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교육혁명'이 일어나고 있다고?- 안찬수 시인 글 퍼옴

[깍두기]

‘교육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고?


안찬수 / 시인,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 사무처장

교육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고?
며칠 전 신문을 보다가 눈에 띄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교육 관계자뿐만 아니라, 자녀를 키우고 있는 대한민국 학부모님들이라면 관심을 기울일 만한 기사였습니다. 아니 조금 과장하자면, 갖가지 지혜를 짜내어 대안적 교육 모델을 추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전 세계 교육계가 주목할 만한 기사였습니다. 한국에서, 그것도 한 도시의 교육청이 주도하여 ‘교육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였으니까 말입니다. ‘참교육’을 주창하던 이들도 ‘교육 혁명’을 쉽사리 입에 올리지는 못했습니다. 언감생심 기껏해야 ‘교육 개혁’을 말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한국에서도 혁명이, 그것도 교육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기사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부산 반송중 3학년 조철민군은 3일 시교육청 지정 권장도서인 "노인과 바다"를 읽었다. 조군은 부산시내 모든 학교가 활용하고 있는 독서교육지원시스템 홈페이지(www.k-cbrt.or.kr)에 접속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바다가 작품의 내용으로 보아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답: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 등 "노인과 바다"와 관련된 10개의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조군은 이 가운데 8문제를 맞혔다. 6개 이상을 맞히면 독후감을 올릴 수 있도록 한 규정에 따라 홈페이지에 독후감을 남겼고, 인증쿠폰을 받았다. 이번 학기 들어 7권의 책을 읽은 조군은 28일까지 한 권을 더 읽고 쿠폰을 받으면 국어 수행평가(100점 중 20점)에서 만점을 받게 된다. (중앙일보 2005년 6월 13일자, 김남중 기자, ‘부산발 교육 혁명-우수 교사 릴레이 공개수업’ 중에서)
다시 내용을 정리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겠지만, 그래도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바라마지 않는 ‘교육 혁명’ 아닙니까.
자, 한 학생이 있습니다. ①고전적 반열에 오른 작품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노인과 바다"를 읽습니다.(독서) ②그리고 컴퓨터를 켜고 ‘독서교육지원시스템’이라는 홈페이지를 엽니다. 거기엔 문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6개 이상을 맞혀야 독후감을 홈페이지에 남길 수 있습니다.(문제풀이) ③학생은 독후감을 올립니다.(독후활동) ④그리고 그 독후감으로 인증쿠폰을 받습니다. (인증) ⑤그 인증쿠폰은 수행평가에 반영됩니다. (평가 반영)부산시 교육청이 이런 ‘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2004년 3월이었습니다. 부산시 교육청의 자랑거리는 “이 제도를 도입한 이후 초, 중, 고 학생들의 독서량이 비약적으로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기사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올해 초 1인당 연평균 대출 도서수를 조사한 결과 부산 학생들은 전국 평균치의 세 배인 연간 9.1권에 달해 전국 1위를 차지했다. 이는 1.3권에 그친 서울학생들의 7배에 해당한다.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최근 ‘2008학년도 이후 새 대입제도에서 대학들이 이런 방식을 중요한 전형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이 시스템을 제도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교육정책의 수장인 부총리의 말씀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지난 2004년 10월에 교육인적자원부는 ‘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한 2008학년도 이후 대입제도 개선안’을 내놓았고, 이 개선안 속에는 2007년 고교 신입생부터 교과별 독서활동을 학생부에 기록하고 이를 위해 2006년까지는 독서매뉴얼을 개발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질문과 의문을 던지지 말라고?
문제를 조금 세밀하게, 그런 뒤에 좀더 거시적으로 따져보기로 하죠.
우선 ‘교육 혁명’이라는 단어. 기자 분께서 사람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 ‘교육 혁명’이라는 단어를 쓴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 그런 것이라면 너무 선정적인 제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앞에 인용한 기사가 전하고 있는 내용을 ‘교육 혁명’ 가운데 일부라고 말한다면, 인류사를 새롭게 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렇듯 혁명이 쉽다니! 이건 혁명도 아니고 뭐도 아닙니다. 궁여지책일 뿐입니다. 아니 우려할 만한 사태의 출발점일지도 모릅니다.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조철민 군은 왜 "노인과 바다"를 읽었던 것일까. 헤밍웨이의 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하기 위해서라고?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식의 대답은 우리의 교육 현실을, 우리 학생들이 처한 상황을 정말 너무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예단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조철민 군은, 국어 과목의 평가에서 100점 만점에 20점이나 차지하고 있는 수행평가를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에 "노인과 바다"를 읽었을 것입니다. 수행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책을 읽어야 하고, 또 인증쿠폰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인증쿠폰을 받기 위해서는 독후감을 써서 올려야 하고, 독후감을 쓰자면 10개의 문제 가운데 6개는 맞혀야 합니다.
어떤 문제냐고요?
‘이 작품에 등장하는 바다가 작품의 내용으로 보아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식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과연 "노인과 바다"에서 바다의 의미가 과연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일까? 상징이라는 것은 이렇게 단답형으로 답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아주 기초적인 문예이론의 상식조차 이런 단답형 문제는 무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감히 어떤 교사가 교육청에서 내놓은 문제에 이의를 제기하겠습니까? 아직까지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대한민국의 문학비평가들, 작가들, 교수님들도 아무런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데, 수행평가 20점이 아쉬운 학생의 입장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독서교육지원시스템은, 그리고 교육청은, 이런 따위의 질문과 의문을 던지는 이들에게는 결코 인증쿠폰은 선선히 내놓지 않기 때문에, 만약 심각하게 이런 따위의 질문을 던지면 ‘큰일 납니다’. 단적으로 말해 질문과 의문은 답이 아닙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고, 이 답은 찾아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수행평가 점수는 ‘날아가 버립니다.’
여기서 "노인과 바다"가 어떤 의미와 가치를 품고 있는 작품인지는 논의하지 말도록 합시다. 그러나 누구라도 컴퓨터를 켜고 검색 창에 ‘노인과 바다’를 치면 ‘똥침국어교실’(사이트를 만든 이는 목포홍일고등학교 국어교사 김광복 선생님이다)이라는 사이트를 금방 찾을 수 있습니다. 이름도 흥미로운 이 사이트는 "노인과 바다"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1952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얼핏 아무런 재미도 없는 황량하고 피폐한 노년의 세계를 그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작품이 지닌 상징성을 음미하면서 읽을 경우 많은 각성을 줄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노인이 어부 생활을 하는 무대인 바다는 인간의 삶이 이루어지는 현실을 상징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독서교육지원시스템’에서 요구하는 답은 이 사이트를 참조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똥침국어교실’에서 해석하는 ‘바다’의 상징성과 ‘독서교육지원시스템’이 요구하는 답 사이에는 천양지차가 있습니다.
똥침국어교실의 해석과 평가는 그 자체로써 정당합니다. ‘바다’가 지닌 많은 상징성 가운데 ‘인간의 삶이 이루어지는 현실을 상징할 수 있다’고 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독서교육지원시스템’은, 그리고 ‘교육청’은 상징한다고 하는 규정과 상징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세계가 다르다는 사실을 모른단 말입니까!
책을 읽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규정적인 사실을 확인하고 갖가지 정보와 지식을 얻기 위해서도 우리는 책을 읽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문학작품을 읽는 이유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문학은 그 자체로 숱한 ‘사실’ 뒤에 은폐되어 있거나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진실’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게끔 만드는 하나의 예술 형식입니다. 하나의 문학작품을 읽고 거기서 ‘사실’을 찾아낸다는 것은 결코 본질적일 수도 없으며 올바른 독법도 아닙니다. 그것은 방편일 뿐이며, 그것도 잘못된 방편일 뿐입니다. "노인과 바다"에서 ‘바다’가 상징하는 것이 무엇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가능해도,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조 군은 인증쿠폰과 수행평가의 점수를 얻기 위해서는 이 어리석음을 감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행한 일입니다.

목적은 간데없고, 수단만이 남는다면?
우리의 다음 질문은 이런 것입니다. 이런 어리석음과 불행이 하나의 자랑거리가 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가 만나 본 교육계 관계자 분들의 말씀에 따르면, “어떻게든 학생들에게 책을 많이 읽혀야겠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리고 ‘많이 읽혀야겠다’는 점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성과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에서 인용한 기사에서도 밝혔듯이, “이 제도를 도입한 이후 초, 중, 고 학생들의 독서량이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이 양이 아니라 질이며 내용입니다. 한 권의 책을 읽어도 생각하면서 읽는 것과, 그냥 읽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도 이런 식이라도 해서 책을 읽히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지난 3월 말 서울시 교육청이 펴낸 "초등학교 독서 지도 자료"와 "중등 독서교육 매뉴얼"을 펴낸 이후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 ‘어린이도서연구회’ ‘전국국어교사모임’ 등등이 연대한 ‘바람직한 독서문화를 위한 시민연대’ 는 성명서를 발표하고(2005년 4월 27일) “이 모든 시책들은 독서의 본질에 대한 무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독서 그 자체를 파행으로 치닫게 만들 위험이 다분히 존재한다”고 지적하고, “서울시 교육청이 기왕에 발표한 ‘독서지도자료’를 전면 철회하고, 독서에 관한 올바른 문화적 성찰에 바탕을 두고 바람직한 독서교육을 진지하게 모색해 줄 것을 새삼 촉구”한 바 있습니다. 문제로 지적한 것은 모두 다섯 가지였습니다. ①독서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는 것, ②교사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 ③출판문화의 건전한 발전을 왜곡한다는 것, ④학습도서와 권장도서의 선정 근거가 불투명하다는 것, ⑤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저해하는 것 등입니다.
여기서 무엇보다도 강조해야 할 것은 독서의 본질 훼손이라는 문제입니다. “독서는 모름지기 독자의 호기심으로부터 비롯되어야 하며, 그 호기심이 책 속에서 충족되는 즐거움과 깨달음을 얻는 것이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책을 읽도록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것임”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좀더 많은 양의 책을 읽혀야 한다는 입장과 책읽기의 즐거움을 깨닫도록 하라는 입장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점이 실상 독서교육의 여러 논란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시각 차이를 불러일으키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야기가 옆길로 빠지는 것 같지만, 한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해보겠습니다.
우주 뉴트리노 검출의 선구자적인 공로로 2002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일본인 과학자 코시바 마사토시가 쓴 책을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그는 도쿄대학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 어느 사립학교 중학생들에게 물리를 가르치면서, 물리라는 것이 독창적이며 재미있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하려고 시험에 아주 독특한 문제를 냈다는 에피소드입니다. 문제는 “이 세상에 마찰이라는 것이 없어진다면 어떻게 될지 답하라”는 것입니다. 코시바 선생의 정답은 무엇이냐 하면 ‘백지 답안’입니다. 마찰이 없으면 연필 촉이 미끄러져 종이에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지적을 합니다.
우리나라 아이들의 기초 과학 실력이 약하다거나, 젊은 세대들의 이공계 이탈 현상이 심각하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저는 ‘과학이 어려운 게 아니고, 과학 교육이 어려운 게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중학생은 수학이 좋기 때문에 수학을 가르쳐 주는 선생님을 좋아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수학 선생님에게 매력이 있기 때문에 수학이라고 하는 과목에 흥미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바로 초중학교 학생들인 것입니다. 아니, 고등학교 학생들도 마찬가지죠. 저도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일반에서 얘기되고 있는 이공계 기피 현상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이과 선생님들의 책임인 것입니다. 제가 선생님이라면, 우선 학생들과 하나가 되어 놀겠습니다. 놀면서 학생들의 흥미가 어디에 있는지를 신중하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시기는 중학생 때라고 여겨집니다. 이 때에 ‘과학 따위는 재미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평생 동안 과학에 등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중학생 시기야말로 과학은 스스로 실험을 해보고, 다양한 방법으로 생각을 해볼 수도 있는 재미있는 공부라는 것을 확실히 가르쳐야 할 때인 것입니다. (코시마 마사토시, "하면 된다", 생각의 나무, 2004, 60-61쪽, 강조는 인용자.)
코시바 선생의 지적을 따른다면, ‘독서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독서 교육이 어려운 것’입니다. 학생들이 어느 때부턴가 ‘독서 따위는 재미없다, 단지 수행평가 점수를 얻기 위해서는 인증쿠폰을 따내야 하고, 그러자면 이러저러한 것들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한다면, 코시바 선생의 말마따나 어쩌면 평생 동안 독서에 등을 돌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가능한 한 책을 많이 접하고, 읽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창의력과 사고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하자는 데 대해 이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책을 읽음으로써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성찰하고,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자는 것, 이것이 독서 교육이 지향하는 바일 것입니다. 왜냐면, 누구나 인정하고 있듯이 앞으로의 인류 역사에 필요한 인재란 결국 스스로 문제를 찾아내고 그 해결책을 창조적으로 모색하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다들 이 점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교육 시스템 속에 독서교육을 도입하자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어쩌다 보니까 목적과 목표보다는 수단과 방편만이 남을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무슨 ‘교육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가?
다시 앞의 기사로 돌아가 봅시다. 연일 ‘부산발 교육혁명’을 소개하는 가운데 일본에서 전해진 한 가지 소식이 덧붙여집니다. 그것은 일본의 도요타자동차 등 3개 기업이 2천억 원을 투입해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스파르타식 교육을 통해 엘리트를 양성하려고 가이요(海陽) 중등교육학교를 만든다는 소식입니다. 기존의 평준화 정책을 문제 삼고자 하던 이들에게는 가히 ‘얼씨구나’입니다. 보수적이라고 알려져 있는 중앙 일간지가 왜 그토록 ‘교육 혁명’을 주창했는지 조금 분명해지는 느낌입니다.
마침내 "중앙일보" 6월 14일자에는 “부산의 ‘교육혁명’과 일본의 ‘이튼스쿨’”이라는 사설이 등장합니다. 이 사설은 “일본의 세계적인 기업 도요타자동차가 영국의 이튼스쿨을 본떠 가이요 중등교육학교를 만들었다”고 먼저 운을 뗀 뒤에, “서울시교육청은 2008년 3월 서울 종로구에 국제고를, 구로구에 과학고를 각각 설립한다. 부산시교육청은 무학년 수준별 보충수업과 학습 부진아를 위한 대학생 교사제, 고교-대학 연계 학점 인정 프로그램, 제2외국어 대학 위탁 교육, 독서교육 지원 시스템을 실시 중이다.”라고 연재 시리즈 기사로 내보냈던 ‘교육 혁명’을 간략하게 요약합니다. 그러고 나서 “평준화 교육으로는 국가의 미래가 없다는 절박감 아래 민간과 교육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여 ‘교육혁명’을 추진하고 있다. 중앙정부의 획일적인 평등주의 교육정책을 고수해서는 세계화 시대에 국가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라고 거의 단정적인 목소리로 선언합니다. 이 사설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평준화 체제를 고집하는 현 정부 하에서 교육의 변신을 기대하기 힘들다. 서울시· 부산시교육청처럼 다른 시· 도 교육청이 모두 나서 교육자치권을 행사하는 것이 지름길”이라는 것입니다. 현 정부가 분권화의 방향 속에서 교육 자치를 확대해나가고 있지만, 이런 결론은 마치 각 시도 교육청의 총궐기를 주장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또한 이 사설의 마지막 문장인 “평등을 외치는 전교조와 시민단체를 의식할 필요가 없다”는 문장은 거의 외침처럼 들립니다.
"중앙일보"뿐만이 아니라, "조선일보" "동아일보" "파이낸셜뉴스" "매일경제" "대전일보" 등등이 ‘한국판 이튼스쿨’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담긴 사설이나 기자의 칼럼을 쏟아내었습니다. '대전일보"의 한 논설위원은 “평준화 교육으로는 나라의 미래가 없다며 일본기업들이 들고 일어났다”는 표현까지 쓰고 있습니다. 덧붙여 “김진표 교육부총리가 ‘부산의 교육에서 희망을 본다’고 했다”면서 “지난 연초 ‘3일 장관’ 파동 끝에 경제전문가가 교육부총리로 나서면서 내심 희망을 가졌던 적이 있다. 시장경제의 기본원리인 경쟁이 교육계에도 이식될 것으로 개대했기 때문” 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이런 신문들이 이야기하는 ‘교육 혁명’이란 ‘시장경제의 기본원리인 경쟁이 교육계에도 이식’ 되는 ‘혁명’인 것입니다.
독서 교육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다가, 무슨 ‘교육 혁명’ ‘엘리트 교육’ ‘평준화 교육 논란’인가 하실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독서 교육과 이러한 문제들은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입니다. 우리 사회가 형식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이루었다고는 하지만,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진단도 나오고 있는 현실입니다.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책을 읽고 성찰하고, 비판하고, 반성할 줄 아는, 그리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自治, self-rule) 시민들이 없으면 안 됩니다.
자라나는 세대의 독서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독서 교육을 진정한 교육 혁명의 중심 의제로 삼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독서 교육과 관련하여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내기 어렵습니다.
끝으로, 한 가지만 더 언급하고자 합니다. 지금 많은 학교에서, 그리고 많은 학교도서관에서 학생들이 읽은 책들의 독서카드를 쓰고 그 독서카드를 선생님들께서 검사하는 것으로 일종의 ‘독서인증’을 실시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엄격하게 말해서 지적 자유 침해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인권 침해입니다. ‘지적 자유’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그리 깊지 않다는 현실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독서카드 검사가 일종의 검열 행위라는 것을 선생님들께서는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책을 읽는 사람이 무엇을 읽고 있는가 하는 것은 그 사람의 프라이버시에 속하는 일입니다. 또한 선생님들께서 추천하는 도서 목록이라는 것도 항상 선정(selection)과 검열(censorship) 사이에 놓여 있다는 점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좀더 자세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라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