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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 가족 23-17, 하은 군도 나를 꼭
지난밤, 대구에서 거창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까만 밤을 뚫고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검은 배경 가운데 드문드문 앞 차들의 헤드라이트가 문득 아름다워 보이더군요.
얼굴로 하얗고 빨간 조명을 받으며 달리는 가운데 얼마 전 어느 밤도 떠올렸습니다.
하얀 눈발이 날리는 날, 마찬가지로 밤을 뚫고 운전하던 중이었습니다.
까만 배경 속 하얀 눈이 내 쪽으로 마구 불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눈은 그 자리에서 조용하고 충실하게 내리고 있을 텐데, 내가 그를 뚫으며 달리고 있었으니까요.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날도 오늘도 눈물이 흐르더군요.
때로 왜 흐르는지 알 수 없는 눈물도 있지만, 내가 왜 우는지 분명히 아는 성질의 것도 있습니다.
어떤 눈물은 황급히 닦아 내지만, 또 어떨 때는 그냥 두기도 합니다.
울어도 될 것 같아서, 울어야 할 것 같아서, 눈물이 자신을 다독이는 것 같아서 그렇게 합니다.
휴일이었나 팀 나들이였나 했던 어느 날에, 당시 팀장이었던 동료가 물었습니다.
어떤 입주자가 이사 오는데 지원할 수 있겠냐고요.
당시는 정식 입사해서 전담 지원을 시작한 지 이제 한 달이 지난 신입이었고,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일상의 여러 일을 세심히 살펴야 하는 입주자의 상황이 있었습니다.
‘사소한 고민은 오래 품고, 중요한 결정은 쉽게 내립니다.’
언젠가 책의 개정판을 내며 출판사 요청에 따라 책날개에 들어갈 소개 가운데 이렇게 썼습니다.
이때도 다르지 않았나 봅니다.
깊이 고민하지 않고 덜컥 대답했습니다.
잘 감당하겠다는 포부가 절반,
나머지 절반의 절반은 ‘나를 잘 감당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아주는구나’ 하는 신입 직원의 감사,
그리고 나머지는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염려로 채웠습니다.
하은 군과 만난 첫 순간을 기억합니다.
하은 군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3층 사무실에서 2층으로 내려왔는데,
정수기 앞 코너를 돌 때, 드라마처럼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더군요.
강렬한 첫인상이었습니다.
동행한 가족들 품에 있는 하은 군 얼굴을 스치듯 보았습니다.
‘잘 생겼다’가 반, ‘잘 도울 수 있겠는데?’가 나머지 반.
하은 군이 살게 될 집에서 입주 계약서였던가 무엇을 직접 읽어 주라 했습니다.
그때는 뭐가 그리 쑥스러웠을까요?
즉각 호응하지 않아도, 말로 대답하지 않아도, 그의 눈빛과 소리와 분위기와 경험으로, 기억으로 알 수 있다는 것을,
늘 대답하고 있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지요.
잘하고 있는지 이게 맞는지 기대어 비추어 볼 자기 경험 또한 부족했습니다.
올 때 채웠던 한 자리를 비운 채 돌아가는 차를 배웅하면서 울컥했으나 참으려 애썼습니다.
‘잘 돕는다고 직원이 대신 아파하고 슬퍼하지 말라’고 배웠거든요.
아직 어렵지만, 좋은 사회사업가가 되어 제대로 일하려면 그래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마저도 나를 다듬으며 훈련하는 시간이라 여겼습니다.
2019년, 하은 군이 집 근처 창남초등학교로 전학했습니다.
전학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학교에 찾아갔고,
재고를 권하려는 학교와 우리 뜻을 설명하려는 팀장님 사이에서 사회사업 실재 속에 들어와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그해 하은 군이 5학년 1반 친구들과 같은 버스를 타고 현장체험학습에 다녀왔습니다.
2020년,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예령 양과 하은 군이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
예령 양 어머니에게서 시작된 인연을 ‘초등학교 동창’과 ‘어머니의 동행’으로 바라보고,
그 가운데 관계를 주선하려 애썼습니다.
“은이 친구가 놀러 온대요.” 남부러운 것 없는 주말이 이어졌습니다.
2021년, 바쁘게 다녔습니다.
일분일초 시간을 계산하며 뛰어다녔습니다.
화장실 참아가며 일한다는 말을 절절히 실감했습니다.
그런데도 참 기뻤습니다.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사회사업가로서 마땅히 해야 할 바를 좇아 일한다고 느꼈습니다.
하은 군은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복지관 운동재활 수업에 다녔고, 화요일과 목요일은 수중재활 수업에 나갔습니다.
어느 날, 나란히 벗어 둔 우리 신발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보니 신발 크기가 엇비슷해 보인다. 은이 발이 작지 않고 동행한 직원 발이 크지 않다.
문득 다가올 나중을 생각한다. 지금 은이가 열여섯, 직원이 서른이다.
은이가 스물이면 직원이 서른넷, 은이가 서른이 되면 직원이 마흔넷….
우리 앞의 시간이 여전히 까마득한데 금세 그 속에 있을 것 같다.’
그날 기록에 이렇게 썼네요.
2022년, 하은 군 주말 일정이 생겼습니다.
친구 예령 양 어머니가 소개해 준 가천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하은 군 부모님에게서 시작한 뜻이라는 데 의미가 컸습니다.
하은 군이 ‘주말에도 사람들을 만나면 좋겠다, 사람들과 함께하면 좋겠다’는 말씀에
지난 시간, 나의 노동, 나의 사회사업을 인정받는 것 같았거든요.
“새 가족이 와서 좋아요!”
예배 중에 돌아가며 감사를 나누는 중이었습니다.
목사님의 질문에 재준 군이 말했습니다.
그해 책 제목이 되었고, 하은 군 집에 목사님이 심방 오고, 전 교인 수련회에 참석했고,
주일학교 동생들이 놀러 왔고, 새 가족 환영회에 함께했습니다.
크리스마스에는 동생들이 또박또박한 글씨로 쓴 편지를 받았고요.
그리고 2023년, 하은 군과 새해를 시작했습니다.
‘가족, 학교, 신앙, 재활’이라는 네 가지 과업은 분명했고, 사회사업가로서 위치와 역할은 선명했습니다.
어려움보다 드문드문 감사와 기쁨을 얻는 한 해였습니다.
어쩐지 한 해의 끝자락에 와서는 하은 군 전담 지원의 마지막을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일이라는 게 무 자르듯 되지는 않지요.
정리되지 않는 생각과 감정 속에 시간은 맹렬히 흘렀습니다.
지난 수요일, 하은 군 부모님에게 긴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통화로 인사드리기 전에 글을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차분히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썼습니다.
‘여러모로 마음이 쓰여 그동안 틈틈이 말씀드렸던 것처럼 내년 은이 전담 직원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직원과 입주자 모두에게 유익이 있겠다는 생각으로
월평빌라에서 최소 3년은 지원하고, 5년이 되면 입주자의 전담 직원이 변경되도록 하는 규정이 있습니다.
은이가 2018년 11월에 이사 왔고, 2023년 올해로 만 5년이 됩니다.
엊그제 일인 것 같은데 벌써 5년이라니 시간이 참 빠릅니다.
은이가 엘리베이터에서 부모님, 친척들과 내리면서 눈이 마주쳤던 날이 바로 어제 일만 같은데요.
은이를 지원하며 제가 하는 일에서 배운 것이 참 많고,
(최근에는 오히려 너무 깊어서 염려될 만큼) 은이에게 인간적인 정도 참 많이 들었습니다.
전담 지원하는 입주자가 바뀌지 않는다면,
당장 저에게 익숙한 일과 관계(부모님, 학교, 교회, 복지관, 미용실…)를 이어 가면 되니, 저로서도 편한 점이 많고요.
그렇지만 기관에서는 여러 상황을 살펴야 하다 보니
부득이하게 은이도 지원 기간을 준수해서 전담 지원을 변경하는 쪽으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변경되는 직원은 박효진 선생님입니다.
저보다 두 살 어린 남자 직원이고, 제가 팀장으로 있는 사회사업 4팀의 팀원입니다.
사회복지 경력은 저와 비슷하고,
다른 지역에 있는 시설에서 근무하다가 월평빌라에서 일하고 싶어 2년 전 입사했습니다.
박효진 선생님이 지원하는 입주자분들은 지원 기간 만기가 도래하지 않았고,
한 분은 1년, 한 분은 이제 2년 되었는데, 은이 지원을 부탁하려고 잘 설명해 동의를 구했습니다.
평소 박효진 선생님의 성품, 은이와 잘 맞는지 등을 여러모로 살펴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은이는 아직 어리고, 일상의 여러 일에 세심히 살피는 마음이 필요하니
박효진 선생님이 지원하면 좋겠다고 여러 번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내년 1월 1일부로 전담 직원은 변경되지만, 은이 일상은 다르지 않습니다.
거창에 살면서 이어 오던 관계 그대로 이어 가고, 다니던 곳 그대로 다닙니다.
박효진 선생님은 교대 근무를 하니 근무하는 날은 박효진 선생님이,
주중에 당직이나 휴무인 날은 팀장인 제가 지원합니다.
올해 제가 교대 근무하지 않게 되면서 주중에 꾸준히 은이를 볼 수 있게 되어 좋은 점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년에는 주중에 두 명이 돌아가며 살피고, 주말에는 박효진 선생님이 근무하는 날이 있으니
오히려 일상 지원에서 공백은 더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담 직원이 바뀌어도 1월 중에는 은이가 다니던 곳,
제가 박효진 선생님과 직접 동행하며 두루 인사드리고 소개할 계획입니다.
대기하고 있는 복지관 순번이 돌아와서 재활 수업 재개하게 되면 종종 동행하게 되겠고요.
1월이든 언제든 부모님과 외박하는 날에는 저도 박효진 선생님과 동행해서 함께 인사드리고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팀장과 팀원으로 있으니 앞으로도 필요한 일 있으면 연락해 주셔도 좋고요.
저도 종종 인사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말씀 나누겠지만, 이렇게 메시지로 쓰면 제 생각과 마음을 더 잘 담을 수 있을 것 같아 남깁니다.
언제든 전화 주셔도 됩니다. 고맙습니다.
은이랑 같은 집에 사는 강석재 어르신도
종종 “내년에 민철이 담당(박효진 선생님)이 하은이 지원하면 딱 좋겠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어르신은 은이 가장 가까이에 있을 때가 많은 분이니, 박효진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아실 겁니다.
제가 썼던 글 중에 박효진 선생님이 나온 것 한 편과
평소 박효진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잘 드러나는 기록 몇 편 붙입니다.
시간 편하실 때 천천히 읽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월평빌라 카페 ‘월평너머월평’ 게시판에서 ‘박효진’ 검색하시면, 박효진 선생님이 쓴 기록 모두 읽으실 수 있습니다.)’
‘하은, 재활 23-11, 좋은 동료가 함께하니(2023. 4. 12. 정진호)’와 ‘이민철, 주거 지원 23-10, 죽밥과 과자밥(2023. 5. 24. 박효진)’, ‘이민철, 신앙(마리교회) 23-17, 안 고마운 사람(2023. 8. 18. 박효진)’, ‘이민철, 신앙(마리교회) 23-18, 선물을 사뿌까(2023. 9. 7. 박효진)’을 첨부했습니다.
“아이고, 선생님. 왔어요? 월요일에는 은이가 다른 선생님이랑 왔대요?”
“네, 일이 있어서 부탁했습니다. 그날 잘 다녀갔나요?”
“아유, 그럼요. 남자 선생님이 왔더라고요. 아니, 근데 월평 선생님들은 어쩜 다 그래요?
이번에 온 선생님도 얼마나 좋은지! 운동하면서 설명하는데 반짝반짝한 눈빛으로 열심히 듣더라고요.
신은혜 서지연 선생님도 그랬고요. 내가 감탄했다니까!”
김미숙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며 박효진 선생님을 떠올렸다.
평소 잘 보여 주지 않지만, 어떤 눈빛을 말하는지 알 것 같아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맞습니다. 다 좋은 사람들이에요. 좋게 말씀해 주시니 제가 다 감사하네요.”
(중략) 나의 사회사업에 좋은 동료가 함께하니 든든하다.
염려와 부담이 줄고, 할 수 있겠다는 의지와 여유가 차오른다.
2023년 4월 12일 수요일, 정진호
제가 칭찬받은 듯 기쁩니다. 월평 동료들의 칭찬을 저도 종종 듣습니다. 고맙게 생각하며, 동료들에게 감사합니다. 월평
「하은, 재활 23-11, 좋은 동료가 함께하니, 정진호」 발췌
지난 성탄절에 하은 군이 집에 방문하는 주일학교 동생들 주려고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여덟 개를 준비했는데, 열 명이 와 두 개가 부족했습니다.
이번 주일에 챙겨 가기로 약속했고요.
미리 준비하는 것을 잊어버려 휴일에 잠깐 하은 군 준비를 도왔습니다.
그 길에 차 안에서 하은 군 아버지와 20분 통화했습니다.
메시지로 알린 내용을 하나하나 다시 이야기하고, 감정과 생각을 이야기했습니다.
응원과 감사를 나누었습니다. 만나서 얼굴 보며 인사할 날을 기약했습니다.
“지난 5년, 제가 지원하면서 부족한 점도 많았을 겁니다.
그래도 그동안 뵐 때마다 여러 번 말씀드린 것처럼 은이를 생각하는 제 마음은,
일 잘해 보고 싶다는 마음은 진심이었다는 것 하나만은 꼭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부끄럽지 않게 말씀드릴 수 있고요. 그동안 은이 지원하면서 배운 게 참 많습니다.
일이 잘되도록 격려하고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꼭 다시 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정 선생님. 저희가 먼저 전화드렸어야 하는데요.
정 선생님이 보내 주신 메시지 다 읽었고, 정 선생님 어떤 말씀이신지, 어떤 마음인지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요.
은이 전담 직원이 바뀐다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지만, 박효진 선생님을 잘 소개해 주시니 마음이 놓입니다.
또 정 선생님도 은이 매일 만나신다고 하니까 걱정하지 않고요.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외박 계획하고 정해지면 꼭 뵙겠습니다. 들어가십시오. 감사합니다.”
하은 군 아버지와 통화 중에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이번에는 숨기지 못하고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목소리는 떨렸고 눈물이 흘렀습니다.
‘잘 돕는다고 직원이 대신 아파하고 슬퍼하지 말라’는 말, 이제 잘 아는데, 너무도 분명한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지 않는데, 언제나 그럴 수는 없습니다.
부모님의 자리 대신하지 않고, 때로 함께하며, 때로 그 뒤에 서서 참아내고 참아낸 끝에 남은 눈물이라고,
감정이라고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며 삼킬 뿐입니다.
어느 날, 돌연 ‘그가 온전히 나에게 의지했을 시간’이라는 말이 떠올라 한동안 마음에 머물렀습니다.
자신의 사회사업과 지난 5년을 부끄럽지 않아 하는 만큼, 그것과 똑같이 하은 군 앞에 떳떳할 수 있을까요?
자신 없습니다.
그의 눈빛과 소리, 냄새와 분위기, 표정과 느낌, 기억과 경험을 생각합니다.
내가 그것을 아주 조금 더 알게 해 주었던 우리가 함께한 시간 속에,
공유하고 경험하여 머리와 가슴에 남은 기억 가운데,
어떤 의미로 남아 있을 지난 5년을 돌아봅니다.
새해가 되어 하은 군을 만나면 안아 주겠습니다.
하은 군도 나를 꼭 안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말해 주겠습니다.
고마웠다고, 응원한다고, 선영 씨 말처럼 ‘지켜보겠다’고.
2023년 12월 30일 토요일, 정진호
마음이 여린 정진호 선생님, 애쓰셨습니다. 신아름
시절인연. 월평
하은, 가족 23-2, 지원 계획 의논 ① 올해도 어디서든
하은, 가족 23-8, 지원 계획 의논 ② 차곡차곡 준비하니
첫댓글 정진호 선생님의 기록을 읽으며 하은이가 처음 이사 오던 날, 이지영 선생님과 학교에 상담하러 가던 날, 부모님과 첫 외박하던 날들이 모두 떠오릅니다. 지난 5년 애 많이 쓰셨습니다. 하은이와 함께 자란 지난 5년이 선생님의 삶도 단단하게 했을 뿐 아니라 사회사업의 깊이도 지금처럼 더 깊어지게 했겠지요. 하은이가 응원할겁니다. 저도 정진호 선생님을 응원합니다.
지난 5년 수고 많았어요. 누군가를 떠나 보내는 글이 이렇게 길다는 건 그만큼 아쉬운 마음이 크다는 말이겠죠? 은이도 정진호 선생님이 곁에 있어줘서 행복했을 겁니다. 박효진 선생님을 부모님께 근사하게 소개해주어 고맙네요. 박효진 선생님도 정진호 선생님의 마음을 깊이 이해할거라 생각합니다.
작년에 입사하고 권우성 씨를 처음 지원할 때 염순홍 선생님이 어머니에게 두 사람이 지원한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해 드린 게 생각납니다. 하은 군도 그렇겠죠. 5년 동안 하은 군이 이사 오고 잘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서로에게 이로운 시간이었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