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입니다. 남녘에선 매화꽃이 활짝 피었겠지요?
저희집 마당에선 산수유 노란 꽃망울들이 얼마나 힘을 주고 있는지 기특하기만 합니다.
춘삼월, 겨울을 이겨낸 생명들이 눈을 틔우는 꽃철인데 세상은 어수선하기만 합니다.
영화 ‘기생충’이 할리우드와 전 세계를 정복한 그 기쁨도 어느새 잊고 말았습니다.
3월이 지나가면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잡힐까요?
그러기를 바라면서 저는 또다른 이유로 3월을 기다렸습니다.
남편이 얼마 전에 이렇게 공언을 했기 때문입니다.
“3월 1일부터 내년 2월 말까지 1년 동안은 안식년으로 해야겠어.
사진 찍으러 가는 날수를 확 줄이고 그동안 찍은 사진 정리나 쉬엄쉬엄 하고,
마당의 하드웨어 구축도 다 끝났으니 농사일이나 실실 해야지.“ 라고 말이지요.
중요한 건 그 다음입니다.
그 말끝에 “대신 저녁준비는 내가 하께!” 라고 말한 것입니다.
몇 년 전 마당 정리를 끝내면 하겠다고 공언했던 터라 얼른 제가 선언을 했지요.
“더러 굶겨도 되고, 라면도, 외식도 무관하니 어쨌던 3월 첫날부터는 ‘저녁 문제’에 신경을 딱 끊겠다.“ 라고요.
생각만 해도 신납니다.
밖에 나가 저녁 시간이 되어도 신경 안 쓰이고,
책 읽거나 마당 일하다가도 ‘저녁 먹자!’ 할 때까지 줄곧 하던 일을 할 수 있을 테지요.
고마운 일이죠?
그런데 고맙고 즐거운 마음 한편으로는 살아온 시간들이 되돌아 보이기도 합니다.
결혼하고 저도 처음엔 집안일은 다 제가 하는 건 줄 알았지요.
근데 그 당연한 시절에도 잊혀지지 않는 일들이 몇 가지 있지요.
(그 이야긴 다음으로 남겨둡니다.)
제 연배의 부부들은 대부분 비슷하게 살아왔을 것입니다.
살면서 그 불평등을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마음이 불편해졌구요.
그런데 그걸 바꾸자니 싸워야 하고, 머리(지혜롭게니 어쩌니...)를 써야 하고,
그러자니 내가 하고 말지 하면서 스스로 타협하고 그러면서 지내왔지요.
아, 거기엔 남편이 실천은 안 되어도 말로라도 공감과 존중의 모습을 가졌기 때문에 그래도 별탈없이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81년생 김지영’ 관련 댓글들을 보다가 삭막함이나 슬픔 같은 걸 느꼈지요.
여성의 문제를 제기한 영화에 ‘여자만 힘드냐? 남자도 힘들다...’ 라는 많은 댓글들을 보며
상대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 하는, 공감할 여유가 없는 모습들을 보았습니다.
남성들의 어려움도 꺼내면 또 얼마나 클까요? 그렇지만 그건 또 다른 자리에서 나누고,
상대가 아픔을 얘기할 땐 그렇구나... 하는 마음은 부부도, 사회도 서로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20여 년을 밀고 당기며 사는 동안 남편에게도 작은 변화들이 일어날 즈음 여기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 왔지요.
남편은 십년을 하루같이 퇴근 후 서너 시간씩 마당에서 돌 만지고 삽질하며 강도 높은 일을 했으니 집안일은 당연히 다시 저만의 일이 되었습니다.
다만 남편은 늘 하고나면 표가 나는 큰일을 하는 것 같은데 제가 하는 일은 늘 그게 그것같아 그게 불만이긴 했지요.
그랬는데 이제 저녁 걱정은 안 해도 된다니 신납니다.
당장 오늘 저녁은 무엇을 어떻게 할지 궁금합니다.
다들 어렵고 불안정한 때입니다.
신종플루 때는 70여만 명 이상의 감염과 210여 명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시끄럽고 요란하진 않았는데 지금은 무엇이 우릴 이렇게 불안하게 만드는 걸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대구로 달려가는 의료진들과
그들을 위해 성금을 보내는 작은 손길들,
또 달려온 의료진들에게 게스트하우스를 내어놓았다는 이야기며,
상가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내리겠다는 이야기들이 이 나라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합니다.
치사율이 높진 않으니 감염의 염려보다 혹 나로 인하여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습니다.
다음달 초하루꽃편지는 깨분한(개운한) 마음으로 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0년 3월 초하루에 가을하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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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들은 지난 한 달 동안 우리 카페의 '우리풀 우리나무방'에 올라온 사진들 중에서 골라 날짜순으로 올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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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귀 / 산으로 님 (2.3)

변산바람꽃 / 산들꽃 님 (2.10)

매화마름 / 산들꽃 님 (2.10)

변산바람꽃 / 안여사 님 (2.10)

굴거리나무 / 제주큰동산 님 (2.12)

변산바람꽃 / 파란하늘꿈 님 (2.13)

세복수초 / 제주큰동산 님 (2.13)

노루귀 / 안여사 님 (2.16)

복수초 / 들꽃 님 (2.18)

상사화 / 정가네 님 (2.22)

백량금 / 제주큰동산 님 (2.22)

노루귀 / 산바람 님 (2.23)

복수초 / 늘봄 님 (2.24)

꿩의바람꽃 / 안여사 님 (2.24)

붉은대극 / 안여사 님 (2.24)

예쁜 꽃글 감사합니다.
꾼선생님은 우찌 저리 멋진 생각만 하실꼬?ㅎㅎㅎㅎ
며느리가 두 명인 래의 집 가훈은,
'밥을 먹은 후 아내가 거실에 앉을 때 비로소 남편도 같이 앉을 수 있다'였는데
아호.. 우리집만 잘 안 지켜지는 것 같아요.ㅠㅜ;
래님. 바람재에서라도 자주 봐요.
세상에나..래님 댁 가훈이 너무 재밌습니다.
안 지켜진다지만 그래도 다른 집보다 훨 분위기가 다르겠지요?
오늘이 4일인가요?
ㄴㅁㄲ이 저녁하는 시간에 왜 나는 배짱좋게 구경하고 쉬는 게 힘들까요?
그리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