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투수 한용덕(47)은 고난과 역경을 딛고 선 ‘신데렐라 스토리’의 대표적인 선수다. 찢어지게 가난한 가정형편과 별 볼일 없던 실력으로 전혀 주목받지 못하던 ‘하류인생’ 출신. 그러나 맨주먹과 ‘해내고 말겠다’는 굳은 의지만으로 90년대 한국 대표투수 중 하나로 화려하게 변신하는 드라마를 연출해냈다.
▲ 대전에서 고난이 시작되다
한용덕의 고향은 대구다. 그러나 여덟 살되던 해 아버지가 다니던 주류회사에서 사고가 나면서 손에 쥔 것 없이 대전에 새 둥지를 틀게 됐다. 그건 고난의 시작이었다. 여섯 살 위인 큰형을 교통사고로 잃어 원치 않는 장남이 됐고 집안 사정은 더욱 어려워져 갔다. 새 운동화를 신어본 기억이 없을 만큼 어린 시절의 삶은 가난과 고난과의 싸움으로 가득 차 있다.
▲ 뒷산 소주,그리고 새우깡
천동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야구를 시작했지만 실력은 그저그랬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키가 작아 늘 홀대를 받았다. 동아대에 진학한 뒤 키는 부쩍 컸지만 중학교 때부터 속을 썩이던 왼무릎 관절염이 재발,제대로 뛰지 못했다. 결국 1학년을 마친 뒤 학교를 자퇴했다. 이후 그의 일과는 4홉들이 소주 한 병과 새우깡을 들고 집 뒷산으로 향하는 폐인의 삶으로 채워졌다.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는 생각에 손에 잡히는 대로 이것 저것 일을 해봤지만 모두 실패. 한용덕은 도피처로 군대를 선택했다. 그러나 맘처럼 쉽지 않았다. 왼무릎 관절염에다 어린 시절 돌에 맞아 약해진 시력 탓에 신체검사를 통과하기도 힘들었다. 부상을 숨기고 시력검사표를 통채로 외운 덕에 16개월 방위 판정을 받아낼 수 있었다.
▲‘쓰레빠 한’을 아시나요
소집해제 뒤에는 다시 막막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임시 전화 설치,트럭 운전 보조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하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을 숨기진 못했다. 대전구장을 기웃거리길 몇 차례. 그러던 어느날 막 빙그레(현 한화)에 부임한 고교시절 은사인 김영덕 감독 앞으로 달려가 눈 딱 감고 이렇게 외쳤다. “감독님 배팅볼이라도 던지게 해주십시오.” 얼마나 흘렀을까. 김감독의 어눌한 한국말이 들려왔다. “오,구래 낼부터 나와.” 프로야구선수로서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87년 9월 어느날이었다.
▲ 내 인생의 유일한 스승-김영덕
김감독은 그 이후에도 한용덕에게 여러 차례 길을 열어줬다. 배팅볼 투수 3개월여 만에 입단테스트를 통해 그에게 정식선수가 될 수 있도록 해줬고 한용덕이 구단이 제시한 첫 연봉(300만원)에 실망해 다시 포기하려 하자 구단을 윽박질러 600만원으로 올려주기도 했다. 또 대학 때까지 유격수만 해 던질 수 있는 구질이라고는 직구 하나밖에 없던 한용덕을 88년 7월 1군 공식무대에 데뷔시켜준 은인도 김감독이다.
▲ 영광과 좌절
한용덕은 90년 일본 시마바라 전지훈련에서 사토 인스트럭터를 만난 이후 백조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변화구와 좌타자 상대요령을 터득,본격적인 투수의 길에 접어들게 된다. 90년 13승을 시작으로 91년 17승을 거두며 한·일 슈퍼게임 대표선수로 선발되는 영광을 누렸다. 특히 4차전 선발투수로 나서 한국팀에 첫승을 안기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이후 몇 년간은 거칠 것 없는 전성기가 펼쳐졌다.
하지만 호사다마일까. 94년 16승을 거두며 조계현(당시 해태)과 다승왕 경쟁을 벌이던 한용덕은 강병철 전 감독과의 불화로 시즌을 조기에 접는다. 그리고 9월 어느날. 아내 강순옥씨가 운전하던 차를 타고 가다 대형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후 자신의 재활은 물론 다리 절단 위기까지 몰리던 아내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다른 생활은 거의 포기한 채 몇 년의 시간을 흘려보내야 했다.
▲ 이제 은혜를 되돌려줄 때
2000년 재기에 성공한 한용덕은 이후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해냈다. 내년 시즌에는 ‘현역 최고령투수’라는 땀내 가득한 영광까지 안게 된다. 이제 선수생활을 정리해야 할 때.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그동안 달려온 인생에 후회는 없다. 유행가 가사처럼 알몸으로 태어나 옷 한 벌은 충분히 건졌기 때문이다. 1년 뒤 지도자로의 변신을 꿈꾸고 있는 한용덕은 “후배들,특히 어렵게 운동하는 이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내가 김영덕 감독님 덕에 지금 여기에 서 있을 수 있었던 것처럼…”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 한용덕 프로필
▲ 생년월일=1965년 6월2일
▲ 체격=183㎝ 84㎏
▲ 경력=대전 천동초등학교-충남중-천안북일고-동아대(2년 중퇴)-빙그레(현 한화·88∼)
▲ 프로성적=472경기,120승118패24세이브 방어율 3.52
▲ 수상경력=개인통상 1,000탈삼진(11번째) 통산 100승(14번째)
첫댓글 오우 대단 하네요..^^
송진우도 선수시절 대단한 선수였고 자기관리를 어마하게 한 선수지만 한용덕은 정말이지 나보단 남을 더배려하는 실력과 인성을 겸비한 선수였죠
제가 이글스를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한용덕, 장종훈 최근의 송창식까지 ^^
음..트럭운전수에서 연습할때 타자들에게
공던져주는걸로전환 그리고 투수 ....라고
택시기사아저씨가 얘기해주시던데 맞나여?
네 맞아요
연습생 신화죠 투수 한영덕 타자 장종훈
한용덕코치죠^^
핸드폰으로 작성하다보니 오타요 ㅠㅠ
우와~ 대단하시네요..어쩐지 자꾸 정이 가더라니. .
차기 이글스 감독으로 선임되셨으면 좋겠어요. 야구도 잘 하셨지만 정말 훌륭하신 분입니다.
차기 감독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