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달나무"
<강원 북부쪽에서>
한 많은 여인들의 절규를 듣는 것 같은 다듬이질에 쓰이던 다듬이 돌, 다듬이 방망이, 홍두깨, 빨래방망이나 디딜방아의 방아공이와 절구공이, 함지박 같은 목기류와 얼레빗, 나졸들의 육모방망이 등이 대부분 박달나무로 만들어졌다. 이와 같이 도깨비를 쫓아내는 상상의 방망이에서 홍두깨까지 단단하고 강한 나무의 대표가 바로 박달나무이다.
조선왕조실록 정조22년(1798) 11월30일조에 보면 김하련의 상소에 아뢰기를,<수차(水車)를 만드는 재목으로는 참나무와 박달나무만을 쓰는데 바닷가에 사는 백성들은 이를 마련할 길이 없습니다. 지금 자성·우예·여연·무창 등 사군에는 아름드리가 넘는 나무로서 수차 바퀴나 배의 돛대, 집의 대들보감 으로 쓰기에 충분한 좋은 재목이 산과 들에 가득 차 있습니다. 바닷가에 사는 백성으로서 그곳에 가서 수차와 배의 재목을 베어오기를 원하는 자에게는 공문을 내주어 각자 원하는 바에 따라 수차를 만들거나 배, 뗏목을 만들게 한 다음, 자성 부근에서부터 강물을 타고 내려오게 하면, 용천바다 어귀까지 3, 4일 정도면 도착하고, 용천서부터 경강(京江)이나 삼남 지방까지는 열흘을 넘지 않아서 도착할 수 있습니다.> 고 하여 단단한 나무의 대표이었음을 짐작케한다.
또 박달나무는 우리 나라의 어디에나 잘 자랐으므로 박달고개란 지명도 흔히 있다. 고려사에 보면 <고종 4년(1217) 가을 7월 경진일에 최원세, 김취려 등이 충주, 원주 사이로 거란군을 추격하다가 맥곡에서 교전하였으며 박달현(朴達峴)까지 추격하여 크게 쳐부수었다. 적들은 대관령을 넘어 도망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전국에 자라는 낙엽활엽수 교목으로 나무높이 30m, 지름 1m에 이른다. 어린 가지는 벚나무처럼 가로 피목이 있고 굵은 줄기는 큰 조각으로 벌어진다. 잎은 달걀모양으로 밑은 둥글고 끝은 뾰족하며 잔톱니가 있다. 잎 뒷면을 손으로 만지면 선점 때문에 약간 끈적끈적한 맛이 있다. 꽃은 암수 한 나무로 수상화서 이고 암꽃은 위로 서서 피며 수꽃은 내려 숙여서 5∼6월에 핀다. 열매는 작은 견과로서 타원형이고 위로 서서 익으며 날개가 없고 9월에 익는다. 목재는 연한 갈색으로 비중이 0.9전후가 되어 국산재 중 가장 단단한 나무의 하나이다.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항상 연구하시는 약산님에게 힘찬 박수를 보냅니다.
물박달은 더 표피가 많이 벗겨지지요
그렇지요. 물박달은 얇게 더 심하게 층층이 아마 제일 심하게 벗겨지는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