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여행의 역사를 거슬러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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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 여행의 역사를 거슬러 오르다
크루즈 여행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휴가 옵션 중 하나이다.
승객들은 풍부한 레저 시설과 편의 시설을 갖춘 거대한 수상 호텔에 탑승하고,
세계적인 목적지로 항해한다. Cruise Market Watch에 따르면
2021년에 238억 달러의 가치가 있는 관광산업,
이 유람선 관광업계는 어떻게 발전했을까?
클릭으로 유람선 휴일의 역사속으로 여행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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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시작되었나
이탈리아는 오늘날 우리가 크루즈라고 부르는 배를 타고
처음으로 관광 여행을 한 장소일 가능성이 있다.
1833년 6월 나폴리를 떠나 유럽 귀족들을 태운 이 배는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하기 전에 지중해를 여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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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가 설립되다
P&O 라는 회사는 1837년에 설립되었고,
P&O 크루즈는 1977년에 설립되었다.
P&O는 1844년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크루즈와
구별하기 위해 승객용 크루즈 서비스를 처음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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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 오거스타 빅토리아호
1891년 1월 2일, 독일 선박 SS 오거스타 빅토리아호는
지중해와 근동으로 항해를 시작했는데,
이 레저용 크루즈를 대중에게 알리는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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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를 확장하다
한편, P&O는 19세기 후반에 알렉산드리아와 콘스탄티노폴리스와 같은
좀 더 이국적인 지역으로의 왕복 여행을 도입하면서 급속한 확장의 시기를 겪는다.
이런 종류의 여행 상품은 현대 크루즈 관광 산업의 선구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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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루이스 공주호
빅토리아 루이스 공주호는 함부르크-아메리카 선(HAPAG)을 위해
제작된 최초의 민간 유람선이었다.
1901년 1월 5일 함부르크를 출발하여 뉴욕을 거쳐 서인도 제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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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 라 그레타뉴호
순항에 대한 아이디어가 인기를 끌자,
해운 회사들은 주로 경쟁이 치열한
대서양 횡단 항로를 위해 더 크고 고급스러운
선박들을 위탁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1885년 9월 9일 진수된
프랑스 선박 SS 라 그레타뉴호의 호화로운 식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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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화된 고객
한때 순수하게 기능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여행이
이제는 즐거움을 위한 것으로 마케팅되고 있었다.
그러나 항해의 엄청난 비용은 유람선 휴가가
부유한 사람들의 특권으로 남아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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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나드
20세기 초에 쿠나드, 화이트 스타, HAPAG와 같은
회사들이 순항하는 큰 이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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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MS 브리타니아호
브리타니아급(Britannia class)은 1840년에 처음으로 연중 운항하는
대서양 증기선을 만든 쿠나드 선의 나무 노 젓는 선단이다.
사진은 RMS 브리타니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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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MS 캄파니아호
1892년 9월에 취항한 캄파니아 호는 1893년에 취항했을 때
세계에서 가장 크고 빠른 여객선이었다.
6일 이내 대서양을 횡단하는 질주로 탐나는 블루 리반드를 우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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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MS 카르파티아호
또 다른 쿠나드 대서양 횡단 여객선인
RMS 카르파티아는
다양한 이유로 명성을 얻었다.
이 배는 1912년 4월 침몰한 RMS 타이타닉호에
도움을 주기위해 항해한 배로,
선원들은 침몰한 배의 구명보트에서 생존자 705명을 구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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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MS 타이타닉호
1912년 4월 15일, 영국 여객선 RMS 타이타닉호는
사우샘프턴에서 뉴욕시로 가는 처녀 항해 중
빙산에 부딪혀 북대서양에서 침몰했다.
그 비극으로 1,5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죽었다.
화이트 스타에 의해 운영되는 타이타닉호의 손실은
슈퍼라이너나 유람선의 가장 치명적인 평시 침몰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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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기항지
타이타닉호의 침몰에도 불구하고 급성장하는
유람선 산업에 대한 대중의 열망은 강했다.
대서양 횡단 속도가 빨라진 것 외에도
여객선 회사들은 선택의 여지를 넓히고 있었다.
예를 들어, 노르웨이계 미국인 소유의 레드 스타 라인은
주요 기항지를 벨기에의 앤트워프,
영국의 리버풀과 사우샘프턴,
미국의 뉴욕과 필라델피아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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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시설들
노선이 길어짐에 따라 더 정교한 승객 시설이 생겨났다.
최초의 아라카르트 식당은 1910년경 여객선에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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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저를 위한 공간
금빛의 무도회장은 밤을
춤추며 보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마련되었다.
더 활동적인 스포츠를 위해,
첫 번째 탑 데크 수영장이 비슷한 시기에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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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 대전
이 호화로운 거실은 20세기 초 승객들에게 제공된
호화로운 인테리어의 전형이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중 전쟁에 연루된
해군 당국들은 많은 유람선들을 징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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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 대전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여객선은
1914년 프랑스 르아브르를 출발하는
RMS 아스투리아스와 같은 부대 수송선이나
병원선으로 사용되었다.
아스투리아스는 어뢰 공격에서 살아남아
1920년대 원래의 기능으로 돌아왔지만,
다른 선박들은 운이 좋지 않았다.
노르웨이 소유의 프레드 올슨 라인만 해도
세계대전에서 23척의 배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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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MS 루시타니아호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가장 주목을 받았던 여객선 침몰은
쿠나드 여객선 RMS 루시타니아의 침몰이다.
1915년 5월 7일, 이 배는
독일 잠수함 U-20에서 발사된 한 발의 어뢰에 맞았다.
대서양호가 이 배를 집어삼키는 데 걸린 시간은
20분이 채 되지 않았고,
승객 1266명과 승무원 696명 중 761명만 살아남았고,
사상자 중 123명은 미국 시민이었다.
루시타니아호는 전쟁에 징집되지 않았고,
리버풀과 뉴욕 사이의 정규 노선을 따라가고 있었다.
사상자는 모두 민간인이었다.
이 손실은 2년 후 미국이 전쟁에 참여하는 데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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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와 2차 대전 사이
1920년대와 1930년대에 걸쳐
크루즈 라인 회사들은 계속해서 번창했고
목적은 더 세계적이고 "즐거운 크루즈"로 정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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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MS 라코니아호
1922년 11월, 쿠나드가 운영하는 RMS 라코니아호는
세계 일주 항해를 시작했다.
이 항해는 회사의 승리이자 크루즈 산업의 역사에 이정표를 세웠다.
그러나 20년 후, 라코니아호는
제2차 세계 대전의 가장 논란이 많은 사건 하나에 연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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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코니아호 사건
1942년 9월 12일 라코니아호는 서아프리카 해안에서
독일 U-156호에 의해 어뢰를 맞고 격침되었다.
독일 선박은 즉시 복구 작전을 시작했고,
이는 공개된 라디오 채널을 통해 방송되었다.
다른 U보트와 연합군 항공기들에 의해 포착되었다.
U-156은 생존자들을 태운 후 비시 프랑스 선박들과 합류하여
구조된 선원들을 이송하기 위해 출항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U보트는
B-24 리버레이터 폭격기의 공격을 받았고,
승무원들은 프론트 데크에 구조된 생존자들을 알고 있었지만
어쨌든 잠수함을 폭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B-24는 라코니아의 생존자 수십 명을 죽였고, 이 사건은
좌초된 연합군 선원들을 구출하기 위한
독일 해군의 일반적인 태도를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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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기
1950년대는 일반적으로 순항의 황금기로 여겨진다.
호화로운 크루즈선을 타기위해 선체에 오르는 매력은
유명인사들에게 거절하기 힘든 매력이었다.
사진은 1952년 6월 23일 USL의 기함인
SS 미국호가 뉴욕 항구에 입항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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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히치콕
알프레드 히치콕과 영화배우 제인 와이먼은
1950년 쿠나드 정기선 RMS 퀸 메리호가
사우샘프턴을 떠나 뉴욕으로 향할 때 사진에 찍혔다.
퀸 메리호는 오늘날 캘리포니아 롱비치에 떠있는 호텔로
영구적으로 계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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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스의 날
1955년 사진에 찍힌 도리스 데이는
쿠나드의 RMS 퀸 엘리자베스호를 타고
영국 사우샘프턴에 도착하면서 활짝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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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벨라폰테
해리 벨라폰테와 그의 아내 줄리, 그리고 어린 아들 데이비드는
1959년 RMS 퀸 메리호를 타고 뉴욕에 도착한 후
사우샘프턴에서 언론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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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의 크루즈
항공사들과의 치열한 경쟁에도 불구하고,
크루즈 산업은 1960년대 내내 계속해서 번창했다.
1965년 프린세스 크루즈, 1966년 노르웨이 크루즈 라인,
1968년 로열 캐리비안, 1970년 MSC 등
현대적인 크루즈 라인이 이 시기에 설립되었다.
사진은 오리엔트 증기 항법 회사가 운영하는 SS 오리아나호가
1961년 1월 6일 시드니 항구의 순환 부두를 출발하여
10일간의 태평양 순항을 시작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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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80, 90년대의 크루즈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유람선 휴가는
더 이상 부유층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공해상의 휴일 붐의 여파로 1972년의 카니발,
1989년의 셀러브리티 크루즈,
1994년의 실버사 등 더 많은 유람선 노선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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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나드 퀸들의 만남
2015년, 쿠나드의 세 척의 퀸은 리버풀의 머시 강에서
회사의 175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만났다.
퀸 메리 2호, 퀸 빅토리아호, 퀸 엘리자베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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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 오브 더 시즈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유람선은
원더 오브 더 시즈(Wonder of the Seas)
(마르세유를 떠나는 2022년 5월의 사진)다.
이 거대한 수상 호텔은 6,988명의 승객을 수용할 수 있다.
로열 캐리비안 인터내셔널이 운영하는 이 선박은 지금까지 건조된
가장 큰 군함인 미국 니미츠급 항공모함보다 더 길다.
출처:
(Cruise Market Watch) (Cruise Dialysis) (Smithsonian Magazine)
(History) (The Maritime Executive) (Forbes)
참조: 10,000 eggs a day and other crazy cruise ship food sta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