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음악 올립니다..
최대호님 공연 한번 보지 못함이 송구합니다..--;;
밥하는,애키우는, 일하는 촌아짐이 한번 움직이가 왜 이렇게 힘드는지 ㅎㅎ
변명을 해봅니다
분명 성황리 공연 마쳤으리라 생각합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신록의 유월에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박창근/이 유
내게 목을 죄는 쇠사슬을 준다면 나는 순순히 응하진 않을거야 물어볼거야
내게 사랑을 원하고저 한다면 나는 쉽게 그것을 말하진 않을거야 침묵할거야 왜 내가 인정해야 하는지 왜 내가 상처받아야 하는지
그 대답을 들어야만 할까봐 그것이 내가 줄 최선의 것인지 나는 어떤 책임을 다 할 수 있는지 창문을 열어 새벽바람을 맡을까봐
꽃이 피는 이유를 꽃이 지는 이유를 함께사는 이유를 시기하는 이유를 기뻐하는 이유를 미움받는 이유를 죽어가는 이유를 기도하는 이유를 난 물어보고 싶어 살아가는 이유를 난 물어보고 싶어 함께 살아가는 이유를
박창근
93년 -2인조(박창근, 김관길) 듀엣 포크그룹 <우리여기에>창단. 영남권 지역 대학 초청공연 수회. 이후 맴버 보강 2명 더 가세<기존 맴버에 성악출신 윤종경 (보컬 겸 신서 연주)과 이남진(우리여기에 매니저 겸 가수)하여 대학교 초청공연, 기획공연 등의 공연활동 맴버 전원이 기타, 신디사이져, 하모니카등의 악기연주와 노래를 병행하는 4인조 보컬그룹으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옴..
95년 -박창근 군입대(병역거부의 용기가 없었슴)- 나머지 맴버들 고군분투하며 명맥유지 활동.
97년 -박창근 제대. 제대하고 얼마 되지 않아 창단 멤버 중 김관길 미국으로 유학길 떠남.(마이클잭슨사 음향팀에 소속) 또다시 고군분투하며 공연활동.. 곧 돌아오겠다던 김관길은 아예 미국에 눌러앉아 버렸고 그 후 얼마의 시간이 흘러 결국 우리여기에 팀 공식적 해체. 각자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나름의 생존의 길을 모색하게 됨. 이후 박창근 혼자 남아 ‘우리 여기에 박창근’이란 이름으로 솔로활동 시작하며 솔로로서의 적응의 단계를 밟고 있었슴. 아마도 박창근은 ‘우리여기에’라는 이름을 몹시도 사랑하고 그리워했을것으로 미루어 짐작. 현재 사단법인 민예총대구지회 음악분과에도 “우리여기에 박창근”이란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음.
98년 -박창근 가을 콘서트를 시작으로 초청공연 및 솔로 콘서트 활동 시작
99년 -드디어 학수고대하던 1집음반<안티 미토스> 발매됨. 꿈을 꾸듯.... 그러나 실수도 많고 아쉬움도 더 많아 나름대로 소중한 음반이 첫 출시. 수록곡 - 깃발그속엔, 이유, 내노래는, 짬뽕 등이 조금씩 알려짐. 그 외 다른 노래들도 눈여겨 살펴 보라.. 아! 얼마나 사랑스러운 노래들인가..! 노동문화정책정보센타를 중심으로 음반 배포하고(택배가 있었음에도 음반박스를 친구와 직접 서울로 짊어져 날랐음. 그후 미세하나마 반응이 오면서 노동문화박람회를 시작으로 음반 출시와 동시에 초청 공연활동이 시작됨. 음반 출시 바로 전에 때맞춰 <우리여기에>라는 이름은 “박창근 후원인들의 모임”으로 그 성격이 바뀜- 주변 지인들의 후원회 활동과 소식지 창간활동 등 분주히 일했음.. 몇달 간 짧은 활동을 끝으로 후원회는 박창근의 뜻에 활동 중단. 그러나 그때의 후원회원 인자들이 불알친구부터 다양하고 가까운 관계들이라 현재까지 정신적으로?! 열심히 후원을 해오고 있음..
2001년- 밴드 가객 결성- 서울서 첫 콘서트를 열고... (가객후원모임 자객의 도움으로 처음으로 빚지지 않은 콘서트 열게 됨). 가객음반 1집 출반. 이후 솔로활동 잠시 중단하고 <가객>으로 초청공연활동 수회.. 이내 더욱 심화된! 음악적 갈증과 팀원들 간의 견해차이로 많은 고민을 하게 된 후 가객 탈퇴를 결심. 공연 행위자가 재미없고 경직된 공연은 관객도 당연 재미없단 사실을 확연히 깨닫고 ... 가객 대구 콘서트를 끝으로 가객활동 중단(탈퇴). 다시 솔로활동에 매진!
2003년- 2집음반에 대한 고민고민고민... 어의없는 대구 방송국 티비시, 케이비에스, 엠비시 등과 라디오방송, 어떤잡지 매체등에 얼굴이 팔림. 이상한 한해였음. 때론 거리의..가수로, 또 때론 거리공연단 대표로... 텃밭가꾸는 초짜 농군으로, 봉사가수로.. 끝내 음악방송에서는 침묵했고 ㅎㅎ.. 아참.. 이제 <우리여기에>는 또한번 변화의 옷을 갈아입게 됨, 거리모금 공연단으로서 새로운 식구들과 함께 매주 1회씩 거리공연. 현재 거리공연단의 자세한 사항은 <우리여기에>홈을 참조하시라.. 박창근은 가수로서의 음악활동을 제외하고는 고정적인 유일한 행위가 이것임. 6섯번째 정기콘서트-나그대와 함께 살겠네- 대구서 있었으며. 공연단 <우리여기에>의 도움이 컸음.
2004년- 인천서 첫 공연. 박창근 후원을 위한 기획단 <더하고 나누기> 만들어짐. musso(박창근 홈지기 및 더하고 나누기 대표)를 중심으로 성환우(박창근 후원모임 장)등 주변지인의 활동 시작. 2집 음반의 구체적 상을 그림.
2005년- 드디어 2집 "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기회를..."이란 제목의 음반을 출시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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