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벌레가 배춧잎을 갉아먹고 있어요
배추 뽀얀 엉덩이를 얼마나 힘들게 기어올랐는지 몰라요
수없이 미끄러지고 엉덩방아는 또 얼마나 찧었는지
온몸에 멍이 들어 푸르뎅뎅한
배추벌레에게 배춧잎은 밥이 아닐지 몰라요
미장원에 파마하러 온 동네아줌마들처럼
배추밭에 줄지어 앉은 배추에게
볏짚으로 머리띠 묶어주는
우리 엄마 몰래
날개 만들어놓고 죽은 듯 숨을 고르는
배추벌레 한 마리
마침내 배춧잎 사이로 하늘이
뻥 뚫리고요 팔랑팔랑
배추흰나비 한 마리 날아오르네요
[신춘문예 심사평]동시 부문
문단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패기 있는 신인의 등장을 기대하며 본심에 오른 여덟 분의 작품을 꼼꼼히 읽었다.
그 중 김미숙의 `반딧불이’와 김광희의 `항아리’ `염불’과 김 륭의 `달려라 공중전화’ `배추벌레’와 최효순의 `그릇의 몫’이 비교적 눈에 띄었다.
거론된 작품마다 개성이 다르고 시를 빚어내는 솜씨도 독특했다. 그러나 `반딧불이’는 소재의 참신성과 형상화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항아리’ `염불’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동심의 망으로 걸러내는 장치의 부족이, 최효순의 `그릇의 몫’은 그런대로 동시의 요건을 충분히 갖춘 작품이었으나 나머지 작품이 이를 받쳐주지 못했다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했다.
마지막으로 끝까지 논의의 대상이 되었던 김 륭의 `달려라 공중전화’와 `배추벌레’는 동시가 갖추어야할 덕목인 응축과 운율을 무시한 채 지나치게 서술에 의존하고 있다는 단점이 지적되었다. 그러나 응모한 다섯 편의 작품 모두 시적 대상에 접근해가는 방식이 다른 응모자들에 비해 새롭고, 실험정신과 동화적 상상력이 돋보인다는 장점 또한 간과하기 어려웠다.
또한 간결미는 떨어지지만 이 분의 시도 속에 짜여져 있는 서사적 구조엔 식상한 사고를 뒤집어 반전의 묘미를 더하는데 있다. 배추벌레에게 배추는 단순히 먹잇감이 아니라 하늘로 도약하는 디딤돌인 셈이다. 바로 이러한 그만의 개성적인 목소리와 뛰어난 상상력 때문에 이 분의 시가 돋보인다.
두 심사위원은 오랜 숙고와 논의 끝에 탄탄한 역량과 작품마다 고른 수준을 보이고 있는 김 륭씨에게 가능성의 문을 열어 주기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축하를 보내며 대성하기를 빈다. / 권영상·민현숙
[신춘문예 당선소감]동시 부문
이젠 정말 절망할 일만 남은 것 같다. 그러니까 이젠 좀더 깊고 아프게 울어야겠다는 것이다. 삶은 대부분을 헛발질만 하고 살아온 것 같은 느낌이란 얼마나 편한가. 좀 상투적으로 말하자면 죽은 내가 살아있는 나를 살살 달래가며 데리고 산다는 느낌이 당선통보와 함께 뒤통수를 쳤다. 고백컨대 나는 아직도 시(詩)를 잘 모른다. 동시(童詩)는 더더욱 그렇다. 다만 삶도 죽음도 간섭할 수 없는 아주 지독한 슬픔의 일종이어서 평생 데리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다.
한참을 울었다. 외롭다는 말이 장수풍뎅이 뿔 같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웃었다. 겨울 하늘보다 꽁꽁 얼어붙은 가슴으로 웃는 일이란, 부끄러운 일이지만 고마운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온몸에 돋아난 뿔부터 삭혀야 했다.
동국대 김선학 교수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마산대 이성모 교수님, 시사랑경남지회 회원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족한 내게 지리산의 힘을 안겨주신 지리산시인들의 큰형님인 선덕형과 병우형께, 나의 보물 권갑점, 정경화 시인을 비롯한 함양문협회원들과 지리산문학회 회원들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사랑하는 부모님과 단미, 강원일보사와 심사위원님들께 큰절 올리며 평생 그 은혜 잊지 않고 살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당선자 프로필
김 륭(본명 김영건)
1960년, 경남 진주生
조선대학교 외대 중국어과 졸업
2005년 제1회 월하지역문학상 수상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시부문)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