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한류(韓流)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다. 이 말의 뿌리와 그 개념부터 알고 싶다.
A 한류는 1999년 중국의 베이징(北京) 청년보(靑年報)에서 한국의 대중문화와 연예인들에 빠져 있는 젊은이들의 유행을 경계하는 뜻으로 처음 사용한 말이었다. 그래서 한류는 그와 음이 같은 한류(寒流)를 함유하고 있는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던 말이다. 이미 대만에는 하한주(哈韓族)라는 말이 있었는데 그 의미 역시 한(韓)은 한(寒)과 통하는 말로서 말라리아에 걸려 추워서 떠는 열병환자라는 뜻을 지닌다. 일본의 일(日)을 태양과 관련시킨 하르주(哈日族)라는 말이 열사병에 걸린 환자를 가리키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생겨난 말이다.
Q 일본의 '겨울연가' 열풍도 한류 현상의 하나로 볼 수 있는가. 그리고 그 평가는?
A 흔히 동북아시아를 '한자 문화권'이라고 부르듯이 우리는 2000년 가까이 중국문화권 안에서 살아왔고 근대에 와서는 백년 가까이 일본문화권의 영향 안에 있었다.
그런데 '한류'와 '합한족'이라는 새로운 한자말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것은 한국이 문화 수신국(受信國)에서 문화 발신국(發信國)으로 전환되었음을 알리는 신호다.
단순한 한류가 아니다. 세계의 역사가 '부국강병'의 하드 파워에서 문화의 소프트 파워로 옮겨가고 있는 현상에서 일어난 일이다. 군사력과 경제력에 뒤져 식민지국으로 전락했던 한국이 이제는 아시아 지역에 아시아의 문화적 아이덴티티를 불러일으키는 주역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겨울연가'는 100년 동안 탈 아시아를 표방해온 일본의 기성세대들에게 아시아적 정서와 그 가치로 돌아오게 하는 계기를 주었다. 그리고 보아 선풍은 할리우드밖에 모르던 일본의 10대들에게 아시아의 동질성과 그 미래에 대한 신선한 이미지를 심었다.
일시적인 현상도 아니며 과소평가할 일도 아니다. 뿌리 깊은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편견을 바꾸어 놓은 것은 인간의 순수한 애정을 그린 단 한편의 TV 드라마였다. 몇 사단의 군사력과 몇 조원의 상품으로도 이룩할 수 없는 일을 해낸 것이다.
Q 한류를 글로벌한 소프트 파워의 현상으로 보면서 동시에 아시아의 로컬리즘으로 해석한다면 서로 모순되지 않겠는가.
A 아니다. 글로벌리제이션과 로컬리제이션은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상이다. 그래서 두 말을 하나로 결합한 글로컬리즘이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정치 경제에서 문화 문명의 패러다임으로 그 흐름이 바뀌면서 세계는 몇 개의 문화권으로 네트워크화하는 상황으로 변했다. 바로 그것이 유럽연합(EU)의 출현이며 소련 연방의 해체다.
한국은 그동안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문화의 힘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 지구상의 거의 유일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형 오토포에시즈(autopoiesis), 즉 자기조직화의 힘을 실제로 보여준 것이 바로 서울 올림픽과 월드컵의 붉은 악마가 보여준 한국의 소프트 파워였다.
예술가의 팬들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감동으로 결집된 자연발생적인(종래의 국가나 관료조직으로는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는) 조직과 힘이 바로 소프트 파워다. 그런데 그 힘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아직도 잘 모르는 나라가 있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인 한국인지 모른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2005.01.03 09:50 입력 / 2005.01.04 08:0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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