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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차 |
자동차 영업사원들에게 담당구역이 정해져 있듯이 기자들에게는 출입처라는 게 있다. ‘김복동 기자는 현대ㆍ기아자동차 등 자동차업계’, ‘홍길동 기자는 재정경제부 등 경제부처’ 식으로 개별 기자마다 챙겨야 할 취재영역이 별도로 정해져 있다. 필자는 2001년부터 5년 넘게 재정경제부, 공정거래위원회, 산업자원부 등을 출입처로 삼았는데 지난해 5월부터 자동차업계로 출입처를 옮겼다. 출입처를 바꾸고 난 뒤 처음 몇 개월 동안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요즘은 자동차업계를 취재 중”이라고 말하면 대부분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퍼부었다. “여러 종류의 차를 타 봤을 테니 어떤 차가 가장 안전한 지 알려주라.” 제 아무리 뛰어난 자동차 전문가라도 누가 이런 질문에 정답을 제시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동안 “더 많은 차를 타보고 알려주겠다”거나 “뭐, 안전도에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대충 얼버무렸다. 그러다가 지난해 11월께 중국 고전에서 해답을 찾았다. 중국 원(元)나라 시대 증선지(曾先之)가 삼황오제(三皇五帝) 시대부터 송(宋)나라까지 원나라 이전의 중국 역사를 기술한 십팔사략(十八史略)에 해답이 있었다. 해답이 담긴 구절은 춘추전국시대 제(齊)나라 위왕(威王)과 위(魏)나라 혜왕(惠王)이 함께 사냥을 즐기면서 주고 받은 대화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혜왕이 위왕에게 물었다. “제나라에도 진기한 보물이 많이 있겠죠?” 위왕이 말했다. “아니, 내놓고 자랑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혜왕이 어깨를 으쓱이며 자랑했다. “우리나라는 소국이지만 직경이 한 치 되는 구슬이 있습니다. 이것은 전차(戰車) 열두 대가 쭉 늘어선 것을 비출 만한 광채가 있는데 이런 것이 열 개가 있습니다.” 그러자 위왕이 빙긋이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제게도 보물이 있습니다. 근데 내 보물은 좀 다릅니다.” 혜왕이 되물었다. “구슬이 아니라 천하의 명검을 갖고 계신가 보군요.” 위왕이 말했다. “아닙니다. 나의 보물은 사람입니다. 내 신하 중에 단자(檀子)라는 사람이 있는데 남쪽 국경을 지키게 했더니 초(楚)나라가 두려워 감히 침략해 오지 못하게 됐습니다. 또 혜자(列子)라는 사람이 있는데 동쪽의 고당(高唐) 지방을 지키게 했더니 조(趙)나라 사람은 두려워서 감히 동쪽 하수(河水ㆍ지금의 황하)를 넘어오지 못합니다. 종수(種首)라는 신하에게는 도둑을 단속하게 했더니 오늘에 와서는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는 사람도 없게 됐습니다. 이들이 바로 내 보물로서 그 위력은 천리의 먼 지역을 비춥니다. 수레 열두 대를 비추는 것과는 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혜왕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어떤 차가 제일 안전하냐”고 묻는 분들에게 위왕과 혜왕의 대화를 들려준 뒤 추가로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 크고 비싼 차가 안전할 거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는 안전한 차는 좀 다릅니다. 제가 아는 가장 안전한 차는 안전하게 운전하는 사람이 탄 차입니다. 옆 차선에서 끼어드는 차에 양보하고 앞차와의 안전거리를 충분히 유지하고 과속하지 않는 운전자가 탄 차가 안전한 자동차입니다.” 요컨대 안전한 차는 따로 있는 게 아니며 어떻게 운전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주장인 셈이다. 그런데 궁여지책으로 생각해 낸 대답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훌륭한 대답이란 생각이 든다. 자동차 안전에 관한 주요업체의 연구개발 흐름이 사고가 났을 경우 피해를 최소화하는 ‘수동적 안전’에서 사전에 운전자가 교통사고를 내지 않도록 하는 ‘적극적 안전’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차량이 충돌했을 때 탑승자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수동적 안전성’ 분야 기술은 거의 한계에 도달한 상태이다. 특히 과거 안전성이 문제로 지적됐던 현대ㆍ기아차와 GM DAEWOO 등 국내 완성차업체의 경우 ‘수동적 안전성’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뤄 이제는 이 분야에서 외국업체를 뛰어넘은 상태다. 미국 교통부 산하 고속도로교통안전위원회(NHTSA)에 따르면 중형차시장에서는 현대차 쏘나타와 기아차 옵티마가 정면·측면 충돌테스트 모두에서 최고등급(별5)을 받았다. 일본의 혼다 어코드는 측면 충돌점수가 쏘나타, 옵티마보다 한 단계 낮은 등급(별4)으로 평가됐고 BMW 3시리즈와 폴크스바겐 제타·파사트 모델, 메르세데스-벤츠의 C클래스 등도 국산차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다. 현대ㆍ기아차 등 국내업체는 최근 유리창의 김서림을 사전에 막는 시스템과 앞차와의 간격이 좁아지면 경보음을 내는 장치를 개발하는 등 ‘적극적 안전성’ 분야에서도 잇따라 기술진보를 이뤄내고 있는데, 이는 세계 자동차업계의 큰 흐름이 사고를 사전에 막는 ‘적극적 안전’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영국 속담에 ‘Be it ever so humble, there’s no place like home(아무리 초라해도 내 집이 최고)’라는 말이 있다. 마찬가지로 허름한 중고차일지언정 교통법규를 잘 지키고 양보운전만 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차는 내 차인 것이다. |
첫댓글 잘 읽었슴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