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선생님.저희 남편이 어떨지 좀 봐주세요." 제게 손님으로 온 분의 낯이 익었습니다. 간밤 꿈이 예사롭지가 않더니 확실히 낯이 익은 분이였습니다. "저~보살님! 혹시 보살님 고향이 안면도 승언리라는곳 아니세요?" 깜짝 놀라며 손님이 말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아세요? 고향도 보이나요?" "허허.아니고요.보살님이 익어서요. 어디선가 뵌것 같은데 그게 안면도 승언리에서 뵌것 같아서요" "네.제 친정이 승언리지유" "저 보살님 혹시 승언리에서 절을 운영하시던 이삼복씨 라고 이북 함경도가 고향이시고, '함흥사'라는 절을 하시던 분인데 혹시 그분 소식 아시나요?" "네. 하무도 없이 혼자 사시다 돌아 가셨지요.그분은 돌아가시고 빈 절터만 남았을걸요. 전 그렇게 알고 있는데요" 돌아가셨단 말이 귓전에서 빙빙 맴돌았습니다.
아~어머니! 아무리 피한방울 안섞인 남이라지만, 모자의 예를 갖추어 삼년이란 세월을 한솥밥을 먹으며 부모 자식지간으로 살았는데 내가 정말 나쁜 놈이구나. 어쩌면 그리도 까맣게 그분을 잊고 살았단 말인가? 아무리 박교장 아들이 나한테 못되게 굴었다고 하더라도 엄마마저 그리 잊고 살 수가 있었나? 그분이 나를 얼마나 아껴 주셨는데.... 저는 가슴이 미어지는것 같았습니다. 도저히 진정이 안되서 상담을 할 수가 없을것 같았습니다. 아무말도 않고, 살짝 나와서 사무실로 전화를 했습니다. "나 오늘 일은 더이상 안할꺼니까, 손님들께 양해를 구하고 일 마무리 짓고 퇴근들해"
저는 저 스스로에게 혐오가 느껴질만큼 자책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씻은듯이 잊었었을까?' 저 자신에게 화가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수양엄마의 만류를 뿌리치고 나와서 이십여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저는 눈코 뜰새없이 바빴고 제대로 쉬어 보지도 못 하고 앞만 보며 살았습니다. 그렇게 바쁘게 살면서 수양엄마를 까맣게 잊었던 겁니다. '돌아가셨다면 무덤이라도 있지 않겠는가?' '내가 가서 잔이라도 붇고 와야 오늘밤에 잠을 잘것 같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더이상 지체 할 수가 없었습니다.
"문환아. 너 나랑 안면도 좀 다녀와야겠다.어서 나와라" 사촌동생을 불렀습니다. 그길로 안면도를 향해 길을 떠나는 제심경은 착찹하기만 했습니다. '친엄마라 할지라도 그리 살갑게는 못해주실텐데,박교장 아들의 텃세를 못이기고 입은채로 떠난 나를 얼마나 그리워 하셨을까 사람이 드는건 몰라도 나는건 안다는데, 그동안 그렇게 잊다니...내가 나쁜놈이다.그러면서도 잘살길 바라고 잘되길 바라다니....!' 가슴속에 소용돌이 치는 자괴감에 휘감겨 빙글빙글 마음이 돌고 있었습니다."빨리 좀 가자" 여간해선 빨리 가라고 재촉하는 법이 없는 제가 마음이 급해져 길을 재촉 했습니다. 어느덧 안면도에 도착 했습니다. 이십몇년 만에 와보는 안면도는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물어물어 산소를 수소문 해보니, 다행히도 수양엄마는 생존해 계셨습니다.
절은 허물어져 페허가 되었고 그 근처에 초라한 움막같은 집에서 아무도 손보지 않은 마당에는 풀이 허리까지 차오르게 자라나고 귀신이 나올것 처럼 괴괴한 정적마져 감도는 집에, 수양엄마는 수백년 동안 그자리를 지키고 누워있던 미이라처럼 꼼짝도 안하고 누워 계셨습니다. "엄마.저예요. 환희예요." "어~누구시유? 어떻게 오셨나? 뭐 누구라고?" 귀도 어두우신지 잘 못들으시는것 같았습니다. "환희요.저왔어요.엄마" "윤도 왔냐? 내새끼 윤도가 왔구나" 엄마와 저는 붙들고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서로 남남끼리 만나서 수양아들이라고, 도리도 다하지 못한 죄스러움이 제 눈물보를 터트려 놓았습니다."윤도야 내가 니생각을 얼마나 했는줄 아냐? "모든 기능이 작동을 멈추어 마치 화석처럼 굳어진, 수양엄마의 몸과 마음을 비집고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내렸습니다.그동안 엄마는 모든걸 놓아 버린채 그저 죽을날만 기다리고 계신것 같아 보였습니다. "엄마.절받으세유.못난 아들 요서 하시고요" "됐다 절은 무슨 괜챦다 너만 건강하면 됐다" 오랫만에 밀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고 그날은 낫으로 마당에 멋대로 자라난 풀을 베며 또 울었습니다.
주말이 되자 엄마를 좀더 편히 모실 요량으로 아예 맘을 먹고 안면도로 내려 갔습니다. 가서 우선 보일러 부터 놓아 드렸습니다. 거동이 어려우신 노인이 군불때는 부엌에서 불을 때는게 고생스러우실까봐, 그게 안타까와서 뜨거운물도 나오고 고생스럽지도 않게 보일러를 놔드리는게 급선무인것 같아서 그리 해드리니 수양엄마는 몹씨도 기뻐하시며 조금씩 활력을 되찾아 가셨습니다. 주말이면 거르지 않고 거의 매주 찾아가서 아쉬운것들을 하나씩 해결해 드리고, 입에 맞으실 만한 것들을 준비해다 드렸습니다. 그래야만 제마음이 편할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수양엄마께 찾아갔더니 어디 요양소로 조카가 모셔갔다고 해서 그곳으로 찾아가 보았습니다. "엄마 왜 여기로 오셨어요?" "응 내가 거동을 못하니까 이리로 데려왔구나" "엄마 저희집으로 가셔요" "그래 느이집이로 가자" "환희야.물좀 줘" 수양엄마를 한손으로 앉아서 물을 다섯숟가락 정도 입에 떠 넣어 드렸습니다. 물 다섯모금을 받아 잡숟더니 참 잘먹었다 그러시는 겁니다. 그리곤 늦었다며 어서 올라가라고 하셨습니다.가시자니까 다음에 간다시며 극구 거절을 하셨습니다. 아무래도 이게 마지막이지 싶어 발걸음이 안떨어졌으나 엄마는 어서가라 소리만 되풀이 하셨습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기분이 영 안좋았습니다. 오늘 뵈면 마지막 길이 될것만 같아서 기분이 안났지요. 단 한마디도 안하고 서울까지 왔는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제 수양엄마 이삼복여사가 운명하셨다는 전갈 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들이 떠넣어드린 물 다섯수저를 드시고 그분은 그렇게 가셨습니다.
장충동 제 사무실 제단 왼편 위패속에 수양엄마 이삼복님은 언제까지나, 이 아들을 지켜주고 계십니다.
첫댓글 스님 글을 읽다보니 저도 어머니 생각이 나서 눈물이 맺힙니다. 수양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다시 찾아가 뵐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셨네요. 앞으로도 어머니께서 법사님을 보살펴주실겁니다.
인연을 소중히 하시는 법사님의 마음에 수양어머님의 마지막 길을 지켜드릴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 천상에서 지켜보고 계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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