나빠지실 건가? 요양보호사 말씀이 큰 위로가 된다.
“선생님은 성품이 인자하시고 식사를 워낙 잘하시니 앞으로 몆 년은 거뜬하실 거예요.” 나는 그때 지금처럼 아버지 곁을 지켜낼 수 있을까? 아버지를 가능한 한 집에서 편안히 재미있게 모시면서 아버와 함께 늙어가고 싶다. 그래서 부모님에 대한 죄값을 치르고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자존감을 찾아가고 싶다. “신이시여, 나에게 아버지와 이 세상 끝까지 함께 할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해 주시되 아버지 먼저 보내드린 후 떠날 수 있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