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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도원(武陵桃源)
무릉의 도원이라는 뜻으로, 이 세상을 떠난 별천지를 이르는 말이다. 지상의 낙원으로 인간의 도원경을 말한다.
武 : 호반 무(止/4)
陵 : 언덕 릉(阝/8)
桃 : 복숭아 도(木/6)
源 : 근원 원(氵/10)
(유의어)
도원(桃源)
도원경(桃源境)
도원향(桃源鄕)
도화원(桃花源)
별건곤(別乾坤)
별세계(別世界)
별유건곤(別有乾坤)
별유천지(別有天地)
별천계(別天界)
선경(仙境)
선계(仙界)
선향(仙鄕)
선환(仙寰)
소국과민(小國寡民)
이상향(理想鄕)
일호지천(一壺之天)
일호천(一壺天)
호중지천(壺中之天)
호중천(壺中天)
호중천지(壺中天地)
호천(壺天)
출전 :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
무릉도원(武陵桃原)은 언덕에 복숭아가 있는 곳이란 뜻으로 세상과 따로 떨어진 별천지, 사람들이 화목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이상향을 가리키는 말이다.
무릉(武陵)은 지금 중국의 강서성(江西省) 부근으로, 양자강(揚子江)이 이룬 큰 호수인 동정호(洞庭湖)에 멀지 않은 곳이다.
도원(桃源)이란 '복숭아(桃) 꽃이 흘러오는 수원지(源)'라는 뜻이다. 무릉도원이란 결국 '무릉에 있는, 복숭아꽃 흘러오는 (환상의) 수원지'라는 말이다.
때는 진시황(秦始皇)을 이어 한(漢) 제국이 400년간 융성하다가 북방 오랑캐들의 침입을 받아 남하하여 새로운 왕조를 세움으로써 이원적 왕조가 맞서 있던 시절, 즉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시대이다.
잦은 전란으로 사람들의 삶이 곤고해지고 열악해지던 난세에 중국 문학사상 가장 뛰어난 시인 하나가 태어났다.
녹(祿)으로 받는 쌀됫박 때문에 굽신거리긴 싫다면서 귀거래사(歸去來辭; 고향으로 돌아가련다)를 읊고 은둔한 탁월한 술꾼(?) 도연명(陶淵明)이 바로 그 사람이다.
사회가 어려울수록 인간속의 약점들이 불거지게 마련이라, 그가 살던 시대는 권모와 술수, 살기 위한 몸부림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사람이 이렇게도 추할 수 있을까 하는 환멸에 전율하면서 이 예민한 시인은 그같은 오탁(汚濁; 더럽고 탁함)을 벗어난 세계를 누구보다 진하게 꿈꾸게 되었다.
무릉도원은 그가 꿈꾼 이상적 세계를 사실적으로 그린 글이다. 도화원기(桃花源記)라 불리는 이 글은 고금 천하의 명문으로 사람들의 입에 회자(膾炙; 즐겨 오르내림)되어 왔다.
동진(東晉)때의 시인 도잠(陶潛; 자는 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진(晉)나라 태원(太元) 연간(AD 377-397년), 무릉에 고기를 잡는 어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시내를 따라 가다가 어디쯤인지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배는 어느새 복숭아 꽃이 강 양켠으로 흐드러진 곳을 지나고 있었다.
수백보의 꽤 긴 거리를 그렇게 배는 흘러갔는데, 잡목은 보이지 않고 향기 드높은 꽃들이 선연히 아름답게 피어 있었으며 꽃잎들은 분분히 날리며 떨어지고 있어 어부는 아주 기이하게 여겼다.
앞이 궁금하여 계속 나아가니 숲이 끝나는 곳에 수원(水源)이 있었고 그곳에 산이 하나 막아섰다. 거기에 작은 동굴이 있었는데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어부는 배를 버리고 동굴 입구로 들어갔다. 들어갈 때는 구멍이 아주 좁아 사람 하나 정도 들어갈 만하더니, 몇 십 발자국 나서자 시야가 훤하게 트여왔다.
너른 들판에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기름진 전답(田畓)이며 아름다운 연못, 뽕나무나 대나무 등속이 눈에 들어왔다. 옛날의(즉 진시황 이전의) 토지구획 그대로 개와 닭 소리가 한가로이 들리고 있었다.
그 사이를 사람들이 오가며 경작하고 있었는데 남녀가 입은 옷이 모두 이국풍이었다. 기름도 바르지 않고 장식도 없는 머리를 하고, 한결같이 기쁨과 즐거움에 넘치는 모습들이었다.
어부를 보더니 크게 놀라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했더니 집으로 초대해 술을 내고 닭을 잡아 음식을 베풀어 주었다. 낯선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온 마을에 돌아 모두들 찾아와 이것저것 물었다.
자기네들은 옛적 선조들이 진(秦) 통일기의 난을 피해 처자와 마을사람들을 이끌고 이 절경에 왔는데, 그 이후 다시 밖으로 나가지 않는 바람에 외부와 격절되고 말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이 대체 어느 시대냐고 묻기도 했다.
진(秦)나라 이후 한(漢)나라가 선 것도, 한(漢)나라 이후 위진(魏晉)시대가 온 것도 알지 못했다. 어부가 아는 대로 일일이 대꾸해주자 모두들 놀라며 탄식했다.
사람들은 교대로 돌아가며 그를 집으로 초대해 술과 음식을 내주었다.그렇게 며칠을 머문 후, 어부는 이제 가봐야 겠다고 말했다. 마을 사람 가운데 누군가가 '바깥 세상에는 알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어부는 동굴을 나서서 배에 올라, 방향을 잡아 나가면서 곳곳에 표식을 해 두었다. 고을로 돌아와 태수에게 자초지종을 고했더니, 태수는 사람을 보내 오던 길을 되짚어 표식을 더듬어 나가게 했으나 다시 그 길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남양(南陽)의 유자기(劉子驥)는 뜻이 높은 은자(隱者)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기뻐하며 그곳을 찾아가려 했으나 병이 들어 죽고 말았다. 그 후로는 그곳을 다시 찾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서양의 유토피아(Utopia; 이상향)는 없는 곳이란 뜻이다. 도연명도 이상향으로 무릉도원을 그리며 인간이 찾을 수 없는 곳이라 말하고 있다. 도원경(桃源境)이라고도 한다.
일찌기 진시황(秦始皇)의 전제 왕권은 이전의 전통적인 사회제도와 가족제도를 송두리째 뒤 흔들었다.
모든 생산과 인력을 국가중심체제로 전환하여 무력의 통일에 쏟아부었기에 인민들이 받는 고통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같은 국가사회주의적 총동원령으로 진왕조(秦王祖)는 마침내 통일을 이룩할 수 있었지만 얼마 못가 아들대에 허망하게 무너지고 만다.
그 전란기에 난을 피해 숨어 들어와 세상과의 교섭을 완전히 끊고 자급자족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그런 나라가 있었다.
도연명의 시대 이곳을 한 길 잃은 어부가 우연히 발견하게 되고 그 경위를 적어놓은 글이 이것이다
도연명은 이 꿈의 나라를 이렇게 그리고 있다. “해가 뜨면 들에 나가 일하고 해가 지면 들어온다. 계절은 순조롭고 풍우(風雨)는 알맞아 농사를 도와주었고 수확을 전제 권력에 빼앗길 염려도 없는 그런 무정부적 사회, 아이들은 그저 뛰놀고 어른들은 생활의 여유를 찾는 나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이 있을 리 없는 화해와 평화의 그런 공동체, 그러던 어느날 길 잃은 어부가 우연히 이 세계를 방문한다. 무릉의 신비는 그 어부에게 잠시 열렸다가 다시 영원히 닫혀 버렸다.”
도연명은 이 넉넉한 꿈의 나라가 결국 다시 신비속에 묻혀 버린 것을 한편으로 안타까워 하면서도 그것이 결국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음을 은근히 비추고 있다.
묻노니 속세의 때에 절은 사람들이여! 그대들은 먼지와 소음이 없는 그런 세상을 꿈꾼 적이 있는가. 원하건대 가벼운 바람을 밟으며 높이 날아 올라, 그런 이상의 세계로 날아가고 싶다.
천재 시인 도연명의 붓끝에서 무릉도원은 동양인의 영원한 꿈의 나라가 되었다. 우리나라 역시 그 전통을 공유하고 있었다. 특히 사회가 혼란스럽고 전란에 시달릴 때는 사람들의 꿈을 강렬하게 지배했던 이상적 모델로 사람들의 가슴을 휘어잡았다.
사람들은 동료인 사람 사이에서 부대끼는 갈등과 긴장에 가장 힘들어 한다. 조선조 관료사회는 특히 사람의 인품의 등급을 평가하는 객관적 폭력이 일상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거기서 받는 심리적 스트레스가 아주 큰 사회였다.
뜻있는 선비들은 끊임없이 중앙정계를 벗어나 지방근무를 원했거나 아예 정치권을 떠나고자 했고 달리 직업이 없어 떠날 수 없었던 사대부들도 마음은 늘 사람이 사람을 재단하지 않는 전원, 즉 자연을 노래하고 꿈꾸었다.
몸은 관직에 있으면서 마음은 산림에 있었고, 공식적으로는 유학자이면서 비공식적으로는 도가(道家)를 흠모했던 것이다. 우리네 선인들의 문학작품 가운데 반절 너머 자연시와 풍류의 글이 차지하고 있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하겠다.
무릉도원(武陵桃源)
무릉의 어부가 찾은 복사꽃 세계, 도연명이 그려낸 이상향
아무런 걱정이 없고,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조건의 완전한 사회가 이상향(理想鄕)이다. 이런 세상은 예부터 많이 꿈꾸어왔고 나타내는 말도 많다.
토머스 모어(Sir Thomas More)가 그린 이 세상에 없는 곳이지만 가장 좋은 곳이란 뜻의 유토피아(Utopia)가 대표적이다.
제임스 힐튼(James Hilton)이 창안한 샹그릴라(shangrila)는 히말라야 산록의 사원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우리나라서 별세계로 대표적인 곳은 허균(許筠)의 홍길동전(洪吉童傳)에 나오는 율도국(栗島國)이다. 수평선 너머 바다 한 가운데 있는 신비의 섬나라로 적서(嫡庶)차별이나 탐관오리의 횡포가 없는 이상사회였다.
중국에서는 선인이 사는 항아리 속의 세계 호중지천(壺中之天)과, 인위적인 그 무엇도 있지 않은 곳이라는 뜻으로 장자(莊子)가 창안한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이 있지만 도원경(桃源境)이 아무래도 귀에 익다.
동진(東晋) 말기에서 송(宋)나라 초기의 시인으로 귀거래사(歸去來辭)로 유명한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이상사회다.
호남(湖南)의 무릉(武陵)이란 곳에서 사는 한 어부가 뱃길을 잃고 찾아간 곳이 복숭아꽃이 만발한 곳(桃源)이라 이렇게 불렸다.
어부가 배를 저어가다 길이 다하자 복사꽃이 핀 숲을 만났다. 숲을 걸어가니 산이 나왔고 그곳에는 한 사람이 통과할 수 있는 작은 굴이 있어 들어가 보았다.
갑자기 앞이 확 틔면서 밝아졌다. 토지는 평평하고 넓으며 집들이 잘 정돈되어 있고, ‘기름진 논밭과 아름다운 연못, 뽕나무와 대나무들이 있었다(有良田美池桑竹之屬)’.
논밭에서 일하는 남녀의 옷차림은 밖의 세상과 같았고 ‘노인과 아이들도 모두 유쾌한 모습으로 즐겁게 지내고 있었다(黃髮垂髫 並怡然自樂)’.
髫는 늘어뜨린 머리 초, 머리를 땋은 아이를 가리킨다. 이런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이전에 난리를 피해와 살고 있었다.
어부는 여기에서 잘 대접 받고 살던 곳으로 가면서 도중에 표시를 해 두었으나 고을 태수와 함께 다시 찾았을 때는 어디에서도 모습이 없었다.
정치 사회의 암흑기에 그려본 이상사회를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는 없다. 인터넷 여론조작 혐의로 실체를 드러냈던 드루킹이 회원들을 모아 세우려 했다는 ‘두루미타운’도 황당한 이상사회를 꿈꾸던 것이 아니었을까.
무릉도원(武陵桃源)
산속을 헤매던 남자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낙원'으로 들어간다. 그곳에는 풍요로운 논밭이 이어져 있고 사람들은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며칠 간 머물다가 남자는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다시 이곳에 오려고 하지만 낙원은 두 번 다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중국의 '낙원'은 신비에 싸인 별천지이다.
✅ 낙원 사상의 진수 도화원기
4세기 무렵 중국의 이야기이다. 후난 성(湖南省)의 무릉(武陵)이라는 지역에 민물고기를 잡으며 사는 어부가 있었다.
어느 날 그 남자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 강을 따라 계곡 깊숙이 들어가는 사이에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어부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무작정 자신의 작은 고기잡이 배를 저어가니 계곡 양쪽 물가를 따라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그런데 그 나무들이 하나같이 모두 복숭아나무였다. 달콤한 향기가 계곡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었고 꽃잎이 하늘하늘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참 이상한 일도 다 있지.'
어부는 이 복숭아나무 숲이 어디까지 계속되는지 보고 싶어서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한동안 가니까 복숭아나무 숲은 끊기고 계곡이 맞닿는 곳에 작은 산이 나타났다.
계곡 물이 솟아 나오는 수원 근처에 작은 동굴이 있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희미하게 빛이 보였다. 어부는 기슭에 배를 두고 뭍으로 올라와 동굴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동굴 안은 무척 좁아서 사람 하나가 간신히 지나 갈 정도였다. 동굴 안으로 계속 들어가자 갑자기 시야가 밝아지더니 눈앞에 대지가 나타났다.
넓은 대지는 평탄했고 손질이 잘 되어 있는 논밭과 아름다운 연못, 뽕나무와 대나무 숲도 있었다. 잘 닦인 길과 커다란 집들이 있었고 그 집들의 뜰 안에서는 개나 닭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들도 세상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나 머리를 땋은 아이들도 한가롭고 즐거운 모습이었다.
그러고 있는 사이에 어부의 모습을 발견한 마을 사람이 깜짝 놀라면서 도대체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어부가 겪은 그대로 이야기하자 마을 사람은 자기 집으로 어부를 데리고 가서 술과 닭고기 요리를 대접해주었다.
어부에 대한 소문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그 집으로 몰려왔다. 마을 사람들은 아래 세상에 대해서 이것저것 어부에게 캐물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우리의 조상들이 진(秦)나라 때 전란을 피해서 가족과 친지들을 이끌고 이 산속으로 피난을 왔다. 그후로는 마을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과는 인연이 끊긴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 시대인가?'
마을 사람들은 한(漢)이라는 시대도 몰랐다. 그러니 위(魏)나 진(晋)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대략 500년 동안이나 바깥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부가 자신이 알고 있는 일에 대해서 이것저것 설명하자 마을 사람들은 놀라서 그저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그 다음부터 마을 사람들은 번갈아 가면서 어부를 자신들의 집으로 초대해서 푸짐한 술과 안주로 대접하며 바깥세상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다.
어부는 이 마을에서 며칠 동안을 지낸 후 자신의 마을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자 마을 사람 중 하나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마을에 대해서는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아주시오.'
어부는 마을을 나와서 원래 장소에 있던 배를 타고 오면서 도중에 표시가 될 만한 곳을 여기저기 눈여겨보며 자신의 마을로 돌아왔다.
그리고 마을 관리에게 자초지종을 보고했다. 관리는 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어부에게 부하를 동행시켜서 마을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복숭아꽃이 만발해 있는 그 평화로운 마을은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
이상이 중국의 시인인 도연명이 쓴 '도화원기(桃花源記)'의 줄거리다. 이것이 '무릉도원' 전설의 기원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은 단순히 이상향을 그리는 우화가 아니라 어쩌면 길을 잘못 들어서 들어갈 수도 있을 것 같은 현실감을 가지고 있다.
이 마을에는 금은 보화로 치장된 궁전도 없고 이상한 현상도 없으며 일반인들이 무척 친근감을 느낄 정도로 서민적인 장소다. 더구나 이 낙원은 보통 사람들도 걸어서 갈 수 있게 일반적인 땅과 연결된 장소에 있다.
다만 그곳에는 모든 사람들이 꿈꿀 만한 평화로운 전원풍경과 함께 만발한 복숭아꽃과 동굴이라는 '별천지'다운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다. 이런 점이 이 이야기의 매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깊은 산속에 숨어 있는 비경이라는 이미지는 훗날 중국인들에게도 매우 강한 인상을 주어서 이를 주제로 한 시나 문학, 그림 등 많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중국에 그치지 않고 한국이나 일본에까지 이 '도화원기'가 번역되었고, 이 글의 영향을 받은 문인들도 적지 않다.
물론 이 작품은 도연명의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평가를 받은 것이지만 그 외에도 글 속에 중국의 전통적인 사상이나 종교, 나아가서는 문화적 배경이 짙게 배어 있는 장치가 여기저기에 숨어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말하자면 중국적 발상에 의한 '낙원'의 진수를 모아놓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 지금부터 소개하고자 한다.
✅ 영적인 열매 '복숭아'에 대한 이미지
우선 어부가 낙원에 가까이 갔을 때 계곡 양쪽으로 빽빽하게 복숭아나무 숲이 늘어서 있는 풍경이 나타났다. 만발한 꽃들이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한다. 이 '복숭아'라는 식물은 중국에서 '천계(天界)'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중국에는 도교라는 전통적인 종교가 있는데, 이는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민간 전승을 흡수하면서 사람들 생활에 깊이 침투해 있다.
도교, 또는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보면 복숭아는 중국인들에게 매우 영적인 힘이 강한 과일이다. 복숭아가 여성의 성기를 연상시켜서 그런 것인지 '다산', '생명력', '장수'의 상징이기도 하고 악령을 쫓아내는 효과도 있다고 여겼다.
물론 이는 보통 과일 밭에서 나는 복숭아가 아니라 신선이 사는 '신선 마을(神仙鄕)'에서 자라는 복숭아, 즉 '선과(仙果)'였을 때의 이야기다.
이런 발상은 켈트 사회('아발론 섬' 편 참조)나 기독교 세계에서 나오는 '사과'에서도 볼 수 있다.
참고로 복숭아가 주목을 받는 것은 중국 문화권에 한해서이고 서구에서는 일반적으로 '여성원리(女性原理)', 또는 '결혼'이라는 뜻은 있지만 그다지 중요시되는 일은 없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천계에서 이 복숭아를 관리하는 것은 서왕모(西王母)라는 여신이다. 수많은 여성신 중에서도 능력과 권력에 있어서 최고의 지위에 있는 미녀다.
서유기(西遊記)에 의하면 그녀는 천계에 '반도원(蟠桃園)'이라는 이름의 복숭아 과수원을 가지고 있어, 그곳에서 직접 복숭아를 키운다고 한다.
이 과수원에는 복숭아가 전부 3,600그루 있는데, 입구 가까운 곳에 있는 1,200그루는 3천 년에 한 번만 열매를 맺는다. 이 복숭아 열매는 작지만 인간이 먹으면 몸이 가벼워져서 신선에 가까이 갈 수 있다.
과수원 안쪽에 있는 1,200그루는 여덟 겹의 꽃잎을 가진 꽃이 피고 6천 년에 한 번 달콤한 열매를 맺는다. 이것을 먹으면 안개를 타고 날아다닐 수 있고 불로장생의 몸이 된다.
그리고 과수원 가장 안쪽에 있는 1,200그루의 복숭아는 포도 색깔의 반점이 있고 씨가 작아서 열매를 맺기까지는 9천 년이 걸린다. 이 열매를 먹으면 태양이나 달처럼 오래 살 수 있다고 한다.
손오공은 이 복숭아 과수원의 관리인이었는데 몰래 복숭아를 훔쳐 먹어서 죽지 않는 몸이 되었다고 한다.
영적인 힘이 있는 것은 복숭아의 열매뿐만이 아니다. 복숭아나무 또한 상당한 힘을 발휘한다고 믿는다.
전설에 의하면 동방에 있는 바닷속에 도삭산(度朔山)이라 불리는 신비한 섬이 있는데 그 주위는 거대한 한 그루의 복숭아 나무 가지로 둘러싸여 있다.
동북쪽 부분에 약간 가지가 엉성한 곳이 있는데 거기가 이 섬의 유일한 입구여서 많은 귀신들이 출입한다. 말하자면 귀문(鬼門)인데 이곳에는 두 명의 문신(門神; 문지기 신)이 악귀의 침입을 막고 있다고 한다.
이 전설에 따라 중국 사람들은 문가에 복숭아나무로 만든 문신의 인형이나 부적(桃符)를 붙이는 습관이 있다. 집에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말하자면 복숭아라는 식물은 장수의 상징임과 동시에 악령의 침입을 막고 깨끗한 신의 영역을 나타낸다. 이렇게 설명하면 '도화원기'의 낙원이 단순한 산속마을이 아님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동굴 속에 있는 신선들의 주거 - 동천
도화원기에서는 낙원의 입구가 한 사람이 간신히 들어갈 정도의 작은 동굴이라고 되어 있다. 이 '동굴' 또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도교에는 '동천복지(洞天福地)'라는 말이 있다. 이는 육조 시대(3세기~6세기)까지 전성기를 이루며 유행되었던 것으로, 명산이나 경치가 좋은 장소에는 신선(신의 경지에 이른 선인)이 사는 '낙원'이 숨겨져 있다는 사상이다.
동천(洞天)이라는 말은 동굴 속에 있는 별천지이고, 복지(福地)란 천재지변이나 인간의 재앙이 닿지 않는 이상향이라는 뜻이다. 말하자면 도교 세계에서 신선들의 이상향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당나라 시대에는 십대 동천(十大洞天), 삼십륙동천(三十六洞天), 칠십이복지(七十二福地)가 있다고 했으며 그 소재지들은 도교의 성지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장쑤성(江蘇省)의 마오산(茅山)에 있다는 '금단화양동천(金壇華陽洞天; 10대 동천의 하나)'은 동굴 속인데도 불구하고 태양과 달은 지상에서와 마찬가지로 빛나고 보랏빛 구름이 떠 있다고 한다.
공중에는 새가 날아다니고 지상에는 초목이 우거졌으며 웅장하고 화려한 궁전이 늘어서 있다. 다른 '동천복지' 또한 비슷한 풍경이라고 한다.
도화원기에 나오는 낙원과의 커다란 차이점은 이 이상향이 서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신선을 위해 준비된 세계라는 점이다. 따라서 신선이 살기에 어울리는 궁전이 있고 금은 보화로 장식되어 있다.
동굴 내부에 태양이나 달이 있으며 도시가 존재한다는 말은 그곳이 하나의 세계임을 나타낸다. 나아가 작은 우주로서 본래의 우주 내부에 마치 태아처럼 동천복지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더구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천복지는 땅속에 있는 길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물론 일반 사람들은 동천복지에 들어갈 수가 없다.
도교의 수행을 쌓아서 신선이 될 자격이 있는 도사만이 그곳에 발을 들여놓을 수가 있다. 왜냐하면 동천복지는 천계에 있다는 신선의 주거가 지상으로 파견된 곳이기 때문이다.
이 '동천'의 이미지를 부풀린 것 같은 이야기를 살펴보자. 후한서(後漢書)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후한 시대, 허난성(河南省)의 어느 작은 마을에 비장방(費長房)이라는 관리가 있었다.
어느 날 마을 시장에 호공(壺公)이라는 노인이 나타나서 약을 팔았다. 호국의 약은 무척 잘 들었는데 가격이 엄청나게 비쌌다.
그러나 그는 돈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돈을 받지 않고 약을 주기도 했다. 더구나 그렇게 번 돈을 모조리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비장방은 이 노인에게 흥미를 느껴서 매일 그를 관찰하게 되었다.
어느 날 저녁 호공은 장사를 끝내고는 약이 든 호리병 속으로 껑충 뛰어들었다. 망루에서 호공을 지켜보고 있던 비장방은 깜짝 놀랐다.
어떻게든 이 호리병의 비밀이 알고 싶어진 비장방은 식사를 대접하기도 하고 약을 진열해 놓는 길가를 청소하기도 하면서 호공에게 온갖 정성을 다했다. 한동안 비장방을 무시하던 호공도 드디어 그의 성실함을 인정했다.
''날이 저물고 시장에 사람들이 없어지면 이곳으로 오시오.'
저녁 때가 되어서 비장방이 호공에게로 갔다. 호공은 따라오라며 호리병 속으로 뛰어들었다. 비장방은 잠시 주저하다가 용기를 내어 그의 뒤를 따랐다.
그 호리병 속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커다란 마을이 있었던 것이다. 눈부시도록 화려한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고 이 세상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우아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호공의 저택도 웅장하고 화려했으며 하인들이 몇 명씩이나 머리를 조아리고 서 있었다.
호공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나는 신선이다. 예전에는 천계에서 중책을 맡아보고 있었지만 직무태만으로 질책을 받아 인간 세상에서 살고 있다. 너에게는 소질이 있어 보였기에 이곳으로 데리고 온 것이다. 이 장소에 대해서 결코 입 밖에 내어서는 안 된다.'
그 후에 비장방은 호공의 지도를 받으며 수행을 거듭하여 드디어 선인(仙人)이 되었다고 씌어 있다.
호공의 호리병 속에는 별천지가 있었다. 다른 말로 하면 호리병이 우주를 삼켰다고 해야 할까?
말하자면 호공의 호리병은 다른 세계가 현실세계에 들어온 다른 차원(異次元)의 공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신기한 공간에 대한 이야기는 그 밖에도 많다.
'동천'설을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 별천지의 성격을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도화원기에서 어부가 들어간 동굴은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정도로 좁은 길이었다.
동굴이라는 것은 대개 입구가 작고 안으로 들어가면 넓어진다. 호공의 호리병도 입구가 좁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벌어지는 모양을 하고 있다.
심층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는 모태로 돌아가기 위한 자궁 입구를 상징한다. 생명을 키워준 장소로 돌아간다는 향수와도 같은 사고가 도화원기의 또 다른 요소였다고 할 수 있다.
✅ 초자연적 시간 -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 시간
도화원기 속에 나오는 낙원의 주민들은 진(秦)나라 때부터 그 장소에 살게 되었다고 씌어 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바깥세상과 단절되어 있었다. 여기서 약500~600년 정도 시간의 엇갈림이 일어났다.
도화원기의 낙원에서는 그 이유를 납득하기 쉽지만 중국의 선계(仙界: 선인들이 사는 장소)에서는 이러한 시간의 엇갈림, 또는 초자연적 시간이라는 것이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다.
중국의 '낙원'은 말하자면 '시간의 낙원'이라는 양상을 가지고 있다. 구체적인 예를 소개한다.
4세기 무렵의 이야기이다. 산둥성(山東省)에 있는 어느 마을에 '과혈(瓜穴)'이라 불리는 동굴이 있었다. 이 동굴에서는 사시사철 맑은 물이 솟아나오고 간혹 참외 잎이 흘러나왔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어느 날 도교 수행을 어느 정도 해본 적이 있는 이반(李班)이라는 남자가 이 동굴에 들어가보았다. 구멍 속을 3백 보 정도 걸어가자 넓은 장소가 나왔다.
그곳에는 궁전이 있었고 머리와 수염이 새하얀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무척 고귀한 선인일 것이라고 생각한 이반은 그들 앞으로 나아가서 엎드려 절했다.
그러자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너는 돌아가는 편이 좋다. 여기에 오래 있으면 좋지 않다.'
이반은 인사를 하고 출구로 향했다. 구멍 끝에 다다르자 참외가 있었다. 그것을 따려고 손을 뻗었더니 참외는 돌로 바뀌어 버렸다.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말했다. '나가신 지 벌써 40년이나 지났습니다.'
마찬가지로 산둥성의 이야기가 또 하나 있다. 진(晋)나라의 태시년간(太始年間)에 봉구(蓬球)라는 나무꾼이 산속에서 일하고 있을 때 신기한 향기가 풍겨왔다.
그 향기에 매료되어서 바람이 부는 쪽을 향해 찾고 있는 사이에 어느 산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아름다운 궁전이나 높은 누각들이 서 있었다.
문으로 들어가 보니 이 세상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리따운 미녀 네 명이 구슬치기를 하며 놀고 있었다.
봉구를 발견한 미녀가 놀라서 일어섰다. '봉구님, 어떻게 이곳으로 오시게 되었지요?'
봉구왈 '향기에 이끌려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말을 듣자 여자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구슬치기를 시작했다. 봉구는 목이 말라 가까운 나뭇잎에 맺혀 있던 이슬을 핥았다.
갑자기 여인 하나가 학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여자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왜 속인을 이곳으로 불러 들였느냐? 서왕모님께 엄한 꾸중을 들을 것이야.'
두려워진 봉구는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뒤돌아보니 궁전도 누각도 미녀들의 모습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집으로 돌아왔더니 자신의 마을이나 집은 모두 황폐해져 있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건평년간(建平年間) 시대가 되었다고 했다. 불과 몇 시간 선계에 가 있는 동안에 벌써 1 백년 이상이나 지나 있었던 것이다.
흔히 세상일의 덧없음을 이야기할 때 예로 드는 한단지몽(邯鄲之夢)도 주막에서 밥이 끓는 잠깐 사이에 꿈속에서 영화를 누리며 파란만장한 50년 동안의 인생을 경험한다는 이야기인데 여기서도 시간은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한다.
즉 '낙원'이나 '선계'는 속세와 시간의 흐름이 전혀 다르다. 이런 이야기는 민간전승이나 옛날이야기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말하자면 신들이나 선인들의 시간은 일반 사람들의 시간과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신들은 물론이고 원래는 인간이었던 선인 또한 소위 '불로불사(不老不死)'로 죽음을 초월한 존재들이다. 죽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시간은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인생 50년'이라고 서둘러서 살아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도 나이를 먹기는 한다. 다만 일반 사람들에 비해서 시간의 흐름이 엄청나게 느리다.
그러므로 우연하게 신선 세계의 '시간'속에 있었던 인간은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왔을 때 참외가 돌이 되어 버린다든지 자신의 마을이 폐허가 되어 있는 것처럼 시간 경과의 엇갈림을 당하게 된다.
다른 세계(異界)를 본 인간은 그 보복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는 씁쓸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 반(反) 도시공동체 '오'
이처럼 도연명의 도화원기에는 '낙원'에 대한 중국인들의 사상이 곳곳에 배어 있다. 게다가 도연명은 낙원을 꿈꾸기만 하는 예술가였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가 살았던 시대에는 이 산속의 낙원이라는 이미지가 매우 현실감을 띠고 있었다.
그는 전란과 극심한 정치적 혼란이 되풀이되는 시대에 살았던 사람이다. 당시는 그런 혼란이 싫어서 도시를 벗어나 인적 없는 산악지대로 피난하는 사람들, 소위 유민이 적지 않았다.
신분이 높은 사람이 탈출하는 경우는 일가친척에 노예까지 데리고 도피하였기 때문에 자연히 이동하는 사람의 규모도 상당히 컸다. 그들은 산속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적당한 장소를 발견하면 그 주위에 흙으로 담을 쌓고 완전히 푹 파묻혔던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를 '오(場)'라고 한다. 그야말로 진나라 때 전란을 피해 산속에 '낙원'을 만들었던 도화원기의 마을 사람들을 연상시킬 수 있는 일들이 실제로도 존재했다.
다만 유민임은 틀림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자칫 잘못하여 도적으로 모습을 바꾸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더구나 도시생활에서 가졌던 상하관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도화원기에 나오는 것처럼 민주적인 여유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도화원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 도연명의 사상적 입장은, 이러한 정세를 바탕으로 두고 있기는 해도 보다 순수한 형태의 '낙원'을 지향했던 것 같다.
'여기저기에 있는 뜰 안에서 개나 닭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또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나 머리를 땋아내린 아이들'이 즐겁고도 한가롭게 놀고 있는 광경이란 농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와 풍요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그리고 이 글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어부가 마을에 들어갔을 때 그를 응대한 사람은 일반적인 마을 사람들뿐이었지, 그 마을의 지도자나 권력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즉 매우 민주적인 공동체의 모습이 보이는 듯한 부분이다.
어쩌면 도연명은 유민들의 공동체인 '오'에 대해서 커다란 가능성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마을과 대비되는 시골, 도시와 대비되는 '반(反)도시'의 이념이다.
그러나 현실의 오(場)는 이러한 이상과는 반대로 괴멸의 길을 걸었다. 그 이유로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우선 도시생활에서 이루어졌던 인간의 상하관계를 그대로 공동체로 가져갔다는 것.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반란군이 될 수도 있는 집단이었기 때문에 권력자들 쪽도 위협을 느껴서 무력으로 귀순 공작을 진행시킨 결과이기도 했다.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자발적인 의지로 산 속에서 살았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이렇게 해서 어쩌면 아름다운 '이상향'이 될 수도 있었던 공동체는 붕괴되어 갔다. 도연명의 꿈은 허사로 돌아간 것이다.
✅ 은일사상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표현된 '반도시(反都市)' 사상에 대해서 좀더 자세하게 생각해보자. 중국에는 전통적으로 '은일(隱逸)'사상이 있다. 이는 '자신의 뜻이나 생활 방식을 굳게 지켜서 관료가 되지 않는다'는 자세다.
당시 중국의 지식인들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길은 관료가 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사상이나 이상이 당시의 권력자와 맞지 않았을 때에는 관료가 되는 것을 거부하거나 이미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은 사임했다.
물론 이는 권력자에 대한 명백한 반항이다. 처벌을 두려워한 그들은 시골이나 산속에서, 말하자면 '은거'하는 자세로 스스로의 의지를 내보였던 것이다.
잘 알려진 사례로 '죽림칠현(竹林七賢)'이 있다. 이는 위(魏), 진(晋)나라 시대(3세기 후반)에 정치적 혼란을 피해서 잠시 허난성 북동부에 있는 대나무 숲에 모여서는 여러 가지 논의를 벌였다는 일곱 명의 지식인들을 일컫는 말이다. 완적(阮籍)과 산도(山濤) 등이 중심인물이었다.
당시는 사마(司馬)씨가 위나라의 왕위를 빼앗아서 진 왕조를 세우려고 싸우고 있던 시대였다. 칠현이라고 불린 사람들은 각각 사정은 달랐지만 정치적 혼란이 싫어서 '은사(隱士)'가 되었던 것이다. 이런 자세는 후대 사람들로부터 청렴결백한 사람들이라 하여 높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소위 은자(隱者)와는 다른 존재들이다. 은지(Hermit)라는 것은 주로 종교적 동기에서 속세를 버리고 산속에서 수행을 쌓는 생활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들과 같은 '은사(隱士)'의 경우는 그렇게 세상을 버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권력으로 복귀할 수 있는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만일 그 사람의 뜻이 위정자에게 인정되어 자신의 이상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정치 형태가 마련되면 당장이라도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갈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풍조 속에서 세상에 '현자'임을 드러내기 위해 겉으로만 은거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위정자 쪽도 자신의 정치 자세가 관용이 넘치고 현명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러한 은사들을 후대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옛부터 결코 만만하게 보아서는 안 될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무릉도원'의 내용에는 잠깐 살펴보기만 해도 이처럼 커다란 테마, 또는 사상이 담겨져 있다. 이 작품의 배경을 연구하는 것은 그대로 중국의 사상사, 종교사, 민속사(民俗史)를 알게 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도연명이 도화원기에 표현한 이상향은 무척 친근하게 생각되기는 하지만 결국 인간은 지금껏 그 땅에 이르지 못했다. 그래도 그가 제시한 이상향은 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지금까지도 신선한 매력이 넘치는 존재로 남아 있다.
▶️ 武(호반 무)는 ❶회의문자로 戈(과)와 止(지)의 합자(合字)이다. 창(戈)과 같은 무기(武器)로 병란(兵亂)을 막아 그치게(止) 한다는 뜻이 합(合)하여 호반(虎班), 굳세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武자는 '무사'나 '무예', '무인'을 뜻하는 글자이다. 武자는 戈(창 과)자와 止(발 지)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여기서 戈자는 낫과 같은 모양의 고대 무기를 그린 것이다. 이 무기는 방패 뒤에 숨어 적의 발목을 절단하는 용도로 쓰였다. 武자는 이렇게 창을 그린 戈자에 발을 뜻하는 止자를 더한 것으로 무사가 창을 들고 움직이는 모습을 표현했다. 그래서 武(무)는 문(文)에 대하여, 군사(軍事), 무술(武術), 무인(武人) 등의 뜻으로 ①호반(虎班; 무관武官의 반열班列) ②무인(武人) ③무사(武士), 병사(兵士) ④군대(軍隊)의 위용(威容), 무위(武威) ⑤병법(兵法), 전술(戰術) ⑥무예(武藝), 무술(武術) ⑦병장기(兵仗器; 병사들이 쓰던 온갖 무기), 무기(武器) ⑧발자취, 발자국 ⑨반보(半步), 석 자 ⑩무왕(武王)의 준말 ⑪굳세다 ⑫용맹(勇猛)스럽다, 맹렬(猛烈)하다 ⑬군사를 부리다, 지휘하다 ⑭잇다, 계승(繼承)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글월 문(文), 말씀 언(言)이다. 용례로는 전쟁에 쓰이는 총검이나 화포나 핵병기 따위 온갖 기구 또는 어떤 일을 달성하기 위한 힘이나 방패가 되는 수단을 무기(武器), 전투를 하기에 필요한 장비를 갖추어 차림 또는 어떤 일을 하기에 필요한 마음의 자세나 기술 등을 갖춤을 무장(武裝), 군사 상의 힘 또는 마구 욱대기는 힘을 무력(武力), 무예를 익히고 무도를 닦아서 전쟁에 종사하는 사람을 무사(武士), 무술에 뛰어나고 군대를 거느려 다스리는 우두머리를 무장(武將), 전쟁에서 세운 공을 무공(武功), 무인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무도(武道), 무인이 갖춘 위엄과 덕망을 무덕(武德), 무사 또는 무협의 세계를 무림(武林), 모든 군사 시설이나 장비를 무비(武備), 병법에 대한 글이나 책을 무경(武經), 무예에 익숙하고 능란함을 무간(武幹), 무력이나 억압으로 일을 해 나감을 무단(武斷), 무인으로서의 명예를 무명(武名), 군대 또는 무력의 힘을 무세(武勢), 무예에 뛰어나고 용감함을 무용(武勇), 무도를 배움을 강무(講武), 힘차고 씩씩하게 걷는 걸음을 보무(步武), 위엄 있고 씩씩함을 위무(威武), 무예를 닦음을 연무(硏武), 영특하고 용감함을 영무(英武), 무기를 보관하고 쓰지 않음을 언무(偃武), 이 세상을 떠난 별천지를 이르는 말을 무릉도원(武陵桃源), 시골에 지위 있는 사람이 백성을 억지로 내리 누르는 짓을 함 또는 그런 시골을 일컫는 말을 무단향곡(武斷鄕曲), 지배자의 학정이나 압제 따위에 대항하여 백성이 무장을 하고 일어나는 저항 운동을 일컫는 말을 무장봉기(武裝蜂起), 무인으로서의 운수가 길고 오래감을 일컫는 말을 무운장구(武運長久), 학문에 뛰어나고 무술에 뛰어남으로 모든 것에 뛰어남을 일컫는 말을 영문영무(英文英武), 문식과 무략을 모두 갖추고 있음을 이르는 말을 문무겸비(文武兼備), 걸음걸이가 씩씩하고 버젓함을 일컫는 말을 보무당당(步武堂堂), 문무가 뛰어남 또는 그러한 것을 갖춘 사람을 일컫는 말을 능문능무(能文能武), 군사를 쓸 만한 곳이나 무력을 쓸 만한 곳을 이르는 말을 용무지지(用武之地) 등에 쓰인다.
▶️ 陵(언덕 릉)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좌부변(阝=阜; 언덕)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夌(릉)으로 이루어졌다. 큰 언덕의 뜻이다. 음(音)이 靈(령)과 비슷하므로 신령을 모신 작은 언덕, 능의 뜻이 되고 또 凌(릉)과 통하여 능가하다의 뜻으로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陵자는 '언덕'이나 '무덤', '오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陵자는 阜(阝:언덕 부)자와 夌(언덕 릉)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런데 갑골문에서는 단순히 언덕 위로 오르는 사람만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陵자의 본래 의미는 '오르다'였다. 하지만 후에 陵자는 높은 언덕을 뜻하게 되었고 소전에서는 발을 그린 夊(천천히 걸을 쇠)자가 더해지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래서 陵(릉)은 ①큰 언덕 ②능, 무덤 ③가벼이 여기다 ④업신여기다 ⑤범(犯)하다 ⑥넘다 ⑦오르다 ⑧불리다 ⑨물에 담그다 ⑩능이하다(凌夷; 차차 쇠하다) ⑪짓밟다 ⑫험(險)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언덕 구(丘), 언덕 애(厓), 언덕 원(原), 언덕 구(坵), 언덕 파(坡), 언덕 강(堈), 언덕 안(岸), 언덕 강(崗), 언덕 애(崖), 언덕 구(邱), 언덕 판(阪), 언덕 아(阿), 언덕 고(皐), 언덕 부(阜), 밭두둑 롱(壟), 메 산(山), 큰 산 악(岳),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물 하(河)이다. 용례로는 능과 묘를 일컫는 말을 능묘(陵墓), 능을 지키는 벼슬아치를 능관(陵官), 능이 있는 곳을 능소(陵所), 임금이 능에 거동함을 능행(陵幸), 능의 이름을 능호(陵號), 능에 딸려 있는 논을 능답(陵畓), 능을 만들거나 고치는 역사를 능역(陵役), 침범하여 넘음을 능월(陵越), 업신여기어 깔봄을 능멸(陵蔑), 남을 업신여기어 욕보임을 능욕(陵辱), 파도를 헤침이나 파도 위를 건넘을 능파(陵波), 언덕이나 나직한 산을 구릉(丘陵), 임금의 묘를 왕릉(王陵), 산과 언덕을 일컫는 말을 산릉(山陵), 언덕이나 작은 산 따위를 강릉(岡陵), 옛 능을 일컫는 말을 고릉(古陵), 능을 받들어 보살핌을 봉릉(奉陵), 높은 언덕이 변하여 깊은 골짜기가 되고 깊은 골짜기가 높은 언덕으로 변한다는 뜻으로 세상일이 극심하게 뒤바뀜을 이르는 말을 능곡지변(陵谷之變), 높은 지위에 오르고자 하는 욕망을 일컫는 말을 능운지지(陵雲之志), 머리 몸 손 발을 자르는 극형을 일컫는 말을 능지처참(陵遲處斬), 이 세상을 떠난 별천지를 이르는 말을 무릉도원(武陵桃源),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능가하여 윗사람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다는 뜻으로 세상이 어지러움을 이르는 말을 하릉상체(下陵上替) 등에 쓰인다.
▶️ 桃(복숭아 도)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나무 목(木; 나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兆(조, 도)로 이루어졌다. ❷형성문자로 桃자는 ‘복숭아’나 ‘복숭아나무’를 뜻하는 글자이다. 桃자는 木(나무 목)자와 兆(조짐 조)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兆자는 거북의 배딱지(復甲)에 나타난 점괘를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조→도’로의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복숭아에 대한 고대인들의 인식은 매우 극단적이었다. 설화에서는 장수의 상징인 천도(天桃)복숭아 이야기가 전해져오지만, 도화살(桃花煞)이 있는 여자는 한 집안을 망하게 한다는 민간신앙도 있다. 복숭아는 귀신을 내쫓기 때문에 제사상에는 물론 집안에도 복숭아나무를 심지 않았다. 그래서 어찌 보면 桃자에 쓰인 兆자는 발음역할 외에도 복숭아가 신(神)적인 것과 연관된 과일임을 뜻하기 위해 쓰인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桃(도)는 ①복숭아 ②복숭아나무 ③복숭아(열매) ④대나무의 한 가지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복숭아와 자두를 도리(桃李), 복숭아 나무 숲을 도림(桃林), 복숭아의 털을 도모(桃毛), 복숭아나무의 열매를 도실(桃實), 복숭아 밭을 도원(桃園), 복숭아씨의 알맹이를 도인(桃仁), 복숭아 나무 가지를 도지(桃枝), 복숭아 껍질을 도피(桃皮), 나무에 달린 채 겨울을 나서 저절로 마른 복숭아를 도효(桃梟), 복숭아 빛깔과 같은 빛깔을 도색(桃色), 복숭아 꽃을 도화(桃花), 복숭아 나무의 잎을 도엽(桃葉), 신선 나라에 있다는 복숭아를 선도(仙桃), 선가에서 하늘 위에 있다고 하는 복숭아를 천도(天桃), 3천 년 만에 한 번씩 열매가 열린다는 선도를 반도(蟠桃), 흰 빛깔의 복숭아를 백도(白桃), 복숭아와 오얏이 천하에 가득하다는 뜻으로 우수한 문하생이 많음을 비유하는 말을 도리만천하(桃李滿天下), 복사꽃이 아름답게 피는 때라는 뜻으로 처녀가 시집 가기에 좋은 꽃다운 시절을 이르는 말을 도요시절(桃夭時節), 도원에서 의형제를 맺다는 뜻으로 의형제를 맺음 또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사욕을 버리고 목적을 향해 합심할 것을 결의함을 일컫는 말을 도원결의(桃園結義), 속계를 떠난 별천지를 일컫는 말을 도원경(桃源境), 이 세상과 따로 떨어진 별천지라는 도원향(桃園鄕), 도화원이 세상과 따로 떨어진 별천지를 일컫는 말을 도화원(桃花源), 이 세상을 떠난 별천지를 이르는 말을 무릉도원(武陵桃源), 같은 행동이라도 사랑을 받을 때와 미움을 받을 때가 각기 다르게 받아 들여질 수 있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을 여도지죄(餘桃之罪), 먹다 남은 복숭아를 임금에게 먹인다는 뜻으로 처음에는 좋게 보여 사랑 받던 것이 나중에는 도리어 화근이 됨을 이르는 말을 여도담군(餘桃啗君) 등에 쓰인다.
▶️ 源(근원 원)은 ❶형성문자로 厵(원)과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삼수변(氵=水, 氺; 물)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原(원)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原은 민엄호(厂; 굴바위, 언덕)部와 泉(천; 샘)을 합친 글자로, 샘이 바위 사이에서 솟아 나오는 모양이다. 전(轉)하여 원천(原泉), 시작, 발생의 뜻이 있다. 후에 다시 삼수변(氵)部를 더하였다. ❷회의문자로 源자는 ‘근원’이나 ‘원천’, ‘기원’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源자는 水(물 수)자와 原(근원 원)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原자는 언덕(厂)과 샘(泉)을 함께 그린 것으로 바위틈 사이에서 물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본래 근원이라는 뜻은 原자가 먼저 쓰였었다. 그러나 해서에서부터는 水자가 더해진 源자가 물줄기가 시작되는 ‘발원지’를 뜻하게 되었고 原자는 ‘근원’이라는 뜻으로 분리되었다. 그러나 실제 사용에서는 두 글자를 서로 혼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源(원)은 ①근원(根源) ②기원(起源) ③출처(出處) ④수원(水源: 물이 발원하는 곳) ⑤발원지(發源地) ⑥성(姓)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물이 흘러나오는 근원을 원천(原泉), 근원을 구명함을 원구(源究), 물이 흐르는 원천을 원류(原流), 어떤 목적에 이용할 수 있는 물자나 인재를 자원(資源), 글자가 구성된 근원을 자원(字源), 낱말이 생겨나서 이루어진 역사적인 근원을 어원(語源), 돈의 출처나 재물을 얻는 근원을 재원(財源), 사물이 생겨나는 본바탕이나 일의 밑바탕을 근원(根源), 사물이 생긴 근원이나 사물이 처음으로 생김을 기원(起源), 하천의 물이 흘러나오는 근원을 수원(水源), 전력을 공급하는 근원을 전원(電源), 근원을 아주 막아 버림을 색원(塞源), 스스로 빛을 내는 물체를 광원(光源), 지각 내부에 있는 지진 진동의 발생점을 진원(震源), 물의 근원이 비롯함 또는 사회 현상이나 사상 따위가 처음 일어남을 발원(發源), 사물의 주장이 되는 근원을 본원(本源), 많은 재물이 생기는 근원을 부원(富源), 어떤 사물이나 일의 근원을 찾아 밝히고 상고함을 소원(溯源), 사물의 근원에 관계된 것을 원천적(源泉的), 어떠한 사물 사건이 생기는 근원이 되는 곳을 원천지(源泉地), 소득세의 징수 방법의 하나로 원천징수(源泉徵收), 물의 근원이 맑으면 하류의 물도 맑다는 원청칙유청(源淸則流淸), 근본을 빼내고 원천을 막아 버린다는 뜻으로 사물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서 그 뿌리째 뽑아 버림을 이르는 말을 발본색원(拔本塞源), 이 세상을 떠난 별천지를 이르는 말을 무릉도원(武陵桃源), 재원을 늘리고 지출을 줄인다는 뜻으로 부를 이루기 위하여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을 비유한 말을 개원절류(開源節流), 물을 마실 때 수원을 생각한다는 뜻으로 근본을 잊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음수사원(飮水思源)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