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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밀알미술관서 열린 ‘장애인 거주시설 정책토론회’
거주시설부모회 등 17개 단체, 탈시설 반대 대책위 발족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 무시하는 탈시설로드맵 폐지하라”
최재형 의원 현장 축사 “탈시설로드맵, 선택권 보장 안 해”
9일 서울 강남구 밀알미술관 도산홀에서 탈시설에 반대하는 단체들이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서울사회복지법인협회는 이날 오후 ‘장애인 거주시설 정책토론회’를 열고 정부 탈시설로드맵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정형석 밀알복지단 상임대표가 좌장을, 이병훈 천주교 대구대교구 신부가 발제를 맡았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김종인 한국사회복지정책연구원 이사장, 박대성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 고문, 조준호 사회복지법인 엔젤스헤이븐 대표이사가 탈시설 정책에 반대하는 논리를 폈다.
탈시설 반대를 외치는 이들은 ‘장애인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무시하는 탈시설 정책에 반대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르거나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울사회복지법인협회가 9일 서울 강남구 밀알미술관 도산홀에서 ‘장애인 거주시설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사진 복건우
- 시설 입소는 선택? 비자발적 입소 비율 훨씬 높아
이날 발제를 맡은 이 신부는 정부에서 추진하는 탈시설 정책이 장애인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장애인이 ‘시설 바깥의 삶’을 선택할 수 있다면 ‘시설에 머무는 삶’ 역시 선택지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보건복지부의 ‘2020년 장애인 거주시설 전수조사’를 그 근거로 들었다. 복지부가 의사소통이 가능한 시설 거주 장애인 6,035명을 대상으로 탈시설 욕구를 조사한 결과, ‘시설에서 나가고 싶지 않다’는 응답(59.2%)이 ‘시설에서 나가고 싶다’는 응답(33.5%)에 비해 훨씬 높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설에서 나가고 싶지 않은 이유(중복응답)를 들여다보면 ‘시설이 좋아서’와는 거리가 멀었다. ‘나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서(21.9%)’, ‘경제적 자립에 자신이 없어서(14.7%)’, ‘가족이 이곳에 있기를 원해서(9.7%)’, ‘함께 살 가족이 없거나 찾을 수 없을 것 같아서(4.8%)’ 등이 시설 잔류를 희망하는 주된 이유였다.
이처럼 시설 외에 대안이 없는 현실에서 ‘시설에 머무는 삶’은 장애인의 자발적인 결정이라기보다 강요된 선택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의 ‘2017년 중증·정신장애인 시설 생활인에 대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증장애인의 67.9%, 정신장애인의 62.2%가 장애인 거주시설에 비자발적으로 입소했다. 입소 기간이 10년 이상인 비율은 58%에 달했다.
이병훈 천주교 대구대교구 신부(사진 오른쪽)는 이날 토론에 앞서 ‘장애인 탈시설 정책의 문제점과 개선점’이라는 주제로 발제를 진행했다. 사진 복건우
- “탈시설 강제한다”며 장애등급제 폐지‧탈시설로드맵 반대
이 신부는 정부가 2008년 비준한 유엔장애인권리협약(UNCRPD, 아래 협약) 제19조도 다른 맥락으로 해석했다. ‘특정한 주거 형태를 취할 것을 강요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협약 내용에 근거해 장애인이 시설이라는 주거 형태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는 “장애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시설은 그들에게 중요한 삶의 자리다. 탈시설이라는 주거 형태를 법으로 획일화하거나 강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신부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협약 제19조는 '모든 장애인은 다른 사람과 동등한 선택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규정한다.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이 함께 살 수 있어야 한다(live in the community)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협약을 보완하는 일반논평과 탈시설 가이드라인을 발표해 ‘시설 수용이 장애인의 보호 조치 혹은 ‘선택’으로 고려되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이 신부는 장애등급제 폐지와 정부 탈시설로드맵에도 크게 반발했다. 2019년 7월 정부는 장애등급제를 단계적으로 폐지한다며 기존 6개 등급을 ‘심한 장애(기존 1~3급)’와 ‘심하지 않은 장애(기존 4~6급)’로 이원화했다. 2021년 8월에는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아래 탈시설로드맵)’을 마련해 2041년까지 2만 9,000명의 시설 거주 장애인을 순차적으로 탈시설시킨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이 신부는 “장애등급을 세부적으로 나눠야 중증장애인에게 필요한 사회서비스(시설 입소)를 제공할 수 있는데, 지금처럼 등급을 단순화하면 장애인 당사자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장애 유형을 아우를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탈시설로드맵에 대해서는 “정부가 신규 시설 입소와 설치를 일방적으로 금지하고 있다”며 “장애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지역 거주를 우선 지원하는 방식의 강제 퇴소는 인권유린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토론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탈시설 지원법 폐기하라’는 붉은 손피켓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복건우
토론회를 지켜본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비마이너와 한 통화에서 이 신부가 사실을 교묘하게 왜곡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아직 장애등급제가 완전히 폐지되지 않았을뿐더러 그 과정에서 새로 도입된 ‘종합조사표’라는 서비스 판정체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019년 7월 정부는 장애를 중‧경증으로 이분화한 것에 더해, 종합조사표에 따라 세분화한 1~15구간으로 장애 정도와 유형에 맞는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은 바 있다.
이에 대해 김 활동가는 “더 많은 장애인이 시설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하는데 정부가 탈시설로드맵을 만들어서 시설 입소의 문턱을 높였다는 논리”라며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정말로 존중한다면 오히려 정부가 비용 절감의 논리로 장애인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의 문턱을 높였다고 비판해야 하지 않느냐”고 반박했다.
또한 “정부 탈시설로드맵에는 강제 퇴소에 관한 조항이 없다.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은 욕구가 있는 장애인에게 탈시설을 지원하고 있다. 다만 협약에도 나와 있듯 의사 표현이 어려운 장애인에게도 탈시설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맞다”고 했다.
- 반대 측 ‘좋은 시설’ 주장… “탈시설과 자립은 달라”
발제에 이어 첫 토론자로 나선 김종인 이사장은 ‘시설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전환’이라는 주제로 토론을 진행했다. 김 이사장은 “자립을 목적으로 하는 탈시설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장애인의 주거뿐만 아니라 근로소득을 보장하는 정책이 있어야 한다”면서도 “보호와 돌봄이 필요한 중증장애인의 자립을 돕는 거주시설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준호 이사도 이날 토론에서 ‘좋은 시설’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폈다. 조 이사는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이 시혜와 자선에서 권리 중심으로 바뀌고 있는 만큼 시설도 장애인의 자기결정권과 행복추구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이제는 ‘시설이냐, 탈시설이냐’가 아니라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가운데 놓고 시설이 그 논의를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 패널로 참여한 박대성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 고문(사진 왼쪽)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그러나 아무리 좋은 시설이라도 장애인의 기본적 권리를 침해하는 시설 자체의 특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게 장애계의 오랜 주장이다. 좋은 시설을 만드는 게 아니라 시설 바깥의 지역사회 주거서비스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 활동가는 “아무리 좋은 시설이라도 그 공간의 소유권은 장애인 당사자가 아닌 시설 운영자에게 있다. 공급자 위주의 시설 기반 서비스가 아니라 이용자 중심의 주거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으로 주거지원의 형태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박대성 고문은 탈시설 흐름을 전면 부정했다. 박 고문은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사회복지법인 프리웰에서 있었던 강제 퇴소와 횡령을 고발했다가 부당하게 해고당했다”면서 “탈시설은 자립과 다르다. 정부는 탈시설 용어를 공식 폐기하고 협약 제19조에 근거해 장애인도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달 2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현재 이뤄지는 탈시설은 인권침해”라며 탈시설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위와 같은 박 고문의 주장을 보도한 MBN의 기사(2018년 11월 12일자 ‘[단독] ‘생이별’ 형제 중증장애인… 강제 퇴소 의혹’)는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에 따라 오보로 밝혀졌다. MBN은 정정 및 반론보도에서 “횡령은 과거 석암재단에서 발생했거나 직원의 개인적인 비리로 인한 것”이라며 “프리웰 측은 의료진의 소견에 근거해 모든 장애인이 적법한 퇴소 절차를 거쳤고, 시설 폐쇄는 탈시설화를 통해 장애인 자립이 완료된 이후 이뤄질 예정이라 당장 폐쇄될 예정은 없으며, 시설 폐쇄와 부채 해결은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밝혀 왔다”고 알렸다.
‘탈시설은 자립과 다르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김 활동가는 “유엔이 밝히듯 장애인의 자립은 당연한 권리인 반면 시설 수용은 ‘장애인 학대’에 해당한다. 자립은 할 수 있는데 탈시설은 안 된다는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장애인 탈시설 범사회복지 대책위원회’ 발대식에 참석한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이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 대책위 꾸려 적극적 행동 예고, 최재형 의원 현장 축사도
토론이 끝난 뒤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아래 거주시설부모회)를 비롯한 17개 단체는 ‘장애인 탈시설 범사회복지 대책위원회’ 발대식을 열고 탈시설 정책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냈다. 성명서에는 △중증발달장애인 고려하지 않는 강제적인 탈시설 정책 폐지 △다양한 형태의 거주시설과 복지서비스 선택권 보장 등이 담겼다.
이날 발대식에는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축전을 보내왔고,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이 현장에서 직접 축사를 했다. 이들은 탈시설로드맵을 비판하고 탈시설지원법 제정을 외면하는 등 최근까지 탈시설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혀왔다.
최 의원은 축사에서 “복지부가 발표한 탈시설로드맵은 시설에 거주하는 중증발달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의 선택권을 전혀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들이 더 편안하고 안전한 곳에서 거주하며 자립할 수 있도록 장애인 복지 정책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김현아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 회장(사진 왼쪽)이 탈시설 정책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 복건우
김현아 거주시설부모회 회장은 이날 참여단체를 대표해 성명서를 낭독했다. 김 회장은 “지금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장애인 이동권과 탈시설 예산을 요구하며 죄 없는 시민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자립이 불가능한 중증발달장애인에게 탈시설을 강요할 게 아니라, 장애인이 원하는 곳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시설을 포함해 더 많은 선택지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는 대책 없는 탈시설 정책을 즉각 중단하라”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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