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못버리는 등산화ㅡ
“신발장에 있는 이 낡은 신발 제발 갖다 버리세요. 신발장이 비좁은데 이왕 버릴 것 무엇때문에 신주모시듯 하는지”. 이 푸념의 소리는 신발장 한 구석에 있는 낡은 내 등산화를 두고 하는 아내의 말이다. 이 신발에 담긴 사연들을 일찍이 말해 주었지만, 한 두번도 아니고 신발장 청소할 때마다 하는 말이니 아내에게 등산화는 천덕꾸러기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신발은 우리집 신발장에서 주인 노릇을 톡톡히 한다. 신발장에 들어온 시간적인 순서, 생긴 모습, 차지하는 공간을 보더라도 대장감 노릇하는 데에는 아무 부족함이 없다. 거기에다 내게는 매우 소중한 것이기에 그야말로 신주모시듯 보관하고 있다.
사람마다 자기가 사용했던 물건들 중 특별히 마음이 가고 아끼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간직해 두고자 한다. 이것이 소장품이다. 소장품 중에는 값이 나가 재산 형성에 도움이 되는 것도 있지만 자신의 땀과 때가 저려있어 애착이 가는, 그래서 못버리고 오래 옆에 두고 세월을 함께 하는 값싼 것도 있는데 내 등산화는 후자이다. 그래서 어쩌면 버려도 아무도 쳐다보지도 않을 하찮은 것이다.
등산화는 이처럼 퇴장의 처지이지만 한때는 내 분신이었다. 산을 오르내리면서 같이 묵묵히 걸었고 바위에 앉아 숨을 같이 고르기도, 계곡 물길도 함께 건너뛰었다. 찬바람 맞으며 눈길을, 산새 소리를 뒤로 하고 걸었고 구름처럼 길게 뻗은 능선길을 총총걸음했던 절친이었다.
그런 등산화가 생명력을 다해 양쪽 신발 밑창이 터지고 발등을 감싸는 천도 낡아 신발 끈을 당기면 찢어질 상황이 되었다. 사람의 생로병사 관점에서 보면 마지막 단계이다. 등산화 생명력은 힘찬 발걸음을 받혀주는 것인데 그러지 못해도 그냥 두고 있다. 이 등산화를 한 번씩 볼때마다 작고하신 아버지의 검은색 구두가 생각난다.
내가 신발을 보면서 큰 눈물을, 그리고 쏟아지는 눈물을 억제하지 못하고 한껏 울었던 것은 내 나이 35살 때였다. 아버지가 저 세상으로 가신 것이다. 가족 중에 누가 죽음을 맞으면 유족들은 오열하고 제정신을 차린 후 신위를 모시고 상에다 과일, 쌀 등을 차려놓고 문상객을 받는다. 내 기억으로는 아버지의 죽음 의식도 그랬다. 아버지의 죽음은 가족들에게 청천벽력의 아픔과 충격이었지만 그때 어찌된 영문이었던지 나는 크게 울지도 눈물도 많이 나지 않았다.
육순을 한 해 앞 둔 나이에 운명하신 아버님의 생애가 너무 안타까운 탓에 그만 기가 막혀 오감이 마비되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누군가 상 아래 갖다 놓은 아버지의 검은 구두를 보는 순간, 쏟아져 나오는 울음과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왜 아버지의 낡은 구두가 울음과 눈물을 솟구치게 했을까? 아버지의 시신을 내가 쓰다듬고 신위를 모실 때 보다 왜 그 구두가 슬픔을 더해 주었을까?
생각해 보면, 자식으로서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손으로 받드는 것은 죽음 그 자체를 바라보고 느끼는 것이었지만 신발은 아버지의 한 인생의 행적이었고 모습이었기 때문이리라. 그 검은 구두를 신고 다녔을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지고 가셨던 아버지의 인생 길을 생각나게 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나 그 귀한 아버지의 검은 구두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없다.
내 낡은 등산화는 아버지의 구두처럼 내 마음을 동요시키지 못하지만 산속 추억의 편린들이 모인 보고라서 다른 몇 컬래의 등산화보다 애착이 간다.
땀과 때가 저린 등산화. 그래서 신장을 열때마다 그 등산화에 눈길이 가고 또 오래 머문다. 간혹 그 등산화를 만지면 마치
산에 같이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친구도 오랜 친구가 좋다던데 등산화도 그런 모양이다. 다른 등산화들은 모양도 디자인도 멋지지만 헌 등산화는 옛 친구처럼 담담하고 든든해서 좋다. 세월 가면 친구들도 제 갈길로 가는데 헌 등산화는 그대로 옆에 있어주어 조그만 행복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