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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신앙고백서 Article 7: The Sufficiency of Scripture / 성경의 충족성
We believe that this Holy Scripture contains the will of God completely and that everything one must believe to be saved is sufficiently taught in it. For since the entire manner of service which God requires of us is described in it at great length, no one-- even an apostle or an angel from heaven, as Paul says-- ought to teach other than what the Holy Scriptures have already taught us. For since it is forbidden to add to or subtract from the Word of God, this plainly demonstrates that the teaching is perfect and complete in all respects.
우리는 성경에 하나님의 뜻이 완전하게 담겨 있다는 점과,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 믿어야 할 모든 것들은 성경에서 충분히 가르침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섬기는 방식 전체를 성경에 방대하게 기록하셨고 이대로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따라서 바울 사도가 언급한 바, 그 어떤 사도들이나 하늘의 천사들이라 할지라도, 성경이 이미 우리에게 가르친 것 이외의 것을 가르치지는 못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거나 제외하는 그 어떤 것도 금지되어야 하는 이유는, 성경의 가르침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모든 방면에서 완벽하고 완전하다는 것을 성경 자체가 그저 드러내어 입증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뜻이 완전하게 담겨 있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든 신비한 지식이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다는 뜻이 아니라, 이 땅에 존재하며 살아가는 교회와 성도들이 신앙을 유지하고 장성한 분량까지 키워나가는데 필요한 모든 내용이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한 사도가 고백한 바,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을 모두 기록하려 했다면 그 책들을 이 땅 위에 보관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하였다. 이 땅에서 행하신 예수님의 행적들도 전부 기록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천상의 하나님의 일들을 전부 기록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 믿어야 할 모든 지식이라는 것은,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 성경의 가르침대로 배우고 믿고 행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는 자신이 구원받았음을 입증하기 위해 필요충분한 지식들을 성경에서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단지 우리에게 수천쪽 남짓의 성경만을 주시고 요구하신다는 것은 사실 거의 우리에게서 아무것도 기대하시거나 찾으시는 것이 없으시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 본다면 이 수천쪽 남짓의 단 한권의 성경을 가지고 수천년 동안 수많은 성경교사들이 여전히 각양각색의 해석을 쏟아내고 앞으로도 주님 오시기까지 그럴 것이므로 매우 방대하다고 할 수 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은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똑같은 분량의 모든 지식을 가지고서만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각자와 성도 개개인의 신앙과 연륜과 은사의 정도에 따라 각양각색이되 점진적으로 자라가고 익어가게 되는 것이다.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직접 세우시고 임명하신 복음 사역자들의 수장들이고, 천사들은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예수님의 명령대로 이행하는 충직한 일꾼들이기 때문에, 참된 사도들과 천사들이 예수님께서 기록하게 하신 성경을 벗어난 다른 교훈을 가르칠수는 없다. 따라서 이 고백을 따르고 준수하고자 하는 성경교사들은 오직 성경의 교훈만을 가르쳐야만 하며, 성도들은 오직 성경의 교훈만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칭 성경교사라 하면서 성경과 무관한 것들만을 가르치거나, 성경에 위배되는 것들을 가르치는 자들은 서로간의 사랑을 무엇보다도 강조한 사도들이 정죄와 저주를 서슴지 않았던 거짓교사에 불과하다. 또한 어떤 신비한 영적 체험을 통해서 어떤 영으로부터 받았다고 하는 계시들의 내용이 성경에 위배되거나 성경에 없는 내용들이라면 이 또한 사도들이 경계한 바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사탄의 속이는 교훈들이기 때문에 계시를 받기 전에 반드시 그 영에게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성경의 교훈을 가감한다는 것은, 나의 지성과 감성과 신앙의 한계 때문에 깨닫지도 알지도 못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성경 지식과 지혜를 나의 탐심을 위해 고의적으로 어떤 것은 숨기고 어떤 것은 덧붙이며 어떤 것은 합리화하는 모든 행위를 의미한다. 사랑, 은혜, 복, 용서, 형통, 화합, 하나됨 등의 긍정적인 교훈들만 전하는 반면에, 공의, 심판, 징벌, 버려짐, 고난, 핍박, 분열 등의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교훈들은 일부러 배제하는 것이 성경의 교훈을 가감하는 짓이다. 특정 정치, 경제, 학문, 인권, 문화 등등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성경에서 타당한 근거를 찾는 것은 괜찮지만, 자기가 추구하는 이념만이 성경에서 인정하는 유일한 진리라고 하는 것은 성경을 가감하는 짓이다. 민주주의만이 성경에서 유일하게 인정한 정치체재라고 하는 것, 자본주의만이 성경에서 유일하게 인정한 경제체제라고 하는 것, 이 땅에 기독교 정부를 세우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 세우는 것이라 하는 것, 하나님의 창조가 진화의 방식으로 이뤄졌다고 하는 것 등이 성경을 가감하는 짓이다.
성경과는 무관한 세속인들의 가르침 속에서도 분명 주님의 일반은총이 어느 정도 반여되어있기 때문에 성경에 부합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성경을 더 잘 가르치려는 목적으로 그런 세속인들의 가르침을 설교나 성경 강해 등에 끌어들이는 것은, 심지어 바울 사도조차도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던 때에도 매우 애를 먹었던, 득보다는 실이 많은 가장 하수의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성경과 무관한 세속인들의 가르침이나 예화들을 끌어들이는 성경 교사 내면의 원초적인 목적은 단지 자기자신의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고자 하는데에 있다는 것과, 그들 스스로 성경 자체만으로는 신앙을 위한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데 충분하지 않다고 인정하는 것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렇게 성경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여기는 성경교사들과 그들의 추종자들은 성경보다 전통과 관습을 더 중요시한 바리새인들 및 교황주의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Therefore we must not consider human writings-- no matter how holy their authors may have been-- equal to the divine writings; nor may we put custom, nor the majority, nor age, nor the passage of time or persons, nor councils, decrees, or official decisions above the truth of God, for truth is above everything else.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거룩한 위인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저작들이 하나님께서 신령하게 기록하신 성경과 동등한 권위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여겨서는 안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관습이나 권세나 시대나 시간이 흐른 기간이나 거쳐간 사람의 수나 공적 회의나 법령이나 공적 결정을 하나님의 진리보다 우위에 두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리는 모든 것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신앙의 위인들은 우리가 마땅히 존경하고 본받아야 할 인물이지 숭배의 대상이 아니듯이, 그들의 저작들 또한 우리가 마땅히 신앙의 유익을 얻기 위해 다분히 읽고 배워야 하는 것이지 성경보다 더 귀하게 여기거나 우선순위를 두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아무리 신앙의 위인들이 거룩하다 하더라도 완전히 죄성을 벗어난 것은 아니었으며, 아무리 위인들의 성경해석이 탁월하다 하더라도 오류가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교회의 목사와 그들의 설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주님께서는 물론 교회의 목사들을 통해서 신자들에게 복음을 가르치고 전하게 하셨기 때문에 신자들은 마땅히 목사와 그들의 전하는 가르침을 존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목사가 아무리 성경을 잘 가르치고 덕망이 높다 하더라도 주님만큼 심지어 주님보다 더 숭배해서는 안되며, 목사의 가르침을 아무런 분별없이 맹종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목사의 가르침에도 실수나 오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성도가 성경으로 점검을 하다가 오류를 발견하게 되면 정중하게 문의를 드리거나 적어도 그 잘못된 내용만큼은 스스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교부 시대로부터 칼빈 선생과 같은 신앙개혁가들을 거쳐 청교도 시대까지 여러 이단들에 대항하기 위해 구축되어 온 여러 신앙고백서들과 교리문답들은 수많은 시대들과 탁월한 성경교사들의 검증과 합의를 거쳐서 작성된 것이기 때문에 현존하는 문서들 중 가장 성경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신앙을 추구하는 교회와 성도들은 그러한 신앙 표준문서들을 열심으로 가르치고 배움으로써 신앙을 세워나가는 것이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신앙고백서들은 불완전한 위인들이 작성한 것들인데다가 시대가 흐르면서 새롭게 밝혀진 진리들은 포함하고 있지 않으므로 아무리 내용이 탁월하다 하더라도 성경과 동급으로 치부될 수는 없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사도신경을 제외한 그 이후의 모든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에서는 예수님의 육체가 동정녀 마리아의 육체의 형질을 가지고 생성된 것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진리가 헬라 철학의 영향으로 인해 가장 크게 훼손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마땅히 이 오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육신 전에도, 심지어 영원 전부터 지금 하늘에서 하나님 우편에 계신 것과 같이 영광의 사람으로서 계셔왔었다고 변경되어야 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축적된 공고함이 있기 때문에 단번에 교회와 신자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오랜 동안 진리가 가려질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해하며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나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전 인성에 대한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하더라도 이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위인들과 저서들과 신앙문서들을 배격하고 정죄하는 것은 스스로 영원히 멸망당할 이단의 길에 접어드는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 교회에서는 담임목사와 장로들로 구성된 당회가 가장 큰 권위를 가지는데, 그 성경적인 이유는 적어도 그들이 교회에서 가장 말씀을 잘 알고 말씀대로 실천해야 하는 직분자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회에서 의결되는 것들은 대체로 성경에 부합하는 것이리라 인정하고 수용하며 넘어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회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성경에 위배되는 결정을 할 때에는 최대한 격식을 갖춰서 그 결정의 성경적 부당함을 건의해야 한다. 그래서 그것이 받아들여져서 기존 결정이 철회된다면 감사한 일이겠지만, 설령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통상적인 예의범절을 벗어난 신랄함으로 반박한다거나, 당회 자체나 심지어 교회까지 부정해버리고 나가버리는 것은 도리어 자기자신의 신앙을 심각하게 해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므로 삼가야 한다. 만약에 당회가 정당한 성경적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성도 개인이 할 수 있는 한 그 결정을 거부해나가면 되는 것이다.
For all human beings are liars by nature and more vain than vanity itself.
이는 모든 인간은 본성상 거짓말쟁이이며 그 자체로 헛되고 헛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기록자들도 물론 본성상 헛된 거짓말쟁이이지만 주님께 특별히 세우심을 받아 성령에 감동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오류없이 기록할 수 있었다. 사도시대 이후에는 교부들이나 신앙개혁가들과 같은 탁월한 성경교사가 있어왔지만 그들은 선지자들이나 사도들만큼 성령에 감동되지 못했기 때문에 성경의 내용을 가감할 수 없었고 단지 성경을 좀 더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도록만큼만 감동을 받은 것이었다. 그런 탁월한 신앙의 위인들도 본인 스스로 본성상 헛된 거짓말쟁이인 것을 절감했기 때문에 행여나 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치는데 자신들의 육체의 소욕이 반영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였다. 성경에 대한 지혜와 지식과 믿음이 자라갈수록, 자칫 잘못하다가는 그 성경지식으로 인해서 신앙을 저버리거나 이단으로 빠져버리게 되지는 않을까 조심해야 하며, 주님 앞에서 자랑할 것 없는 무익한 종임을 매순간 고백해야만 한다.
Therefore we reject with all our hearts everything that does not agree with this infallible rule, as we are taught to do by the apostles when they say, "Test the spirits to see if they are of God," and also, "If anyone comes to you and does not bring this teaching, do not receive him into your house."
그러므로 우리는 이 절대적으로 오류가 없는 규범인 성경에 동의하지 않는 모든 것을 전심으로 거부합니다. 사도들은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라는 말씀으로 우리를 가르칩니다.
성경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잘못된 지식, 잘못된 이해, 잘못된 적용을 고집하는 것이다. 잘못된 성경지식이란 복음의 핵심 진리들에 무지하거나 혼동하는 것인데, 성도라면 더욱 더 올바른 지식을 알기 위해 노력할것이나, 거짓 신자들은 더 배우려하지 않거나 자기의 잘못된 지식을 고집하고 고치려 하지 않는다. 잘못된 성경이해는 잘못된 성경지식들의 조합에서 비롯될수도 있고, 성경지식은 올바로 가지고 있으나 그것들을 잘못 조합함으로써 생길수도 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성도들은 설령 잘못된 이해를 할 수는 있더라도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되면 바로 정정하지만, 거짓 신자들은 잘못되게 이해한 것을 알게 되더라도 인정하지 않고 그저 자기의 잘못된 이해를 참된 해석이라며 고집한다. 잘못된 성경 적용은 잘못된 지식 또는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될수도 있고, 성경 지식과 이해는 올바르나 삶에서는 지식과 이해대로 적용하지 않을수도 있다. 성도들은 비록 자신들이 성경을 알고 깨닫는대로 모두 실천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나날이 조금씩이나마 실천의 범위를 넓혀가지만, 거짓 신자들은 성경을 알고 깨닫는 것에만 안주하고 정작 실천은 하지 않는다. 따라서 교회와 성도들은 성경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이해와 적용을 통해서 성경에 동의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드러내어 증거해야 한다.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분별하라는 것은 비단 어떤 신령한 환상을 체험하는 중에 나타난 영적 존재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목사들의 설교나 강해, 유명한 신앙인들의 책, 교회에서 만나는 교인들의 신앙 이야기 등은 물론이고, 그들의 행실까지 모두 포함된다. 요한 사도는 영들을 분별하는 가장 큰 원리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지를 가지고 점검해야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주기도문만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듯이, 영들을 분별함에 있어서도 요한 사도의 원리만 문자적으로 할 수는 없는법이다. 즉, 우리가 접하게 되는 어떤 영적 존재나 목사나 책이나 그들의 행실들이 과연 성경의 진리를 토대로 하는지를 꼼꼼하게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위해서는 사도신경을 비롯하여 역사적으로 구축되어온 신앙고백서들과 교리문답들을 분별장치로 삼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또한 영들을 분별하는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나 자신의 영이 어떤 상태인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성경을 아는 지혜와 지식이 나날이 장성해가는지, 성경을 아는만큼 순종하고 선을 행함으로써 성령의 열매를 점점 더 많이 맺고 있는지를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