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하나님을 떠올리면, 기독교의 하나님만을 떠올린다. 하지만 동양의 기나긴 역사 속에서도 분명한 하나님이 존재하니, 이는 바로 상제요, 기독교의 하나님과 다른 둘이 아니다. 이번에는 유교의 하나님을 3부에 걸쳐서 알아보고자 한다. |
주 자 어 류
* 그렇다면 주역의 ‘복괘에서 천지의 마음을 본다’, ‘바르고 위대하기 때문에 천지의 정감을 볼 수 있다’고 말한 것은 무엇인가? 그대가 말한 것은 단지 그것의 ‘마음이 없는 측면’만을 말한 것이다. 만약 정말로 마음이 없다면, 소가 말을 낳고 복숭아 나무에서 오얏꽃이 생길 것이다.
따라서 거기에는 오히려 본래부터 일정한 것이 있다. 이정 선생도 “주재하는 측면에서 말하면 상제님이 되고, 본성과 감정의 관점에서 말하면 건괘가 된다”고 말씀하셨으니, 거기에는 개념의 의미가 본래 정해져 있다. 마음은 곧 천지가 주재하는 곳이기 때문에 “천지는 만물을 낳는 것을 마음으로 삼는다”고 말한다.
(曰:「如此,則易所謂『復其見天地之心』,『正大而天地之情可見』,又如何?如公所說,祇說得他無心處爾。若果無心,則須牛生出馬,桃樹上發李花,他又?自定。程子曰:『以主宰謂之帝,以性情謂之乾。』他這名義自定,心便是他箇主宰處,所以謂天地以生物爲心。)
* 푸르디 푸른 것을 하늘이라 한다. 끊임없이 빙글빙글 돌면서 두루 유행하는 것이 곧 하늘이다. 지금 하늘 속에 어떤 사람이 있어서 죄악을 판결한다고 말할 수는 절대로 없다. 그렇다고 그것을 주관하는 것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이것을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심한) 다시 내가 경전 속의 天이라는 글자에 대하여 물었다. 선생께서 말씀하시길, 각자가 스스로 분명하게 알아야 하니, 푸르른 것을 말한 곳도 있고, 주재자를 말한 곳도 있으며, 단지 이치라고 풀이한 경우도 있다.)
(蒼蒼之謂天。運轉周流不已,便是那箇。而今說天有箇人在那裏批判罪惡,固不可;說道全無主之者,又不可。這裏要人見得。?。又?問經傳中「天」字。曰:「要人自看得分曉,也有說蒼蒼者,也有說主宰者,也有單訓理時。」)
문) 세상이 생긴지 아직 1만년이 되지 않았는데, 그 이전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답) 그 이전에도 틀림없이 지금처럼 분명하게 한 차례 개벽했을 것이다.
문) 천지도 무너질 수 있습니까? 답) 무너질 수 없다. 다만 사람들이 매우 도가 없어지면, 한꺼번에 쌓였다가 한 차례 뒤섞여서 사람과 외물이 모두 없어지고 다시 새롭게 생겨난다.
(又問:「天地會壞否?」曰:「不會壞。只是相將人無道極了,便一齊打合,混沌一番,人物都盡,又重新起。」)
다산 정약용의 여유당 전서
천지귀신이 빽빽한 나무처럼 늘어선 가운데에서 지극히 존대한 것은 상제님일 뿐이다, …하늘의 所以는 인간의 선악을 살피는 데 있으니 항상 人倫에 있다. 고로 인간의 所以는 修身하여 하늘을 섬기고 人倫을 힘씀에 있다.(여유당전서, 중용강의1-23, 중용자잠1-2)
눈을 들어 하늘을 본 즉 일월성신이 빽빽한 나무같이 거기에 있고 굽어 땅을 살펴 본 즉 초목과 금수가 질서정연히 여기에 있다. 어느 것 하나 사람을 비추고 따뜻하게 하고 봉양하고 섬기지 않는 바가 없으니 이 세상의 주인이 인간이 아니면 누구란 말인가?
하물며 초목금수에 있어서는 하늘이 화생할 적에 生生의 이치를 부여하여 種으로서 種을 전하고 각기 성과 명을 온전케 할 따름이나, 사람은 그러하지 아니하여, 천하만민은 각기 배태될 적에 이 영명함을 받아서 만류를 초월하여 만물을 향용한다. (여유당전서, 중용강의 1-2.)
하늘은 인간에 대하여 자주의 권능을 미리 부여해 주셨기 때문에 선하고자 하면 선을 실제로 행하고, 악하고자 하면 악을 실제로 행하게 하셨다. 이리저리 흔들려 안정되지 않을 때에도 그 권능은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이니 금수에게 定心이 있는 것과는 같지 않다. 그런 까닭에 선을 행함도 실은 자신의 功이요, 악을 행함도 실은 자신의 죄가 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心의 권능이다.(여유당전서, 맹자요의, 1-34)
대저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면 땅에 떨어지는 순간부터 관 뚜껑을 덮을 때까지 그가 더불어 함께 처하는 것은 사람일뿐이다.…하늘을 이고 땅을 디딘 자는 모두 나와 더불어 서로 須資交接하여서 서로 바르게 고쳐주며 살아가는 것이다.(여유당전서, 논어고금주, 7-43)
사람이 태어남에 욕망이 없을 수 없다. 그 욕망에 따라 그것을 채우려 한다면 방자하고 사악해지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백성이 감히 드러내 놓고 그것을 범하지 못함은 삼가고 경계하며 또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삼가고 경계하는가?
위로 관리가 있어 법을 집행하는 것이다.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위로 임금이 계시어 벌주고 죽일 수 있음이다. 만약 위로 군장이 없음을 안다면 누가 방자하고 사악한 짓을 하지 않을 것인가?
대저 어두운 방에서 삿된 생각 망녕된 생각으로 마음 속에서 간음하고 도적질하고서도 그 다음날 의관을 바로하고 단정히 앉아 용모를 가다듬으면 완전히 흠없는 군자라. 관장이 알 수 없고 군왕도 살필 수 없으니 죽을 때까지 거짓을 행하고도 당대의 명예를 잃지 않고 욕망에 따라 악을 짓고도 후세에 숭앙을 받는 자가 천하에 즐비하다.
… 군자가 어두운 방 가운데 있을 때도 두려워하여 감히 악을 행하지 못하는 것은 상제께서 조림하고 계심을 알기 때문이다. … 천명과 도와 교를 하나의 理라 귀속시킨다면, 리는 본래 지각도 없고 위용도 없는데 무엇을 삼가며 무엇을 두려워 할 것인가? …격물치지는 사물의 본말을 아는 것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요, 明善은 반드시 하늘을 알아야 한다. 하늘을 안 이후에야 선을 택할 수 있다. (여유당전서, 중용자잠)
저 푸르고 푸른 유형의 천은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집의 지붕에 불과한 것으로 그 品級은 土地水火와 동등한 것에 지나지 않으니 어찌 우리들의 性道의 근본이 될 수 있겠는가? …무릇 천하의 무형지물(태극)은 능히 주재할 수 없는 까닭에, 한 집안의 가장에 혼미하고 우매하며 지혜롭지 못하면 집안 만사가 다스려지지 않고, 한 현의 현관이 혼미하고 우매하며 지혜롭지 못하면 현 안의 만사가 다스려지지 않는 법이다. 하물며 빈 껍질 뿐인 태극과 리로써 천지만물의 주재 근본을 삼는다면 천지간의 일들이 다스려질 수 있겠는가? (여유당전서, 맹자요의, 2-3後.)
귀신은 본래 리가 아니다. 또 어찌 그것이 기이겠는가. 우리같은 사람에게는 기질이 있지만 귀신에게는 기질이 없다. (중용강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귀신은 형상이 없으므로 그의 자취가 은미하여 나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중용에서 은미라고 하는 말은 다 귀신의 체를 논한 것으로 미소하지만 사실상 뚜렷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대학강의)
귀신의 체에는 형질이 없다. 만물 중에서도 지극히 미소한 것으로서 귀신보다 더한 것은 없다. 그러나 천도는 자성이므로 그것이 공용과 조화로 나타날 적에는 지극히 뚜렷한 것이다. (중용자잠)
무형의 운행은 체의 대소와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귀신이란 것은 그 체가 공공연하여 겨자씨를 태산처럼 보는 듯하다. 그러나 본체의 영묘함은 마치 새가 허공을 날 듯이 암석도 뚫을 수 있으며, 마치 틈새를 달리는 말처럼 재빨리 하늘과 땅을 오르내릴 수 있다. (중용강의)
무릇 천하에 형체가 없는 물건으로 귀신보다 더한 것은 없다. 佛氏의 본연의 체라는 것도 이 귀신에서 벗어 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귀신에도 善神과 惡鬼가 있다. 주례의 일월성신, 사중, 사명, 사직, 오사의 신은 우리 인간을 도와주는 선신이 분명하다. …귀신은 본래 形軀가 없으나 이처럼 선악은 있는 것이다. (중용강의)
상제님의 체는 형과 질이 없으므로 귀신과 같은 덕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귀신’이라 이른 것이다. 감응하여 굽어보는 것으로 말한 까닭에 ‘귀신’이라 한 것이다. 요즈음 사람들은 하늘을 리로 생각하고 그로써 귀신을 공용으로 여기며, 조화의 자취로 여기기도 하고 二氣의 양능으로 여기기도 하니, 마음 속으로는 리를 안다고 하지만 아득하고 답답하여 거의 아무 지각도 없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어두운 방 속에서는 제 마음을 속여 기탄없이 함부로 하며, 평생토록 도를 배운다 하더라도 그와함께 요순의 경지에는 들어갈 수 없으니 이는 모두 귀신의 설이 분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용강의)
일음일양 하는 위에 분명히 이를 주재하는 상제님이 계시다. (여유당전서, 역학제언, 2. 2a. 一陰一陽之上, 明有造化之本)
상제님이란 누구신가? 이는 天地神人의 밖에서 그것들을 造化하고 宰制安養(주재하고 안정시키심)하시는 분이다. 상제를 하늘이라 이르는 것은 마치 국왕을 ‘나라’라 하는 것과 같다. 저 푸르고 푸른 형체를 갖춘 하늘을 가리켜 상제라 하는 것은 아니다. (여유당전서, 춘추고증, 4, 24a. 上帝者何, 是於天地神人之外, 造化天地神人萬物之類. 而宰制安養之者也.)
오직 밝고 밝은 상제님만은 형질이 없으면서도 날마다 곁에 계시면서 굽이보시고 천지를 통괄하시면서 만물의 부모가 되시며 백신의 조종이 되시니, 뚜렷하고 빛나시되 위에 와 계심이 분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이점에서 조심조심 뚜렷이 그분을 섬기시니 여기에 郊祭(하늘, 땅에 대한 제사)가 일어나게 된 이유가 있다.
이에 明神이 명을 받아 혹 일월성신풍운뇌우를 맡기도 하고 또는 토곡산천구능임택을 맡기도 하는 것이다. … 하늘의 明神이란 하늘과 땅을 맡아 밝게 퍼져있고 널리 나열되어 천명을 받들고 인사를 돕는 것이니 이 또한 만물이 한 근본임을 밝히는 증거와 경험이다. (춘추고정)
옛 사람들은 實心으로 하늘을 섬기고 실심으로 神을 섬겼다. 움직이거나 고요하거나 한 생각이 싹틀 때에는 혹 진실하기도 하고 혹 거짓되기도 하며 혹 착하기도 하고 혹 악하기도 하니, ‘나날이 이 곳을 살피고 계신다’라고 경계하여 말하였다. 그러므로 경계하고 삼가며, 두려워하고 홀로 있음을 삼가 功이 진실로 간절하고 독실하여 하늘의 덕에 통하였다. (여유당전서, 중용강의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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