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월목회, 갈맷빛 푸르름 속으로 >
文霞 鄭永仁
교원공제회관 앞에서 8명이 모였다. 바빠서 한동안 안 온 종길이까지 합세한다. 화성 휴게소에서 석기가 가져온, 어제 다녀온 백두대간 열차여행, 장기자랑에서 타온 정선막걸리와 냉커피로 시원하게 목축이고서 어물쩡하니 칠곡저수지에 도착한다.
사방은 짙푸르고 칠곡저수지는 유유하다. 애기들 팔뚝만한 가지가 주렁주렁하다.
‘아마, 저 가지로 점심 먹으리…….’
팔뚝만한 가지를 보니, 이젠 양기가 입으로만 올라오는 늙은이들 입에선 거시기 이야기가 안주 삼아 오르내린다. 기중에 밤에 현역으로 아직도 씽씽하게 뛰고 있는 종길이의 실전담은 대개들 말은 안하지만 속으론 속물(俗物) 부러움이 가득 찬다. 그 외는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이지만……. 문제는 젊은 부인 의무방어전이 문제겠지만…. 하기야 이 늙은 나이에 벽초 홍명희가 쓴 「임꺽정」에 굶주리며 쫓기던 임꺽정 일행이 시골 어느 집 울타리 밖으로 넘어오는 가지를 정신없이 주워 먹던 장면이 생각난다. 그 가지가 어떤 가지인지 모르면서….
뒷산 둘레길을 이리저리 산행한다. 팔월의 염천(炎天)도 숲속으로 들어오니 한소끔 수그러든다. 오래 묵은 소나무, 참나무 아카시아 등이 어울러져 생을 구가(謳歌)한다. 산초가 열매 맺고, 개암이 열리기 시작한다. 곳곳에 어느 문중의 무덤 석물(石物)이 산속에 숨어 지나간 세월을 되새김하지만, 다 흙으로 돌아간다. 숲 공부하는 나도 오늘 오리나무와 개암나무를 확실하게 구분할게 되었다.
칠곡저수지와 한창 기세 오른 벼포기들이 질펀하게 내려다보이는 2층에서 점심상이 차려진다. 시골 일밥 먹는 것처럼 신문지 쭈욱 깔고 2개의 불판에서는 특제 강원도산 삼겹살이 지글지글, 노릇노릇 구워진다.
술도 규형이가 다양하게 준비했다. 안성막걸리, 소주, 맥주 등.
다음에 규형가 만든 반찬이 연신 신문지 위에 놓여진다. 다 규형이가 가꾼 유기농 채소로 자신이 만든 음식이다.
한번 규형 손수가 만든 반찬을 살펴본다.
가지냉국, 가지무침, 오이양치, 된장국, 당귀잎을 비롯한 각종 쌈채소, 아싹고추를 비롯하여 자연산 고추장에 시금시금하게 담근 개운한 오이지, 마늘짱아찌, 후식으로 방금 우리가 따온 때깔 좋게 햇빛에 익은 방울토마토까지……. 게다가 가지냉국을 머리에 털 나고 처음 먹어본다는 친구도 있으니. 어렸을 적, 논두렁에 주욱 들러 앉아 일밥 먹던 생각이 주마등처럼 펼쳐진다.
잘들 먹는다. 노릇노릇 구워진 삼겹삽에 각종 쌈채소 겹겹이 싸이 고추장 담뿍 얹고 입이 미어터지도록 집어넣는다. 한손엔 술잔 들고.
임금님 수라상이 어찌 부러울까? 짙은 당귀잎 향과 고소한 삼겹살구이의 어울림은 먹어본 자만 알리라! 거기다가 안성쌀로 지은 이팝에. 이천이나 여주에서 먹었던 임금님표 ‘쌀밥 정식’이 안 부럽다. 요즈음 입에 오르내리는 웰빙(well-being), 힐링(healing)이 따로 있을까 싶어진다.
한 봉다리씩 가득 담아준 가지를 싣고서 인천 동태탕집으로 향한다. 운전하느라 수고한 규형이, 시우도 있고.
늙은이들은 불러줄 때가 가장 즐겁다고 한다. 이런 자연을 만끽(滿喫)하는 호강을 언제 누려볼 것인가.
오는 길에 시원하게 소나가 한 자락 퍼 붓는다.
다들 고맙다. 올해 피서는 이렇게 다녀와서, 피서가 따로 있는가. 이렇게 마음 푸근하게 하루 자연 속에서 지내면 피서지 별건가.
욕심엔 내년이 또 기다려진다.
이게 다, 월목회(月木會)만의 특권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