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모신 스승님
차를 마신다. 일상이 느긋해지면서 차 마시는 즐거움을 가진다. 그는 황차를 다린다. 녹차를 마셨더니 속이 불편하단다. 녹차는 몸을 차게 하는 성분이 강하다. 황차의 진한 갈색이 예쁘다. 향을 마신다. ‘음, 괜찮군.’ 따뜻한 차는 목 줄기를 넘어가면서 속을 따뜻하게 데워준다. ‘오늘이 스승의 날이래’ 지나가는 말투다. ‘당신이 내 스승이니 찬 한 잔 받으소.’ 넌지시 차를 권한다. 아침마다 부부가 차를 마시는 집도 드물지 않을까. 바쁜 농사철에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 믹스커피 한 잔으로 대체했었다.
이제 우리는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일상을 시작한다. 고사리도 남 내주고 임대했던 단감과수원도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5분의 1만 농사를 짓는다. 1차 방제도 끝냈고 2차 감꽃 솎기도 끝냈다. 그는 찻상을 치우고 먹을 간다. 먹 향이 참 좋다. 나는 엊그제 온 그린에세이를 편다. 얇고 작은 책자지만 한 페이지도 그냥 넘기지 못할 정도로 알찬 글들이 실려 있다. 둘만의 시간이 길어진다. 늙어 가면 친구도 멀다. 기운 있을 때 친구다. 부부가 친구다.
며칠 전 농협에서 지인을 만났다. 오랜만에 본 그는 ‘아직도 그 골짝에 사요? 이제 하산 할 때가 안 됐소?’ 묻는다. ‘아직 도를 덜 닦아 하산은 어려울 것 같은데요.’ 우스개로 응수했다. ‘동네에 내려오소. 그래야 병원 가기도 수월하고 사람도 만날 수 있지. 맨날 영감 얼굴만 보고 뭔 재미로 사요?’한다. ‘영감 얼굴 보는 재미로 산다우.’ 받아쳤지만 지인의 말을 곱씹게 된다. 병원 다니기 힘들어 읍내에 집을 얻어 이사를 하는 노부부도 있다.
이웃 동네에 마당발로 살던 아주머니가 있었다. 붓글씨, 춤, 사물놀이, 판소리 등, 두루 백군에 인력조달 직업도 가졌던 분이다. 아저씨는 농사꾼이었다. 아이들 출가시키고 번듯한 양옥집에 살던 그녀는 활수(滑手)였다. 거치적거릴 것 없는 그녀를 볼 때마다 참 대단한 아주머니라고 생각했다. 우리도 일꾼이 필요할 때는 신세를 지기도 했다. 성격도 강하고 시샘도 강한 남성기질을 가진 여장부라 생각했다. 그 아주머니가 칠십 중반인데 요양원에 가셨다. 아저씨가 갑자기 돌아가시자 그 충격으로 치매가 온 것이다.
그녀에게 남편은 의지처가 아니었을까. 아저씨는 아내를 방치하다시피 했지만 아내 사랑이 지극했단다. 부부는 타인이 알 수 없는 밀접한 관계다. 남 보기와 다르다는 뜻이다. ‘저 집은 날마다 콩 볶듯이 대가리 터지는 집이야. 날마다 저리 싸우면서 왜 같이 사는지 몰라. 젊어서부터 이혼하겠다고 노래를 불렀지. 노인이 되어도 그 버릇은 여전하잖아. 참 알다가도 모른 것이 부부야.’ 그런 부부가 더 오래 해로하고 산다. 아무 문제도 없어 보이는 조용한 집이 오히려 문제 발생의 빈도가 높다. 부부 중 한 쪽이 자살을 하거나 치매를 앓거나 이승을 떠나는 것을 봤다.
부부 싸움도 힘이 있어야 한다. 싸움을 한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뜻이 아닐까. 농부랑 마주앉아 서로를 스승으로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나는 찾아 뵐 스승도 귀하고 찾아올 제자도 없는 촌부인생이다. 여고시절 괴짜였던 한문 선생님이 떠오른다. 서예 반에 강제로 가입시켜 붓을 잡게 했던 선생님은 어디에 계실까. 살아계실까. 돌아가셨을까. 덕분에 여고시절 선생님을 추억하는 자리가 됐다. 특히 수업시간에 농땡이 쳤던 영어 선생님, 그림에 소질을 살리라고 아껴주셨던 미술 선생님, 붓글을 쓰게 했던 한문 선생님, 그때 만났던 선생님들 모두 상노인이거나 이승 하직 하셨겠지만 풋풋했던 그 시절이 그립다.
먹 향이 짙어진다. 심혈을 기울이는 농부의 모습이 삼매에 든 스님 같다. 농부 옆에 정성이 가득 담긴 화선지가 놓인다. 붓글 연습이다. 정성이 든 글씨는 잘 쓴 글이니 잘 못 쓴 글이니 따질 필요 없이 그대로 아름답다. 정성이 반타작이라 했던가. 나는 슬그머니 읽던 책을 접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나나니벌 한 마리가 창밖으로 나가고자 애쓴다. 사람 따라 실내로 들어왔겠지. 나나니벌을 수건으로 감싸 창을 열고 날려 보낸 후 컴퓨터와 논다.
그러나 마음이 자꾸 밖으로 달아난다. 기름을 바른 듯이 반짝거리는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이 유혹한다. 등 너머 둑길이 온통 양귀비 꽃밭이라는데. 농부도 화선지를 말아놓고 붓을 씻는다. ‘우리 양귀비 꽃길 가자.’며 승용차 열쇠를 챙겼다. 십리 둑길이 온통 양귀비꽃이다. 벚나무 길 아래 양귀비를 심었다. 안개꽃도 한 무리 만났다. 새하얀 안개꽃 무리에 핀 붉은 양귀비꽃 한 송이가 매혹적이다. 사진 몇 장 찍고 나루마을에서 생산했다는 메추리알과 파프리카도 샀다.
공짜 커피를 나누어주는 아주머니께 ‘고맙습니다. 복 받으세요.’ 했다가 진짜 복 받았다. 사흘을 공짜 커피와 물을 나누어주었지만 고맙다는 인사는 처음이라면서 아침에 만들어왔다는 호박떡과 물병을 준다. 말 한 마디 덕에 출출했던 뱃속이 든든해졌다. 돈 안 드는 보시는 자주 하자. 말 보시, 웃음 보시만 해도 복 받는다. 돌아오는 길, 잔치국수 한 그릇에도 사랑이 담겼다. 주부가 밥 차리기가 싫어지는 나이가 정해져 있을까. 나는 너무 빨리 마음이 늙어버린 것 같다. 두 집 살림 살면서 겉 늙어버린 탓이리. 나는 농부에게 꾸뻑 절을 하며
“스승님 모시고 양귀비 꽃길도 걷고 국수도 먹고 행복합니다.”
“오늘 그 마음 길이 간직하고 제발 달려들지나 마소.”
농부의 대답에 뼈가 있지만 스승의 날인데 뭐 어때. 다소곳하게 대답했다.
“넵 거수경례도 부칠까요?”
<2023. 그린에세이 5,6월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