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추억이 되고
현란한 동영상보다 흑백사진이 어울리는 "간이역"
문화재 등록 예고 간이역 12
"11월은 가을일까요. 겨울일까요?”
가을도 겨울도 아닌 이름 잃은 계절이 11월이다. “생각좀 정리하겠다”며 혼자 훌쩍 떠나고 싶은 때이
기도 하다. 가을인지, 겨울인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11월의 날씨 마냥, 이룬 것 없어 뵈는 지난 한해 앞
에 부산해지는 마음 때문이다. 혹여 앞만보고 달려온 한해를 칭찬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고싶
은 지도 모르겠다.
이런 마음 헤아려 우리에게“지난 한해 잘 살아왔노라, 고민하는 일 모두 잘 될거라"며 다독여주는 공
간이 있다. 현란한 동영상 보다 흑백사진 한 장이 더 어울리는 곳. 간이역이다. |
| 기차레일 마냥 앞만보고 달려온 한해에 쉼표를 찍어 보자. 추억과 향수가 묻어 있는 간이역을 찾아. |
시골의 무명 간이역으로 유명(幽明)을 달리 할 뻔 했던 간이역들이 문화재로 되살아나게 됐다. 문화재
청이 전국의 간이역 12곳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 한 것. 간이역은 일제강점기·광복·한국전쟁 등 굵직
굵직한 사건들로 점철됐던 20세기의 역사이자 이 시기를 보냈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삶의 애환이 있는
곳이다.‘요즘사람’에겐 보기에 조금 허술하고, 번듯하지 않아도 푸근함이 느껴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문화재청은 “근대사의 상징물로 우리들의 추억과 향수가 묻어있는 간이역들이 하루가 다르게 사라지고
있어 시급히 보존할 필요성이 있다”고 간이역 문화재 등록 이유를 밝혔다.
<<화랑대역(경춘선)*일산역(경의선)>> |
| 서울에도 간이역이? 노을 진 화랑대역이 정겹다. | 우선, 서울시 노원구의 화랑대(경춘선)역이 첫 번
째다. 화랑대 역은 서울과 춘천을 오갈 때 잠시 멈
추는 역이다. "서울 시내에도 이런 예스러운 간이
역이 있구나"하는 낯섦이 감성의 수치를 높인다.
1939년에 개통된 경춘선상의 역사인 화랑대역은 예
전부터 ‘태릉갈비’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인근
지역이 음식으로 유명해 시민들이 많이 찾던 간이
역이다.
“이곳은 마치 유배지 같다. 그만큼 승객의 이용이
적고 시민들의 관심 밖에 있는 곳이다”. 화랑대역
장의 말은 역으로“북적이는 역을 기대한다”는 말
로 들린다.
아파트촌 한가운데 위치한 일산역도 간이역의 풍경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1933년 건립된 일산역
(경의선)은 원래 변두리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있었던 것으로 역내로 들어서면 시골스런 옛 모습 그
대로다.
주변의 아파트 촌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화랑대역: 태릉갈비, 영화·드라마 촬영지
<<팔당역(중앙선)*구둔역(중앙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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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가는 경춘가도와 함께 놓여진 팔당역 | 나물따러 가세~. 나물로 유명한 구둔역 | 초록색 지붕을 얹고 지붕색 그것과 엇비슷한 빛깔 페인트를 칠한 자그마한 팔당역(중앙선)은 귀엽기까
지 하다. 앞쪽으로는 춘천으로 가는 경춘가도가 보이고 한강 상류과 금단산이 인근에 있어 어디를 둘러
봐도 풍취가 좋다.
그림이 좋은 것으로 치자면 경기도 양평 구둔역(중앙선)도 빠지지 않는다.
1940년에 건립된 이곳은 기차 이외에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다 보니‘그나마’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
다. 나물이 유명해 최근까지도 ‘나물따러’ 오는 이들이 종종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영어체험마을로
도 알려지고 있다. 무뚝뚝해 보이는(?) 역무원들이 오래된 수목과 화단을 잘 가꿔둔 덕에 언제나 싱그
러운 휴식을 전한다. 많은 사람이 찾진 않아도 사람의 온기가 느껴진다.
♤팔당역: 팔당유원지, 검당산 /♤구둔역: 산나물이 유명하다. 철도공사 선정 ‘아름다운 역’
<<심천역(경부선)*도경리역(영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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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삼척, 삼척에서도 외진 곳에 있는 도경리역. 마치 미니 역사를 보는 듯 하다. |
충북 영동군의 심천역(경부선)은 국악체험지로 유명하다. 난계 박연 선생의 탄생지인 충북 영동군에 위
치한 심천역은 대합실, 사무실, 숙직실 순서로 덮고 있는 지붕이 정감어린 곳이다. 특히 뒷산의 아름대
운 배경과 함께 곧게 뻗은 철로 앞으로 시원한 금강이 흘러 눈이 시원해지는 만큼 마음까지 깨끗이 닦
이는 곳이다.
도경리역은 도착하기 전까진‘이런 곳에 역이 있을까’싶다. 그만큼 오지라는 얘기다.
강원도 삼척시에 남아 있는 도경리역은 1939년에 건립된 역사로 영동선에 남아있는 역사중 가장 오래된
역사다. 마치 ‘미니어처’ 역사를 보는 귀여운 이 건물은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전형적인 역의 모습을
띈다. 벽에 기대 만드는 부섭 지붕이 특징.
도경리역에 도착하면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철둑길’에 집중해 보자. 주변의 낮은 산능선, 계곡사이
로 계천이 흐르고 있어 양팔을 벌려 철둑길을 걷자면 마음에 그려온 간이역 딱 그모습이 연출된다.
♤심천역: 여름피서지, 양산팔경, 국악체험관광지
<<남평역(경전선)*율촌역(전라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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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전에 고추말리기가 한창인 남평역 | 독특한 지붕 모양을 가진 자그마한 율촌역 | 주변이 야산과 들판인 전남 나주시 남평역(경전선)은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간이역이다.
1930년에 건립되었다가 1950년 여순반란사건으로 소실돼 1956년에 신축된 것. 철로 건너편 짙푸른 야산
과 휘어져 내달리는 철로가 어우러져 시골역의 정겨움을 자아낸다.대합실에서 나와 승강장으로 가는 길
이 약간 휘어져있어 오솔길을 걷는 듯 한 느낌이 든다.
전라선인 여수의 율촌역(전라선)은 일제하에 지어진 일제강점기 건축물이다. 대합실과 역무실, 숙직실
을 포함한 건물 구성은 독특하게도 지붕에 고스란히 나타난다.하나의 건물이지만, 마치 지붕으로 그 기
능을 구분하는 마냥 복잡한 구조로 됐다. 특산물로 꼬막, 새조개가 유명하며 주변에 해수탕과 갯벌체험
장이 있다.
♤남평역: 영화·드라마 촬영지, 야산과 들판/ ♤율촌역: 갯벌체험장, 들녘
<<송정역(동해남부선)*동촌역(대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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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게 뻗은 레일과 하늘로 솟은 지붕이 묘한 대조를 이루는 동촌역 전경. | 부산시 해운대구에 위치한 동해
남부선상의 송정역은 1934년에
건립된 역사다. 대합실·사무실
·숙직실이 본래 모습을 잘 간
직하고 있는 편.
특히 정확한 용도를 알 순 없지
만(?) 한 켠에 세워진 창고역시
당시 유럽에서 유행했던 양식을
띠고 있어 건축사적 가치가 높
다. 주변에 높은 호텔 등의 건
물들이 솟은 가운데에도 나즈막
한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부산송정동장은 “도시에서 일
출을 볼 수 있는 곳" 이라며 송
정역자랑이 대단하다. 송정해수
욕장이 곁에 있어 찾는 이가 많
다. 1938년에 대구선에 편입된 동촌역은 건립 당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주변에 팔공산과 동
화사가 볼거리. 고운 레몬빛 하늘로 솟은 지붕의 독특한 디자인은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송정역: 송정해수욕장 / ♤동촌역: 팔공산, 동화사
<<가은역(가은선)*청소역(장항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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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도동호인들이 성지처럼 여기는 가은역 | 폐선된 가은역 철로에 하얀 눈이 앉았다. | ‘가은역’이라는 고운 이름을 가진 경북 문경의 이곳은 석탁산업과 함께 번성했던 간이역사로 해방 후
의 철도역사의 특성을 잘 나타낸다. 특히 북쪽으로는 산을 등지고 남쪽으로는 뻗어내린 선로와 주변 마
을의 풍경이 마음에 남는 곳이다.
철도동호인들이‘성지’처럼 여길 정도로 철도문화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곳. 기차가 교차되는 지점, 소
복이 내린 겨울 눈, 자그마한 역사가 마음 짠하게 다가오는 곳이다. 현재는 폐선된 이곳은 한때 번창했
던 석탄산업과 또 사양되어간 석탄산업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충남으로 이어지는 장항선이 휴식하는 청소역. 충남 보령의 청소역은 1961년 지어진 벽돌조
역사로 장항선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다. 한국전쟁 이후 근대한국형 간이역사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준다.
콤콤한 추억의 향을 품은 제 나이 46년 만큼의 역사를 그대로 끌어안고 있는 역이다. 역구내에서 가까
이 오서산이 보인다. 주변 마을이 크게 발전하지 않아 꼭 1970년대 마을로 시간 여행을 온 듯한 기분이
드는 곳이다.
♤가은역: 문경 석탁박물관, 지남~가은 구간의 레일바이크/ ♤청소역: 오서산, 70년대풍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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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이역은 인생의 쉼표와 동의어인가 보다 | 간이역.
긴 철로 위를 달려가는 가운데 기차가 잠시 정차하는 간이역은
인생의 쉼표, 여행과 다른 이름이 아닌 듯 싶다. “바쁜 인생
쉬어가라”고“찾아와 주어 고맙다”고 말하는 걸 보면 말이다.
빠르고 편하게 도착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지하철을 타거나 고
속철을 타면 될게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일상은 충분히 빠르다. 외려 조금 느리고
불편하더라도 타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는 기차를 타고 간이역
으로 떠나보자.‘덜컹 덜컹’.
문의: 문화재청 http://www.cha.go.kr
국가문화유산종합정보서비스 http://www.heritage.go.kr
사진: 문화재청 근대문화재과 사진 제공
글: 한국관광공사 국내온라인마케팅팀 김수진 기자(pen7355@naver.com) | 작성기준일 2006/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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