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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8일. 토요일. 동인지 민들레를 15년간 펴낸 이흥렬 회장님께서 7년동안 이끌어 오시다가 김금철 회장님께 5년간 그 자리를 위임 하셨다가 2년전에 늦은 나이로 결혼을 하면서 다시 회장직을 위임하여 그동안 꿈꿔오던 장애인 문학의 활성화를 위해 부인 이순희 간사를 앞세워 부지런히 노력한 끝에, 비인가 단체에서 나라에서 인정하는 정식 인가 단체로 거듭나기 위해 부회장 김진균님의 조언과 법적 절차 단계를 밟으며 그 첫 발을 내딛기 위한 한국민들레장애인 문인협회 임시 총회를 안동의 주진교횟집에서 개최하게 되었다.
김진균(동목)님의 문자로 날짜는 알고 있었지만, 시간은 정해지지 않아서 느긋하게 자고나니 11시20분 쯤에 이순희(짚시여인) 간사님이 영덕이라면서 촬영팀과 함께 온다고 준비하라기에 급히 밥을 먹고 머리를 감고 옷을 갈아입고 문단속까지 준비 완료를 하고 나니 곧 도착하여서 나는 이순희간사님이 운전하는 차로 주진교 횟집으로 갔다. 약속시간 1시까지 김진균님도 권재영(재영)님과 김진년님을 데리고 도착하여서 우리는 방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서로 인사를 나눈뒤 임시총회의 회의를 시작했다. 그 과정을 포항케이블 방송에서 촬영하고, 이강현님이 다큐멘터리를 찍는다고 카메라를 들이댔지만, 의식하지 않고 김진균님이 마련한 기본 정관 초안을 이순희 간사님이 읽으며 제39조까지 작성된 한국민들레장애인문인협회 정관을 통과 시켰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2년 임기의 회장에는 이흥렬님이 부회장에는 김진균님, 그리고 감사에는 나 권오웅이 선출되었고, 참석한 한종혁님과 권재영,김진년님이 임원으로 앞으로 2년동안 열심히 활동할 것을 다짐했다.
그렇게 회의가 끝나고 향어회를 먹으며 소주잔을 돌렸는데, 권재영님과 김진년님이 꽤 주량이 많았다. 포항케이블방송의 촬영팀 중의 피디는 42살 이상호, 구성작가는 이유진, 카메라기자는 이름을 잊었다. 모두 11명이 오찬을 함께하며 이야기를 나눈 끝에 포항에서 온 이회장님과 촬영팀들은 돌아가고 안동팀들은 우리집으로 와서 숙표 커피를 마시며, 나는 동목과 바둑 한 판을 두었는데, 또 5집을 졌다. 연속으로 치면 4패다. 집당 50원짜리 내기바둑이었으니 250원을 줬다. 그리고는 간다는 걸 오늘은 붙잡지 않았다. 저녁에는 아버지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형님집으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그들도 아버지 생신에 참석하려면 형님집으로 가자고 말은 했으나, 그냥 그대로 보냈다.
그리고 잠시 금춘카페에 들렸다가 형님집으로 올라가니 8시였다. 이미 저녁 식사는 끝낸 상태였기에 술상을 차려 놓았지만, 대구 동생이 올때까지 형님과 이야기 하며 텔레비만 봤다. 중국 대륙에서 발견된 수천년전의 백인 미이라를 디엔에이 분석하여 그 종족을 연구하는 프로그램과 한글창제의 어려운 과정기의 대왕세종을 시청한 후, 안동에서 신토불이 숯불구이 식당을 경영하는 여동생 김실이와 매부가 생질 김경일을 데리고 왔기에 곧 술상을 펼쳐 아버지와 함께 81세 생신을 축하하는 건배를 들고 하루 지난 아버지 생신 잔치를 시작했다.
선천적 청각장애로 22세에 결혼하여 6남매를 낳았으나 42세때 아내(우리들의 어머니)와 이어서 두 딸(바로 위 누나와 막내)을 차례로 먼저 저승으로 보내고, 지금까지 재혼하지 않고 홀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오신 아버지다. 매사에 경우가 밝고 부지런 하시며 손재주가 있어 농촌에서 사용하는 연장과 생필품(가마니, 멍석,삼태기, 지게, 바가지, 노끈, 새끼, 왕골자리, 초가지붕.등등) 은 거의 손수 만들어 사용하였으며 눈썰미가 좋아 듣지 못하면서도 상대의 말뜻을 빨리 알아 차리며 그에 대응하기에 주변의 친구분들도 꽤나 많으시다. 그렇지만 놀이문화에서는 오로지 화투밖에 모르시고, 그것도 노름으로 즐기시니 명절때나 어버이날 생신등에 자녀들로 부터 용돈을 얻으시면 액수가 많든 적든 그날로 집을 나가서 그 돈을 거의 소진하고 마시니... 그것이 안타깝다.
지금 나라의 경제가 곤두박질 치고 서민들의 삶이 무척 어려워 졌음에도 아버지는 그것을 피부로 느끼시지 못한다. 그냥 그대로의 삶이시다. 한마디로 특별한 걱정이 없는 아버지 당신 자신이 주변에서는 최고시다.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시니 어쩌면 고맙기도 하다.
아무튼 술잔을 돌리다 보니 대구에서도 옷수선점을 경영하는 동생내외와 두 질녀가 왔다. 이미 마련된 술상에 대구 반고개 무침회를 곁들이니 술상이 휘청거렸다. 그래서 안동 김실네의 불고기와 등심은 꺼낼 여지도 없이 선물용 와인 하나로 술자리를 빛냈을 뿐이다. 아무튼 매부와 함께하는 3형제의 술자리에서 이야기의 화제는 여러갈래로 돌며 결국 밤을 지새웠고, 식당과 함께 40여두의 한우를 사육하는 매부의 바쁜 일상 때문에 날이 밝아서는 김실네가 떠나고 나도 밤새 마신 술로 정신이 몽롱하여 집으로 돌아와 잤다.
아버지, 81년을 사시며 슬하에 16명을 거느렸으니 뭐 특별히 부러울 것도 없으시겠다. 모두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사니까 말이다.
~~★ 이 상 ★~~ 카페지기의 일기였습니다.♣ 그러고보니 폰카 한장 못 찍은 것이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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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국민들레장애인문인협회 임시 총회를 주진교 횟집에서 여셨군요. 아무쪼록 협회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그리고 그날밤 아버지 81회 생신에 형제들이 모여 긴밤을 새셨군요. 돈독한 형제애를 느끼셨군요. 아버지 생신을 축하합니다.
예, 김선생님. 그저께는 그런일이 있었습니다. 아마 김선생님도 신임회장의 임명으로 명예회장님으로 추대될 것 같았습니다. 잠깐 김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으니까요. 그리고 우리 형제들이 모여 아버지 생신상을 차려드렸는데, 김선생님께서 축하해 주시니 너무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댓글에 공감하면서 아버님의 81회 생신을 다시한번 진심으로 축하드리면서 회협도 많은 발전있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이슬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