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본인이 쓴 해질녘 소양강에서 허점분 은사님 그리워하다
라는 글을 부산교육대학교 재경동문회 카페에서 읽은 허점분 교수님
손녀되시는 구정은 경향신문 기자가 기고한 글을 옮겨 실었습니다
. 참으로 우연한 귀한 인연입니다. 감사합니다
.
춘천 학원 배
이학원 교수님께 감사의 글 올립니다.
허점분 교수님 손녀입니다.
구정은: 경향신문 기자
강원대 이학원 명예교수님께서 제 할머니, 허점분 교수님을 회고하며 올리신
글을 잘 읽었습니다. 이 글이 올라와 있다는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듣고서,
자세히 읽고 감사말씀 드리기 위해 이 카페에 가입했습니다.
이학원 교수님, 먼저 인사부터 드리겠습니다. 저는 구정은이라고 합니다. 경
향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제 아버지 구자호가 허점분 교수님의
둘째 아들입니다.
교수님 글이 제 할머니의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몹시도 재미있어서 마치 한
편의 단편소설을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다 읽고 나니 눈시울이 시큰해졌습
니다.
저는 어릴 적 할머니와 한 방을 썼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할머니와
함께 한 어린 시절에는 집에 방이 없어서 온 식구가 같은 방을 썼습니다.
새 집을 짓고 방이 늘었지만 할머니와 같은 방에서 지냈습니다. 할머니는
말수가 적으셨고, 늘 fact만 말하셨습니다. 감상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거나
힘겨운 인생 살아오신 이야기를 푸념하는 일은 통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생
각해보면 그 인생이 얼마나 고달프셨을까 싶습니다.
할머니는 일본 식민통치를 받던 시절에 일본 유학을 다녀오신 신여성이셨습
니다. 이 교수님 글에 나오는 창녕의 영산은 할아버지의 고향이며 할머니 고
향은 합천입니다. 할머니의 큰오라버니는 이광수의 <흙>에 나오는 인물의
실제 모델이라는 얘기를 아버지에게서 들은 적 있습니다. 그 오라버니가 제
할아버지의 선배이셨고, 그런 인연으로 일본 유학 때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만나셨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귀국해서 결혼을 했습니다. 할머니의 남편, 얼굴도 뵌 적 없는 제
할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하셨고(국가유공자입니다) 한국전쟁 때 납북되셨습
니다. 할머니는 생과부가 되셨으니, 여섯 자식을 끌어안고 얼마나 막막하셨
을까 싶습니다. 살아계셨다면 저의 큰고모이셨을 할머니의 큰딸은 열 두어살
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할머니는 몇번이나 "갸가 참 이쁘고 착했다"고 하셨
습니다.
세째 아들은 면사무소 직원이 돼서 참 좋았는데 연탄가스에 중독돼 젊은 나
이에 숨졌다고 하셨습니다. 할머니는 "양복 한 벌 해달라는 것을 못 해줬는
데 그만 죽어버렸다"며 뒤에 애통해하셨습니다. 그 시절 정말 보기 힘들었을
'여교수님'이셨고 돈 없는 제자를 안타까워하며 도와주는 분이셨지만, 할머
니의 인생도 참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교수 자리를 얻기 전에는 부산
에서 피란살이를 하며 몹시 고달프게 사셨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
그 정도 고생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고, 남들이 보기엔 부럽기만한 인
텔리의 삶이었겠지요
.할머니의 막내딸인 제 고모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래서 할머니가
미국에 다녀오셨는데, 가져오신 물건들은 어린 제게는 아주 신기했습니다.
연필 뒤꼭지에 끼우는 고무 지우개, 다리가 구부러지는 인형, 두꺼운 전기장
판이 아닌 보들보들한 전기 담요. 어릴 적 저희 집은 부자가 아니었고, 물건
의 풍요를 누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가 가져오신 '미국 물건'들은
제게는 신비한 보물처럼 보였습니다.
더 신기한 것은 할머니가 보여주신 사진들이었습니다. 거대한 저택에 구경을
갔다고 하셨습니다. 감상보다는 사실을 주로 전달하시던 할머니는 이제 겨
우 초등학교에 들어간 나이였을 제게 "이것은 신문재벌 허스트의 집이다. 방
이 스물 몇 개나 된다"고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제 머릿속에서 허스트는
지워지지 않는 이름으로 남아 있습니다.
할머니와 아침마다 앞산 약수터에 산보를 다녔고, 할머니의 얼음사탕을 몰래
훔쳐먹었고, 할머니와 함께 잠을 잤습니다. 하지만 제가 할머니에 대해 아
는 것은, 할머니 인생의 1000분의 1, 100만분의 1에도 못 미칠 것이라고 생
각합니다. 할머니는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에 대한 글을 갑자기 만나고 보니 반갑고 눈물이 핑 돕니다. 그래서
동문도 아니면서 이렇게 카페에 글 남깁니다. 이 교수님께서 올려주신 글은
저희 식구 모두 돌아가며 읽겠습니다.
이학원 교수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