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나의 연인이였던 그 사람의 동생을 만나기로 한 날이다.
어제 저녁 나에게 전해 줄 것이 있으니 만나자고 했다.
나에게 줄 것이 있다니..
도대체 무얼 말하는 걸까?..
난 그의 동생한테 받을 만한 것이 없다..
이런 저런 궁금증에 어제 밤은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비 소리를 들으며 끝내 잠들지 못했다.
만나기로한 카페에 5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만나기로 한 사람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잠시 입구 앞에 서서 두리번 거리다가
당당한 걸음으로 꽃무늬 테이블보가 덮힌 내가 좋아하던 그 자리로 가서 앉았다.
이 가게에 온지도 1년만이다...
예전에는 문턱이 닳을정도로 많이 드나들던 곳이다.
그와나의 아.지.트 ...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창가에 앉아 꽃무니 테이블보가 덮힌 고풍스런 탁자에 턱을괴고 거리를 내다보며 늘 그를 기다렸었다.
약속 시간마다 조금씩 늦는 습관을 갖고 있던 그는 조금이라도 더 늦지 않기 위해 열정적으로 뛰어왔었다.
나는 늘 5분씩 미리 와 있었기 때문에 이 창가에 앉아 열정적으로 뛰어 오는 그를 볼 수 있었다.
나는 그가 나를 위해 달려오는 모습이 가슴이 울렁거릴 정도로 감동적이라고 생각했다.
그 모습때문에 늘 약속시간 보다 5분씩 빨리나와 그를 기다렸었다.
그래야지만 그가 어쩌다 정확한 시간에 나와도 볼 수 있었기에..
그가 내게 와 한껏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에게
"수아야 미안해 .. 난 늘 왜 이모양 이지.. ? 용서해줘..."
라고 하면 내 본심을 , 필사적으로 숨기기 위해
다시한번만 늦으면 안 만날 거라둥 맘에도 없는 핀잔을 주곤 했었다.
그러면 그는 나를 아무말도 없이 꼭 안아 주었다.
나를 위해 열심히 달려온 그의 가슴은 건강하게 뛰고, 나는 그의 그런 심장박동소리가 너무도 듣기 좋았다.나만을 위한 소리처럼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나를 사랑해주던 그가 1년전 너무도 의외의 밤에 내 곁을 떠났을때
더이상 그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이 견딜 수 없이 슬펐다.
그와 함께가 아니면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으려고 했는데..
왜 하필 나도 모르게 이 곳에서 만나자고 해버렸을까..
순간 실없는 내 입이 원망 스러워진다.
다시 시계를 보니 만나기로 한 시간 보다 5분 정도 더 가있었다.
그 사람이나 그의 동생이나 피를나눈 형제라 어쩔수 없구나 생각하며
창밖을 내다보니 예전의 누구 처럼 열정적으로 뛰어오는 한 사람이 보였다.
사무치도록 그리운모습..
그와 흡사한 모습이다.팔 다리가 길어서 조금은 위태로워 보이지만, 육상 선수 처럼 멋지게 뛰어오는 모습.. 그의 동생이다.
순간 그 사람과 겹쳐 보이기도 했지만, 금방 정신을 되찾아 보니 그가 아니라는게 확연히 느껴져서 슬프다.
비슷하긴하지만.. 그는 아니다.
멍한 눈빛으로 그가 없어져 버린 거리를 바라보고 있는데..
어느새 그의 동생은 내 앞에 횡하니 서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멍하던 눈을 동그랗게 뜨고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하는 것 처럼
순간 입이 꼼짝않고 다물어져 버렸다.
그런 나를 본 그 사람도 내 모습이 당황스럽게 느껴졌는지 아무말 못하고 머뭇거리면서 내가 무슨말을 해주기를 바라는 모습으로 굳은채 서있다.
"안..녕.."
노력은 하였지만 남이 보면 굉장히 어색하다고 느껴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녕.."
그도 나에게 전염이라도 된 듯 잔뜩 굳어서는 어색하게 말을 하였다.
"잘 지냈니?..얼굴은 별로 좋아보이지 않는데.."
그의 형인 나의 연인은 나보다 3살 연상이였고, 그는 나와 나이가 같다.
예전에는 정말로 허물없이 누구보다도 편한 관계였는데.. 그가 죽은 후론 이렇게
서로 말이 없어졌다.
"그렇게 보여?.. 형준이 너도 별로 좋아보이진 않는데?.."
명랑을 가장한 말투로 최대한 가볍게 말을 했지만, 예전처럼 다시 편해 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바보같이 군 것같아 내 자신이 후회스러웠다.
정말로 형준이의 얼굴은 나만큼이나 좋아보이지 않았다 예전보다 더 수척해지고,
움푹 패인 볼은 예민해 보인다.
어쩌면 형준이와 나는 같은 얼굴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형준이도 나와 똑같이
느꼈으리라..
"아냐.. 난 괜찮아.. 요즘 학교에서 작품준비 중이라 잠을 못잤어"
그 말이 사실이라면 좋으련만..
예전에 상처없이 이렇듯 미끈한 그의 손을 본일이 없는 나는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많이 좋아 하던 그일 그만뒀구나...
내가 학교를 그만 둔것처럼..
가슴이 아프다..
우리는 아직도 1년전의 파국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모든 소중한일들을 미련없이
내던진다. 더 이상 소중한 것들을 담기 두려워하므로..
"나에게 줄 것이 있다고 했지?.. 뭐지?.."
한 동안 그는 절망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더니..
고풍스런 탁자위에 작은하트큐빅이 박힌 실버 반지가 비치는 투명 케이스를
살며시 올려놓았다.
"이게 ...뭐야...?"
나는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혀 나도 모르게 매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사실은..."
"사실은.. 형의 유품이야.."
"뭐?...."
"미안해.. 이제야 전해줘서.."
"이..게..."
한쪽 가슴이 스르륵 저미어 오며 아파온다.
입은 더 이상 떨어지지가 않는다.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이 투명한 반지 케이스 위로 아름답게 부셔지고있다.
"흐..흐 흐.."
갑자기 떨어진 입술 사이로 울컥 치밀어 올라 나도 몰래 흐느껴 울고말았다.
"이...쁘..다.... 세상에서 이렇게.. 이쁜 ..반지.. 처음봐..."
"그 사람이 ... 나 한테.. 주려고한 반..지야?"
"응..."
"그날 네 생일 선물로 주려고 했던모양이야... "
"여기 카드도 있어.."
"카...드..?"
내가 좋아하는 핑크색으로 된 작은 카드를 떨리는 손으로 받아 조심스레 펼쳤다.
[[ 수아야.. 21번째 생일을 축하해..
햇살이 닿은 창가 같은 너.. 나에게는 너무 소중해..
사랑한다..]]
검정색 펜.. 내가 아는 검정펜이다.
그것은 내가 그의 생일에 선물한 그의 이니셜이 세겨진 펜이다.
항상의 그의 품 속에 소중하게 간직되어있던..
그펜으로 그만의 고유한 글씨체로 너무도 사랑스럽게 적혀져있다.
핑크색 카드 안에...
그의 마음과 손길이 그대로 묻어나는 카드를 나는 내눈물에 닿아 시커멓게 번지도록 한참동안을 얼굴에 대고 울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