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가업승계
"경영노하우 전수, 수학공식 외우는 것과 달라"
김동섭 (주)컴윈스 대표이사
(주)컴윈스(
www.comwins.com)의 김동섭(66) 대표이사는 1976년도에 회사를 설립해 31년째 외길을 걸어오고 있는 기업인이다. 피와 땀으로 점철된 김 사장의 31년 세월은 컴윈스를 건실한 중견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시흥시 정왕동 시화공단에 위치한 컴윈스의 주요 생산 품목은 컴퓨터 어셈블리 시스템 완제품 조립과 컴퓨터 샤시 어셈블리 조립, 프레스 금형제작및정밀프레스가공등이다.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세월이 이렇게 흘렀네요. 가업승계가 목전에 다가올 정도로. 그래도 나 같은 경우는 행복한 경우지요. 8~9년 전부터 조금씩 준비를 해 왔으니까. 내가 죽고 없더라도 영속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어야지요.”
500여개의 회원사를 둔 한국금형공업협동조합의 이사장이기도 한 김 사장은 회갑을 맞으면서 가업승계를 본격적으로 준비해왔다. 가업승계의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1세대 창업주들의 돌연사나 안타까운 죽음으로 인해 회사가 문을 닫는 사례를 주변에서 적지 않게 보아왔기 때문이다.
컴윈스의 가업승계 대상자는 김 사장 슬하의 1남2녀 중 첫째이자 장남인 태용(37) 씨다. 99년 3월에 입사해 자재팀에서 평사원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이후 제조팀 대리, 기술팀장, 영업팀장 등 각 부서를 두루 거쳤다. 입사 9년차인 올해 초부터는 경영혁신본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몸으로 구르면서 배웠어요. 조직을 구축하고 프로세스를 만들고…. 열심히 경영수업을 받고 있지만 (CEO가 된다는 것이) 부담스러운 건 사실입니다.”소박하면서도 정리정돈 된 김 본부장의 말은‘준비된 CEO’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원칙을 지키자’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그의 두 어깨에는 회사를 한 단계 도약시켜야 한다는 의무감과 책임감이 얹혀 있었다.
김 본부장은“성장하지 못한다는 말은 수성(守成)하지 못한다는 말과 같다”며“수성은 창업보다 더 어려운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사장은 미국에서 공부(통신분야)해 전문가의 길을 가려고 하던 아들 태용 씨를 설득하는 데 2년의 세월을 보냈다. 지금은 가업승계가 계획대로 잘되고 있어 마음이든든하기만하다.
“5~6년 후 쯤에는 일선에서 물러나야 할 텐데…. 가업승계에 따르는 세금이 너무 많아 걱정입니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주변의 나이든 창업 1세대들의 공통된 고민입니다.”
김 사장은 오는 11월 20일 일본 금형공업회와 공동으로 서울 63빌딩에서 개최하는‘제5회 한일 금형포럼’의 주제를‘금형기업의 성공적인 2세 경영승계 방안’으로 잡을 정도로 가업승계에 관심이 많다. 그는 가업승계 중소기업에게 세금부담을 줄여준다는 것은 “특혜일 수가 없다”고 주장한다.‘ 세금 낼 돈으로 회사에 재투자하고 고용을 창출하면 그것이 진정한 국가발전에 기여하는길이라는이유에서다.
“중소기업의 노하우 전수는 수학공식처럼 외워서 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 동안 먼지가 쌓이듯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지요”라고 말하는 김 사장. 머지않아 가업을 자식에게 승계시켜야 할 그의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는 두 단어는‘상속세부담’과‘기업의 영속’이었다.
"부자간 존중 있어야 자연스런 승계 가능"
김유진 일신금속공업(주) 대표이사
일신금속공업ㄜ(
www.ismetal.co.kr) 김유진(44) 대표이사는 지난 2002년 8월 1일 대표이사 취임식을 가졌다. 당시 김 대표는 40년간 아버지 김근식(74) 회장이 운영하던 회사를 자신이 물려받는다는 생각에 기분이 한껏 들떴다. 자신이 지향하는 바대로 회사를 운영하면 회사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3개월이 지나자마자 깨져버렸다. 정상(대표이사)에 오르고 나니 내려갈 일뿐 이 자리를 굳게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닫기 시작했다.
일신금속공업은 동합금(銅合金)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로 지난 1963년 서울에서 일신경금속공업사로 시작, 무려 45년의 역사를 가진 장수 중소기업이다. 반세기에 이르는 역사가 말해주듯이 일신금속은 생산하는 동합금제품만 30여 가지가 될 정도로 이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다. 둘째 아들인 김 대표는 처음에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을 생각이 없었다.
대학에서 도시계획과를 전공한 그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도시계획을 담당하는 공무원이 되고자 했다.
“1988년이었을거예요. 아버지께서 ‘방학 때 놀면 뭐하니. 회사에 와서 일좀 거들어라’고 말씀하신 것이 회사에 몸을 담는 계기가 됐어요. 처음에 뭣도 모르고 제품 상담 전화를 받았는데 아무 말도 못하고 끊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때부터 전화 받는 일이 무서워 스스로 창고로 들어갔지요. 물건포장하는 일부터 제품 분류까지 1년 남짓 하다 보니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됐지요.”
김 대표는 그렇게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2년 후 영업관리부에 들어가 품질검수부를 거쳐 일해 온 게 14년이나 흘렀다.
“대표이사가 되고 나서는 원자재값이 2.5배 상승하는 등 경기가 매우 안좋아졌어요. 그래서 남들이 하지 않는 까다로운 제품에 승부수를 띄웠지요. 40년간 축적된 기술 노하우 및 재료관리기술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작업도 끝마쳤고요.”
김 대표에게는 뒤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존재가 있다. 바로 아버지 김 회장. 김 회장은 매일 아침 회사로 나와 아들 김 대표의 업무보고를 꼭 받는다. “‘이래 가지고 직원들 먹여 살리겠어?’하고 꾸지람을 들을 때가 있어요. 하지만 그 말씀에 뼈가 담겨져 있어요. 업무 보고 후에 다시 한 번 들여다 보면 아차~ 싶은 게 꼭 나오더라고요.”
김 회장의 슬하에는 3형제가 있는데 모두 김 대표와 엇비슷한 시기에 가업승계를 이어받았다. 김 대표의 큰 형인 김유훈(47) 씨는 지난 2001년 일신태광금속 대표이사로, 막내 동생인 김유영(42) 씨는 일신태광금속 중앙영업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가업승계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야해요. 동종업계에서 가업승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문 닫은 사례가 꽤되요. 아버지와 자식 간에 서로를 존중해주는 마음, 그게 우선돼야 후계승계가 제대로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도적 뒷받침도 물론 중요하지요. 이 두가지가 함께 맞아떨어져야 중소기업의 가업승계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거예요.”
김 대표는 지난 2005년 100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올해 말쯤에는 300만불 수출의 탑을 받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