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성경: 욥29:1-25 성경: 363, 483장
<서론>
본장에서 31장까지는 욥의 마지막 변론입니다. 여기에서 욥은 특정한 대상 없이자신의 심경을 독백조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앞 27장- 28장에서는 욥이 세 친구들의 변론에 대해 반론하는 성격을 띄는데, 비해 본장에서부터 31장까지는 욥이 하나님을 향해 자신의 무죄한 고난을 호소하는 내용입니다.
따라서 앞의 두 장은 욥기전반부의 결론적 반론이라고 할 수 있고, 본장은 욥의 후반부에 대한 서론으로, 욥의 고난받기 이전의 복된 자의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욥은 이웃을 돌보는데 있어서도 모범적이었으며, 부르짖는 빈민을 돕고, 고아를보살폈으며, 소경의 눈도 되고. 절뚝발이의 발도 되었습니다. 이같은 읍의 삶은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는 자의 전형적인 축복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욥이 하나님의 동행하는 삶을 살 때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의 삶을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 욥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1. 번영을 누렸습니다(1-6절).
고난받는 중에 욥은 지난날 하나님의 축복으로 번성했던 시절을 회상합니다.실로 욥은 '동방에서 큰 자 (이는 신앙적인 면에서 돈독한 믿음을 나타내기도 하고, 물질적 번영면에서 번섬함을 나타내기도 한다)로 불리울 만큼 큰 번영을 누린 사람입니다.
주께서 축복한 들판에서는 결실의 황금 물결이 굽이치고, 풍성하고,
다양하고, 성숙한 축복은 마치 잘 맺힌 풍성한 포도 수확처럼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이 빛나ㄴ 광휘의 날들은 이제 가고, 욥은 고난받고 있습니다. 그 풍성한 번영의 날에 가져왔던 행복한 여러 가지 보화도 욥에게 닥친 고난과 함께 사라지고말았습니다.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없는 상실감에서 욥은 자신의 지난날을 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욥의 고독한 영혼은 분노와 상실감으로 뒤엉켜 있을 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고난받는 자로서 욥의 소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곧난관을 만난 자로서 욥은 과거의 은헤를 회고함으로 신앙의 용기를 얻고, 살아계신하나님의 은총이 다시 임하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과거의 번영을 희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욥은 열매를 거두는 시기를 회상하변서 장차 의의 열매를 거두는 때를소망하고 있습니다(4절).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이 위로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던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욥은 가장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과 동행하딘 때를 회상함으로 장차 자기를 구워하실 하나님의 은총읕 바라본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은 어떤 역경 가운데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하나님을 소망합니다.
2. 존경받았습니다(7-11).
욥이 번성하여 동방의 큰 자로 불리울 때에 욥은 동방에서 존경받는 인물이였습니다. '내가 나가서 성문에 이르기도 하며 내 자리롤 거리에 베풀기도 하였었느니라'(7절) 이는 욥이 당시 살던 곳의 재판관으로서 가졌던 지위를 가리키는 회고입니다.
곧 당시 욥은 성문에서 혹은 거리에서 벌어지는 송사의 재판관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존경하는 무리들은 그의 개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의로움으로 인해 욥을 존경하였습니다. 더욱이 욥은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교만이나, 이기심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욥을 치하하고, 욥의 지위를 시기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이는 읍이 그만큼 존경받을만한 인품을 가지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지금 욥이 당하는 고난은 그의 고매한 인품이나, 인정을 베푸는 부와는전혀 상관 없다는 듯이 극심합니다. 현재 욥이 당하는 고난을 보면 누구라도 욥의지난날을 의심할 정도로 욥은 극심한 고난 가운데 있었습니다.
동방의 큰 자, 공평
무사한 자가 고난을 받는다! 이는 당시 사람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충격
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욥은 이러한 고난 가운데서 자신의 공평 무사한 ㅍ결, 하나님의 축복으로 누렸던 지위.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들었던 그 시절늘 회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측복을 회복하는 그 날을 소망합니다.
실로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는 시절에 주신 복을 아름답게 사용했던 욥은 고난중에도 장차 회복될 축복을 소망함으로 용기를 얻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의 삶은 축복을 누리는 때에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정직하고 순전하여 존경받을 만합니다. 그리고 고난을 받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회복해 주실 때를 소망하며 역경을 인내합니다.
3. 구제하는 삶을 살았습니나(12-25절).
당시 사람들이 욥을 존경한 이유는 욥이 부자라서, 재판관이라는 지위 때문이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욥을 존경한 이유는 읍이 불쌍한 자들을 구제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실로 욥은 빈민, 고아 과부, 절뚝발이, 소경 등 소위 사회에서 소외된자늘을 도왔습니다.
특히 읍은 이들 소외된 자들을 돕되, 불쌍한 자들의 사정을 자
기 사정인 것처럼 여기고, 도와주는 체휼의 정신으로 행했습니다.
'나는 소경의 눈도 되고 절뚝발이의 발도되고 빈궁한 자히 아비도 되며'(15-16절). 이는 우리 주넘께서 가르치신 바,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는 교훈을 실천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욥은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은 사람으로서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자기의 이기적인 탐욕을 채우는데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데 사용한 신앙의 인물이었습니다.
더구나 욥은 불의한 자들이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갈취하고 압제할 때 약자의 신원을 들어 주었습니다. 실로 욥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산 사람으로써 사랑과 공의를 경건한인물이었습니다.
때문에 욥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았으며, 그의 행위나 말에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고난을 받았다. 사람의 생각에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고난 속에 또다른 하나님의 섭리가 있는 줄 믿어야 한다.
욥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정직히 행하며 역경중에도 소망을 잃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도 역경중에 소망을 잃지 않는 성도들이되자!
고난 가운데 하나님을 바라보는 욥 성경: 욥30:1-31 찬송; 519장, 463장, 342장
29장에서 풍요롭고 은혜로운 시절을 회상하면서 나아가 현재의 비참함을 놓고서
자신의 처지를 탄식한다. 무엇보다도 괴로운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같
은 안타까움이다.
결국 욥은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지 못함으로 그 고통은 더 컸다.
<본론>
본문에서 어떤 교훈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1.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1-15).
고통은 참으로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극심했습니다.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 같은 연약한 인간의 육신 위에 너무나도 엄청난 무게의 고통이 올려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욥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하고 바랬습니다. 그만큼 지금 자신의 존재그 자체가 고퉁스러웠습니다.
더구나 자기보다 비천한 자들이, 자신을 존경했던 자들이, 자신의 도움을 받았던 자들이 자신을 조롱할 때, 욥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욥이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그의 성숙한 신앙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고난을 뛰어넘는 신앙이요, 중보자를 갈망하는 기독론적 신앙이 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분명하게 보여지지 않았던 족장 시대에 이방 땅의 욥은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놀랍고 귀한 신앙을 가졌던 것업니다.
이는 욥이 오직 고난을 통해 얻은 산 신앙이었습니다. 이처럼 때로 고난은 신앙의 단련을 가져다 줍니다. 욥은 비참한 지경에서 자기 테어난 날을 저주ㅎ고. 조롱받는 헌실을 탄식 했지반 그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단지 욥은 주신 자도 하나님이시요 취하신 자도 하나님이시라는 신앙으로 인내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읍의 인내를 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인내는 욥이 정신 수양을 쌓아서 얻은 고행의 결과가 아닙니다.
욥의 인내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 고난 가운데서도 좌절하지 않는 신앙에서나온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에 어떤 어려움을 만나게 될 지 모릅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인내해야 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던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2.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연단임을 깨달았습니다(16-31절)
욥은 고난의 절정에서 탄식합니다. 환난 날과 같은 고통, 욥은 깊고 큰 고통의늪에 빠져 하나님께 울부짓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무런 웅답이 없습니다. 욥은매우 답답합니다.
그리고 불안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버린 것은 아닐까? 욥에게엄습하는 불안감, 두려움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서 오는두려움이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욥은 자신의 고난이 하나님께로 온 것이라고고백하고 있습니다(11, 18-19절). 곧 욥은 하나님의 무응답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행하시는 섭리를 어렴풋하게 느끼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만 여기에서 욥이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시험임을 고백하지 못한 것은 역시 욥도 당시의 고정 관념으로 인해인과응보식 관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곧 욥은 고통 가운데서 자신의 고난이 어디에서 왔는지 계속 탐구하였으나, 사회적 통념으로 공박하는 친구들의 논
리로 인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혼란을 가져온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욥은다시 이전의 신앙,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거두시는 자도 여호와시라고 고백하기
에 이른 것입니다. 후일 욥은 하나님을 향한 찬송에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42:5)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곧 욥은 폭풍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응답을 듣고 자신의 고난을 잊은 채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만약 고통중의 욥이 이같은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인식했더라면, 그의 원망은 처음부터 찬송의 소리가 되었을 것입니다.하지만 본문의
욥은 고난의 골짜기를 거쳐가는 단계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점차 혼돈을 이기고 하나님의 연단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실로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을 바라보았던 욥은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섭리에 눈뜨게 된 것입니다.
<결론>
성도 여러분, 오늘날 자신이 고난의 골짜기 속에 처해 있다고 생각되십니까? 사람은 연약하여 고난을 피하려는 마음을 앞세웁니다 되도록이면, 십자가 없는 면류관을 원합니다. 하지만 신앙에는 연단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연단을 통해서 신앙은 점차로 성숙됩니다. 엉금엉금 기는 단게에서 걸음마의 단계로, 그리고 걸음마의 단계에서 펌박질하는 단계로까지 자라나야 한다.
그것이 정상입니다. 지금 고난의 한 가운데 처해 있다면 저편 동산, 하나님께서 고난을 이긴 성도에게 마련하신 구원의 동산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고난을 두려워 하지 맙시다. 고난 속에서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으며, 소망을 가집시다.
그리하여 믿음을연단합시다. 하나넘께서는 결코 성도 홀로 고난의 골짜기로 멀어 넣지 않습니다하나님은 고난받는 자에게도 함께 하십니다(시 23:4). 그런즉 우리는 크고 작은 고난이 닥쳐올 때. 적극적으로 고난의 과정을 이깁시다.그리할 때, 우리는 고난 가
운데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깨달을 것이며, 원망이 찬송으
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히 11:33-40)
첫댓글
언제나 약한자들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