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권에서 이화여대는 최고의 학맥이 되고 있다. 초대 여성부 장관에 이어 7·11 개각에서 드디어 첫 여성 총리까지 배출해냈다. 장상 이대 총장의 총리서리 임명은 한국 사회의 ‘이대 파워’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장총리서리는 아들의 국적문제와 학력 허위기재, 부동산 투기 의혹 등 벌써부터 자질시비에 휘말리고 있지만 ‘여성’ 총리에 대한 정치권의 시각은 대체로 호의적이다. 여성 총리라는 깜짝카드로 임기말을 돌파하려는 김대중 대통령의 실험이 암초에 부딪쳐 국회 인준이 부결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야당으로서도 여성계의 비판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 하에서 이대 출신 인사들의 정·관계 진출은 특히 두드러졌다. 이런 결과를 이끌어낸 데는 이화여전(이대 전신)을 다닌 이희호 여사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서울대 사대 출신인 이여사는 해방 전에 이화여전을 다녔기 때문에 이대 동문으로 정식등록돼 있다. 이번 장상 총리서리 지명에도 이여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8년 조각 때 신낙균(기독교학과) 문화관광부 장관, 윤후정(법학과)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입각하면서 ‘이대 파워’가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어 한명숙(불문과) 여성부 장관, 이승희(정외과) 청소년보호위원회 위원장이 관계에 진출했다. 여성부의 경우 하위직부터 장관에 이르기까지 상당수가 이대 출신들이다. 장상 총리서리 지명으로 이대 파워는 더 한층 위력적인 힘을 발휘하게 됐다.
‘이대 파워’는 정·관계에뿐만 미치는 것이 아니다. 이대 출신들은 법조·언론·문화예술·의료·사회운동 등 각 분야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절반을 이끄는 주도세력이 바로 이대 출신들이라는 말도 과언이 아니다. 이대는 ‘한국의 여성 최초’ 기록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첫 여성 총리(장상), 초대 여성부 장관(한명숙), 최초의 미국 유학생(하란사), 최초의 여성 박사(김활란), 최초의 여의사(박에스더), 첫번째 여성 변호사(이태영), 최초의 여성 언론사 사장(장명수) 등을 모두 이대 출신들이 기록하고 있다. 이대 출신 부인들의 ‘안방 파워’까지 합치면 한국 사회의 ‘이대 파워’는 절반의 세계를 훌쩍 넘어선다. 이희호 여사를 포함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의대 중퇴) 여사,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약학과) 여사 등 영부인들도 이대 출신이다.
한국 사회의 ‘이대 파워’를 보여주는 몇가지 지표가 있다. 1995년 이대 기획처 조사에 따르면 당시 대통령과 장관 부인들의 출신학교 중 80%가 이대 출신인 것으로 드러났다. 현대그룹의 며느리 중 70%가 이대 출신이고, 당시 50대 기업 중 39개 그룹의 가족에 1∼15명이 이대 출신이었다. 정부 수립 이후 여성장관 26명 가운데 9명(34.6%), 여성 국회의원 98명 중 22명(중복 포함, 22.4%)이 이대를 나왔다. 현직 국회의원으로는 민주당의 최영희(간호학과)·이미경(영문과) 의원, 한나라당의 이연숙(교육과) 의원 등이 있다. 이명희(미술학과) 신세계 백화점 상무, 신영자(가정학과) 롯데호텔 상무 등 재계에도 다수 포진해 있다. 전국 대학교수 중 이대 출신은 2천5백여명으로 전체 여교수의 30%를 차지한다.
이대 출신들의 활약이 두드러진 분야는 여성계와 언론·문화예술계다. 여성계에서는 윤정옥(영문과) 한국정신대문제협의회 회장, 이효재(영문과 중퇴) 전 여성단체연합 회장, 이계경(사회사업학과) 여성신문사 대표, 최영애(기독교학과) 한국성폭력상담소장, 장하진(사회학과) 여성개발원 원장, 곽배희(법학과)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등이 대표적 인사로 꼽힌다.
언론계 인사로는 한국일보 장명수(신방과) 사장을 비롯해 임영숙(신방과) 여기자협회 회장겸 대한매일 미디어연구소장, 방송인 전여옥(사회학과)씨, CNN 여성 외신지국장인 손지애(정외과)씨와 방송앵커 김은혜(신방과)·김주하(과교과)·최율미(철학과·이상 MBC)씨, 곽상은(영문과·SBS)씨, 황수경(불문과)·황정민(영문과·이상 KBS) 아나운서 등이 있다.
문화예술계에서 이대 출신의 활약은 이화여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인 모윤숙(문과·작고)씨, 수필가 전숙희(문과)씨 등이 초기의 대표적 인사들이다.
소설가로는 강신재(가사과·작고)·정연희(국문과)·강석경(조소과)·김향숙(화학과)·배수아(화학과)씨 등이 있고, 천양희(국문과)·김순이(국문과)씨 등의 시인, 방송작가 송지나(신방과)씨 등도 이대 출신이다. 오페라 단장으로 활약했던 고 김자경(음악과)씨, 화가 황종례(서양화과)·강애란(서양화과)씨 등 음악·미술계 인사와, 한국에 현대무용을 최초로 도입한 육완순(체육학과)씨 등 무용계 인사들도 적지 않다. 이대에서 30여년째 불문학을 강의하고 있는 김치수 교수는 “이대 출신들이 정·재계보다 문화예술계에 많이 진출한 이유는 그만큼 개인적인 재능이 뛰어나서다. 문화예술계는 남성 중심의 불합리한 시스템이 상대적으로 느슨한 분야다”라고 평가했다.
이대는 국내 최초의 여자대학으로 출발해 재학생 2만1천여명, 교직원 1천여명의 매머드급 대학으로 발전했다. 국내의 다른 대학들이 가끔 학내 비리나 총장 선출문제 등을 두고 내홍을 겪어온 것에 비해 이대는 김활란상 제정을 두고 논란을 빚었던 일을 제외하면 학내 분란이 거의 없었다. 대학교육협의회가 실시한 사립대학 평가에서도 최우수 대학으로 선정됐으며 교육부나 중앙일보 등의 대학 평가에서 매년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 장상 총리서리는 대학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끈 총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대 출신들이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해온 과정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져온 과정과 일치한다. 재학생인 이보영(법학과·4년)씨는 “우리 사회에 남녀차별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이대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여성운동계에 유독 이대 출신이 많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도 “이대 출신들의 활약이 두드러진 곳은 NGO다. 개인의 이익보다 여성의 권익 등 공동선의 문제에 더 천착해왔다”고 지적했다.
대학 입학 성적만으로 결정되는 현재의 대학 서열구조에서 이대는 최상위 대학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대학 졸업 이후 이대 출신들의 약진이 두드러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보영씨는 “1학년 때는 주눅들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적극적으로 변한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녀가 꼽는 이대의 최대 강점은 ‘자신감’을 충족시켜 준다는 점이다. 소설가 김향숙씨는 “남성이 다수인 공학에서는 여성이 움츠러들기 쉽다. 이화는 여성이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연습의 장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이대 출신인 청와대 이상덕 여성비서관도 “이대 출신들은 대단히 적극적이고 창의적이라는 평가를 많이 듣는다”고 말했다. 최근 이대에서 실시한 재학생 만족도 조사에서도 점차 학년이 올라갈수록 만족도가 높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한국의 열성적인 동문회 문화는 이대에도 예외가 아니다. 최초의 미국 유학생을 배출했던 탓인지 전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이대 네트워크’도 이대 출신들에겐 큰 자산이다. 이대 홍보사절인 투어리더로 외국을 방문했던 문정희(비서학과·1년)씨는 “이대 출신들은 전세계에 없는 곳이 없다”며 ‘이대 네트워크’의 힘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여성운동계나 언론계, 정·관계에서 이대 네트워크는 끈끈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대 출신 벤처기업인 모임인 ‘이화IT’의 대표 정혜숙(링크인터내셔널 대표)씨도 “남성들에 비해 여성들은 네트워크에서 뒤떨어져 있다. 자기 능력만으로 승부해왔던 것이다. 첫 모임에 2백50여명이 참석했다. 다른 모임에 비해 극성일 정도로 잘 되고 있다”고 말했다.
장상 총리서리의 지명에 대해 이대 출신들은 환호하고 있다. 정혜숙 대표는 “여성으로서 이만한 인물이 나왔다는 것은 모든 여성들에게 의식전환의 계기가 될 것”이라며 축하했다. 장총리서리가 지명되는 데는 남편의 후광이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 한때 “시집 잘 가려고 이대 다닌다”라는 말이 유행했지만 이제는 옛 말이 돼버린 듯하다. 이대 파워는 이제 더 이상 ‘안방 파워’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