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분단으로 인해 햇빛을 보지 못한 많은 시인들이 공식 출판물을 통해 우리 앞에 등장한 것은 불과 십여 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정지용을 위시하여 백석이나 이용악 등 현대시사에서 빠트릴 수 없는 큰 봉오리들의 작품은 비록 복사본의 형태일망정 비밀리에 돌고 있어서 알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터였다. 나 역시 백석을 처음 본 것은 선배를 통해서였다. 주머니 돈을 다 털어 술을 사고 그것도 자신 앞에서만 본다는 조건으로 본 것이었는데 어찌나 탐이 나던지 그 선배가 잠을 자는 틈을 이용해 그만 가져오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날 엄청난 일이라도 저지르는 듯이 초긴장 속에서 복사실을 찾았고 그 일을 무사히 끝낸 후 밀려오는 희열감이라니--그것은 그 같은 짓을 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숨 떨리는 그 무엇이었다. 그렇게 구한 백석의 시로부터 내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시가 대단히 서정적이라는 점, 동시대 다른 시인들과 많은 부분에서 차별성을 갖는다는 것, 토착어를 유달리 많이 쓰고 있다는 점,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다는 점, 우리 시가사의 전통성에 많은 부분 기대고 있다는 점이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 관심을 갖고 쓰고자 하는 것은 그의 시가 기대고 있는 전통성의 부분이다. 그의 시에는 토착어가 유달리 많다. 방언사전에도 없는 토착어나 고어를 사용하기도 해서 그의 작품에 접근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의 시에는 생경한 단어들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혀지는 힘이 있다. 그 힘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그의 시가 우리 시가사의 전통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마치 백석이 우리 시가사의 전통을 수용한다는 의식조차 없이 자연스럽게 자기 시세계 안으로 끌어들였듯이, 그의 시를 읽는 독자 역시 토착어의 남발에도 불구하고 거부감을 일으키기는커녕 자신도 모르게 그의 시세계 안으로 조금씩 흡수되고 마는 것이다.
2.
백석의 초기시를 보면 우선 눈에 띄는 것이 3연시를 즐겨 사용했다는 점이다. 1연시 중의 3행시를 3연시의 범주에 포함시키면 3연시의 비율은 더 늘어난다. 위와 같은 관점으로 1936년에 간행된 시집 <사슴>을 보면 그 3연시의 비율이 40%를 육박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3연이든 4연이든 또 그 이상이든 시인 자신의 기호에 따라 연을 나눈 것일 터이다. 하지만 백석의 경우 3연시가 유독 많은 게 사실이고 또 그것은 창작방법과도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아시다시피 3연시는 시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시조에서는 종장의 역할이 중요하다. 화자의 속마음이 종장에서 집약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시조에서의 종장은 네 줄짜리 漢詩에서의 轉句와 結句의 내용에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무게와 비중이 대단히 큰 것이었다. 이러한 3연시의 특성을 백석은 잘 보여주고 있다.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잎도 머리카락 도 헌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와장도 닭의짗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모닥불> 전문
1연에는 우선 모닥불의 질료가 되는 사물들이 열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 사물들은 생활 현장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것들이며 지극히 사소한 것들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것은 거기엔 모닥불의 질료가 될 수 없는 것들도 함께 섞여 있다는 사실이다. 헌신짝, 갓신창, 너울쪽, 짚검불, 가락잎, 헌겊조각, 막대꼬치 등은 모닥불의 질료가 되는 사물이다. 하지만 개이빨이니 소똥, 머리카락, 기와장, 닭의 깃, 개터럭 등은 모닥불의 질료로는 전혀 쓸모가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종장의 ‘어려서’라는 대목을 통해 할아버지의 유년체험과 맞닿아 있는 사물들임을 확인할 수 있고, 또 그것들이 비록 실생활에서의 하찮고 거의 쓸모가 없는 것들이지만 그런 것들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 할아버지’가 ‘불쌍하니도 몽둥발이’가 되어서도 끈질기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다시 말해 이런 것들이 모여 따뜻한 모닥불을 이루어낼 때 2연에 나타나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그 모닥불의 따뜻함을 함께 나누어 가지는 것이다.
모닥불을 쬐는 사람은 각양각색이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함께 불을 쬐고, 주인과 더부살이 아이가 더불어 불을 쬔다. 붓장사, 땜장사는 물론이고 큰 개, 강아지도 모닥불의 따뜻함을 나누어 가진다. 여기에서 계급관계, 계층관계의 벽은 허물어진다. 과거에 급제한 초시나 거의 상놈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 땜장사의 관계가 허물어지는 것이다. 또한 주체와 객체의 구분이 허물어지고, 너와 나의 구분이 사라진다. 그렇듯이 2연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은 그 어떤 일체감이다. 모닥불의 따뜻함을 다 함께 공유하는 일체감, 3연에서의 ‘슬픈 역사’를 감안한다면 못나고 가난하고 억눌리는 존재들일지라도 화자에게는 소중하기만 한, 그래서 하나가 되어야 하는 간절한 일체감이다.
3연에서의 모닥불은 더 이상 따뜻한 모닥불이 아니다. 그 모닥불은 슬픈 역사로 전이된다.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쌍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것이다. 몽둥발이란 딸려붙었던 것이 다 떨어지고 몸뚱이만 남은 모습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확인할 수 있다. 하나는 ‘우리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이고, 또 하나는 몽둥발이가 되어서도 현재까지 끈질기게 살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1연에서의 하찮고 사소한 물건들이지만 바로 ‘우리 할아버지’의 주변 사물들이기에 소중한 것과 2연에서의 그 가깝고 친근해서 언제든지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었던 그 사람들조차 그에게서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이다. 바로 그런 서글픔을 화자는 3연에서 ‘모닥불의 슬픈 역사’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고시조의 전통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화자의 속마음이 3연에 와서 집약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점이 그것이다.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를 이야기하기 위해 화자는 1연과 2연에서 엮음 수법으로 그 많은 단어들을 열거한 것이다.
다음으로 이 시에서 고시조의 전통으로 언급할 수 있는 것은 엮음 수법이다. 주지하다시피 엮음 수법은 사설시조에서 즐겨 사용한 방법이다. ‘엮는다’는 말은 단일한 요소가 아니라 여러 가지 다양한 것을 하나로 묶는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으며 신세한탄처럼 줄줄 이어서 말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엮음의 기반이 되는 것은 열거이다. 열거는 다양한 요소들이 동질성을 바탕으로 하나로 묶인다는 점을 강조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단일한 요소가 아니라 다양한 요소를 어떤 공통적 기반 위에서 하나로 묶고, 그것을 줄줄이 이어나가는 수법이 곧 엮음인 것이다. 다시 말해 그 어떤 ‘일체감’을 나타내기 위해 엮음의 방식이 씌어진 것이다. 사설시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엮음 방식들은 사물을 죽 나열하는 형태, 사물이나 인물의 특성을 수식함에 있어 군말을 곁들여 수사하고 열거하는 형태, 그리고 대화를 열거함으로써 사설을 엮어가는 형태 이런 형태는 민요나 판소리사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
등이다. 그 중에서 <모닥불>에서의 엮음은 사물의 이름을 죽 나열하는 형태임을 우리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 같은 수법은 사설시조 외에 打令類의 민요에서도 그 전형적인 양상을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서, 그 어떤 일체감을 나타내기 위해 말을 꺾거나 접지 않고 한꺼번에 몰아붙여 엮어나가는, 그야말로 음악적 리듬이 촘촘한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의 문제를 다시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앞서 제기한 1연에서의 모닥불의 질료에 관한 문제이다. 화자는 모닥불의 질료가 되는 물건들과 그렇지 않은 물건들을 엮음의 방식으로 뒤섞어놓았는데 그것은 어쩌면 의도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화자의 의도는 우리를 유년의 체험(1연에서의 사물들은 모닥불의 질료로서가 아닌 우리 모두의 유년체험과 맞닿아 있는 사물들임)으로 몰고 가는 것이고, 그 유년의 체험 속에서 일체감을 느끼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시인은 그런 일체감을 나타내기 위해 사설시조에서의 엮음 수법을 끌어다 쓴 것이다.
백석의 시세계에서 다음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생활시와 이야기시로의 경향이다. 우리나라의 詩歌史에서 이야기의 요소가 삽입된 것은 임진왜란 이후의 일이다. 임란 이후 시민 계급의 등장과 함께 사람 사는 실제의 모습이 시의 표면에 부각되고 이야기가 시에 접합되기 시작한 것이다. 서정시조의 서사화는 곧 사설시조에 생동감을 불어넣었고 그것이 또 자연스럽게 자유시로 발전한 것은 우리 모두가 익히 아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사설시조를 길이가 길어지고 이야기가 있는, 다소간에 서사적 요소가 있는 시조로 정의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일 터이다. 사설시조의 이야기는 줄거리를 요약한 듯한, 이야기의 골격만 갖춘 것이 대부분이다. 다시 말해 가장 단순한 형태의 이야기가 수용되어 있을 뿐인데, 이것은 여러 인물이나 사건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야기를 사설시조로 담아내기는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설시조에서의 이야기는 바로 이처럼 요약된 줄거리와 같은 형태로 존재한다. 이런 사설시조의 특성을 염두에 두고 살펴볼 때에 백석의 시들은 많은 경우 사설시조에 기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료된다.
승냥이가 새끼를 치는 전에는 쇠매 들 도적이 났다는 가즈랑고개
(중략)
예순이 넘은 아들 없는 가즈랑집 할머니는 중같이 정해서 할머니가 마을을
가면 긴 담뱃대에 독하다는 막써레기를 멫대라도 붙이라고 하며
간밤엔 섬돌 아래 승냥이가 왔다는 이야기
어느메 山골에선가 곰이 아이를 본다는 이야기
나는 돌나무김치에 백설기를 먹으며
넷말의 구신집에 있는 듯이
가즈랑집 할머니
내가 날 때 죽은 누이도 날 때
무명필에 이름을 써서 백지 달아서 구신간시렁의 당즈깨에 넣어
대감님께 수영을 들였다는 가즈랑집 할머니
언제나 병을 앓을 때면
신장님 단련이라고 하는 가즈랑집 할머니
구신의 딸이라고 생각하면 슬퍼졌다
토끼도 살이 오른다는 때 아르대즘퍼리에서 제비꼬리 마타리 쇠조지
가지취 고비 고사리 두릅순 회순 山나물을 하는 가즈랑집 할머니를 따
르며
나는 벌써 달디단 물구지우림 둥굴레우림을 생각하고
아직 멀은 도토리묵 도토리범벅까지도 그리워한다
- <가즈랑집> 중에서
시의 내용으로 보아 가즈랑집 할머니는 巫女이다. 그녀의 세계 안에서는 ‘승냥이가 오고 가고 곰이 아이를 보는’ 신화의 질서가 남아 있다. 그녀는 신의 딸이 되어 신과 인간의 중개 구실을 한다. ‘내가 날 때 죽은 누이도 날 때’ 신의 딸인 그녀는 ‘무명필에 이름을 써서 백지 달아서’ 그것을 아버지(신)께 바치며 빌어주기도 하고, ‘병을 앓을 때면’ 귀신이 씌어 그런다며 굿을 해주기도 한다. 巫女인 그녀의 집엔 굿을 하기 위한 재료가 늘 넘쳐난다. 나이 어린 화자의 눈엔 그 많은 먹거리들이 신통하기만 하다. 그래서 가즈랑집 할머니를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얻어먹기도 하고 그 맛있다고 생각되어지는 ‘도토리묵 도토리범벅까지도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이 시는 전통 정서에의 향수와 재래의 생활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차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 시를 통해 생활의 터전이 갑작스럽게 변모했으리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생활의 터전이 변모하지 않았다 해도 최소한 ‘가즈랑집’이라는 무당이 사는 할머니의 집만큼은 그 어떤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 근거로는 ‘구신의 딸이라고 생각하면 슬퍼졌다’는 대목이다. 가즈랑집 할머니로 말하자면 무녀로서 일정한 자기만의 기를 지닌 사람이다. 사람들은 그녀를 통해 명줄을 빌게 되고 병을 치환하기 위해 찾고는 한다. 그녀는 신의 딸로서 세계를 나름대로 해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또한 신과 인간을 중개하는 중개자로서 자기만의 일정한 힘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그런 할머니가 대상화되는 순간 세계에 아무런 힘도 행사하지 못하는 무력한 할머니, 평범한 할머니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래서 굿을 하기 위해 그 무슨 신비한 기운을 내뿜는 할머니가 아닌 그저 굿을 하기 위한 준비로서 온갖 음식을 만드는 할머니, 또 ‘살구벼락을 맞고 울다가 웃는 나를 보고/ 밑구멍에 털이 멫자나 났나 보자고’ 우스갯소리를 하는 다정다감한 할머니가 된다. 그렇게 평범하고 무력한 할머니에 지나지 않기에 그 할머니의 운명은 자연의 힘, 세상의 힘에 의해 곧 무너지게 되어 있다는, 아니 이미 무너져가고 있는 할머니를 생각하며 시적 화자는 슬퍼한 것이다.
이 시를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야기의 요소가 시를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또 그 이야기를 통해 시적 자아의 정서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전통 정서에의 향수와 재래의 생활에 대한 그리움이다.
전통성과 관련지어 다음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작품 안에서의 여백의 문제이다. 백석의 초기 시에서는 방언의 과다한 사용이 의미의 표면적인 이해를 가로막는다. 토속어와 고어의 적당한 사용은 읽는 이로 하여금 동질감을 유발시킨다. 어느 정도 일반화된 토속어, 설령 생소한 단어라 하더라도 읽고 보는 순간 읽는 이의 정서에 와 닿는 토속어는 우리 주위에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시의 흐름을 가로막는 생경한 토속어, 방언사전으로도 해독되지 않는 그런 말들은 시의 이해를 결정적으로 가로막는 흠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다.
백석의 초기 시에서 비교적 완성도가 높아 보이는 작품으로 <酒幕>이 있다. <酒幕>은 마치 생활을 그림 그리듯이 그려낸 작품이다.
호박잎에 싸오는 붕어곰은 언제나 맛있었다
부엌에는 빨갛게 질들은 八모알상이 그 상 우엔 새파란 싸리를
그린 눈알만한 盞이 뵈였다
아들아이는 범이라고 장고기를 잘 잡는 앞니가 뻐드러진 나와 동갑이었다
울파주 밖에는 장꾼들이 따러와서 엄지의 젖을 빠는 망아지도 있었다
- <酒幕> 전문
주막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은 흔히 시장기를 느낄 때 주막을 찾는다. 그런 사람들에게 오래오래 끓이고 있는 붕어 곰국 편의상 이동순 <백석시 낱말풀이>를 따랐다. 거기엔 ‘붕어곰’의 풀이로 <붕어를 오래 고아 끓인 곰국>이라고 쓰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글을 쓰기 전만 해도 아무런 의심도 없이 ‘붕어곰’을 붕어찜으로 해석했다. 호박잎에 싸오는 것이라면 붕어찜이 제격이니까 말이다.
은 후각을 간지럽히게 마련이다. 더구나 이 시에서의 시적 자아인 나이 어린 <나>에게 그 곰국은 주막에서 유일하게 얻어먹을 수 있는 음식일 터이다. 그런 <나>와 사람들에게 붕어 곰국의 맛이란 기막힌 맛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주막에 술이 빠지면 안될 일. 아니나다를까 부엌에는 ‘빨갛게 질들은 八모알상’과 그 상 위로 ‘새파란 싸리를 그린 눈알만한 盞’이 보인다. 나이 어린 시적 자아의 눈에 제 또래의 아이가 들어온다. ‘앞니가 뻐드러진’ 그 아이는 송사리를 잘 잡는다는 아이이다. 울타리 밖에는 제 어미의 젖을 빠는 망아지도 보인다.
주막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이 시의 미덕은 여백에 있다. 화자의 시선을 따라 물체를 이야기하되 그 외곽선만을 이야기할 뿐 많은 말들을 절제시키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동양화에서처럼 채색을 하지 않고도 선만으로 묘사대상의 형태의 특징을 뚜렷이 그려내고, 거기에 과감한 생략으로 여백을 만들어내며, 그 여백으로 다시 묘사대상의 울림을 배가시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시를 통해 전통성의 문제로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여백처리이다. 이 시에서 여백은 주막 풍경을 간결하고 함축성있게 보여주면서도 선명하고 두드러지게 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거기에 백석의 <酒幕>이 갖는 독특한 울림이 있는 것이다.
3.
지금까지 백석의 시에 나타난 전통성의 문제에 대해 알아보았다. 시조에서와 같이 3연시를 즐겨 사용하고 있다는 점, 마찬가지로 종장에서 화자 마음을 집약적으로 드러내 보인다는 점, 그리고 사설시조에서 즐겨 사용한 엮음 수법을 그대로 수용해서 쓰고 있다는 점, 또한 이야기의 요소를 시 안으로 끌어들인 점, 마지막으로 동양화에서처럼 여백의 미학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 등이었다. 거기에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일 것은 많은 부분 전통성에 기대고 있는 그가 왜 정작 그 본령이기도 할 정신의 문제를 간과했을까하는 의문이 생긴다는 점이다. 그는 사설시조에서 많은 것을 수용했지만 정작에 있어서 그 본령이라 할 현실풍자 정신은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첫댓글백석시전집을 구해 <남신의주 유동박시봉방>을 읽으며 울었고,<여우난골족> 에선 작중화자가 된것처럼 괜히 눈뜨는 아침이 설레이던 생각 했었지요 ...그의 연인 의 자전적 에세이<내사랑 백석>을 읽고 전 또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 ..여기선 시의 특성중 전통성에 대한 자세한 해설을 보면서
첫댓글 백석시전집을 구해 <남신의주 유동박시봉방>을 읽으며 울었고,<여우난골족> 에선 작중화자가 된것처럼 괜히 눈뜨는 아침이 설레이던 생각 했었지요 ...그의 연인 의 자전적 에세이<내사랑 백석>을 읽고 전 또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 ..여기선 시의 특성중 전통성에 대한 자세한 해설을 보면서
이제 다시 시집을 음미해 보아야겠습니다 ,,제게 보다 깊이있는 글에 다가설 수 있도록 해 주신데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리며 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