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화엄사, 쌍계사, 칠보사 답사하고 하동차생산지 방문하는날.
화엄사 쌍계사야 몇 번 가본 곳이니 별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해설자가 따르고 대부분이 불교 신자들인 사람들과 하는 여행이라서 색다른 멋이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있는 그런 여행이다.
문경에서 떠나는 본진의 여행팀을 화엄사에서 만나기로 한 관계로 이른 시간에 떠나기로 하고 같이 떠날 일행을 기다리다 시간이 되도 안 나타는 친구가 있어서 전화를 하니 아뿔사! 아직도 자고 있지 않은가?
사람 한 몸도 다 맘대로 잘 통제가 안 되는 것이 인간사이니 다른 사람의 몸까지 어찌하겠는가?
우선 다른 일행 두명을 태우고 그 친구 집 근처에 들려서 합류하여 약간은 늦은 시간을 달려서 화엄사를 향했다.
꽃을 찾아 헤맨 적이 바로 저번 주 까지인데 벌써 주변의 초록은 화들짝이다.
꽃들이야 늘 관심으로 바라보면서 그 변하는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니 그런대로 그 피어남과 만개와 사그러짐을 관찰할 수 있고 또 찬탄과 아쉬움의 한숨을 토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인간들의 속마음을 비춰보기도 하지만 신록은 정말이지 어느 날 느닷없이 갑자기 떼로도 데모라도 하는 듯이 우리의 눈을 파고든다.
그것은 우리가 그만큼 관심을 게을리 한다는 반증일 것이고 그런 사이에 하나의 합창으로 우리를 졸지에 감동시킨다.
우리가 내내 남쪽으로 달려가는 주변의 신록이 그랬다.
막 피어나는 연초록의 합창이 힘차고 우렁차서 어두운 마음이 가슴구석 한켠에 자리하고 있더라도 다 날려버리기에 충분할 만큼 그렇게 생동감이 있었다.
늦은 우리의 발길 때문에 한 번의 쉼도 없이 내쳐 3시간 반가량을 달려 화엄사에 도착했지만 문경에서 오기로 한 본진은 벌써 도착하여 어느 스님의 설명 속에, 단청의 색이 거의 벗겨져 원래의 나무가 가지는 자연미가 오롯한 각황전 앞에 이름표를 한 개씩 매달고 있었다.
늦게 도착한 우리 일행도 슬그머니 끼어들어 이야기를 듣는데 부처님의 키가 원래 5미터란다.
이의 길이가 큰 손가락 길이 만했다니 부처가 확실히 인간이 아니고 신은 신인가보다.
원래는 우리 같은 인간의 형체였을 부처를 사람들이 덧붙이고 붙여서 그렇게 크게 만들지 않았을까?
사람들의 어리석은 신심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그 위의 사사자 석등을 보러 갔다.
사자 네 마리가 그 무거운 돌덩어리를 머리 정수리에 이고 있는 모습이 우습기도 했다.
인간들이 신심이 우매한 사자의 마음까지도 신심의 영역으로 끄집어내어 저리도 천년 넘게 고생을 시키고 있으니 그들에 의해 받들어진 신심의 고귀함은 지켜지고 올려졌을지 몰라도 자유롭게 뛰어 놀아야할 사자들한테는 안 되었다는 생각이 일순 들었다.
아까의 그 스님이 그 사자상에 기대어 이리 저리 불교의 세계를 ‘확대’해석하는데 불심 없는 나로서는 꼭 ‘어줍잖은’ 현대미술에 여러 가지 해석을 다는 것처럼 어색하기만 해서 조금은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지만 그 스님의 신심으로는 굳건히 믿는 바인 모양이니 다 사람의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에 의해 신의 세계의 존재성의 유무가 결정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늦게 도착한 우리 일행은 시간도 없고 빨리 그 일행을 또 쫓아가야 하는 통에 화엄사를 더 이상 둘러 볼 여우가 없이 화엄사를 나서서 다음 목적지인 칠보사를 향했다.
칠보사 가는 길은 쌍계사 가는 길하고 같았다.
바로 서너 주 전만해도 화창한 꽃으로 아름다운 구름다리를 만들었던 벚꽃들은 자취도 없고 오로지 신록의 터널만이 한참동안 이어지는 그 길을 따라 가다 초록의 지리산 속을 한참 꾸불거리며 올라가니 주변의 초록을 거느리고 절간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절간은 작고 특별히 나의 관심을 끌만한 것이 없는데 기와로 쌓아 올린 굴뚝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요사채에서 벽에 기대어 쌓아놓은 장작의 단면의 절묘함을 발견 할 수가 있었다.
크고 작은 원이며 타원형과 삼각형이면서 부채꼴의 나무 단면과 그런 것들의 사이사이에 길쭉하게 놓여진 나무결의 모양 등이 너무나 조형적으로 아름다웠다.
현대미술의 시발점이 이런 우연의 발견에서 기인 한 부분이 많으니 지금의 우리가 현대미술을 보고 느끼는 허망함은 다 그런 순간적인 미학적 발견에 그 뿌리가 있음에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도 장작은 그것을 쪼개고 포개 쌓은 사람의 땀과 겨울날의 따뜻함에 대한 기대감을 오롯이 쌓았으니 정겨움이 크겠지만 내가하는 미술의 영역은 그런 아름다움을 도적질이나 하여 캔버스에 비춰내는 것이 아닐까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친구가 손가락으로 가르키는 풍경을 보니 풍경속의 자그마한 네 개의 망치 중에 세 개가 천으로 감겨 있고 오로지 한 개만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저번에 어느 여행지의 민박집 주인의 말이 생각났다.
“여기 물소리가요 공해라구요 공해!”
풍경소리가 스님의 불심에 얼마나 방해가 되면 저리 높이 걸려있는 풍경의 망치에다 천을 감았단 말인가?
아름다운 소리라도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공해도 되고 잡음도 되는 것이니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넉넉한 자연의 눈으로 보면 간사하고 우매하기 그지없는 것이리라.
내 키가 부처키처럼 한 5미터 정도가 된다면 그 천들을 다 풀어 제쳐서 풍경의 자유를 만끽하게 해 주고 싶었지만 우리 앞집 성대수술한 개의 짓는 소리처럼 그 한 개의 풍경망치가 두드리는 풍경소리는 아름다움보다는 애잔함만 더했다,
그렇게 작은 절을 돌아 나와서 신록들의 도열을 받으며 간 곳은 쌍계사.
덤덤한 마음으로 가서 쌍계사에 들려 절 앞의 비석과 비두를 이고 있는 거북이 앞에 다다라서 스님의 설명을 듣는데 그 비두의 용머리 조각 사이에 있는 그 비석 머리글의 한자글씨체가 영낙없이 몇 일 전에 만든 내 그림의 뿌리가 아닌가?
일명하여 ‘지렁이 기법’의 그림인데 그 글씨체가 그런 모양을 쏙 빼 담고 거기 천년 넘게 박혀 있는 것이 아닌가?
적당히 가늘은 글씨체의 끝을 힘없이 삐치고 글자간의 간격이 적당히 헐렁한 모양이며 또 많지도 적지도 않게 ‘돋음새김’ 해져 있는 모습이 내가 모색하고자 했던 요소들을 그대로 간직한 채로 내가 나타나기를 오랜 세월동안 깨지고 이끼 끼고 닳은 채로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그렇게 새겨져 있었다.
우연치고는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
깨져서 수리 들어간 내 카메라 대신 친구의 카메라를 시켜 열심히 누르게 했다,
아마 이제껏 만들어진 사람들의 그림 중에 그 원천을 이처럼 먼저 만들고 나중에 찾아진 예는 동서고금을 통털어 없었을 것이다.
나는 대단한 발견을 한 양 의기양양해서 그 비석을 돌아 대웅전을 향했다.
안은 볼 생각도 못하고 밖을 돌아들어 친구와 함께 커다란 구유통을 보는데 절간에서 소를 키운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으니 아마 커다란 행사에 쓰이는 비빔밥통인가 보다. 거기다 밥을 비빈다면 수백 명 아니 수천 명은 족히 먹이고도 남음 직하다. 예수가 도시락 한 개로 수천 명을 먹였다고 하더니 여기서도 혹시 부처의 기적이 일어나서 수천 명을 먹일 비빕밥과 통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아닐까?
다시 돌아보는데 외벽의 포개진 두 개의 중간 기둥의 바랜 단청색이 절묘하게 아름다운 조화를 연출하고 있었다.
그 예날에 어느 유명한 단청장이 무늬를 넣고 색을 칠했겠지만 그것에 다시 세월의 풍상이 더해져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만들어 낼 수 없는 아름다움을 만들어 냈으니 절간이 있어서 가능하고 그 절간이 있게 한 부처가 있어서 가능한 것이니 진정 신심의 힘에 기대어 만들어진 예술세계가 아니겠는가?
쌍계사를 나와서 우리는 하동 차생산지를 가서 차밭을 구경하고 자리에 앉아 차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이런 천연 차는 흔하게 만들어지는 일반 봉지 차의 효능의 백배는 된다니 이런 차를 많이 마시면 장수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았지만 시음장에서 차를 마실 시간을 벌어서 문경팀으로 오늘의 행사를 주관한 박선생에게 인사를 건네고 그냥 돌아올라 가는 길을 나섰다,
우리 일행 중에 이여사의 산 그림 주제도 구경시켜 줄 겸 또 기왕에 온 지리산 자락을 좀 더 휘감고 올라 가볼 겸 우리는 굳이 빠른 길을 버리고 노고산 길을 택했다.
입장료를 또 달랜다. 주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화엄사에서도 국립공원 입장료를 냈으니 여기서는 중복해서 낼 필요가 없을 것 같은 나의 생각에 말을 거니 화엄사 입장권이 있으면 반액이란다. 나의 순발력 덕분에 반액을 퇴해 받고는 즐거운 마음이 배가 돼서 산길을 달려 올랐다.
우리가 예상한 대로 산은 아름다웠다,
신록이라 던지 초록이란 던지 하는 말이 실감났다,
사방에 돋아난 파릇파릇한 입들의 색은 그 생명력을 맘대로 폼 내고 있었고 나뭇잎들이 적당히 소복하게 자라서 각 나무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각각의 미묘한 초록의 생상차를 머리에 이고서 생생함으로 소리치고 있었다.
그 너른 지리산 초록의 치맛자락을 휘감고 난 길을 올라서 또 내려오니 온 천지에 펼쳐지는 초록의 장관은 수수함과 생명력과 희망의 난장판 바로 그것이었다.
그렇게 지리산을 수박겉핥기하고 내려오니 우리는 배가 고팠다.
식당을 찾으며 내려오는데 청국장이란 길가 팻말이 우리 친구의 세심한 눈에 띄어 어느 식당에 들어갔다.
‘청솔식당’
일요일인데도 손님은 우리뿐으로 썰렁하고 주인인지 주방에서 일하는 분인지 구별이 안 되는 아주머니 두 분이 계신데 손님을 그저 지나가는 강아지 보 듯하고 집안도 그냥 상업적으로 공간을 크게만 짓고 지나는 단체손님이나 받아서 매상이나 올리는 그런 식당 분위기인지라 어정쩡한 기분으로 우리는 청국장과 묵무침과 막걸리를 시켰다.
그 유명한 전라도 반찬은 깔 생각도 안하고 청국장냄비만 ‘댈룽’ 가스불판 위에 올려놓는데 뚝배기도 아니고 그럴 듯한 사기도 아닌 그저 평범한 그릇에 된장 풀은 물에 작은 버섯줄기 한웅큼과 두부 잘게 썰어 넣은 것이 전부다.
우리는 ‘긴가민가’하는 의심스런 눈초리로 우물우물 하는데 이어서 반찬들이 나오는데 그릇들이 모두 이 지방의 특유의 질그릇들이다.
도자기를 배우는 우리 친구 말이 이 지방 질그릇이 원래가 유명하단다.
질그릇들의 멋도 멋스러웠지만 거기에 놓여 져 있는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물의 가짓수들이 적당하고 맛깔스럽다. 그 중에 도라지에 홍어회무침이 일품이었다.
그리고 서서히 끓어가는 청국장의 모습이나 그 부드러운 색상이 예사롭지가 않다.
한 숟가락 떠 넣으니 참으로 절묘한 맛이다.
짜지도 맵지도 쓰지도 달지도 않고 무엇이든지 알맞은 맛이다.
토종 콩으로 만들었다는 콩 맛도 예전에 경칩 때 궈 먹던 개구리 맛이랄까 그 맛의 순하고 고소한 맛과 퍽퍽한 맛이 참으로 기묘한 맛이었다.
우리들은 오동통하고 후덕하고 넉넉한 몸집이고 또 정으로 똘똘 뭉친 잔잔한 눈두덩이에 묻힌 눈을 가진 주인아주머니를 이구동성으로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였다. 그랬더니 화답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그 분이 동동주 한 컵을 운전수인 나만 빼고 마셔 보란다.
더덕주냐고 물으니 오히려 그런 것은 흔한 것이라고 하면서 그냥 마셔보란다.
산삼주라도 된단 말인가?
나는 옆에서 어차피 막걸리 한 모금을 이미 마신 터라 그저 맛있게 마시는 친구들의 모습을 침만 꼴깍이면서 바라만 볼 뿐 어쩔 수가 없었다.
그것이 그 여주인의 고도의 상술인지는 잘 모르나 결국 그 술의 번지수는 가리지 못하고 우리는 그 집의 명함을 한 장씩 받아 들고 그 신묘한 맛의 청국장집을 나섰다,
우리는 지리산 자락의 그 신록의 아우성과 산사의 잔잔함과 우리들 재잘거림의 찌거기 배출의식과 여행의 들뜬 즐거움의 뒤범벅을 차에 싣고서 늦은 밤의 고속도로를 달려 처음 출발지 분당에 도착하여 다음 여행을 기약하며 각자의 보금자리로 즐겁게 헤어졌다,