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호부대와 주월한국군사령부 창설 및 파병
1965년 2월 비둘기부대의 베트남 파병 이후, 월남공화국 정부로부터 2차례에 걸친 전투부대 파병요청이 있었다.
이에 정부는 동년 8월 13일 제52회 임시국회 제11차 본회의에 전투부대 파병안을 상정하여 동의를 얻었으며,
수도사단을 제1진으로 선정하여, 동년 10월 12일 여의도에서 결단 및 환송식을 거행함으로써, 건국 이후 최초
로 전투부대를 해외에 파병하게 되었다.
주 베트남한국군사령부 창설 및 파병
1965. 08. 17 : 주베트남한국군사령관에 채명신 소장(맹호부대장 겸임) 임명
1965. 09. 25 : 주베트남한국군사령부 창설(서울 필동)
1965. 10. 20 : 주베트남한국군사령부 겸 맹호사단 사령부 요원 94명 김포공항에서 출국하여 당일 사이공
(Saigon) 도착
1966. 08. 15 : 주베트남한국군사령부 한국군 야전지휘소(후일 야전사령부로 개편) 냐트랑(Nha Tarang)에
설치
주월한국군사령부 부대기와 부대마크
(4) 맹호부대(수도사단) 파병
1965. 09. 15 : 맹호부대 파병 계획단 23명 김포공항에서 출발하여 사이공(Saigon)에 도착
1965. 09. 17 : 맹호부대 파병 계획단 퀴논(Quy Nhon)으로 이동
1965. 10. 03 : 맹호부대 선발대 161명이 청룡부대와 함께 부산항에서 출발
1965. 10. 07 : 맹호부대 선발대 161명 퀴논(Quy Nhon)항에 상륙한 후 맹호부대 파병계획단과 합류
1965. 10. 12 : 맹호부대 결단 및 환송식 거행(여의도 비행장)
1965. 10. 13 : 맹호부대 제1연대 인천항 출발
1965. 10. 14 : 맹호부대 제1연대 부산항 도착 환송행사 거행
1965. 10. 16 : 맹호부대 제1연대 부산항에서 출발
1965. 10. 20 : 주베트남한국군사령부 겸 맹호사단 사령부 요원 94명 김포공항에서 출국하여 당일
사이공(Saigon)에 도착
1965. 10. 21 : 맹호부대 제1연대 퀴논(Quy Nhon)항에 입항
1965. 10. 22 : 맹호부대 제1연대 퀴논(Quy Nhon)에 상륙
1965. 10. 24 : 맹호부대 기갑연대(번개부대) 부산항에서 환송식
1965. 10. 31 : 맹호부대 기갑연대 퀴논(Quy Nhon)항에 도착
1965. 11. 01~03 : 맹호부대 잔여 병력 111명 2개 제대로 편성하여 김포공항에서 항공편으로 이동 완료
1965. 11. 06 : 남베트남 정부 맹호부대 사령부에서 한국군 전투부대의 파병을 환영하는 공식행사 거행
1966. 04. 06 : 맹호부대 26연대(혜산진부대)결단 및 환송식(중부전선격전장). 부산항 출발(4.10)
1966. 04. 16 : 맹호부대 26연대(혜산진부대) 퀴논(Quy Nhon)항 상륙
맹호부대 결단 및 환송식 여의도 광장65.10.12
파병부대로 지정된 수도사단은 국본 일반명령(육) 제30호(1965.8.28)에 의거 부대편성에 착수하는 한편, 4주간
의 교육훈련을 완료하였다. 이어서 동년 9월 15일에는 계획단이, 10.3일 선발대가 청룡부대와 함께 출국하여
파병계획단과 합류하고 1연대가 10월.13일 인천항을 출발하여 10.14 부산항에 도착하여 환송행사를 거행하고
10월16일에 부산항을 출발하여 10월 22일 베트남의 중남부 항구도시인 퀴논(Qui Nhon)에 상륙하였고.
10월24일 에는 맹호 기갑연대(번개부대)가 박정희 데통령 참석하에 부산항에서 환송식을 거행하고 월남으로
출발하여 10월31일 월남 퀴논에 도착하였다.
맹호 부대 제1연대 인천항 출발65.10.13 미수송함은 USS Calvert APA-32호 이다.
맹호 제1연대 부산항 도착 환송식 거행(65.10.14), 부산항 출발(65.10.16)
주베트남한국군사령부 겸 맹호사단 사령부 요원 94명 김포공항에서 출국 65.10.20
맹호부대 1연대 퀴논항 상륙 및 환영식 65.10.22
맹호 번개부대(기갑연대)환송식 부산항1965.10.24 미수송함은 USS Paul Revere (APA-248)호 이다
한편 후속부대인 제26연대는 1966년 4월 6일 중부전선 옛 격전지에서 결단 및 환송식을 거행하고 며칠뒤
부산항을 출항하여 4월 16일 퀴논에 상륙함으로써, 수도사단 맹호부대는 완전 편성된 사단편제를 갖추게 되었
으며, 본격적인 작전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맹호 혜산진부대(26연대)환송식 중부전선 옛격전장1966.4.6
맹호 혜산진부대(26연대) 부산항 출발66.4.10
맹호 혜산진부대(26연대) 퀴논항 상륙66.4.16
수도사단은 1965년 11월 15일부로 미 제101공수사단(제101공중강습사단) 및 미 제7해병연대로부터 1,200㎢
의 전술 책임지역을 인수받고, 거점을 확보하였다. 이어서 동년 10월 29일 풍손마을에서 서전을 장식한 이래
대대 및 연대규모의 작전을 실시해오다가, 1966년 3월에는 고보이 평야지역에서 최초의 사단급 규모의 작전인
‘맹호5호 작전’을 실시하였다. 수도사단은 이 작전에서 우세한 병력과 화력을 집중 운용하여 포위망을 형성한
후, ‘토끼몰이식 작전’으로 지대 내의 적을 일망타진하였으며, 사단의 전술책임지역을 북으로 200㎢ 확장하는
데 성공하여, 고보이 평야지대를 사단의 통제 하에 두게 되었다.
기갑연대 제3대대는 1966년 7월 9일 미군의 ‘폴 리비어(Paul Revere) 작전’을 지원하기 위하여 캄보디아 국경선
부근으로 이동하였으며, 미군의 통제 하에 두코를 비롯한 국경선 부근의 일대 지역에서 정찰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두코 전투에 투입된 적의 병력은 북베트남 정규군 제88연대 제5대대 예하의 400여 명과 공병특공대 등
증원병력 300여 명으로 총 700여 명이었으며, 이들의 전사상자는 500여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었다. 이후 제3
대대는 책임지역을 미 제3여단에 인계하고, 원대로 복귀하였다.
이 같은 두코전투를 계기로 연합군측에서는 한국군의 ‘중대전술기지’의 실효성에 대하여 반신반의하던 종전의
태도를 바꾸고, 그 타당성과 효과를 인정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미군은 중대급 전술기지의 명칭을 ‘Fire Base’
라고 명명하고, 그 전술적 운용에 대한 연구개발에 착수하였다.
맹호6호 작전은 당시의 시점에서 파월 국군의 최장기, 최대규모의 작전으로 최대의 성과를 거둔 작전이었다.
특히 우기에 전개된 산악전이면서, 유난히 많은 동굴을 소탕한 전투였다. 이로써 파월 국군의 작전 기량은 연합
군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 맹호6호 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됨에 따라 사단은 푸캇 산악지대를 기지로 하여 출몰
하던 빈딩 성 베트콩, E-2B 대대와 대소의 무장병력을 일망타진하고 지역의 안정을 도모하였다.
월남전 당시 한국군 주둔지
1965. 10. 12 : 맹호부대 결단 및 환송식 동영상 (여의도 비행장)
맹호부대가 - 맹호는 간다1966
맹호 혜산진부대 환송 및 월남 도착1966.4.6-4.16
맹호부대 부대기와 부대마크
첫댓글 참 옛날 생각 나네요...잘 봤습니다.
우리들의 선배가 주둔했던 다낭과 호이안
이젠 관광객만 넘쳐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