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배앓이를 많이 하던 시절이 있었다.
자나깨나 배가 고프고,
양껏 먹었다 싶어도 돌아서면 허기가 밀려오던 시절-
그런가하면 먹은 게 없는데도 언제나 살살 아프던 아랫배 때문에
할머니 약손이 쉴 틈이 없었던 시절...
아이들 얼굴이 하나둘 개나리처럼 노랗게 뜰 때가 되면,
선생님은 커다란 흰봉투를 들고 교실로 들어오셨다.
입학식날 앞가슴에 달아놓은 손수건에 코 한번 제대로 닦지 못한
어리숙한 일학년들에게 닥친 채변검사...
호기심으로 들뜬 우리는 선생님이 나눠주신
약봉지같은 하얀봉투 속에서
반질반질한 비닐봉투를 꺼내다 손가락으로 살살 문질러보며,
묘한 쑥쓰러움에 얼굴을 붉히곤 했었다.
토요일 오후에 받아간 채변봉투를
월요일 아침에 제대로 가져오는 녀석은
한 반에 반도 채 되지 않았던 것 같다.
하루 세끼 먹기도 어렵던 시절이라
뒷간 가는 일이 사흘건너 한번이면 많을 정도였고,
무엇보다 멍석 깔아놓으면 잘하던 것도 안 되는 판이라
공책 한 장 찢어들고 뒷간에 아무리 오래도록 앉아있어도
발만 저릴 뿐 기별이 찾아오지 않기 일쑤였다.
그래도 숙제나 준비물에 연연하던 녀석들은
막판에 화장실 바닥에 코를 처박고 주인을 알수 없는 것이라도
수거해 오는 정성을 보였던 것 같다.
반대로 토요일 오후에 방안에 던져놓은 책가방을
월요일 아침에 그대로 가져온 녀석들은
교실에 당도하고 나서야
교실안을 채우는 묘하게 불쾌한 냄새에
그제서야 궁지에 몰린 범죄자처럼 낙담한 얼굴로
채변봉투를 꺼내들곤 했다.
좀 나눠달라며, 떼를 쓰던 녀석들도 있었고
후다닥 공중변소로 달려가던 녀석들도 있었다.
그런 소동이 벌어지는 동안
교실은 조금씩 냄새에 질식되어 갔고,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채변봉투를 모두 수거해 가신 뒤에야
냄새는 도망칠 곳들을 찾아 빠져 나갔던 것 같다.
채변검사 뒤에는 언제나 부끄러운 결과의 날이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이 이름을 부르면 앞으로 나가서
선생님이 보는 앞에서 구충제를 한웅큼씩 삼켜먹어야 했던
녀석들은,
한동안 아이들의 놀림과 따돌림 역시 감당해야 했었다.
이제, 구충제를 챙겨 먹어라 잔소리 하는 사람이 없는 탓일까...
지나간 시절들만 떠올려도, 마치 배앓이 할 때처럼
몸 속 어딘가가... 슬슬 아파오곤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