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동물은 자기 새끼가 성장하도록 때로 목숨을 걸며 보호하고 기릅니다. 그런데 일단 성장하면 단호하게 쫓아냅니다. 그 때부터는 언제 그랬느냐 하는 식으로 각자도생 하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동물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았습니다. 기억하기로는 도심에, 조금 한적한 고궁에 살고 있던 너구리였던 것 같습니다. 자기 새끼 양육하는 과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얼마나 지극 정성으로 살펴주는지, 하기야 대부분 동물들 어미가 자기 새끼에게 기울이는 모습은 비슷합니다. 그 과정과 성장 후 떼놓는 모습은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놀랐습니다. 그런 힘은 또 어디서 발산되는 것인지, 아니 무엇보다 그렇게 감정의 변화가 극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하기야 그것도 사람과는 다른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만약 그런 식으로 자식을 떠나보낸다면 인류가 오늘처럼 존재할 수 있었을까 상상해봅니다. 우리 식으로 해서 나이 20이 되었다, 그래서 강제 가출시키는 겁니다. 이제부터 너 알아서 살아! 과연 살아남는 자들이 얼마나 되었을까 싶지요. 물론 다른 동물과는 다릅니다. 나이 20이라고 해서 과연 독립할 수 있는 성인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어쩌면 거의 30까지는 되어야 가능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나이 30이 되었다고 해도 부모와는 나 몰라라 하고 지낼 수 있을까요? 아무튼 그렇다 해도 그렇게 되면 가업을 잇는다는 것이 어려울 것입니다. 즉 기술의 이전이 쉽지 않겠다 생각합니다.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문명과 문화의 전승이 어려울 것이라는 말입니다. 계승되어 발전되어 가는 일이 가능할까요?
동물은 아무리 길어보아야 부모 슬하에 있는 기간이 5년 이하입니다. 하기야 수명 자체가 사람보다 대부분 짧습니다. 집단생활을 하는 무리도 있기는 하지만 일단 성장하면 자기가 알아서 자기 능력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도 비교할 수 있습니다. 부모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사람은 어쩌면 다른 동물의 수명과도 같은 기간입니다. 그만큼 길다는 말입니다. 쏟은 정과 받은 사랑 등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관계가 오랜 세월 속에 새겨집니다. 그러니 다 자랐다고 쉽게 놓을 수도 떠날 수도 없다 싶습니다. 설령 결혼하여 출가했다 해도 그 연은 죽도록 이어집니다. 더구나 농경시대에는 가족 전체가 노동력입니다. 어떻게 떨어질 수 있겠습니까?
좀 특별한 존재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우리 인간의 가족관계는 평생을 이어가며 한 세대뿐이 아니라 대를 이어 역사를 만듭니다. 그래서 스스로 족보를 만드는 것입니다. 아마도 처음의 역사가 족보로 시작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가족이 부족이 되고 하나의 커다란 공동체가 됩니다. 그렇게 부족사회가 모여서 보다 커다란 공동체인 나라를 형성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니 다른 어느 동물들 보다 인간의 가족은 보다 특별한 공동체이며 세상의 그 어느 인연보다 확실하고도 견고합니다. 그 인연은 어느 한 시대뿐만 아니라 기나긴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가족 안에서도 부모 자식의 관계는 그 무엇으로도 가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속담이 나온 것이기도 합니다.
요즘은 태중에 있을 때 장애 여부를 검진하여 일찍 낙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직 부모 자식의 정을 나누기 전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보다 쉽게 결정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일단 태어나 기르는 과정 속에 장애를 만나면 그 자식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부모가 일생을 걸고서라도 돌봐주려 합니다. 속된 말로 팔자려니 생각할 수도 있지만 뱃속에서 근 10개월을 함께 하였고 낳아서 기른 시간, 쏟은 정이 있습니다. 그러니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것이지요. 설령 자식이 못된 짓을 하여 감옥에 들어갔다고 해도 나 몰라라 하지 않습니다. 미우나 고우나 내 자식입니다. 이래저래 뒷바라지 해줍니다.
아들이 마약중독자 재활원에 들어가 있습니다. 벌써 몇 번 들락날락 경험이 있습니다. 완치라는 판정이 나기 전에는 결코 받아주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그래도 한 해가 저물어가고 성탄절이 다가오니 생각이 납니다. 가정마다 온 가족이 모이는 때입니다. 보고 싶습니다. 성탄절에라도 다녀갈 수는 없을까 상상해봅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런 말도 해봅니다. 그런데 정말 나타난 것입니다. 아들 ‘벤’이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엄마 ‘홀리’가 반겨 맞습니다. 아직 어린 동생들도 반겨줍니다. 그러나 바로 밑의 여동생 ‘아이비’는 믿지 않습니다. 또한 새 남편도 경계합니다. 그런 전력이 있기에 당연합니다. 그런 속에서 홀리는 아들 벤과 약속합니다. 24시간 엄마를 결코 떨어지지 말 것을.
그러나 잠시 빈 사이 반려견 폰스가 사라집니다. 그 찾는 과정 속에 마약 중독자의 현실이 드러납니다. 벤이 마약의 유혹에서 자기를 이겨내려는 몸부림이 안쓰럽습니다. 엄마의 신뢰를 꼭 지켜주고 싶습니다. 물론 가족에게도 결코 실망을 주고 싶지 않습니다. 반려견을 꼭 찾아 가족에게 돌려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마약에 빠지면 관련된 사람들과 어떤 관계가 생겨 있다는 것을 예측해야 합니다. 마약과의 절연 못지않게 마약으로 말미암은 사람들과의 악연까지 처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어렵구나 싶습니다. 그 아들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찾아가는 엄마의 처절한 싸움이 또한 애처롭습니다. 영화 ‘벤 이즈 백’을 보고 생각해보았습니다.
첫댓글 잘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