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전투 - 임상의 무기, 침과 약.
전쟁에 있어서 무기는 필수적이다.
병법兵法에 능한 백전노장百戰老將이라도 수하에 실제 전투를 수행할 사병이 있어야 하고,
정찰을 통해 적의 상황을 파악해도 적을 제압할 적절한 무기가 있어야 한다.
칼 한 자루 없이 맨 손으로 전투를 치루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임상에서 말만 가지고 환자를 치료할 순 없다.
따라서 한의사는 한 손에 작전지도를 들고, 다른 손엔 무기, 즉 침과 약을 가지는
장교와 사병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침과 약 공부에만 매달리는 한의대생들에 대한 본인의 비판은
결코 침과 약에 대한 불필요성을 논한 것이 아니다.
이는 맹목적 무기사용으로 인해
전쟁영웅이 아닌 소모적인 전쟁기계로 전락해 버림을 경계한 것이니
궁극적으로 한의대생에겐 작전과 수색, 정찰 그리고 무기사용까지도
익혀야 하는 복합 훈련이 요구된다.
이러한 훈련이 바탕되어야 졸업 후 실제 전투에서 승률을 높일 수 있다.
머리 좋은 군인이라고 반드시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아니듯이
장학생이라 해서 꼭 나중에 훌륭한 한의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반복된 훈련만이 실전에서 그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 임상은 무기시장을 방불케 한다.
사암침, 동씨침, 체질침 등등의 여러 침법은 기본이고, 약침, 추나, 테이핑, 아로마...
나열하기 벅찰 정도의 무기, 즉 치료술이 우리 훈련병을 기다리니
K2 소총이나 수류탄 던지기 연습을 갓 마친 신출내기 군인들에겐 부담이다.
소총수로서 소총도 제대로 못 다루는 판에 박격포, 기관총 등이 눈앞에 즐비하니...
따라서 졸업하면 새로운 무기들을 익히느라 학창시절보다 더 바쁘다.
저녁 7시에 한의원 마치면 밤 11시까지 공부.
그 과정은 본인 또한 예외가 아니었는데
이에 관해 후배 훈련병들에게 꼭 하고픈 말이 있다.
주객전도主客顚倒.
주객主客의 전도顚倒를 막기 위해선 무엇이 主이고, 무엇이 客인지 알아야 한다.
즉 소총수로서 무엇이 주무기이고, 무엇이 보조무기인지를 알아야 한다.
레이저, 미사일 등 첨단무기가 아무리 우수해도
적의 고지를 실제 점령하는 것은 소총수.
이러한 소총수에게 소총이 최고이듯이 우리에겐 침과 약이 주무기이다.
따라서 효과가 탁월한 치료술이라 할지라도 결코 침과 약을 대신할 수 없다.
그 치료술 대부분이 대증요법對症療法에 따른 표치表治만 하기에
치료 순간엔 마술처럼 깜쪽같아도 곧 재발하는 등 본치本治는 안되기 때문이다.
결국 마지막 남은 적, 하나 하나를 확인 사살할 수 있는 것은 소총뿐이다.
대체의학, 아니 보완의학.
외국에서 시작된 보조요법들이 한의학 이론의 틀로써 재가공 되어
현재 한의학계에서 붐을 일으키고 있다.
한 때 이에 관해 공부한 적이 있었던 사람으로서 그 효과는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조적 상황에서이다.
전통적 침과 약은 멀리한 채 보조요법에만 매달린다면...
군인 모두 땅개(육군)를 포기하고 날파리(공군)나 물개(해군)가 된다면
완전한 전투를 수행할 수 없다.
언젠가 한 선배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앞으론 한의학을 전통방식으로 하는 사람이 특색있게 되어서 인기를 끌거야”
씁쓸한 현실을 직시하신 셈이다.
그렇다고 본인이 현존하는 치료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치료술의 다양화, 무기의 첨단화는 오히려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한의학의 테두리 안에서 인정받으려면 기본부터 잡혀야 한다.
진단이나 치료술 모두 전통적 기본이 선 상태,
사진四診과 침鍼, 약藥에 주관이 생긴 상황에서 그것들이 다루어져야 한다.
기본이 바로 선 한의학.
전통이 존중되는 가운데 진단기나 치료기 등이 쓰여져야 하니
이해하기 어렵고, 습득하기 힘들다 해서 전통을 버리고,
쉬운 길을 택한다면 한의학은 단지 대체의학, 보완의학으로 전락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