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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로 요리하거나 난방을 하면 '생수로 설거지하는 격'이라고 한다. 전기 에너지는 깨끗하고 편리한 데다 빛·열(熱)로도, 모터·자동차 동력으로도 쓸 수 있다. 깨끗하고 편리한 고급 에너지인 만큼 생산 과정에서 손실이 따른다. 석탄화력이나 원자력 발전의 에너지 생산 효율은 40%밖에 안 된다. 나머지 중 55%는 온배수(溫排水)로, 5%는 굴뚝을 통해 폐열(廢熱)로 배출된다. 그렇게 에너지의 절반 이상 버려가며 힘들게 만들어낸 전기를 갖고 단순히 물체를 덥히는 데 쓰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발전소는 보통 바닷가에 위치해 있다. 발전소 폐열을 바닷물 냉각수에 실어 온배수로 버리기 위해서다. 서해 해안가에 자리 잡은 충남 당진화력발전소엔 50만㎾급 석탄발전소 8기가 가동 중이다. 여기서 요즘 시간당 50만t(초당 139t)의 온배수가 배출된다. 냉각수로 들어온 바닷물은 7도 정도 데워진 후 다시 바다로 배출된다.
석탄화력발전소에서 폐열로 버려지는 에너지양은 우리나라가 쓰는 전체 에너지의 8.6% 정도 된다고 한다. 원자력발전소를 합치면 12%를 넘을 것이다. 2010년 기준 석탄화력 온배수 폐열의 에너지양을 석탄으로 환산해봤더니 4000만t, 3조9000억원어치였다는 계산도 있다.
이런 발전소 온배수를 재활용하려는 정책이 고안되고 있다. 당진화력의 운용사인 동서발전은 발전소 온배수를 2㎞ 떨어진 대호방조제 간척 농지까지 공급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유리온실 영농단지를 조성해 난방용으로 쓰자는 것이다. 이때 히트펌프라는 기계 장치가 사용된다. 히트펌프는 에어컨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에어컨은 에너지가 낮은 곳(실내)에서 에너지가 높은 곳(실외)으로 열을 품어 올린다. 온배수 수온(水溫)은 겨울엔 12도, 여름엔 31도 정도 된다. 이걸 수온 50도 이상으로 끌어올려 하우스 단지에 공급하는 것이다.
동서발전은 1차로 10㏊(3만평) 규모의 유리온실 시범단지를 만들 예정이다. 히트펌프·관로 설치에 125억원 정도 든다. 온실에선 파프리카·토마토·망고 같은 고(高)부가 원예 작물을 재배하면 된다. 고온성 작물의 시설원예 경영비에서 난방비 비중은 20~35%이다. 규모는 얼마든지 더 키워갈 수 있다.
이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가 맞서 있다. 발전소 온배수를 난방용으로 활용할 경우 '신재생에너지 의무 생산(RPS)' 실적으로 인정할 건가 말 건가 하는 문제다. RPS는 발전소들에 생산 전력의 일정 비율을 태양광·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로 만들어내도록 의무화한 제도다. 환경부는 발전소들이 온배수 사업으로 몰려가면 태양광·풍력 사업이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 있다며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에너지 정책의 최종 목표는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하자는 것이다. 풍력·태양광 비중을 늘리는 것은 목표 달성을 위한 중간 정거장일 뿐이다. 최종 목표 지점에 더 효율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길이 있는데 그걸 외면할 필요가 없다.
히트펌프 장치로는 온배수 수온을 최고 80도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발전소 인근에 공단이 조성돼 있다면 히트펌프로 뜨끈하게 데운 물을 공장용으로도 쓸 수 있다. 근처에 도시가 있다면 아파트·사무실 난방용으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